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 나아가자 2002-10-16 11:34:43 read : 4411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예레미야 31:1-6 // 2002년 9월 29일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서간집』에서 "어떤 인간에게나 인생을 살 동안에는 참고 견뎌야 할 시기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으로 있고, 또 영원히 인간으로 남아 있을 것, 어떤 재난을 만나도 풀이 죽거나 낙담하지 말 것―이것이 인생이며, 그 속에 인생의 과제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지금 우리에게 꼭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수해로 인해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낙담하고 풀이 죽어 어쩔 줄 모른다면, 우리는 여기서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힘을 내야 합니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야 합니다.
지난 9월 15일자 국민일보에 실린 "강릉에 사는 몇 몇 초등학생들의 수해일기"를 소개합니다. "우리 가족은 아무 것도 모르고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아침을 다 먹고 엄마가 설거지를 시작한지 5분도 안돼서 집에 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너무 무서웠다. 언니가 울고 나도 울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우리를 데리고 할머니 집으로 빨리 피하라고 소리치셨다. 울음을 참고 할머니 집으로 갔는데 엄마는 다시 집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창 밖을 보며 제발 우리 부모님 무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빌었다"(4학년 최지원). 또 한 학생은 태풍이 쓸고 간 참담한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태풍이 와 홍수가 났다. 우리가 살던 집은 없어졌다. 용우 형하고 승미네 집도 없어졌다. 도로도 없어지고 비닐하우스도 없어졌다. 라면만 먹었다. 나는 지금 목이 마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무섭다"(4학년 임영진). 수해복구로 고생하는 부모에 대한 심경도 진솔하게 표현했습니다. 4학년 홍지혜 양은 "동생 준표는 무섭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엄마 아빠를 불렀다. 나도 무서웠다. 엄마 아빠께서는 비를 맞고 일하다가 우리가 걱정되어 몇 번이나 집으로 들르셨다. 나도 따라 나가서 큰 힘이 되어드리고 싶었는데 아직 어려서 못 도와드리는 것이 죄송스럽다"고 썼습니다. 5학년 권두형 군은 "엄마와 나는 드라마를, 아빠는 뉴스와 인간극장을 좋아한다. 오늘도 TV를 보다가 엄마가 '비 피해로 일을 많이 해 팔이 늘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안마를 했는데 마음은 슬펐다. 우리 가족을 위해 고생하시는 어머니 힘내세요'라고 적었습니다.
복구가 진행되면서부터 학생들의 일기에는 서서히 안도하는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3학년 김상현군은 9월 8일 일기에서 "전기가 들어왔다. 하지만 물은 나오지 않는다. TV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동생은 전기가 들어오니까 살 것 같다고 말했다.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썼습니다. 3학년 백은진 양은 집이 제 모습을 찾아가자 예전의 활기를 되찾은 게 일기에 보입니다. "오늘 집에 있는 가구를 다 새로 바꾸고 전화기도 바꿨다. 전화기는 누가 전화했는지 전화한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찍히도록 돼 있는 것이다. 무거운 것들은 다음에 들어온다. 이제는 나도 수재민이 아니라 옛날처럼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다"고 썼습니다. 수해를 통해 학생들은 많이 성장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6학년 최세희 양은 10일 일기에서 "수해 때문에 우리 이웃들과 더욱 친해졌다. 다른 동네처럼 먹을 것을 가지고 싸우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리고 먹을 음식도 보통 때보다 더 많이 나눠먹는다. 나도 동네에 계신 어른들께 더욱 인사를 잘해야겠다"고 했습니다. 모산 초등학교 함은식 교사(29세)는 "부모들이 대피하며 급한 물건을 챙기라고 했을 때, 교과서를 가방에 가득 넣고 피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며, "아이들이 수해로 인해 마음의 상처도 크게 입었지만 가족 애와 이웃 사랑을 몸으로 배운 것 같다"고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이 땅을 덮친 태풍으로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고, 또 집과 논, 밭을 잃어버림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고통을 당한 상황에서도, 저는 아이들의 일기에서 다시 새로운 희망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우리가 사는 이곳에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뜻(?)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상처가 그리 쉽게 아물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저는 고통받는 이웃을 모른 체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우려는 착한 이웃들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면서 "그래도 이 땅엔 아직도 사랑이 있으며, 이 나라엔 따뜻한 정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해를 입고 난 후에, 엄청나게 많은 위로의 전화가 왔고, 또 도움의 손길이 계속 이어진 것을 볼 때 우리에겐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본문은 멀리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신 위로의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30장에는 "그들이 지금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고 조국을 멀리 떠나있지만, 구원이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과 그 자손들을 그곳에서 구하여 내실 것이다"는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희망의 메시지, 구원의 메시지가 31장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 6절을 보면,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희망이 샘솟고, 새로운 길이 활짝 열리고, 놀라운 일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호세아 6:1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시편 73:28에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라고 했고, 이사야 55:6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또 예레미야 애가 3:57에는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어느 때인가 하면,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고, 주님을 가까이 할 때입니다. 극심한 수해를 당하여 좌절하고 절망하는 이들이 물론 많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할수록 더욱 더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우리 마음을 토로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살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1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가족(지파)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스러운 자녀로 삼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내가 그들에게 하나님 됨을 스스로 나타내리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 보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 모든 가족(지파)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지파, 아론의 집과 레위 자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 구체적으로 가족 하나하나,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 안에서 은혜를 입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한 사람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고,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 깨끗한 사람만 돌보시는 것이 아니고, / 병들고, 약하고, 가난하고, 못난 사람, 죄 많은 사람들을 모두 주님이 당신 백성으로 받아들이신다는 겁니다. 이 말씀은 정말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게 된 우리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슬픈 표정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한 번은 우울한 표정을 하고 슬픈 기색을 보이는 어느 형제를 보고는 "사람 앞에서 슬픈 기색을 하며 낭패한 모습을 보이는 일은 하나님의 종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형제들은 주님과 함께 기뻐하며 명랑하고 즐거워해야 하며, 분에 맞는 품위를 보이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존 포웰은 『그리스도인의 비전』이라는 책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바른 비전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과 공허감을 느낀다면 이웃에게로 향하고자 하는 욕구나 의욕도 상실되고 만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이고 만족스러운 태도를 가진다면, 그것에 비례해서 자기 자신의 고통은 줄어들고 이웃의 문제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 즉, 긍정적인 자아 이미지를 가질수록 사랑하는 능력은 커져가고, 반대로 부정적인 자아 이미지를 가질수록 사랑하는 능력은 줄어든다.
지금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가 그분의 백성이 되었고 우리가 하나님의 품안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슬픈 기색을 띄지 말고, 긍정적인 자아 이미지를 갖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살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오, 지금 주님께로 나아가오니, 부족한 죄인을 받아주옵소서."
2. "안식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2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안식을 얻게 해 준다고 했습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된 안식을 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냥 분주하게 정신 없이 허둥지둥 사는 것이 현대인들의 삶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게 정말 잘 사는 것인지 모르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지난 봄에, 미국 플로리다에서 왔다는 50대 초반의 어떤 남자는 부동산업을 하여 엄청난 돈을 벌었는데, 하루는 차를 운전하여 자기가 사는 마을로 들어오다가 공동묘지를 보았다고 합니다. 평소에도 수 없이 그 앞을 지나다녔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나쳤는데, 그 날은 "내가 죽으면 저기 묻힐텐데... 내가 지금 돈을 더 벌려고 이렇게 정신 없이 살아야 하는가"라는 회의가 들면서 인생을 좀 더 깊이 있게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태풍으로 인한 이번 수해로 모든 것이 다 떠내려가고, 망가졌습니다. 그 동안 일구었던 논, 밭, 집, 재산, 소유를 잃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낙심하고 허탈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전부가 아니다"는 것을 깨달을 기회라고 볼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물론 참기 어려운 고통이 우리에게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지만, 우리는 이번 수해를 통하여 서두르지 말고, 무엇을 더 많이 쌓아 두려고 하지말고, / 좀 더 단순하게, 그리고 좀 더 침착하고 깊이 있게,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우리 영혼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위한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여유가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할 수 없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이 계심을 진정으로 깨닫기 바란다면 우리 안에서 에고(ego)를 쫓아내고 그분을 위한 자리(room)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주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 11:28).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 나아갈 때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마음의 쉼을 얻는 게 진정한 안식이라는 사실입니다. 간디는 다시 말합니다. "어려울 때 하나님께 가는 사람은 어떤 두려움으로도 고통받지 않는다"(1946. 1. 6). 이 말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진정한 안식을 얻는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돈이나, 권력이나, 인기나, 명예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지 못합니다. 생명의 근원 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나아감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안식과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수해를 통해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다 사라졌어도, 주님과의 관계만은 더욱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당신의 백성(자녀)으로 받아 주신다고 했습니다. 주님께 나아오는 자에게는 누구든지 안식과 평안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갑시다.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은 주님을 굳게 의지하고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 살며, 주님께 부르짖으며 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넌 하나님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니?" 어리둥절하던 그에게 곧이어 그 친구는 "그건 바로 예레미야 33장 3절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 전화번호를 확인해 보려고, 성경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신호음이 가자마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제 이 도성에서 수해의 상처를 말끔히 씻고 내가 다시 싱싱한 땅으로 회복시켜 주리니 시민들이 참 평화를 누릴 때가 오리라... 기쁜 소리, 흥겨운 노래, 신랑 신부의 즐거운 소리가 나리라 사람들은 감사 제물을 들고 내 집에 들어가 '여호와는 어지신 분, 그 사랑 영원하여라.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여라'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렇게 이 나라의 운명을 옛날과 같이 회복시켜 주리라. 이는 내 말이니라"는 음성이 들어왔습니다. 그 음성은 그에게 하나님이 남기신 음성 사서함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핫라인(직통 전화선)에는 '통화중'이라는 신호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전화를 거십시오. 하나님께서 회복해 주시고 새롭게 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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