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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을 다스리라
    2002-08-13 17:00:37   read : 3789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디모데전서 6장 17-19절 // 2002-8-4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다고 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것을 얻고자 합니다. 또한, 욕망은 나이가 들어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많아지고 그 폭도 넓어집니다. 갓난아이였을 때에는 먹을 것에만 관심을 가지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 장난감이나 학용품,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좋은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 더 좋은 직장에 다니고 싶은 마음, 더 좋은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 등 여러 가지 욕망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생은 욕망의 연속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유명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깡(Jacques Lacan)은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욕망을 가진다. 그리고 욕망은 끊임없이 계속된다."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 실존주의 철학에서도 "인간은 욕망으로 실존한다"고 하면서 인간 존재의 본질이 욕망에 있음을 말합니다. 이처럼 욕망은 인간 본질의 한 측면을 대변해주는데, 때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때로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작용할 수 있습니다.



    1. 욕망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는 욕망의 긍정적인 역할을 말할 수 있습니다. 욕망은 인류 역사의 발전에 원동력이 되어 왔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욕망은 인류 사회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목적지에 빠르게 도달하기 위해서 자전거도 만들고, 자동차도 만들고, 비행기도 만들었습니다. 소식을 좀 더 빨리 전하기 위해서 전보를 고안해냈고, 지금은 안방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서로의 소식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좀더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은 의료 기술의 발달을 가져왔습니다. 이처럼 한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욕망이 인류 사회를 발전시켜왔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히틀러를 보십시오. 그는 독일 민족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 되게 하고픈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이 욕망은 죄없는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비극을 만들어 내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 두 가지 측면에서 영향력을 미치게 된 원인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마음 씀씀이의 문제와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욕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욕망을 어떻게 다스리느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마음을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다스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반대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욕망이 생길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음을 높이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 17절 말씀에 뭐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마음을 높이지 말라는 것 무엇입니까?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욕망이 생기더라도 겸손하면 욕망을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욕망 앞에서 겸손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 이익만을 챙기게 됩니다. 자신의 욕망을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기까지 합니다. 성도 여러분, 겸손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무엇을 의미합니까? 재물이 인생의 전부인냥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물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재물 때문에 불의와 타협하고, 재물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재물이 인생의 전부인냥 착각하여, 돈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평생을 '정직'이라는 신념 하나만으로 살아온 사람들도 나이가 들고 기력이 쇠해지면, '진작, 세상과 타협해서 돈 좀 모아 둘 걸'하며 후회합니다. 돈에 대한 욕망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이외에도 수없이 많습니다. 돈 때문에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며, 때로는 가족에게 해를 입히기까지 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도 무분별하게 카드를 남용해서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며, 더 나아가 절도행각을 벌이기도 하며, 또 어떤 경우는 부모가 자식이 진 카드 빚을 갚을 수 없어 목숨을 끊는 마음 아픈 일들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 나은 가장 커다란 비극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무신론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망은 그 자신으로 하여금 현재 자신이 이뤄놓은 많은 것들이 다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뭐라 고백하고 있습니까?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나의 모습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적인 태도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인류 역사가 욕망에 의해서 발전해온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인류 역사가 발전해 올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욕망을 가진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가진 사람을 쓰십니다.



    2. 욕망과 사명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사명과 자신의 욕망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과 야망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명과 야망, 사명과 자신의 욕망이 같은 것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욕망은 내 뜻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것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것이 욕망입니다. 그러나, 사명은 다릅니다. 사명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나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많은 사람이 욕망에 사로 잡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욕망에는 수단과 목적을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왜 필요합니까?



    7-80년대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낯선 땅에 가서 정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벌어들인 돈으로 집도 살 수 있었습니다. 차도 살 수 있었습니다. 집 안에 좋은 음향기기를 설치해 취미생활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사다보니, 더 많은 돈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밤늦도록 일을 했습니다. 정말 좋은 집이라고 생각했던 집은 단지 잠만 자는 집에 불과했습니다. 집값을 갚자니 집에서 쉴 시간이 없었습니다. 좋은 차는 출퇴근 시에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음향기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간이 있어야 듣지 않겠습니까? 돈 버느냐 정신없는데 언제 듣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무엇 때문에 돈 버는 것입니까? 돈 버는 것이 목적입니까? 아니면,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적입니까? 돈이야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왜 수단에 여러분의 귀한 인생을 거십니까? 목적과 수단을 구별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살겠다고 다짐한 사람일수록 이점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자신만을 위해서 살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열이면 열 모두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베풀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나는 성공해야 해. 그래야 가난한 사람도 도와줄 수 있고, 돈이 없어 배움의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지. 그 뿐인가? 내가 성공해야만,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하더라도 그 말이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름다운 꿈들은 사라지고, 돈 욕심에 눈이 어두워 마음마저 황폐해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제가 처음 목회를 나갔을 때, 대부분의 성도가 농사를 짓는 분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의 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좀더 많은 농토를 가지고 사는 것-그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참 열심히 일했습니다. 더 많은 땅을 가지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고, 결국, 많은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제 많은 땅을 가졌으니, 열심히 일을 해서 헌금도 많이 하고, 이웃에게 베풀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헌금 생활을 잘 하기는커녕 오히려, 농사짓느라 예배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수요 예배를 빠지고 금요 기도회에도 빠지더니 나중에는 주일 예배마저 빠지게 되더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이 이렇게 되었는데, 이웃을 구제하는 일에 힘을 기울일 수 있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소유 자체가 목적입니까? 아니면, 내가 가진 소유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까? 목적은 목적으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목적을 수단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을 목적 자체로 여겨서도 안 됩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욕망이 나로 하여금 사명을 잊게 하고 목적도 잊게 해서는 안 됩니다. 헛된 야망 때문에 세상 것만을 바라보는 일이 없도록 힘써야 합니다. 욕망을 다스리십시오. 재물 앞에 무릎 꿇고, 세상의 권력에 무릎 꿇게 만드는 욕망을 다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그렇다면,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⑴ 첫째,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1절로 3절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1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2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3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이 말씀에서 야고보는 사람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함이 무엇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노력하지 않아서 입니까?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아서 입니까? 아닙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해답은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야고보 사도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합니까? 그렇다면, 기도 역시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수단이라는 말입니까? 기도는 "하나님, 나는 자동차도 필요하고, 집도 필요하고, 지혜도 필요합니다"라고 하나님께 청구서를 제출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기도란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를 통해서 일하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 17절 말씀은 "17(소망을)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하늘의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정욕에 싸이게 되면, 하늘의 것을 바라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헛된 욕망에 휩싸여 인생을 망치게 될 것입니다. 욕망은 바로 앞의 것만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만듭니다.



    양을 치는 목동이 눈 내리는 어느 겨울 밤, 한 무리의 양떼를 몰고 눈을 피해 어느 동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마침 그 동굴 속에는 야생의 살찐 양들이 한 떼 들어와 눈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이 목동은 의외의 사태에 회심의 미소를 띠며 동굴 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살찐 야생의 양들을 제 것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목동은 자기의 양을 버려두고 야생의 양떼들에게 열심히 건초를 먹였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날리던 눈도 멎자 건초를 실컷 얻어먹고 기운이 팔팔해진 야생의 양떼들은 건초를 얻어먹은 것에 대한 인사말 한마디도 없이 쏜살같이 동굴을 빠져나가 들과 숲으로 달아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야심을 가지고 정성을 쏟았던 목동으로서는 이만 저만한 손해가 아니었고 실망도 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추위에 떨며 동굴 속에서 야생의 양들 때문에 건초조차 제대로 얻어먹지 못한 다른 양들이 모두 굶어 죽어 버린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순간의 편안함만을 주는 욕망에 여러분의 인생을 거시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기도함으로써 욕망도 다스리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그 일에 헌신함으로써, 사명도 감당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담대한 인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속에 있는 욕망을 다스리기 원한다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인생을 내 안에 있는 욕망에 맡기지 마십시오. 대신 하나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기도하세요. 기도는 욕망으로 인해 끊겼던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바로 잡아줌으로써 바른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과 바른 관계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⑵ 둘째 (욕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는 말씀의 또 다른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는 소망을 둘 수도 없고 지속시킬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의 역사 속에서 가장 불행 사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 사건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야만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의 죄악이 도대체 어떤 것이었기에 쫓겨나야만 했습니까? 살인을 했습니까? 절도를 했습니까? 아니면, 주술과 같은 헛된 것을 믿었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그들의 마음에 다른 사람에 대한 시기심과 미움이 있었기 때문에 쫓겨난 것입니까? 용서하지 못하는 좁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입니까? 성도 여러분, 이들이 범한 죄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죄인, 살인과 절도, 마약중독, 간음, 그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범한 죄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별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여파가 얼마나 큽니까? 한 사람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아니면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죄가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뿐입니까? 죄가 들어온 이후,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까? 우리의 계획은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말씀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관계없이 살아가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은 욕망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욕망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40일을 금식한 후에 먹고 싶은 욕망을 이긴다는 것-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러나, 말씀이 있으니까 욕망을 다릴 수 있었습니다. 말씀이 있으니까 사단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권세를 얻으려는 욕망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명예욕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에 사로잡히지 않고 욕망에 사로잡히는 순간,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원하는 바가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인생을 욕망에게 넘겨주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기 때문입니다.



    ⑶ 셋째, 욕망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가치 있는 일에 인생을 투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왜 사람들의 마음속에 욕망이 끊이지 않습니까? 그것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그 얻은 것을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는 어리석은 부자에 관한 비유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농사를 지었는데, 이번에도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결국, 곰곰이 생각한 끝에 거둬드린 곡식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를 짓고 그곳에 거둬드린 모든 곡식을 쌓아 놓은 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이제 마음 놓고 편히 쉬며, 먹고 마시고 놀자" 그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그러면서 예수님은 정말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21절 말씀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란 어떠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선한 일을 위해 쓰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될 수 있습니까? 18절 말씀입니다. "18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성도 여러분,

    부자들로 하여금 선한 사업에 부하게 하는 것 역시 우리의 사명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내가 먼저 이 일에 앞장서야 함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도가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일에 그 누구도 뒤쫓아 올 수 없도록 확실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부자들에게 "선한 일에 부한 자가 되라"고 외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선한 부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선한 행동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19절 말씀을 봅니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이나 그 밖의 것들을 선한 일을 하는데 사용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면 그것이 바로 참된 생명을 취하는 길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에 무엇이 가치 있는 것입니까? 순간의 쾌락을 즐기는 것이 가치 있는 일입니까? 아니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입니까? 이 세상 것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면, 그것이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미국 속담에 "1불로 점심을 먹으면 5시간 유효하고, 1불로 넥타이를 사면 다섯 주를 맬 수 있고, 1불로 자동차 부속을 사면 5년을 사용할 수 있는데, 1불로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면 영원하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을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돈버는 데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투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선한 사업에 부하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정말 내 인생에 가장 가치 있는 곳에 여러분의 혼신을 다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 리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도는 사명자입니다. 사명자는 사명과 야망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야망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사명자는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살립니다. 성도 여러분, 사명자로 살고자 하십니까? 그렇다면, 욕심을 버리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고는 욕망으로부터 자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것만을 바라보게 하는 욕망을 끊어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로 끊으십시오. 기도로 하나님께서 제시해주시는 삶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으로 무장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여러분의 인생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에 인생을 투자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내 안에 욕망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사명자로 살아갈 수 있는 길임을 깨닫고 욕망마저 다스릴 수 있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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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감사가 넘치게 하라
    탁월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라
    삶의 균형을 이루라!
    마라에서 엘림으로
    부흥을 확산시키라!
    부흥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라!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이 되라
    부흥을 경험하라
    부흥을 사모하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라
    섬기기를 즐겨하라
    욕망을 다스리라
    평생 사명을 가지라!
    의미 있는 삶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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