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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입니다
    2002-08-13 15:30:22   read : 4707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년 8월 4일// 마태복음 25 : 14 -30

    미국의 어느 갤럽 기관에서 "지금 당신의 얼굴에 만족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하였는데 이 질문지에 그렇다라고 대답한 사람은 남자인 경우에 28%였고, 여자의 경우에는 13%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의 얼굴을 바꿀 수 있다면 바꾸겠는가? 이 질문에 남자들은 94%가 바꾸겠다고 하였습니다. 여성은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99%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 속에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강한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단면입니다. 이렇게 열등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의 양식인 것 같습니다.

    의사 맥스웰 멀츠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 중 95%는 열등감이라는 질병에 시달린다." 고 했습니다. 마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한 것 같이 모든 사람이 열등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거장이었던 모세도 말 못한다는 열등감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라는 사명을 부여받았을 때 주저하고 있었고, 사도 바울 같은 이도 말을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이 열등감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열등감의 원인 자는 비교의식입니다. 유명한 영국의 기독교 문학가인 C.S 루이스는 "악마가 인간을 파괴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비교의식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 비교의식을 통해서 나는 열등하다고 하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또 비교의식을 통해서 나는 우월하다고 하는 모습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런 비교의식의 문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혹독한 경쟁사회 속에서 어렸을 때부터 자라왔기 때문입니다. 유치원에 들어갈 때부터 경쟁하지 않습니까? 유치원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 때 아이들을 선정하고 배역을 맡길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을 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에게 이런 재능이 있고 저 아이에게는 저런 재능이 있어서 그 재능과 실력에 맞게 배역을 맡겨서 무대에 올려놓아야 하는데 재능이 아닌데도, 충분히 감당할 실력이 안 되는데도 아주 돋보이는 역을 해주지 않으면 아이의 엄마가 노골적으로 화를 내고 그런 다는 것입니다. 경쟁과 비교의식이 없이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경쟁심을 불러일으키고 서로 비교하면서 상대적인 기쁨을 누리려고 하는 이기심 때문에 아이들이 멍들어 가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생활 우리가 접하고 있는 모든 삶의 영역 속에 혹독한 경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사회는 경쟁사회입니다. 경쟁사회에서 승리하기란 너무 힘이 듭니다. 너무나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경쟁에서이기는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낙오자입니다. 이렇게 낙오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항상 자리잡고 있는 의식이 무엇입니까? '나는 패배자야' 라는 패배의식이 자리합니다. 심하면 '나는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야' 하는 강한 자기 비애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상위그룹에 속한 중학교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 성공이 보장되고, 경쟁에서 승리할까요? 아닙니다. 거기에서도 똑같이 상위그룹과 하위그룹으로 갈라집니다. 일류대학, 또는 인기학과에 들어갈 수 있는 소수의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하위그룹이 정해집니다. 그 대다수 하위그룹은 그 속에서 또한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의 상처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경쟁이 그것으로 끝나는가? 아닙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거기서도 똑같은 경쟁의 구조를 경험합니다. 사회에 진출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끝없는 경쟁을 하다가 비교하고 비교 당하며 열등의식에 포로가 되어 비참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경쟁 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결국 모두가 승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패배자가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두가 승자가 되는 길-비교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 모두가 패배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승자가 되는 길은 없는가?
    우리 모두가 승자로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절대로 비교하지 않습니다. 믿습니까?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돈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재능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을 비교하며 가치를 따로 따로 부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하나님은 아주 존귀한 자로 여겨주십니다. 시편139편을 보시면 시편기자는 우리들의 존재의 근원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만드셨다고 하였습니다. 모태에서부터 조직하였습니다. 더 이상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영광스럽고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신묘막측하게 지은 바된 것을 신약 성경 에베소서 2장 10절에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랬습니다. '만드신 바' 라는 말은 그의 '걸작품' 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작품입니다. 작품이라는 말의 원어는 '포이에마' 라고 하는데 그 단어에서 '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포임' (Poem)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시' 라는 말입니다. 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동시도 있고, 서사시도 있고, 서정시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같이 시입니다. 그것은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구별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흑인도 있고, 백인도 있고, 우리나라 사람 같은 유색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비교하라고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이 지구상에 60억의 인구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모습이 다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걸작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작품은 값으로 계산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작품은 상품과 다른 것입니다. 작품의 소재와 내용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이기 때문에 그것을 비교하여 값을 매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신이 다르고,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성장 과정이 다르고, 은사가 다르고 재능이 다르고 분야가 다르고 다 다르지만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다같이 하나님의 걸작품들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이렇게 걸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어떤 주인이 세 사람을 데리고 사업을 하는 얘기입니다. 사업을 하려면 일단 자본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한 달란트는 3-4억 정도 되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다섯 달란트를 맡겼으니까 15-20억 정도를 맡긴 것입니다. 다른 한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다른 한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3억에서 4억의 돈을 맡겼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달란트를 주고 사업을 시키고 난 후 몇 년이 지났습니다. 때가 되어 주인이 타국에서 돌아와 세 종을 불러 정산을 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열심히 사업을 해서 다섯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종도 열심히 사업을 해서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한 달란트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게 축복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잘하였도다." 두 달란트 받은 자에게도 축복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잘하였도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고도 전혀 남기지 않은 종에게는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면서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심하게 꾸짖고 책망했습니다.

    하나님의 평가와 인간의 평가

    여러분! 이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평가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은 일등, 두 달란트 남긴 사람은 2등, 하나도 못 남긴 사람은 꼴등이라고 평가합니다. 이것이 경쟁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평가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그렇게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두 달란트 밖에 남기지 않은 사람인데 그 사람을 불러서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과 똑같이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그리고 하나도 못 남긴 사람에게만 엄청난 책망을 하면서 내어쫓았습니다.

    다섯 달란트만을 남겨야만 일등을 하는 것이라면 재능은 두 달란트 밖에 안 되는데 다섯달란트를 남겨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합니까? 컨닝도 해야 합니다. 거짓말도 해야 합니다. 사기도 쳐야 합니다. 도둑질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무리수가 생기게 되겠습니까? 이것이 경쟁사회 속에 끝없이 빚어지는 비극입니다.

    이 달란트 비유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메씨지는 모두가 상위권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재능이 크든 작든 그 주어진 재능을 최대한 발휘해서 맡겨진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면 이 사람들을 실력 있는 자로 평가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실력이란 각자 주어진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맡겨진 일들을 바르게 잘 수행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실력입니다. 성적이 실력이 아니라 자기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 재능으로 최선을 다해서 그 재능만큼의 열매를 맺게 하면 우리 모두가 패배자가 아니라 승자가 되는 거입니다. 1등 할 수 있는 재능과 환경을 가지고 있는데 자기의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해서 그 사람이 10등을 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자기의 재능으로는 20등 밖에 할 수 없는데 최선을 다해서 20등을 했습니다. 그러면 10등 짜리와 20등 짜리를 비교해서 20등은 불행하고 5등은 행복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10등은 했지만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를 부정적으로 보기 쉽고 자기 일에 대해서 보람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20등을 한 사람은 비록 성적은 20등이지만 자기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열등의식을 느끼거나 하지 않을 것입니다.
    300명으로 시작한 교회가 연말에 100명을 전도한 교회와 3000명으로 시작한 교회가 연말에 500명을 전도한 교회가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교회가 더 실력 있는 교회입니까? 300명으로 시작한 교회입니다. 통계를 보니까 재미있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100명의 교회 10개의 교회가 전도한 숫자와 천명되는 한 개의 교회가 전도한 숫자를 보니까 100명되는 10개 교회가 전도한 숫자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대형교회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 교회를 자꾸 개척해서 중형교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선교를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신기한 비밀을 깨닫기 전에 사실 저는 목회자로서 얼마나 열등의식에 사로잡혀있는지 모릅니다. 선배나 동료 목회자들이 자기 교회 숫자를 이야기하고 재정 규모를 물어보고 교역자 사례금을 물어 볼 때마다 열등의식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내가 받은 달란트과 그분이 받은 달란트가 다르고 내가 처한 목회환경과 그분이 처한 목회환경이 다른데 비교한 것이 잘못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절대로 비교하지 않기로 다짐을 했습니다. 주어진 이 환경에서 사도행전의 교회를 회복하는 목회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제 마음에 기쁨과 환희와 자유 함이 넘쳐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저마다 다르게 재능을 주셨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각기 다르게 주셨는데 중요한 것은 각각 그 재능대로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각각 그 재능대로--" 이 말은 무슨 말씀이십니까?
    재능대로 맡겼다는 말은 그 사람이 충분히 감당할 만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대로 주셨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분량만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달란트를 많이 받았느냐 적게 받았느냐를 묻지 않습니다. 따지고 계산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두 달란트 짜리와 다섯 달란트짜리를 비교합니다. 사람들은 한 달란트짜리를 무시하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그것을 묻지 않습니다. 한 달란트 받아서 최선을 다하고 한 달란트를 남기면 잘했다고 합니다. 열 달란트 받아서 열 달란트 받은 사람과 똑같이 축복하고 칭찬합니다. 열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건,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건 우리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다 존귀한 자로 보십니다. 절대로 차별하지 않습니다. 차별하지 않고 존귀한 자로 보시는 그 하나님의 관점으로 여러분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주님 앞에 존귀한 자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환경과 재능을 탓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위대한 도구로 쓰임 받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받은 재능과 환경을 탓한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8명의 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형들이 전쟁에 나가 전투할 때 그는 형들의 양들을 대신 돌봐야 하는 목동이었습니다. 형들이 대소사를 나눌 때 다윗은 밖에서 형들 물심부름이나 하고 허드렛일이나 하곤 하였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을 부으려 할 때 그는 사무엘의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일곱째 형제들을 일일이 거명하며 하나님께 물었을 때 하나님은 "아니다 또 다른 형제가 있다"고 해서 찾은 형제가 여덟째인 다윗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는 왜 형들의 모임에 낄 수 없는 거야? 나는 왜 형들처럼 근사한 일을 못하게 하는 거야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에게 맡겨진 재능을 따라 충성했습니다. 양을 치라고 하였을 때 열심히 양을 치고 찬송을 하고 시를 지었습니다. 사나운 이리가 오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의지하여 이리를 물리치고 양들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가장 형편없는 그런 다윗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통일된 이스라엘의 성군 다윗이 되었습니다. 그는 결코 비교하는 상대적 경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비교하지 않고, 욕심 내지 않고 오직 맡겨준 일에 하나씩, 하나씩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위대한 왕이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통나무집과 어머니의 손떼 묻은 성경책을 물려받았지만 그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입을 말할 수 없고, 귀로들을 수 없는 삼중고에 시달리면서도 위대한 찬송시를 작시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헬렌켈러는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습니다.

    일곱 살 때 구두수선공인 아버지를 잃고 나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며 컸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가슴은 꿈과 비전으로 가득 차 그 어떤 환경도 이 젊은이를 불행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비록 가난한 고학자였으나 어린이들에게 『꿈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들려주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가난한 집의 다락방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글을 썼습니다. 이처럼 누추한 다락방을 광대한 행복의 생산지로 여긴 이 사람이 세계적인 동화작가 안데르센입니다.

    저들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달란트를 개발하지 않았다면 어찌 위대한 삶을 살 수가 있었겠습니까?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앞에 존귀한 자임을 확신하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며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들을 존귀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비교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초라하지 않습니다. 못나지 않았습니다. 열등의식에서 해방을 받으십시오.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존귀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 대해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걸작품임을 믿으십시오.

    맹인으로서 최초로 미국에 건너가 박사학위를 취득한 강영우 박사는 소년시절에 축구를 하다가 축구공에 맞아 시력에 손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현대의학으로는 이 병을 고칠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후 그는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자살을 시도해보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생은 아주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삶이었습니다. 그가 자기 친구들이 대학에 들어갈 18세에 그는 중학교 일 학년에 진학을 했습니다. 남들보다 5년 늦게 진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정상인의 학교가 아닌 맹인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고 점자를 만지며 글을 읽고 의미를 파악해야 했습니다. 그 동안 정상적으로 살아온 그의 친구들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하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깊은 열등의식에 사로잡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처지에 있는 맹인학생과도 비교해보아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비교해 보아도 그들보다 낳은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과거를 생각하면 열등감이 느껴지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이 쓰라리고 아파 하나님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도하고 이를 악물고 이겨내려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마태복음 25장 오늘 본문의 말씀에 붙잡혔습니다. 그렇다 하나님은 한 달란트짜리와 두 달란트짜리와 다섯 달란트짜리를 차등으로 보지 않으신다. 그들을 비교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그들을 비교하고 우월의식을 느낄지 몰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비교하지 않으신다. 한 달란트 받아서 한 달란트를 남긴 것이나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다섯 달란트를 남긴 것이나 하나님은 동일하게 성공자라고 말씀하시고 동일하게 일등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 지금 나에게 주신 달란트 그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살면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축복하시고 승리의 인생이 되게 할 것이다. 그 말씀에 붙들려서 그 때부터 그는 생의 용기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건강, 능력, 재능만큼 최선을 다해서 여생을 살 것이라고 결심한 후 대학 진학, 도미 유학, 그리고 교수가 도는 장기적인 인생의 목적을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맹인의 모습으로 18세에 중학교에 입학하고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을 때는 24살이었고 도미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을 때는 32살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간 더 공부한 다음에 교수가 되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비교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았지만 그는 승리한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모두가 승자가 되는 길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몇 사람만 승리하도록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두가 승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모두가 승자가 되는 길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각각 맡겨진 재능과 건강과 학식을 가지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교사를 맡겨주었습니다. 최선을 다하십시오. 성가대를 맡겨주었습니까? 이것이 당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달란트임을 믿고 최선을 다하십시오. 순장을 맡겨주었습니까? 그것이 당신에게 주신 달란트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경쟁하지 마십시오. 또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서 간섭하지 마십시오.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승리자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도 최선을 다해서 한 달란트를 남겼다면 똑같이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자처럼 칭찬을 들었을 것입니다. 똑같이 승자요, 똑같이 일등으로 여김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문제는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땅에다 묻어 두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오해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하나님은 심는대로 거두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심은 만큼 거두십니다. 시편 128편2절에 "수고한대로 먹게 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미국의 영웅, 장애인의 영웅이 된 미국의 32대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는 젊은 시절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어서 뉴욕주 상원의원이 되고, 윌슨 행정부에서 해군 차관보를 지내고 1920년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그의 꿈이 현실로 점점 다가오고 있을 때 갑자기 예상치도 못했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의 39세에 어린아이들이 걸린다고 해서 붙여진 소아마비가 걸린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그는 정치 생명을 끝났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그 동안 쌓아올린 공든 탑이 하루 밤에 무너지고 신체적으로 홀로 거동조차 못하는 휠체어 장애인이 된 인생의 밑바닥에서 장기적인 목적을 새로 세웠습니다. 그것은 신체적 기능회복, 정계복귀, 소아마비 정복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하는 상대적 경쟁을 하지 않고 절대적 경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누가 주지사 되고, 누가 국회의원이 되는가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이제 그는 사람들과의 모든 비교에서 자유 하였습니다.

    그는 오직 장애인이 된 밑바닥에서 세운 장기적인 인생의 목표를 절대적 기준에 근거해서 하나씩, 하나씩 달성해 나갔습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꾸준히 재활훈련을 하던 어느 날 그는 일어서서 연설할 정도가 되었고, 마침내 그 연설로 인해서 다시 정계에 복귀할 수 있었고, 소아마비 재활센터를 건립하여 많은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과정들의 성취를 통해서 그는 드디어 1932년 미국의 28대대통령으로 당선되어 4선까지 역임했으며 경제공황을 극복하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극심한 고통가운데서, 실패가운데서 낙심하지 않고 그 한계적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꾸준히 추구해 나간 결과 다른 사람과 상대적인 경쟁을 시도하지 않았지만 결국 상대적인 경쟁에서도 승리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강영우 박사의 아들이 어느 날 예배를 드리는데 이렇게 기도를 하더랍니다. "하나님 우리 아빠 눈을 낫게 해주세요. 그래서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여행도 하게 해주시고 다른 아이들처럼 아빠와 함께 야구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예배가 끝난 후 강박사는 아들에게 자기의 질병이 고쳐지기 힘든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더니 아들이 하는 말이 "그러면 내가 안과 의사가 되어서 아빠의 눈을 고쳐주겠습니다." 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안과의사가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책도 많이 읽고 기도도 많이 해야한단다." 라고 일러주었는데 그 말을 마음에 새기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6:1의 경쟁 율을 물리치고 미국 최고의 고등학교인 필립스 아카데미에 입학을 하였고 졸업 후에는 세계적으로 초 인류대학인 하버드 대학을 9 :1의 경쟁율을 물리치고 입학하였고, 거기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미국 10대 의과대학에 들어가는 듀크 대학 안과 수련의를 100:1의 경쟁을 물리치고 합격해서 안과의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하버드 대학만을 목표로 하였다면 휼륭한 의사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크대학이 100:1의 경쟁율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포기했는지 모릅니다. 그의 가슴속에 한가지 아름다운 소원이 있었습니다. 아빠와 아빠와 같은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해주려는 소원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아빠의 눈을 뜨게 해주려는 절대적 목적을 세워서 열심히 공부한 결과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에게 각각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한 사람도 달란트를 받지 않으신 분은 없습니다. 달란트를 주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존귀한 자로 여긴다는 말입니다. 더 이상 비교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경쟁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승자가 되도록 각각 재능대로 맡겨준 달란트를 가지고 맡겨진 자리에서 자신의 일에 대해서만 충성하십시오, 최선을 다하십시오. 여러분 모두가 승자가 되는 축복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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