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로 이끄는 지도자 2002-10-16 09:56:58 read : 4383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민12:1-16 // 02.9.29
The Power Principle 이라고 하는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된 책
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할 때에 '지도력의 원칙'이라고 번역됩니
다. 이것은 블래인 리(Blaine Lee)라고 하는 교수님이 쓰신 것입니
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고 하는 책을 써서 세계에 널
리 알려진 스티븐 코비 박사가 경영하는 코비 리더쉽 센터의 부회장으
로 있는 분입니다. 이런 많은 연구와 경험 속에서 이런 지도력의 원
칙에 대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지도력에
대해서 세 가지로 분류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첫째가 "Coercive Power"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강압
적 지도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강제적 수단을 사용해서 상대방으로 하
여금 내 명령에 따르게 하는 그러한 지도력을 말합니다. 우리 지도자
들을 보면 걸핏하게 되면 세무사찰 한다고 겁을 주거나, 또 국정감사
한다든지, 혹은 벌금을 물린다, 혹은 이렇게 하면 형무소에 간다, 이
렇게 해서 협박합니다. 이것은 강압적으로 억지에 못 견뎌서 내 뜻에
따라오게 하는 지도력입니다. 주로 독재자들이 그랬고 오늘도 이러
한 지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자녀들에게도 한 번 큰
소리 꽝 칩니다만은 이게 교육이 되는 게 아닙니다.
다른 하나의 유형은 Utility Power 가 있습니다. 이것은 실리적 지
도력입니다. '당신이 내 말을 들으면 네게 유익할 것이다' '내가 하
라는 대로하면 그러면 보너스도 주고 승진도 시켜주고 그래서 이제 보
상을 많이 주겠다' 하는 이런 것으로 상대방을 유도합니다. 이것은 당
근을 주는 것입니다. 말을 훈련시키는 조련사가 한 손에는 채찍, 한
손에는 당근, 이 둘로 가르친다고 하는데 이건 당근입니다. 내 말을
들으면 네게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건 하
나의 거래입니다. 이런식의 지도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합
니다. 왜냐하면 계속 당근을 줄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Principle-centered Power 라는 게 있습니다. 원칙
중심의 지도력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문제가 많은 이유중의 하나
가 원칙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도 감동했던 월드컵 4강의
신화는 원칙을 중요시했기 때문입니다. 원칙 중심의 지도력이 중요합
니다. 내게 이롭고 해롭고가 아닙니다. 원칙이기 때문에 내가 따르
고 진리를 따라가니까 내가 따라가는 거지 그 사람을 따라서 내게 이
가 있느냐 해로움이 있느냐 이런 얄팍한 계산 가지고는 지도력이 지도
력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를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
제는 지도자는 그 자신이 먼저 원칙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지
도력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건 존경심에 바탕을 두게 됩니
다. 이유가 없습니다, 그가 진리대로 살고 그가 원칙대로 사는 것을
보고 나 또한 양심 깊은 데서부터 그를 존경하고 그를 따르게 됩니
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날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지도자입니다. 백
성들이 존경하고 지도자의 말을 따를 수 있는 권위 있는 지도자가 필
요합니다. 국가도 사회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지도
자의 고갈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참된 지도자에 갈급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도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우리교회는 지금 앞장서서 섬길 수 있
는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지도자를 잘 세
울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공
동체가 아름다운 공동체가 됩니다. 만약에 지도자를 잘못 세우면 교회
공동체가 어려움을 당하거나 하나님 나라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
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지도자를 세웠는가? 하나님이 불러 세우신
지도자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모세를 쓰신 이유를 살
펴보려고 합니다.
한 가지 우리가 미리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원하신 지도자 상
과 인간이 원하는 지도자상이 다소 다를 수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은 지도자가 가진 장점을 보는 반면에 인간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단
점을 앞서 생각함으로 인해 지도자에 대한 평가가 다소 다르게 나타나
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모세라고 하면 위대한 지도자로 꼽
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해방시켜 광야 40년
동안 이끌었던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경우 우리가 생각하는 훌륭한 지도자로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혈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또 다혈질의
사람입니다. 모세는 이미 지도자가 되기 전 애굽의 바로 궁궐에서 자
랐을 때 한 번은 마을에 나왔다가 히브리 사람과 애굽 사람이 다투는
것을 보고는 히브리 사람을 쳐서 죽인 사실이 있는 어쩌면 온유함보다
는 의분이 가득 찬 사람이요, 참지 못하는 다혈질 사람이기도 합니
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아로새겨 주신 소중한 십계명을 새긴 돌판
을 가지고 내려오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고 분
노함이 충천하여 그 비석으로 내려쳐서 우상을 깨뜨리는 그런 다혈질
의 사람입니다. 모세의 실수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이제 또 그 가나
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됐다고 하면서 모세를 원망하고 모세를 죽이
겠다고 할 때에 모세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반석 을 그대로 두 번
이나 혈기로 내려치는 죄를 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당시 가족들이나 백성들은 모세를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
만큼 훌륭한 지도자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
면 모세가 이방 여인인 구스 여인, 즉 에디오피아 여인을 아내로 취했
습니다. 그래서 누나 미리암이나 형님 아론은 노골적으로 비난했습니
다. "어찌 네가 그럴 수 있느냐? 하나님의 사람, 네가 어찌 그럴 수
있느냐?" 이것을 쉽게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너 보통사람 아니냐.
그런고로 하나님이 너하고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에게도 말씀했느니라.
너만이 지도자냐 나도 지도자다" 한 마디로 말하면 모세의 영적 지도
자 된 권위를 여지없이 파괴하고 맙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자기
들끼리 한 말도 하나님은 다 들으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보
면 '여호와께 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집안에서 하는 얘기들도 하나님께서 다 듣고 계십니다. 아내에게 야단
치는 일도, 아내가 잘못한 일도 없는데 남편이 아내에게 야단치는 소
리도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십니다. 철야 기도회, 새벽 기도회 나간다
고 야단치고 괴롭히는 남편들의 모습을 모두 하나님께서 보시고, 들으
시고 계십니다. '밤 말은 쥐가 듣고 낮 말은 새가 듣는다'고 했습니
다. 그러나 낮 말과 밤 말을 다 듣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입니
다. 밤에 하는 말과 낮에 하는 말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귀속말도
들으시고 마음속으로 하는 말도 다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말 조심해
야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허물이 많은 모세를 하나님은 왜 지도자
로 세웠을까요? 하나님이 모세의 편을 들어주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
펴봅시다.
첫째는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누나 미리암과 형 아론이 비방을 해도 모세는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실수를 범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도자로 삼으시는 이유는 그의 온
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도 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의가 있고 바른 말을 잘해도 온유함이 없는 사람은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지도자에 대한 존경심은 그분의 온유함과 덕성으로부
터 나오는 것입니다. 온유함 과 덕성이라고 하는 깊은 성품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식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인
간성에서 풍기는 신뢰성, 존경심, 마침내 우리는 그에게 충성을 다하
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 중에 모세가 가장 온유하다고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고 하나님이 그를 도우시고 그를 붙들어 주시고
높여주십니다. 이제 문제는 이 말씀을 하게되는 바로 그 시점이 중요
합니다. 이 말씀이 지금 어느 시간에 이 말씀을 하시느냐 하면 모세
가 지금 범죄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아주 높은 위
상을 가진 이 어른이 또 나이도 많습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여자를
소실로 맞았습니다. 이것은 결정적인 실수입니다. 또 실수가 실수인
만큼은 다른 사람들은 다 속으로 비난하지만 형제들은 노골적으로 비
난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니다. 모세는 모든 사람보다 가장
온유하다, 그런고로 저 사람은 내 사람이다."라고 인정하는 것입니
다. 모세를 보면 훈련이 덜 되었을 때는 대단히 다혈질적인 사람인
것 같았으나 인생살다 보니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래도 모세가 세
상 사람들보다는 온유하다는 것입니다. 10절 이하에 보면 아론이 미리
암을 보니까 하나님이 나병에 걸리게 해 놓고는 떠나갔습니다. 이때
아론이 모세에게 찾아와서 하는 말이 자신들이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
음을 인정하니 허물을 자기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이때 모세가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나
는 모른다. 나는 고칠 수도 없다. 하나님께 가서 기도해봐라' 이런 식
으로 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모세를 형의 말을 듣고는 하나
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세의 온유함입니
다.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도자로 세워서 성공한 사람 대부분은 온유한 사람들이
었습니다. 요셉을 보아도 온유합니다. 다윗을 보아도 온유한 지도자였
습니다. 솔로몬도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을 제외하고는 다 허물
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지도자로 세우신 것
은 온유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
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온유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약성경에서는 양털깎는 사람 앞에 가
만히 누워있는 양으로 묘사했습니다. 사무엘하 22장 36절에 보면 "주
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중의
한가지가 온유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온유한 자를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는 온유해야 합니다. 바르게 하
고 원칙을 중요시하고 의분에 가득차다고 할지라도 온유함으로 그 모
든 것을 할 때 더 값진 결과를 낳게 됩니다. 온유함이 없으면 옳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지도자로서 존경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온유한 사
람을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온유한 사람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일을 아무리 잘해도 온유함이 없으면 그 하는 많
은 일들의 결과가 아름답지 못하게 되고 공동체의 힘을 잃어버리게 만
듭니다. 여러분이 일꾼을 살필 때 누가 온유한가를 잘 살펴보아야 합
니다.
둘째는 모세가 충성된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온유함을 강조하신 후에 불평하는 아론과 미리암과
그리고 모세를 부르신 후에 장막 문에 강림하셔서 아론과 미리암을 따
로 불러서 하신 말씀이 6-7절 입니다.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
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
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모세는 하나님이 가장 신뢰할만한 충성된 지도자
였습니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 중에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
게 직분을 맡겨주셨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딤전 1:12). 여기서 충
성이 먼저 입니까? 직분이 먼저 입니까? 충성이 먼저입니다. 고린도
교인에게 보낸 편지 중에 고린도전서 4장 2절을 보면 '직분 맡은 자에
게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충성이다.'라고 합니다. 직분이 먼저 입
니까? 충성이 먼저입니까? 직분이 먼저입니다. 충성은 나중입니다.
두 곳에 있는 말씀을 종합하면 충성이 먼저인 동시에 나중입니다. 즉
처음에도 충성, 나중에도 충성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
람, 혹은 하나님은 이일, 저일 하는 일꾼들에게 처음도 충성을 보시
고, 나중에도 충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일꾼에게서 충성을 제하면
이미 일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충성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서 손을 들어 승리를 선언해 주십니다. 아론과 미리암이 아무리 허물
을 꼬집어도 하나님은 충성된 모세를 세워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
가 충성하면 다소 허물이 있어도 하나님이 인정하시어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선지자들과는 꿈과 환상으로 이야기 하지만 모세와
는 직접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
다. 그리고 모세는 여호와의 형상을 본다고 했습니다. 너희들이 모세
가 한 잘못을 지적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충성됨을 인정하신다는 것
입니다. 모세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내가 모세를 세워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았는데 너희들이 왜 야단이냐? 내가 세운 모세가 마땅치
않으면 내가 처리할 일이지, 너희들이 왜 야단이냐?"고 호통을 치셨습
니다. 그리고 모세에 대하여 "세상에서 지금까지 나의 일꾼들이 많
이 있었지만 모세처럼 충성한 사람이 없었다."고 하십니다. 모세는 게
으름이나 요령을 피우지 않고 모든 일에 충성했다고 했습니다. 모세
는 처음부터 끝까지 충성하였습니다. 남들이 '미련하다'고 할 만큼 직
장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런 사람들의 손을 들어 가정생활의 승리, 교회 생활의 승리, 직장 생
활의 승리를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꾼을 세
울 때 충성하는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다음에 잘하겠지 하고 세웠다
가 낭패를 당하기도 합니다. 먼저 충성해야 하고 다소 부족한데도 직
분을 받았으면 충성해야 합니다. 교회는 말꾼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일꾼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게으름 피우는 사람이 필요한 것
이 아니라 부지런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1947년 미국의 시카고 근교의 위스칸신 주에 있는 천체연구소에
서 근무하고 있었던 과학자, 천체물리학자 닥터 첸드리스카 박사는 시
카고대학 (University of Chicago)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
니다.
'박사님 겨울방학 동안에 저희 대학에 와서 고급물리학 Advanced
Physic에 관한 특별강의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그는 쾌히 승낙을 했
습니다. 몇 주 후에 다시 대학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박사님 아무래
도 강의를 취소해야만 하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수강신청한 학
생이 너무 작아서요. 두 명밖에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 첸드리
스카 박사는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클래스가 작은 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 두 학생, 등록한 학생의 학업의욕이 어떤지요'
그래서 알려줬어요. 그러니까 첸드리스카 박사는 제가 강의를 하죠.
그래서 그 겨울동안, 시카고의 겨울은 유난히 춥습니다. 눈보라, 차가
운 사나운 바람을 헤치고 시카고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는 일주일에 이틀 동안 한 번도 빠짐이 없이 계속적으로 겨울 동안
강의를, 두 학생을 상대로 했습니다. 그로부터 꼭 십 년이 흘러갑니
다. 이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강의를 받았던 두 사람이 함께 노벨 물리
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첸넝 양 박사라는 분이고 다른
한 분은 충도 리라는 중국계의 미국 과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수상
의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이 상을 수상하
게 된 데는 우리 두 사람을 앞에 놓고 강의했던 첸드리스카 박사의 강
의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성실한 강의, 두 사람을 앞에 둔
이 한 분의 강의가 아름다운 노벨 물리학상의 열매로 나타날 수가 있
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큰 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중요한 일이
든지 덜 중요한 일이든지 맡은 일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
드시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을 승리하게 하십니다. 교회의 지도자를 세
울 때에도 일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말많은 일꾼보다는 말없는 일꾼
이 좋습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지도자는 충성된 사람입니다.
셋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형인 아론과 누님 미리암을 불러서 호통을 치
고 야단을 치신 다음에 떠나가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고
떠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인생이 되는지 아십니까? 야단을 칠지
라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실 때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
고 떠나신다면 참 불행한 인생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떠나자마
자 미리암이 온 몸에 문둥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아주 불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비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얼굴에 침을 뱉다가
당한 고난입니다. 그때 모세의 형 아론이 우리가 잘못했으니 용서하
고 이 누님을 위해서 좀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모
세는 자존심도 없는지 다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님을 위해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한마디로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모세의 온유함도 보
이고 형제애도 보이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 '누님이 잘 몰라서 그랬습니
다. 나를 미워해서 그랬겠습니까? 순간적으로 시기심이 조금 생겨서
그랬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를 보더라도 고쳐주세요.'라고 했을 것입
니다.
모세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자기 아비에게 침을 뱉
은 자식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뉘우칠 경우에도 칠일간은 부끄러
워 할 줄 알아야 되지 않느냐?'고 하십니다. '내 얼굴에 침뱉은 미리
암, 잘못을 깨달았다고 할지라도 칠일동안은 진 밖에 가두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칠일동안 진밖에 가두는 동안에 회개하고 거
기서 문둥병을 고침 받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길을 가지 못하고 칠
일을 기다렸다가 떠납니다. 한 사람의 잘못이 많은 백성들에게 얼마
나 고통을 주는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 한사람의 잘못으로 내 가
정 식구들에게 많은 고통을 안 겨 줄 수 있다고 하는 교훈이기도 합니
다. 모세는 자기를 그렇게 괴롭히던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할 때
아무 말 없이 기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
니다. 모세의 손을 들어 승리를 선언하십니다. 기도하는 모세가 누구
보다도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는 기도꾼이어야 합
니다. 교회는 말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꾼이 필요합니다.
기도는 자기부정이요 자기 열림이요 자기 변형입니다 기도는 저장
된 보고라기 보다는 계속 하나님의 세계를 순간순간 새롭게 발견해 나
가는 열린 흐름입니다. 이렇게 귀한 기도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처럼 귀한 기도의 특권을 주셨습니다. 기도하
는 자가 승리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손을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승리하는 삶을 위
해서는 항상 기도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성도들이 다 기도하지 않
는다 하더라도 나만이라도 기도해야 한다고 믿는 믿음의 일꾼, 기도
의 일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도자를 세울 때 새벽기도를 잘 참여
하시는지, 금요기도회는 잘 참여하시는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것
을 살피려면 자신도 나와야 하는데 여러분 자신도 나오지 않으면 그
런 것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부분을 다 알려드려야 하지
만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서 성령이 감동이 되는
분들에 대한 신상을 정확하게 알고 싶으면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시고
금요기도회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 하나님은 여러
분의 편이 되십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승리해야 합니다. 물론 마귀와의 싸
움에서도 승리해야 하지만 경쟁하는 사회에서도 승리해야 합니다. 하
나님께서 손을 들어주실 때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주시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첫째는 온유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길들
여 쓰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온유한 사람으로서 승리하였
습니다. 둘째는 충성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귀하게 여기시
는 만큼 충성을 귀히 여기시기 때문에 충성된 자의 손을 들어주십니
다. 셋째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일할 때 일하는 것은 '나'(I)지만
기도할 때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기도하는 사
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처럼 살고 모세처럼 승리하
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 같은 지도자를 세워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고 승리하는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지도자를 잘 세울
때 우리들은 자연적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행복하게 됩니다. 할렐루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