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채소와 맛있는 과일, 여기에 넉넉한 인심으로 마음마저 두둑하게 채워주는 야채가게 사장님이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청춘야채가게’를 운영 중인 김혁(변두리교회) 목사이다. 김 목사는 새벽시장에 가면 과일과 야채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추워도 차 안에서 히터도 틀지 못하는데, 그때 집중해서 읽은 성경 말씀이 꿀 송이처럼 달다고 고백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청춘야채가게’에서 자신의 고민과 삶을 털어놓으며 위로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착한가게’로도 불립니다. 신문 지면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자기 소개 부탁드린다.
대형교회를 두루 거치면서 부교역자로 사역하면서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맞닥뜨렸다. ‘이렇게 가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사임 후 목회를 5개월 정도 내려놨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모두 다 관리형 교회로 가야 하고, 교회의 아픔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들, 교회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됐다.
이후엔 평신도의 마음으로 동기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 출석했다. 목회를 다시는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4명의 아이를 계속 그냥 둘 순 없었어요. 아이들 가리켜야 했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세워야 했다. 2017년에 경기도 고양시에 변두리교회를 개척했다. 치열하게 했던 고민 속에 교회 건물은 의미가 없었다. 예배당을 빌리기 위해 기도를 했는데 은혜교회(성하준 담임목사)가 공간을 공유해 줬다. 이곳은 지하의 작은 예배당인데, 아이들을 데리고 은혜교회 공유 예배당에서 행사도 같이하면서 성도끼리 한 가족이 됐다.
-공간을 쉐어링하면서 예배는 어떻게 드리고있나.
은혜교회가 오전 11시에 예배를 드리고, 저희는 오후 2시에 예배를 드린다. 성도들이 교회를 구분 짓지 않고 1부 예배, 2부 예배라고 부른다. 오후에 일정이 있는 성도들은 오전에 은혜교회 예배에 참석하기도 한다. 은혜교회와 함께 공간을 쉐어링 하면서 동네에 카페 ‘나자르’를 세웠다. 오전에 예배를 마친 은혜교회 성도들은 우리에게 공간을 내줘야 했고, 우리도 예배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직접 벽면에 페인트칠하면서 ‘나자르’ 카페를 꾸몄다. 주중에는 교회 권사님이 운영하는데, 이곳 카페에 주민들도 드나들면서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청춘야채가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야채가게 사장님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던 교회 청년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서였다고 들었다.
개척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른 것보다 한 성도에 대한 꿈, 그것에 주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던 교회 청년과 상담하면서 그의 꿈이 ‘야채가게를 차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개척하면서 ‘작은 자와 함께하겠다’라는 마음을 되새기며 청년의 꿈을 돕기로 결심했다. 한 사람의 꿈을 키워주는 것에 성도들도 동의해 줬고, 협력해서 2017년에 ‘청춘야채가게’를 시작했다. 그게 야채가게가 된 것뿐이다. 아마 그 청년이 야채가게 아닌 다른 장사를 원했다면 다른 가게가 됐을거다.(웃음)
-그런데 현재는 청년이 아닌 목사님이 사장이 돼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사장이 된 청년도 나와 성도들도 경험이 없어서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기 시작했다. 새벽시장에 나가서도 초짜 사장이 하는 행동들이 다 드러났다. 어느 순간부터 상인들이 우리가 진실하게 정직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첫 달 매출이 30만원밖에 안될 만큼 장사가 녹록지 않았다. 매출보다는 청년의 꿈이 중요했기에 장사를 지속했다. 그런데 8개월이 지나서 청년이 “장사가 적성이 아닌 것 같다”며 다른 길을 찾아 떠났다. 떠난 청년의 자리를 누군가는 메울 수밖에 없었다.
8개월간 야채가게 일을 도와오면서 하나님께서 왜 야채 가게를 하게 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불신자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됐고, 재정적으로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고 자립도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도울수 있는 유익함이 컸다. 내 지식과 식견으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래서 사장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야채가게 사장이 됐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
후배들 같은 경우엔 이 사역을 굉장히 주목하고 있고, 실제 연락도 많이 온다. 노회에 계신 목사님 장로님들도 이렇게 해야 한다면서 내적 동의를 많이 하고 있다. 지금은 오히려 믿는 분이던 안 믿는 분이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봐 준다.
-야채나 과일은 언제 어떻게 매수해오는가?
새벽 2시~3시 30분에 트럭을 몰고 가락동 시장으로 가서 3~4시간 장을 본다. 새벽시장에 가면 과일과 야채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추워도 차 안에서 히터도 틀지 못한다. 그때 설교 준비를 한다. 물건 기다리면서 말씀을 묵상하는 15분, 20분 그때의 집중과 말씀의 조명은 2~3시간 이상의 밀도가 있다. 질적인 것과 양적인 밀도는 다르지만, 그때 읽는 말씀은 꿀 송이처럼 달다.
-가게를 운영하는 목사님만의 경영철학이 궁금하다.
영적 경영철학은 ‘청춘야채’ 교회다. 즉 일상의 예배다. 교회라고 하는 개념 차제가 공간이라는 조직을 넘어 일터교회와 삶의교회, 그 안에서 이뤄지는 행위들이 예배고 교회다. 중요한 경영철학이다. 일반적인 경영철학은 ‘맛은 정직하다’는 것이다. 곧 복음은 맛인데 맛은 정확하다. 맛있는 것을 고객들이 만나게 될 때 기뻐한다. 복음을 만나면 기뻐하는 것과 결이 같다. 맛있으면 된다. 그것은 곧 맛없는 거를 맛없다고 이야기해야 하고 맛있는 것에 대해 고객들에게 정직하게 전달해드리고 공급해드리는 것이다.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 '착한 가게'로 불린다.
좋은 제품을 거의 마진 없이 공급하다시피 하니까 그렇게 불러주는 것 같다. 사실 이익은 별로 없다. 그런 것들을 알아주는 게 아닌가 싶다. 목회자라고 밝히진 않았지만, 야채가게에 와서 자신의 삶을 털어놓는 분들도 있고, 그분들의 이야기가 간증이 되기도 한다. 동네에 아프신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에게 건강한 맛과 좋은 품질의 과일과 야채를 드릴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고객들에게 맛 좋은 과일을 드리려고 정성을 다했을 뿐인데, 늘 고마워하셨다. 고맙다면서 언제 다시 올지 몰라서 인사하러 왔다고 하신 뒤에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 청춘 야채가게는 이렇듯 일반 서민들의 고백이 있는 곳이다.
-야채가게에서 벌어들인 수익금은 어떻게 사용되나.
학교도 교회처럼 파주의 한 교회를 빌려 공간을 쉐어링 받아 ‘허브스’ 대안학교를 설립했다. 말 그대로 중심이 아니라 흩어져 가기 위한 접합점이다. 현재 선교사, 목회자 자녀들 30여명이 재학 중이다. 돈을 내고 위탁교육을 하는 관리형 학교가 아니다. 부모들이 함께 모여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무엇인가 할 수 있다면 함께 만들어가는 시스템이다. 이곳에선 부모가 제일 탁월한 교사라고 여긴다. 부모 중엔 교사도 있고 교육에 깊이 동참하고 있다. 각 가정에서 쌀 김치 등 필요할 때마다 내어놓고 나눠주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배우고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벌써 6회 졸업생까지 생겼다. 아이들은 국내외 대학에 진학했다. 보람을 느낀다. 학생들이 재정 걱정 없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청춘야채가게와 카페 수익금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과일과 야채로 어려운 이웃을 섬기고 있다고 들었다.
대안학교 아이들에게 올바른 경제관념을 배우게 하기 위해 야채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킨다. 과일은 형편이 어려운 분들은 못 사 드신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과일 도식락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배달을 시켰다. 재정적 부담으로 엄두를 못 내시는 분들, 어려운 지역에 계신 분들을 정기적으로 찾아가 과일을 나누고 있다.
교회가 찾아간다고 하면 문을 열어주지 않는데 아이들이 과일을 갖고 가면 이웃들이 문을 열어주신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이 사역을 이어갈 예정이다. 과일과 야채로 할 수 있는 게 많다. 단순히 전도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과일이 필요한 곳에 가지고 가는 것이다. 그 뒷일은 하나님께 맡겨드릴 뿐이다. 목적성이 없으니 과일을 받는 분들도 편안해하신다.
-최근에 ‘청춘야채가게’ 2호점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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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학부모님이었는데 직장도 없고 생업이 필요했던 분들이었다. 어려운 시기에 ‘청춘 야채가게’를 알게 됐고, 작은 매장을 시작하는데 바나나 한 송이 팔게끔 우리는 길을 열어줬을 뿐이다. 학교의 학부모는 성도가 아닌 또 다른 분들이지만 그분들도 교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어디가 됐든 누가 됐든 연관돼있는 분들은 다 나의 목회지고 성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인으로 여기면서 지원하고 함께했다. 2호점이 잘 돼서 이제는 1호점인 우리가 더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됐다. 2호점이 지역사회에서 아름답게 열매 맺는 모습이 기쁘고, 감사하다. 내가 기대하고 바라던 모습이다.
-장사를 하면서 목회자로서 가치관이나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무엇인가.
나 스스로 변했다. 노동에 대한 가치의 소중함이 지금에 와서 정리된듯하다. 과일과 야채 배송을 하면 평균 3~4시간이 걸린다. 힘들지만 좋다. 배송하면서 묵상을 하게 된다. 배송을 빠르게 하지 않고 법을 잘 지켜가면서 그 시간 속에서 배송받을 고객들을 생각해 보고 결국엔 기도하게 된다. 배송하는 시간에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성도들을 만나는 것이다. 이 가운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된다.
노동을 통해 교회 안에서는 알 수 없었던, 교회 사역 외에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를 날마다 경험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시시각각 체험하면서 다른 측면을 바라보게 된다. 일례로 주일날 성도들이 교회 와서 설교를 들으며 왜 졸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됐다. 이제는 예배 때 주무시는 분들을 위해 따뜻한 모포를 덮어드리게 됐다. 목회자가 성도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존재이고 공감할 수 있는 목회자가 되는 것 같다.
-최근 목사 이중직 확대에 대한 논의가 교단별로 계속되고 있다. 후배 목회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기존 한국교회의 프로세스를 따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필드에서 더는 그 프로세스대로는 안된다. 작은 교회들이 더 커지려고 하지 말고, 일용할 양식 정도만 공유하고 먹고 함께 교회를 세우거나 쉐어링 하는 등 목회를 공유하면 좋을 것 같다. 지역에서 개교회로 남는 것이 아니라 지역 속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곳은 황무지이고 열려있다. 개교회주의를 내려놔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그것만 가능하다면 대형교회보다도 오히려 더 큰 교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혼자서 할 수 없다. 세상에서는 이미 개교회에 대해 새로운 것을 원한다. 연합하고 연대하면 지역 속에서 할 일이 많다. 목회자 후보생들이 새로운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 필요한데, 기존의 방식과 프로세스는 메말랐다. 대안적 목회, 작은 교회들 의식의 전환과 연대 등 할 일이 많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디를 가길 원하시는지를 기도로 물어보면서 삶의 자리에서 가장 필요한 것부터 자연스럽게 물어보길 바란다. 그렇게 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생긴다. 어느 길이 맞다 생각하지 말고, 삶의 사리에서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나아가다 보면 어느덧 길이 되고 그 길에 나만 서 있는 게 아니고, 함께하는 사람이 생기고 교회가 된다. 그런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목사들이 됐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꿈과 목표에 대해 말해달라.
작은 교회도 대안학교를 세울 수 있다. 큰 교회가 아닌 작은 교회가 연대하면서 건강한 학교 캠퍼스를 고민하고 세워가는 게 필요하다. 교육철학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규모가 학교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학교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목회자만큼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교회에 많은 인프라가 공존하고 있는데 이것을 개교회가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세워나가면 좋겠다.
또 한 가지는 백종원씨가 골목 상권을 살리듯이 이제는 교회 골목도 살려야 한다. 목회자들이 생존을 위해서 택배를 하는 모습을 본다. 어쩔 수 없이 자구책으로 하는 것이 아닌 창의적인 목회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런 측면에서 청춘야채가게가 접점이 되길 바란다. 찾아보면 야채가게 외에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마지막으로는 코로나19 이후에는 3000원짜리 도시락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정기적으로 전달하려고 한다. 아프신 분들의 가장 큰 걱정이 먹거리다. 우리 가게는 야채도 있고 과일도 있으니 사각지대 있는 분들에게 공급해드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함께 기도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