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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2002-09-16 14:06:55   read : 3481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요 21:15-17 // 2002년 9월 15일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5-17)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
    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
    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
    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
    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요한복음 21장 15-17절)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 중에서 용서하는 것 보다 더
    힘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용서란 틀림없이 잘못을 범한 쪽에서 용서를 구할 때 베풀어주는 관용이라고
    한다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베드로에 대한 용서는 그런 것과
    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지난 주일 우리가 생각해 본 것과 같이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
    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맹세하면서, 저주하면서까지 모른다고 부인했으니 인
    간적으로 보면 얼마나 괘씸한 일입니까?
    말로 다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대로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한번의 그런 추궁
    도 없이 도리어 베드로에게 먼저 나타나셔서 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했던 제자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같은 말을 세 번씩 반복하여 물었습니다.
    성경학자들 중에는 이 세 번 물은 것은 베드로의 세 번 부인한 것을 다시 회복
    시키려는 것이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생각하면
    서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질문입니다.

    1. 주님은 자기를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
    다.
    이 질문은 신앙의 지조를 지키지 못했던 제자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자기를 맹세하며 부인했던 제자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오늘 이 질문은 자기를 저주하면서 까지 모른다고 부인했던 배신자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우리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묻는 질문이기도합니다.
    우리도 몇 번씩 주님을 모른다고 했던 존재들이 아니겠습니까?
    정치적 위협 앞에서, 아니면 경제적 위기 앞에서, 세상의 출세와 명예의 이해
    관계 앞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했던 존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주님은 다시 찾아와 묻고 계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질문은 그렇게 가볍게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질문은 우리의 신앙의 성숙도를 묻는 질문입니다.
    '네가 나를 믿느냐?'라고 하지 아니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었습
    니다.
    우리는 이 말속에 담긴 뜻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성숙 단계를 묻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어느 정도인가를 살펴보게 하는 질문입니다.

    2. 주님을 대하는 신앙의 단계를 보면 몇 가지 단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보면서 이 신앙의 단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먼저 '본토, 일가 친족 네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첫 단계는 <떠나는> 단계입니다.
    여기서 <떠난다>는 뜻은 구별시킴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던 그런 자리에서 구별시켜 떠나게 합니다.
    구습을 좇아 행하던 죄의 자리에서 떠나는 단계가 믿음의 첫 단계입니다.

    EX: 그래서 옛날에 선교사들이 세례 문답을 할 때 물었던 질문이 바로 이런 것
    들이었습니다.
    떠날 자리에서 떠났는가를 확인하였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일을 다 없이 했습니까?
    단지들을 다 버렸는가?
    술, 담배 하던 일을 다 끊었는가?
    놀음하던 일을 다 끊었습니까?
    이중생활 두 집 살림하던 일을 다 그만 두었는 가? 등등...
    모두 떠나야 할 자리에서 떠났는가를 물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
    니다.
    믿음의 첫 출발은 떠나는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2) 다음 단계는 따라가는 단계입니다. 말씀을 따라 가는 길입니다.
    그것이 '모리아 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현실은 지금 모리아 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모리아 산으로 가서 제사를 들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명령을 따라 순종하면서 갔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그렇게 편안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마음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의심도 생겼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런 명령을 하는가?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들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가는 생활입니다.
    순종하며 살려고 하는 생활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갈등이 심합니까?
    때로는 의심도 생깁니다.
    때로는 괴롭기도 합니다.
    말씀을 따라 살려는 생활이 그렇게 편한 삶은 아닙니다.
    그래도 순종하면서 따라 살려고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렇다면 대부분 아마 이 단계가 제일 많은 단계이라고 봅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신앙의 마지막 단계는 드리는 단계입니다.
    아브라함은 고민하면서 모리아 산에 올라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헌신이라고 합니다.
    헌신이란 자기 몸을 드리는 것이 헌신입니다.
    신앙의 마지막 단계는 헌신하는 단계입니다.
    이렇게 신앙의 단계를 보면,
    ① 떠나는 단계,
    ② 따르는 단계,
    ③ 그리고 드리는 단계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베드로에게 물은 질문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은 베드로의 신앙의 성숙의 단계를 묻는 질문
    이었습니다.

    우리 각자가 자기의 신앙생활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로> 신앙생활이 그저 좋아서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좋아서, 교회가 좋아서, 목사님이 좋아서, 성가대가 좋아서 이렇게 무엇인가 좋아서 예수를 따르는 경우도 있다는 말입니다.

    즉, 그런 신앙을 좋아하는 단계의 신앙이란 말입니다.
    EX: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좋아해서 결혼하는 경우가 이런 경우입니다.
    "자기 나 좋아해?" 그렇게 묻습니다.
    상대방이 그저 좋아서 하는 결혼이 있습니다.
    물론 좋아하는 감정이 없으면 어떻게 결혼이 성립되겠습니까 마는...
    결혼이란 것을 좋아해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좋아서 교회에 나오고, 좋아서 예수를 믿으려고 하고, 좋아서 교회 일에 참여
    도 해봅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좋아서 했던 결혼이기에 싫어지면 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좋아서만 예수를 믿을 수는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기쁠때나 슬플때나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이 참 신앙생활입니다.

    <둘째로> 신앙생활이 언제나 도와달라고만 하는 그런 경우들이 있습니다.
    결혼 생활이란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도와가면서 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에 대하여 언제나 도와만 달라고 한다면 그것도 온전한 관계
    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에서 어려울 때 도와달라고 하고, 의지
    해 보려고 예수를 믿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뭐 나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모두 약한 존재들이요, 제한된 존재들이기 때문에 전능자의 도움을 구
    하고 바라는 것이 나쁠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단계를 보통 <믿음의 단계>라고 봅니다.
    대부분, 우리는 모두 도와 달라는 것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주님 앞에 나왔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도와달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셋째로> 그러나 가장 깊어진 단계는 좋아하는 단계도 아니고, 무엇인가를 도
    와달라는 단계도 아니라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의 것을 내어 주는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결코 자기만을 위한 행위가 아닙니다.
    사랑은 나의 모든 것을 주려는 행위입니다.
    이 주려는 것은 어떤 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마음에서입니다.
    그러기에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귀한 사랑이란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을 능가하는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묻고 있습니다.
    믿고, 따르고 하는 그런 단계에서 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
    다.
    어느날 율법사가 어느 계명이 제일 큰 계명인가하고 물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 질문에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와 같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은 모든 계명의 완성이라고 하였습니다.(마22:36-40)

    3.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네가 나를 얼마나 믿느냐? 네가 나를 얼마나 따르느냐? 보다,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좋아하느냐?'
    '네가 나를 믿느냐?'가 아니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 앞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겠습니까?
    아직도 주님이 좋아서만 주님을 따르는 단계는 아닌지?
    아직도 주님께 무엇을 바라는 마음에서만 따르는 단계는 아닌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한 단계 더 깊어진 사랑의 단계에 들어서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계명을 지키려고 무던히 애씁니다.
    우리는 말씀의 법을 따라 살기를 무척이나 애씁니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사람들만 의식하게 됩니다.
    누가 주님을 제일 가깝게 따르는 제자인가?
    누가 주님께 인정을 받는 제자인가?
    그래서 서로 시기하고 경쟁적으로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버릴지라도 나는 주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사람을 의식하면
    서 베드로도 그렇게 주님께 말했었습니다.
    이런 단계의 신앙생활은 아직도 율법주의적 신앙의 단계입니다.
    어느 계명이 더 크냐고 물었던 율법사와 같은 단계의 신앙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단계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주님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시몬 베드로! 아직도 네가 다
    른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 앞에 베드로는 이제 달라졌습니다.
    '이제 내가 어떻게 감히 주님을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
    니까! 하지만 주님께서 내 속마음을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바로 우리들도 이러한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① 사랑에는 내가 없어집니다.
    내가 살아있는 한, 아직도 그 사랑은 깊어진 사랑은 아닙니다.
    ② 사랑은 내 것이란 것도 없어집니다.
    내 것을 주장하는 한, 아직도 그 사랑은 깊어진 사랑은 아닙니다.
    ③ 사랑은 자존심도 없어집니다.
    자존심이 살아있는 한 아직도 그 사랑은 깊어진 사랑은 아닙니다.
    ④ 사랑은 오직 그에게 모든 것을 주려고 하는 마음뿐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 그것이 참 사랑입니다.

    옥합을 깨어 향유를 주님 발에 부었던 여인의 사랑이 바로 그런 사랑입니다.
    이 여인의 신앙은 주님 당시에 다른 사람들의 기대하는 바와는 달랐습니다.
    주님께로부터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그런 신앙과는 달랐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 자신의 행위가 인정받기를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값비싼 향유를 주님을 위해 드렸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본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그를 칭찬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항상 너희들 곁에 있지만 이 여인은 내 죽음을 예비한 것이었
    다'고 하면서,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 이 여인이 행한 일도 함께 전해질 것이라
    고 최대한 칭찬을 아끼지 아니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분명 성숙한 신앙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모두 주님을 사랑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베드로처럼 그렇게 고백하면서 삽시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주님을 잘 믿는다고, 더 주님의 말씀대로 지키면서
    산다고, 그렇게 말할 수야 있겠습니까?" 마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그것을 주님이 아시지 아니합니까!"
    이런 단계에까지 이르는 신앙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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