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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자료: 구원의 필요성
    2002-07-31 14:57:15   read : 2970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왜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

    당신은 "구원받으셨습니까?"라는 다소 이상한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모르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질문자의 질문하는 의도를 모르셨거나 또는 "구원받다"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도로변의 빌딩이나 간판에 "예수께서 구원하십니다"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그 말의 구체적인 뜻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또 "구원받다"나 "구원"이란 말들이 자주 나오는 책자를 받아본 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에 대해서 아주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당황했을 것입니다. 이 글의 목적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매우 중요한 주제인 하나님의 구원의 도리를 밝히 알려 드리는 데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구원받다"와 "구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구원"이란 말은 임박한 위험으로부터 구출 또는 구조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수영을 할 줄 모르는 한 사람이 강물에 빠져 익사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고 할 때, 스스로 헤엄쳐 나오려는 모든 노력은 헛수고일 뿐입니다. 그런데 능숙하게 수영을 할 줄 아는 어떤 사람이 그의 위험을 보고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그를 물에서 구해준다면, 구조 받은 사람이 후에 그의 경험을 얘기할 때 "익사의 위험으로부터 구원받은" 자로서 그것을 얘기할 것이고, 그를 구조해 준 사람을 "구원자"라고 부를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원"이란 말은 곧 위기, 구원자, 그리고 구출의 개념을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에게 보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구원에 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구원자", "구원받다", "구원"이란 말들이 여러 번 나타납니다. "구원자"는 물론 구원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구원받는" 자들은 그들의 위험으로부터 구출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구원"은 그 구출의 시작으로부터 끝날 때까지의 전체 과정을 말합니다.
    성경이 구원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언급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위험에 처해 있고, 그 위험으로부터 구원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는 그 위험이 무엇이며 왜 우리가 그 위험에서 구원받아야 하는가를 성경 말씀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우리 모두는 날 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즉, 우리 모두는 우리 안에 죄의 본성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우리는 이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부모로부터 그것을 유전 받았으며, 그들은 또 그들의 부모로부터 유전 받았고…, 그것은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는 "본성"에 의해서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실제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고, '우리가 말하는 것'을 말하고, '우리가 행동하는 것'을 행합니다. 즉 우리 내부의 본성이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말과 우리의 행동을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보고 "성품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즉 이 말은 그의 생애를 통해 친절함과 같은 특성들이 잘 드러나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의 타고난 성품은 그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작은 벵갈 호랑이 새끼는 매우 예쁘고, 새끼 고양이만큼이나 위험하지 않습니다. 이 어린 호랑이는 어릴 동안에는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비록 어리다 해도 그 속에는 피를 갈망하는 호랑이의 타고난 성품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나운 성품은 그것이 성장함에 따라 그의 행동들에 의해서 증명되고, 곧 정글에서 공포의 존재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필요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진정한 본성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는 한 때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칠 수 없던, 사랑스런 아기였던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되었습니다. 무엇이 이 어린아이들을 위험한 범죄자로 만들었을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들 속에 있던 죄의 본성이 방해받지 않고 발달하여 마음속의 생각들과, 입술에서 나간 말과, 생활 속에서 행해지는 행동들과, 그리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태도를 통해 드러난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은 우리가 어떻게 태어날 때부터 이런 죄악 된 본성에 사로잡히게 되었는가를 말해줍니다. 첫 번째 사람이며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에덴 동산에서 죄를 지었을 때, 자기뿐 아니라 그에게서 이어져 내려올 온 인류가 죄를 지은 것입니다. 즉 아담은 모든 사람을 그와 함께 그의 타락 속으로 끌어 내렸던 것입니다. 아담은, 그의 불순종으로 그가 얻게 된 죄의 본성을 자손들에게 전달했으며, 그의 자손들은 또 그들의 자손들에게……, 이렇게 전달하기를 현재까지 계속해 온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 각자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만드는 죄스러운 본성을 갖고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우리는 죄인이 되기 위해서 죄를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제 확실히 이해하시겠습니까? 이것은 로마서 5장 12절에서,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뜻입니다.
    당신의 국적이 당신이 태어날 당시 부모의 국적에 의해서 결정된 것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영적인 상태는, 죄인들이었던 당신의 부모에 의해 결정된 것입니다.
    조금 더 예를 들겠습니다. 개는 '개가되려고' 짖지 않습니다. 그것은 '개이기 때문에' 짖습니다. 말은 '말'이 되려고' 히힝 거리며 우는 것이 아니고, 단지 '말이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인간은 '죄인 되기 위해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고,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개는 짖는 것이 그의 타고난 본성이기 때문에 짖습니다. 말은 그의 타고난 본성대로 그렇게 웁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에게 거짓말하는 것, 부모에게 순종치 않는 것, 성내는 것, 남의 것을 취하는 것, 악한 생각을 하는 것, 악한 말을 하는 것 등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의 타고난 본성의 깊은 뿌리에 있는 그것들은, 후에 그들의 행실을 통해 드러날 것입니다.
    사과나무는 '사과나무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 열매를 맺습니다. 나무의 뿌리의 어떠함은 그 결실하는 열매에 의해서 드러납니다. 어떤 사과나무는 크기가 겨우 10cm밖에 안 되고, 한 개의 사과도 열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수년 후 크게 자라 수백 개의 사과가 열렸을 때와 마찬가지의 '사과나무'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그 안에 죄의 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명백하게 말씀하십니다. 다만 그 '죄의 열매'(즉 생활 속의 죄악된 말이나, 생각이나, 행동들)가 열리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5절, 예레미야 13장 23절, 17장 9,10절, 이사야 53장 6절, 그리고 마가복음 7장 21 -23절을 읽어보십시오.

    둘째, 우리가 이 죄악된 본성의 지배를 받을 때에는 즉 '육신에 속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받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죄스러운 본성(보통 성경에서는 "육신"이라고 부릅니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과, 그분의 길에 전혀 합해지지 않습니다. 이 본성대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과 원수되어, 하나님을 거스르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은 싫어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주의 깊게 들어보십시오,
    "육신의 생각(또는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로마서 8:7,8).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간단히 말해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 구원받지 못했다면, 온 생애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죄스러운 본성의 지배하에서 사는 삶은, 하나님께 대해 쓸모 없이 버려진 인생입니다.
    "육신"(flesh)이란 단어의 마지막 글자(H)를 떼어내고 나머지를 거꾸로 나열해서 보면, 그 뜻이 가장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즉 "S-E-L-F"(자기)가 됩니다. 이처럼 사람이 "자기"(self)를 기쁘게 하는 생활, 또는 '육신에 속한' 삶을 살 때 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그 당시에 가장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사람 중 하나였던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요한복음 3:1 -16)고 말씀하신 까닭입니다. 그 이유는 확실합니다. 니고데모는 종교적이고 도덕적이었지만 아직도 '육신 안'에, 즉 타고난 본성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육체의) 출생을 통해 우리는 "육체의 생명"과 "사람에게 속한 본성"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 속한 삶'을 살 수 있게는 하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죄인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순간,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생명, 즉 "영의 생명"을 주심으로써 "신의 성품"에 참여케 하시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로마서 14:17)라고 말씀하신 '영에 속한 세계'에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생명을 얻음으로써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육체의 생명과 사람에게 속한 자연적인 본성을 받는 것을 "출생"이라고 하는 것처럼 영의 생명과 신의 성품을 받는 것을 성경에서는 "중생(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 베드로후서 1장 3,4절을 보십시오.
    이 중생은 "육신"이라는 부패한 옛 성품을 교화하거나 개선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옛 성품은 개선되거나 바뀌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라고 말씀하신 까닭입니다.
    만일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잘 가꾸어서 포도와 무화과를 생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가령 그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가져다가 온실 안의 이상적인 조건과 기름진 토양에서 잘 가꾸어 포도와 무화과를 수확하려 한다고 합시다. 이 실험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당신도 정확한 답을 아실 것입니다. 그가 이를 통해 얻는 것은, '잘 가꾸어진 가시덤불과 엉겅퀴' 뿐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태복음 7'16)라고 하셨을 때 말씀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중생(거듭남)이란 믿는 자에게 전혀 새로운 성품(즉 하나닝의 성품)을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이 성품은 믿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연구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기뻐하게 하고, 하나님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 안에서 만족하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믿는 자는, 그 안에 성령께서 거하시므로 그 삶이 더 이상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습니다. 로마서 8장 9절, 에베소서 1장 13절, 4장 30절, 갈라디아서 5장 16-23절을 읽어보십시오,
    이제 당신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 보십시오. "나는 진정 거듭났는가? 아니면 나 자신의 노력과, 결심과, 종교적 훈련과, 선행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얻어내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억하십시오. 주 예수께서는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종교인이든 무신론자이든, 도덕적인 삶을 살든 그렇지 않든, 지식인이든 학문이 없는 자든지, 젊었거나 나이 들었거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에, 당신은 '거듭나야 합니다(로마서 8:7,8).

    셋째, 우리는 실제 행위로써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즉, 우리는 수없이 많이 고의적이고 의도적으로 잘못된 것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기를 택해 왔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은 정직하게, 이 말이 진실되다는 것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당신이 지난 며칠간이나 단 몇 주, 또는 몇 개월간의 생활만 되돌아보더라도, 당신이 여러 경우에 여러 가지 방범으로 죄를 지은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마음 가운데 남아 있도록 허용해 온 모든 더러운 생각들, 거짓말, 다른 사람을 거스르는 행동, 모든 합당치 못한 태도, 이 외에 당신이 행했던 기타 모든 잘못된 행동들은 하나님께 대한 죄 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죄는 하나님께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어떤 분들은 이런 것들을 기억해 내는 것이 불쾌하기 때문에 위의 사항들을 점검하지 않은 채 생략하고 넘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진실에 대해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비록 어떤 사실들이 불쾌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정면으로 대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자기를 맡기고 자세한 진찰을 받아 무서운 질병이 드러나게 되지만, 한편 의사에게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너무 일찍 찾아온 예기치 못했던 죽음으로부터 구함을 받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위대한 의사입니다., 그분의 진찰을 받고 그 진단의 정확함을 깨달아, 그리스도께서 선언하신 대로 자신이 범죄한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만이 베풀어주실 수 있는 치료함을 받기 위해서 스스로를 그분의 손에 맡기는 것이 현명합니다.

    성경은 물체의 이면에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는 엑스레이와 같은 것입니다. 성경의 각 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대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속속들이 아시며 우리는 그분에게 아무 것도 숨길 수 없습나다. 성경에서 다음 말씀들을 주의 깊게 읽으시고, '모든 사람'에 대해, 특히 '당신 개인'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씀하셨는지 보십시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다 지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3:10-18,23).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당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본래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정말 사실일까요? 당신은 당신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죄를 미워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당신이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어떤 대단한 범죄자나, 다른 사람들만큼 크게 죄짓지 않았다는 것이 핑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림이 죄를 범하였으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이 같은 종류의 죄를 짓거나, 또는 똑같은 정도로 죄를 짓지 않았다 하더라도, 죄를 지었다는 사길은 모두 같다는 것입니다.
    잠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가운데에 표적이 있는 네모 난 과녁이 있습니다. 50m 떨어진 곳에 세 소년이 활과 화살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각은 과녁의 중심에다가 화살을 쏩니다. 첫 번째 소년은 과녁을 완전히 빗나갔고, 두 번째 소년은 과녁의 가장자리를 겨우 맞추었고, 세 번째 소년은 표적에서 5cm 정도 떨어진 곳에 화살을 맞추었습니다. 자, 어느 소년이 표적을 맞추는데 성공했을까요?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과녁의 중심에 못미쳤습니다. 누가 과녁의 중심에 더 가까이 맞추고, 더 멀리 맞추고 한 차이이지, 표적에 명중시키지 못한 것은 실제로 서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과녁의 중심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맞는 절대 완전의 기준을 말합니다. 그분의 율법에 나타난 그 기준을 보십시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누가복음10:27).
    누가 진실로 이 모든 기준을 만족시켜, 과녁에 명중시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법의 빛에 비추어 보면 볼수록, 우리가 하나님의 완전한 기준에서 그만큼 더 멀리 떨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음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누구든지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실제 행위로써 죄인'입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말이든, 생각이든, 행동이든, 마음의 태도이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것(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당신 자신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대로, 그분 앞에 죄인인 것을 인정하시겠습니까? 당신이 수없이 많이 잘못된 것, 더러운 것들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해왔다는 것을 인정하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자기 죄에 대한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고, 탕자와 같이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누가복음 15:21)라고 고백하며, 또 세리처럼 울면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누가복음 18:13)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지혜입니다. 죄를 감추거나, 핑계대거나, 그다지 중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려 하거나, 또는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부르거나, 다른 이들을 원망하거나 하지 않아야 합니다. 정직하고 솔직하게 대면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태복음 9:13),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누가복음 19:10)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또 다음 구절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2장 1-3절, 디도서 3장 3절, 전도서 7장 20절, 시편 14편 1 -3절, 잠언 28장 13절.

    넷째, 하나님께서는 죄를 반드시 벌하시시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의로운 분이시므로 어떤 모양, 어떤 형태의 죄도 싫어하시며, 그것을 반드시 벌하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말씀에서 "너희는 나의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지 말라"(예레미야 44:4)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분은 또 우리에게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하박국 1"13)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준엄한 말씀을 경청하십시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로마서 6:23).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에스겔 18:20).
    이 세상 법률이 범법자를 공의롭게 다스려야 하듯이, 어떤 죄인이 만일 그의 죄를 용서받지 못한 채 죽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죄와 죄인에게 반드시 심판을 내리십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 죽으리라…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요한복음 8:21,24)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 나라 문에는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니라"(요한계시록 21:27)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죄의 오점도 하늘나라를 어둡게 하지 못합니다. 그곳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죄를 깨끗하게 씻음 받은 상태이어야만 합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고, 자신들의 죄 속에서 죽는 사람들에게는 하늘나라의 소망이 없으며 대신에 영원한 슬픔이 있는 바깥 어두운 곳에서 통곡하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엄중히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장 43-48절, 마태복음 25장 30,41,46절, 누가복음 16장 19-31절을 읽어보십시오.
    이런 슬픈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하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 많으신 구세주 그분께서 그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거저 주시는 구원을 무시하거나 거부하거나 멸시하는 이들을 기다리는 무서운 운명에 대해서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도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너희에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베드로후서 3:9)고 하신 분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원히 그분에게서 분리되는 것과 죄로 가득한 상태로 사망하는 것이 얼마나 이루 말할 수 없이 커다란 위험인가를 충실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이제는 분명히 각각의 독자께서 진지하게 다음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으셔야 합니다.
    "내 죄 가운데서 죽게 되면 내게 임할 그 두려운 결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 이에 대한 대답은 다음 장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기쁜 소식" - 알프레드 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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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을 위한 준비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예비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어느 영혼도 영원히 잃어버리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자,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로 인한 결과에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그분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빛이시라"(요한일서 1:5)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죄를 그대로 내 버려두실 수 없습니다. 성경은 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한일서 4:8)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죄인을 그 상태대로 내버려두실 수 없습니다. 주 예수께서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그분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한복음 3: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고 그것을 벌하셔야만 하지만, 또한 죄인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구원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분 자신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상태로, 슬퍼해 주는 이 없이, 불명예스럽게, 아무도 모르게 죽을 수는 있지만,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떠한 모습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마치 폭군으로 여기고, 조금이라도 율법을 어긴 자들을 처벌하지 못해 안달하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디도서 3:4)을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그분이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에베소서 2:4)이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디모데전서 2:4) 원하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들의 구원자로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그분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는 우리에게 주신 그분의 선물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시며 영원부터 아버지와 함께 하셨던 아들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할 수도 있다는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함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확실히 사랑하셨기 때문임을 보여줍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서, 밝고 아름다운 천국을 떠나, 죄와 어둠과 죽음과 파멸과 절망의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의 놀라운 은혜로 인하여,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성령으로 잉태되어, 베들레헴의 한 처녀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죄의 본성이 없는 분입니다. 성경은, 그분은 죄가 없으시며, 죄를 알지도 못하시며, 죄를 짓지 않은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히브리서 4:15; 고린도후서 5:21; 베드로전서 2:22). 그분의 생애에는 생각이나 말이나 행함에 있어서 어떤 오점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으신"(히브리서 7:26) 분입니다. 단 한 분의 죄 없으신 구주가 죄 많은 인류를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출생의 놀라운 기적과 신비를 생각해 보십시오. 만물의 창조자였던 그분이 베들레헴의 작은 아기가 되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우리가 받을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 대신 죽으시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누가복음 19:10)고 구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7)고 다시 한 번 밝히 나타내셨습니다.

     셋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에 깊은 관심을 두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복음의 핵심이며, 이 큰 진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당신의 구원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사람으로 사셨던 이 땅에서의 완전한 삶과, 그분이 전파하신 놀라운 말씀과, 능력 행하심으로 그분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단지 그분의 신성(단지 그것만으로는 죄인을 구원할 수 없는)을 보여주기 위해 오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구원은 오직 우리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심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 "범죄하는 자는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압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의로우시므로 죄를 그냥 내 버려두실 수 없으며, 반드시 벌하셔야만 합니다. 그러면 죄인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단 한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대신하신 '대속의 희생'과 '승리의 부활'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죄 없으신 아들이, 기꺼이 자신을 희생물로 십자가 위에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베드로전서 2:24). 우리의 모든 죄를 아신 하나님께서, 그 죄악들을 모두 그분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이사야 53:6).
     그것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리스도는 이 죄들로 인한 벌로 가장 커다란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하나님의 모든 심판이 그분에게 내려졌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의 파도와 소용돌이는, 그I 죄를 짊어진 한 사람에게 덮쳤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쏟아질 모든 형벌을 그분이 친히 남김없이 받으시고 견디셨으며, 죄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켜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 삼일에 그분은 부활하심으로 '그분을 믿는 죄인들 모두를 구원하기에 필요한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당신은 이 놀라운 사실을 마음으로 깨닫고 믿으셨습니까? 이렇게 노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의 모든 죄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놓여지고,
     그분은 나무에 달려 이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나의 모든 죄악을 아신 하나님이
     친히 그에게 담당시키사
     나를 자유케 하심이로다.

     구주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고 승리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엇이 완성되었다는 뜻일까요? 그분이 이 세상에 와서 하고자 하셨던 모든 일은, 전적으로 그분이 완성하신 일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그분을 자기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저 주시는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3일째 되는 날 예수님을 죽음에서 끌어올리심으로, 예수께서 죄의 값을 갚으시고 구원을 완성하심에 대해서 온전히 받으셨음과 만족하심을 표시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일이 단번에 영원히 수행되었음을 세상에 공표하는 하나님의 승인이며 증표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나 구원을 받을 만한 공로가 우리의 선행이나 노력이나 결심이나 종교적인 의식이나 기도나 슬픔 등에 있지 않고, 오로지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일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구주로 모시는 사람들의 구원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단순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많은 돈을 빌렸다고 가정 해 봅시다. 빚을 갚을 때가 되었는데, 당신에게는 빚을 갚을 만한 한 푼의 돈도 없습니다. 그는 당신을 고소하겠다고 협박하고, 이것은 자연히 당신을 매우 곤란하게 합니다. 그런데 한 부유한 친구가 그 곤경을 듣고 와서 그 빚에 대하여 더 이상 염려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내가 너의 채권자에게 가서 너의 빚을 모두 갚고 영수증을 가져다 줄게." 곧 채권자는 빌려준 돈을 모두 돌려 받았고, 친구는 채권자가 발급한 영수증을 가지고 잠시 후 돌아옵니다. 물론 당신은 말할 수 없이 큰 감사를 그 친구에게 표시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채권자에게 빚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당신이 그 빚을 갚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당신은 지불할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당신은 그 많은 빚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까? 당신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나의 친구가 나의 궁핍함을 알았고, 나를 위해서 빚을 갚았습니다."
     이것이 구주 예수께서 갈보리에서 하셨던 바로 그 일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죄를 알았고 지셨으며, 그에 대한 모든 율법의 요구를 그분의 죽음으로 처리하셨습니다. 당신은 이 복된 소식을 믿으신 적이 있습니까? 만일 없으시면, 지금 곧 믿으십시오(누가복음7:41 -43).
     한 번 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당신은 죄를 범했고 그에 대한 형벌은 사형이라고 가정합시다. 당신은 체포되고 재판을 받아 교수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사형집행일 아침 단두대로 끌려가고 있을 때 놀랍게도 당신에게 사형을 언도한 판사가 나타납니다. 사형집행자가 밧줄을 당신의 목에 둘러매려고 접근할 때 그 판사가 앞으로 나와서 그 집행자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 사람을 그의 범죄의 결과인 사형 집행에서 구원하기 의해 왔다. 나는 그의 범죄의 책임을 지고 그 대신 죽음으로써 그에 대한 법률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겠다. 그 대신 내 목에 밧줄을 매달라."
     (그와 같은 교환이 일어날 수 있다면) 밧줄은 그 판사의 목에 매어지고 그가 당신 대신 매달립니다. 그 판사가 한 일을 당신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당신은 의심 없이 대답할 것입니다.
     "그 판사는 나를 사랑했습니다. 나에게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데도 나의 죄를 지고 나를 위해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나의 범죄로 인한 형벌에서 나를 구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라는 곳에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죄 속에서 죽어야만 하고,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영원히 추방 받았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창조주시며 온 세상의 재판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속물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음으로써 그 죄들을 해결하셨으며, 승리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고, 자녀로 받아들이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분은 십자가 위에 달리시고 버림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형벌을 대신하여 그분이 형벌을 받으셨고 우리는 자유로워졌습니다. 당신은 거룩하신 구주께 당신을 위해서 하신 일로 인해서 감사해 본 적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린도후서 9:15)고 했고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셨다"고 고백했습니다(갈라디아서 2:20).
     이사야 53장 5절, 마가복음 10장 45절, 마태복음 1장 21절, 요한복음 10장 11,15-18절, 고린도전서 15장 3,4절, 고린도후서 5장 14,15절, 베드로전서 3장 18절, 요한계시록 5장 9절도 읽어보십시오.
     이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잃어버린 죄인들에게 어떻게 구원이 가능하게 하셨는가를 분명히 보여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구주로 세상에 보내심으로 그분의 사랑을 모두에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상에서의 사역과 승리의 부활로써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쁜 소식" - 알프레드 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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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의 방법

    죄인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당신은 이제 이런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사도행전 16:30, 31) 당신이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로부터 구원받는 이 문제에 성실히 대면하신다면, 당신에게 꼭 필요한,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주기를 원하시는 이 놀라운 구원을 소유하는 것을 아무 것도 막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이 구원을 얻기를 원한다면, 다만 이 구원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구원 베풀기를 가장 원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당신 안에 이 구원을 향한 소원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죄인으로 하여금 구주에 대한 필요를 깨닫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한복음 16:7-11). 만약 당신이 잃어진, 죄악에 물들고 소망이 없는, 지옥에 가야 마땅할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면, 바로 성령께서 이 깨달음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태복음 9:13)고 하셨습니다. 죄인만이 용서받아야 할 필요를 깨달으며, 잃어버려진 자만이 구주를 필요로 함을 알며, 병든 자만이 의사를 필요로 합니다. 당신은 지금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까?
     "나는 내가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의 구원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해야 이 구원자를 나의 구원자로, 이 구원을 나의 구원으로 삼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오,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
     이것이 당신의 문제입니까? 다음 내용을 주의 깊게 읽으십시오. 이 질문에 대해서 가능한 한 단순하게 대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당신의 이 필요를 솔직히 하나님 앞에 인정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당신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신 그 사람이 바로 자신임을 인정하십시오.
     (1) 당신이 죄인이라는 것,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의 소리를 거역하고 계속해서 죄를 지었다는 것을 하나님께 고하십시오. 당신의 죄를 축소하거나, 실제보다 작은 것처럼 만들지 마십시오. "너는 내 앞에서 범죄한 죄인인가?"라고 하나님께서 질문하실 때 솔직히 대답하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변명할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누가복음 15:18, 18:13).
     (2) 당신이 잃어버려진 죄인임을 고하십시오. 죄악된 길에서 방황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원하지 않으시면 영원히 잃어버려진 바 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십시오. 당신이 이 사실을 확실하게 아시기 바랍니다. 만일 당신이 구원을 받지 못하면 당신은 잃어버려진 자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3절에서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의 빛이 당신의 마음에 아직 비추어지지 않았다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잃어버려진 자'들이라 칭하시는 자들 중에 계수 될 것입니다.
     (3) 당신이 어찌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에 합당한 한 가지의 일도 할 수 없는 죄인임을 하나님께 고하십시오. 하나님께 옳다 인정함을 얻으려고 당신이 시도하는 결심, 선행, 기도, 종교적 노력들이 전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다음 찬송시를 쓴 작가와 갈이 고백하십시오.

      "내 손의 수고로는
      당신의 율법에 합당하게 행할 수 없나이다.
     나의 노력이 끊임없이 계속되어도,
     나의 눈물이 영원히 흘러도,
     그 모든 죄를 알 수 없나이다.
     당신이 구원하셔야만 합니다. 오직 당신만이!"

     성경은 죄인을 "연약한 존재"(로마서 5:6), "죄와 허물로 죽은"(에베소서 2:1) 존재로 기술합니다. 생명이나 평화나 소망이나,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없는 자이었습니다(에베소서 4:18, 2:12). 그러므로 이런 상태에 있는 당신은 자신을 구원하기에 전적으로 무력한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구원하심으로써, 이와 같은 당신의 무기력을 통해 그분의 능력을 보이십니다.
     (4) 당신이 지옥에 가야 마땅한 죄인임을 하나님께 고하십시오. 만일 당신이 받아야 할 형벌을 그대로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옥으로 추방하고 그곳에서 영원히 슬퍼하고 통곡하며 이를 갈도록(마가복음 16:16; 로마서 1:18, 2:3-11) 하는 것이 마땅한 일임을 인정하십시오. 이것이 별로 듣기에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절대적인 사실입니다. 당신은 위의 사실을 믿습니까? 하나님께 그것을 고백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진실하게, 정직하게, 성실하게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오 하나님, 나는 죄인이며, 잃어진 자이며, 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어찌할 수 없는 자이며 지옥에 가야 마땅한 죄인입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둘째,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완성하신 그분의 사역에 관한 복된 소식을 믿으십시오. 이는 예수께서 안전한 구원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1) 주 예수께서 죄인인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셨고, 그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신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 당신을 사랑하셨다는 것은 축복되고 영광스러운 진실입니다(갈라디아서 2:20). 바로 이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하늘나라를 떠나 이 땅에 오셨습니다(고린도후서 8:9). 그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요한복음 15:9). 사도 요한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요한일서 4:16)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주 예수께서 당신을 사랑하신 것을 알고, 믿습니까?
     (2)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모든 죄를 자기 몸으로 짊어지시고, 죽으시고, 또 부활하시어 그 모든 죄를 처리하셨음을 믿으십시오. 잠깐 다른 사람들의 죄는 놓아두고, 마치 이 세상에서 당신 혼자만이 죄인인 것처럼 당신 자신의 죄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질문하십시오.
     "예수께서 누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셨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베드로전서 2:24).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한복음 1:20). 이사야 23장 5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이제, 이 성경 구절들이 "우리"를 "나"로 바꾸어 보십시오. 그러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누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셨나?"
     믿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진실로 이와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갈보리의 십자가에 달리신 주 예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아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그 모든 죄를 기꺼이 자기 몸으로 담당하셔서, 마땅히 나의 죄로 인해 받아야만 했던 모든 형벌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나의 의롭다 하심을 위해서 다시 사셨으므로, 나는 나의 죄로 인한 형벌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로마서 4:25).
     이것을 아주 주의 깊게 읽으시고 당신이 진심으로 주 예수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는지 여부를 살퍼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복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이 사실을 당신을 대신해서 믿을 수 없습니다. 당신 스스로, 자신을 위해서 이 사실을 믿으셔야만 합니다. 지금 이와 같이 믿으시겠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죄를 예수께 지우셨다는 것과, 그 죄들로 인한 모든 형벌을 예수께서 다 받으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당신은 자신을 위해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일을 이루셨다면, 감사를 그 분에게 드리며, 그분이 이루신 일에 근거한, 이 단순한 믿음 안에서 쉬고 찬양할 것입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리하셨으며
     죄인을 구원하는 모든 일을 이루셨도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온전하고도 값없는 용서와 평화와
     기쁨과 영광된 자유를 주셨도다."

     셋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구원자이시며 주(主)이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바로 그 순간 당신은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해 여러 가지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에게 오는 것'을 뜻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 여기 걸음마를 배우는 한 아기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 아기를 부축해서 땅 위에 똑바로 서도록 합니다. 엄마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두 팔을 벌리고 "이리 온!" 하고 말합니다. 아기는 엄마가 품에 안아 줄 것을 믿고 혼자 힘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 곧 엄마 품속에 안기게 됩니다. 구주 예수는 당신의 육체의 시력에는 안보이지만 당신이 그 분에게 올 것을 고대하면서 팔을 벌리고 서 계시며, 죄의 짐으로부터 벗어난 쉼을 당신에게 드릴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분께로 믿음의 걸음을 내딛으시고, 당신의 모습 그대로 그분께 나아가십시오. 이제 당신은 그분이 자신의 말씀만큼 좋은 분이란 것을 경험하실 것이고 달콤한 휴식이 당신의 몫이 될 것입니다. 그분은 송사하는 양심으로부터, 달려드는 심판으로부터, 스스로 구원해 보려는 모든 당신의 헛된 노력으로부터 벗어난 쉼을 드릴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란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당신의 생일에 부모님께서 생일 선물로 시계를 하나 사오셨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버지께서 그것을 꺼내 주시면서 "우리의 사랑과 모든 축복으로 네게 주는 생일 선물이란다"라고 합니다. 이제 그 선물을 당신의 소유로 하기 위해서 당신이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즉시 대답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시계를 내미셨을 때, 아버지의 말씀을 믿었다면 당신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그 선물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을 당신의 구원자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에 대하여 죄를 지었고 너의 죄가 영원한 죽음을 받기에 합당하다. 그러나 갈보리의 십자가 위에서 나의 아들이 너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죽었으며 너를 구원하기 위해서 다시 살아났다. 지금 나는 그를 너의 구원자로 준다. 너는 그를 지금 여기에서 네 개인의 구원자로 받아들이지 않겠느냐?"
     당신은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당신은 가슴으로 대답하실 것입니다.
     "구주 예수여, 저는 지금 당신을 받아들입니다. 저의 마음속으로. 저의 개인의 구주로서!"
     이처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에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를 의뢰하여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말했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ale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예를 들어, 당신이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며, 그 돈을 여기저기 가지고 다니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합시다. 그런데 당신이 한 은행가를 알고, 그의 개인적인 정직성을 완전히 신용하며, 그의 은행에 있는 튼튼한 금고의 안전성을 믿는다고 합시다. 그 은행가를 정말로 신용한다면 당신은 그 돈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나의 모든 돈을 다 그가 관리하게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돈을 위탁함으로써 당신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그분께 맡기고, 그분이 당신을 위해서 이루신 그 일을 의지하고 당신 자신을 그분에게 위탁하여 영혼의 구원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진심으로 이렇게 말하십시오.

     "가련한 잃어진 죄인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 당신께 옵니다
     오직 단순한 믿음으로
     나의 죄를 지시고 나를 위해서 죽으신
     당신을 의뢰합니다."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분을 당신 개인의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그분이 이루신 구원을 믿으면 바로 그 순간 당신은 구원받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명백히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31).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넷째, 그리스도를 당신의 삶의 주(主)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실패하여 구원을 누리지 못합니다. 로마서 10장 9, 10절에서 말씀하신 바, "네가 만일 네 앞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주께서는 친히 구원하신 사람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족에게 고하라 하신대'(마가복음 5:18,19).
     그리스도가 당신의 생애의 주(主)시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분이 당신의 소유자이며 통치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즉 당신은 더 이상 당신 자신의 것이 아니며 그분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행하고, 그분이 명령하는 곳으로 가며,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는 주 예수를 당신의 마음속의 가장 높은 자리에 왕으로 모시는 것이며, 그분으로 하여금 당신의 생애를 인도하시도록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린도전서 6:19,20). 즉 이 말씀을 깨닫고 거기에 복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를 주(主)로 삼는다는 것은, 세상과 그것의 죄된 쾌락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며,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삼은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담대히 증언하며, 앞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합니다.
     당신은 비웃음과 경멸과 수치와 또 어떤 박해에도 불구하고, 세상 앞에서 그분을 당신의 구주로 인정하며, 그리스도를 위한 이 담대한 위치에 서 있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당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들에게 거부당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얼굴에 침 뱉고 그분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위하여 그분은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히브리서 12:2).
     세상은, 당신이 그리스도를 당신 자신의 주로 인정하고 그분을 위해서 산다는 것으로 인해 당신을 비웃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당신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한복음 15:19).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 자신의 구원자와 주로 맞이하셨다면,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십시오. 부모, 친구에게 알리고 그리스도를 증거할 기회를 도모하십시오. 이 담대한 고백에 의해서 구원의 기쁨은 더욱 당신의 영혼에 것들 것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이 고백들은 당신의 깃발이 되어, 모든 이들로 하여금 당신이 누구에게 속하였으며, 누구를 섬기는가를 알게 할 것입니다(사도행전 27:23). 사도 바울과 함께 당신은 이와 같이 증언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로마서 1:16).

     조국을 부끄러워하는 군인이나 자기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는 소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 준 구원자를 시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그 사람은 더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요약해 봅시다.
     먼저, 당신 자신이 죄 많고 잃어진 자이고, 의지할 곳 없고, 지옥에 가야 마땅한 죄인임을 시인하십시오.
     둘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사랑하셨고 당신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고, 당신을 위해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으십시오.
     셋째, 분명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당신 개인의 구원자로 받아들이십시오.
     넷째, 그분을 당신의 생명의 주(主)로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십시오.
     바로 지금 당신은 이것들을 엄숙하고 진지하게 수행하실 준비가 되셨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마음을 주 예수께로 향하게 하고 그분께 이와 같이 말하십시오. 당신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당신의 정당화를 위해서 다시 사신 그분께 감사하십시오. 그분을 당신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인다고 말하십시오.
     주 예수를 당신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인, 이와 같이 놀라운 순간을 당신 자신의 글로 기록하여 놓는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음의 진술서는 단지 참고적인 내용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 아는데 있어서 필요한 기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의 결정
    "내 자신이 죄 범한, 잃어진, 의지할 곳 없는, 지옥에 가야 마땅할 죄인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지셨고, 나를 대신해서 죽으셨고 나를 위해서 다시 사셨음을 믿습니다. 나는 지금, 단순한 믿음으로 그를 내 개인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며, 지금 이후로는 그를 내 생명의 주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가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겠습니다."
     서명 :
     날짜 :

     말할 것도 없이, 이와 같은 진술서에 하는 단순한 서명은 당신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당신을 구원하는 결정적인 것은, 축복받은 하나님의 아들을 살아 있는, 사랑하는 구원자로서 당신의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요한일서 5:12)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생명의 주인이시며 구원자로 엄숙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선택하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하나님의 기쁜 소식" - 알프레드 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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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의 확신

    구원받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이 그가 구원받았음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주저 없이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구원받은 사실을 아는 것, 죄가 용서받았음을 아는 것, 영생의 소유자임을 아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자들의 특권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어떻게 압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주 단순하여, 믿는 자들은 이 답에 만족합니다. 이것은 확실하고 명백하며, 변치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기초한 것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신 일은 믿는 자들을 온전히 안전하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은 우리를 안전하게 하고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에게 확신을 주십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당신의 마음으로 굳게 잡으십시오. 여기에 이 장에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자,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한일서 5:13).
     사도 요한은 이 글을 누구에게 쓰고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 쓰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도 여기에 해당이 됩니까? 당신은 죄인으로 그분께 나아와, 믿음으로 그분을 구원자로 받아들였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네가 영생을 가진 것을 알라."
     누가 이것을 말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으며, 이 말씀은 모든 이에게 확고히 적용됩니다. 만일 당신이 "영생을 가진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라고 질문한다면,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당신은 이보다 더 좋은, 더 만족스러운 대답을 기대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잃어버린 바 되었고, 죄 많고 의지할 곳 없으며, 지옥에 가는 것이 마땅한 죄인이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이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으며, 그분의 아들로 하여금 우리 피를 대신 지고 갈보리에서 죽으시도록 하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다시 사심을 믿으면 구원받으리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죄 사함을 받아 영생을 가졌음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에 의하지 않고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얼마나 필요한지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지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성경을 덮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이런 사실들에 대해서 무엇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전혀 없을 것입니다! 성경을 펼쳐 보십시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구원의 증거로 기꺼이 보여 주시고자 했던 모든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빚을 다 갚았습니다. 그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겠습니다. "당신의 빚이 다 지불되고, 자유로워진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그의 대답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영수증을 꺼낼 것입니다.
     "여기 영수증에 증거가 있습니다."
     돈은 지불되었고, 영수증에 기록된 증거는 빚이 청산되었음을 확인하게 합니다.
     죄를 짓고 일정 기간의 형(刑)을 선고받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통령이 그를 사면시켰습니다. 그 죄수는 당연히 그 좋은 소식으로 말미 암아 기뻐했습니다. 만일 그 사람에게 "당신이 사면 받은 사실을 어떻게 알았습니까?"라고 질문한다면 그는 "내가 뛸 듯이 기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겠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그는 단지 대통령의 사면장만을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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