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초대 2002-11-22 10:03:25 read : 6130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슥 3:6-10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 나와 성격이 비슷한 사람이 나오
면 유난히 친근감을 갖게 됩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인물 가운데 그
런 사람이 있으면 그 인물을 유난히 좋아하게 됩니다.
성경 인물들 가운데 삭개오를 유달리 좋아하는 집사님이 한 분 계신데 그 이유
는 아주 간단합니다. 이 집사님이 키가 작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수아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 여호수아가 저희와 처지가 비
슷한 인물입니다.
여호수아라고 하면 모세의 뒤를 이어 가나안 정복을 완성한 인물을 먼저 생각
하게 되는데 성경에는 그 여호수아 말고 여러 명의 여호수아가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호수아는 귀환시대의 대제사장 여호수아입니
다.
귀환시대의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고, 또 저의 말씀을 들으면서 '아, 이런 인물이 있었네!'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왜 우리가 여호수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여호수아는 귀환시대의 대제사장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의 인물입
니다.
귀환시대는 여러 가지 면에서 힘들고 불안정한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의 70년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성전과 성벽은 무너져 있었
습니다. 기근이 심했고. 주변민족들의 조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공연히 못살게
구는 것을 '찝쩍거린다'고 하는데 주변의 여러 민족들이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
을 쉴 사이 없이 찝쩍거렸습니다.
사람이 무엇인가 기대했다가 그 기대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을 하게 됩니다. 이
스라엘 민족은 바벨론에서 돌아오면서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다윗과 솔로몬 시
대의 영화가 재건될 것이다'고 기대하면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가 못했습니다. 그 반대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런 시대에 대제사상으로서 백성들의 신앙을 재건하고, 격려하고
영적인 생활을 지도하는 일을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안정되지 못하고 가치관의 혼돈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영적 세계는 심하게 황폐되어 가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의
권위는 심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교회만 전문으로 터는 절도범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가운데서 영적으로 바르게 살려고,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
는 귀한 존재들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귀환시대의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모습과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성전 건축에 착수합니다. 이 성전
재건 사업은 사마리아와 주변 민족들의 악의적인 고소 때문에 중단됩니다. 16년
동안 중단되어 있었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성전건축이 중단되었
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다하고 있는 여호수아와 성전 건축이 끝나지
않은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 비슷한 데가 있습
니다.
하나님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들을 "예표의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
다.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
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예표의 사람들"은 앞으로 나타날 일을 미리 보여주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표의 사람들입니다. 한 번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예표의 사람이
다"
우리는 앞으로 나타나는 일들을 미리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해서 퍼져나갈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영적인 역사가 힘이 있게 전개될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의의 최후 승리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축복의 삶이 이루어질 것을 미리 보여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메시아 탄생을 미리 보여주는 사람들로 삼았습니
다. 8절 끝의"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개역성경」에는 "내가 내 종 순
을 나게 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는 말씀은 메시아 탄생을 예고하는 말씀입니
다.
이제 한 주일이 지나면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는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메시아 탄생의 소망을 새롭게 가져야 합니다.
특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성전이 준공되고 그 성전을 중심으로 미가서 4장
1절과 2절의 말씀이 축소된 모습으로 이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을 미리
보여주어야 합니다.
미가서 4장 1절과 2절의 말씀을 읽어 드립니다.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
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예표의 사람으로 삼아 주셨다. 하나님이 나를 예표의
사람이라고 불러주셨다. 나는 예표의 사람이다." 하는 인식을 새롭게 갖고 예표
의 사람으로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천국을 미리 보여주는 사람으로 살아야합니다. 화평과 기쁨의 삶을 살아
야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여러 가지를 축복하시고 좋은 일들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스가랴서 3장의 내용입니다.
이제 그것들을 살펴보겠는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베푼 축복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하신 약속들이 여러분에게도 그대로 임하기를 바랍니다.
먼저 여러 가지 고발로부터 지켜주셨습니다.
3장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는데 오른쪽에
사탄이 서서 여호수아를 대적합니다. 여기서 오른쪽이라는 것은 가장 가까운 거
리를 말합니다.
우리가 많이 쓰는 사탄이라는 말은 히브리말인데 대적자, 유혹자, 고발자,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소하는 자, 무고하는 자, 이런 뜻도 있습니다. 사
탄은 헐뜯는 일을 합니다.
이 세상에는 무고가 참 많습니다. 수사기관에 접수되는 고소, 고발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무고라고 합니다. 그것은 사
탄이 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욥기를 보면 사탄이 욥을 헐뜯습니다. 하나님이 '욥과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다' 고 칭찬하자 '그거야 하나님
께서 복을 주시기 때문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면 틀림없
이 주를 향해 욕할 것입니다' 헐뜯습니다(욥1:6∼11).
그 사탄이 지금 여호수아 옆에 바짝 붙어서 여호수아를 헐뜯으려고 합니다.
의롭게 살려는 사람, 신앙양심을 가지고 살려는 사람은 비난을 받는 일이 많습
니다. 참소를 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대적하는 일로부터 여호수아를 지켜주셨습니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는 포로생활의 여러 가지 힘든 정황 속에서도 타 없
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감리교 창설자인 웨슬리 목사님이 어렸을 때 집에 불이 나서 간신히 구조 받은
일이 있었는데 그 이후 웨슬리 목사님은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자신을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라고 생각하면서 평생을 지냈습니다.
목양교회는 최근 몇 년 동안 심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것을 이기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교회나 여러분은 모두 불에서 타지 않고 남아 있는 나무와 같은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나도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다. 하나
님이 우리를 불 가운데서 꺼내 주셨다' 하는 인식도 갖기 바랍니다.
사탄이 여호수아를 대적할 때 여호수아를 인정하시고 변호해 주시고 사탄을 꾸
짖으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헐뜯을 때 여러분을 지
켜 주시고 인정하시고 변호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줄 것을 약속하셨고 하나님의 집을
다스릴 것을 약속하셨고 이 땅의 죄악을 제거하여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6장 12절과 13절을 보면 성전 건축도 이루어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스가랴서는 열두 소선지서 가운데 하나인데 대부분의 예언서들과는 다른 특징
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예언서들은 예언자들이 대부분 지도층을 꾸짖습니다. 왕을 공격하고 형식
에 빠진 제사장들을 심하게 질책합니다.
이사야는 믿음이 부족한 왕 아하스를 꾸짖었습니다.
아모스는 여로보암 2세를 공격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이렇게 번영하
고 있는 것은 다 왕의 덕분입니다' 할 때 아모스는 '이 나라는 썩었습니다' 했습
니다.
미가는 제사장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
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미3:11)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언자 스가랴는 제사장 여호수아를 칭찬하고 격려합니다.
스가랴서 3장은 '내가 환상 가운데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이렇게 인정하고 축복
하는 것을 보았다' 하는 내용입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
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
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
다 하리라 하셨고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스룹바벨의 손
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예언자가 이렇게 제사장을 칭찬하고 통치자를 격려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입
니다.
지금 우리는 서로 인정하고 격려하고 칭찬하기에 힘쓸 때입니다.
지난 주일 여자 속회 공과 내용이 목자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성도를 잘 이끌고
성도들은 목자를 아끼고 도와야 한다는 내용이었지요.
이와 같은 격려에 힘입어 스룹바벨은 성전을 완공합니다. 이 성전이 '제2 성전'
인데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많은 약속 가운데서 전 가족초청주일을 앞두고
있는 우리의 가슴에 가장 강하게 와 닿는 것은 아름다운 초대의 약속입니다.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
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이 초대가 이
루어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많은 초대를 받습니다. 결혼 청첩장을 많이 받는데 이것도 일종의 초대
입니다. 동창회, 각종 모임 통지서도 많이 오는데 이것도 초대입니다.
많은 초대들 가운데에서 오늘 본문에 기록된 초대가 가장 귀중한 초대입니다.
방송계통에서 일하고 있을 때 청와대 경호실 도장이 찍혀 있는 초청장을 받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방송의 날 기념식이라든가 대통령 지
방순시 모임에 지방방송 책임자로 참석해야 할 때입니다. 국가조찬기도회라고
삼부요인을 초청해서 나라를 위한 기도모임을 일 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갖는
데 국가조찬기도회를 예전에는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라고 했습니다. 이 조
찬기도회의 초청장에도 한 동안 그런 도장이 찍혔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초청
장에 일련번호가 적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초청장은 소중하게 간직했다가 가지고 가야지 입장할 수 있습니다. 어떤 동
료는 교통법규를 위반해서 적발되었는데 그 초청장을 보여주니까 그냥 통과시
켜 주더랍니다.
우리가 다음 주일, 전 가족 초청주일을 앞두고 초청장을 만들었는데 이 초청장
은 그런 초청장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훨씬 더 귀합니다. 아니 훨씬 더 귀하
게 여겨야합니다.
왜 귀한 초청입니까?
구원으로의 초청이기 때문에 귀합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설교를 할 때 끝에 꼭 이런 순서를 갖습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해서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한 분은 그 자리에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이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앞으로 나오면 기다리고 있던 상담자
들이 그들을 만나서 복음을 설명해 주고 교회에 등록하도록 안내해 줍니다.
1973년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한국에 와서 대규모의 부흥집회를 가진 일이
있는데 그 때 대회를 준비하는 분들이 통역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하는 것을
가지고 심사숙고했습니다. '끝의 이 순서를 잘 처리할 수 있는 분이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런 일에 익숙한 침례교 목사님을 통
역으로 선정했습니다.
이 순서를 '구원으로의 초대'(Invitation to Salvation)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의 이 초대는 구원으로의 초대입니다.
우리가 하는 초대도 구원으로의 초대입니다. 귀한 초대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이 구원에의 초대 순서를 가질 때마다 벼랑 끝에 서는
심정을 맛본다고 합니다. 이 초대에 응해서 일어나 앞으로 나오는 사람은 구원,
초대를 거부하는 사람은 그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때의 사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의 초
대에 응해 앞으로 나오고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단상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
는 것이 있는데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표정이 아주 간절하고 심각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가족을, 이웃을 열심히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죠지 스위팅(George Sweeting)이라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무디 신학원 원장을
지내고 미국 교회의 존경받는 지도자 가운데 한 분으로 많은 수고를 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 분의 저서를 한국말로 번역해서 출판할 때 출판사에서 끝에 모두 '초대'라는
말을 넣었습니다. 「영원에로의 초대」「사랑에로의 초대」「희망으로의 초대」
이런 제목으로 출판되어 나왔습니다. 좋은 제목들이지요.
본문의 초대가 바로 그런 초대이고 우리의 초대가 바로 그런 초대입니다. 영원
에로의 초대이고, 사랑에로의 초대이고, 희망으로의 초대입니다.
이 초대는 또 평화에로의 초대입니다.
성경에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는 말은 평화를 이야기할 때 씁니다. 미
가서 4장 3절과 4절이 본보기입니다.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
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
습하지 아니하고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어떤 목사님이 교회에 나온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으니까 어떻습디까?' 하는 질
문을 했습니다. 제일 많이 들을 대답이 '웬일인지 마음이 평안해지더군요. 평화
스러워지더군요'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이 초대는 번영으로의 초대입니다.
성경에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또 번영을 상징할 때 쓰입니다.
솔로몬 시대의 번영을 묘사하는 열왕기상 4장 24절과 25절을 읽어드립니다.
솔로몬이 그 강 건너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그 강 건너편의 왕을
모두 다스리므로 그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를 누렸으니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
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예수를 믿으면 개인, 가정, 가문, 민족이 번영의 축복을 받습니다.
어느 교회 부흥성회의 초대장에 적힌 초대의 말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렇습니다.
가는 길 거칠고 험한 인생길에서
세상을 이길 힘을 공급 받기 위하여
형식과 습관과 회의에 빠진 우리 신앙을
새롭고 활력 넘치는 길로 인도 받기 위하여
침체되고 세속화된 신앙에
부흥의 불길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삶의 문제로 인하여 고통받고 고민하는 중에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민족 구원을 위한 교회의 선교적 사명에 대한
바른 대답을 얻기 위하여
금번 성회에 정중히 초대하오니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음 주일에 전 가족 초청주일을 갖는데 이 초대는 가는 길
거칠고 험한 인생길에서 세상을 이길 힘을 공급해 주기 위한 초청입니다.
형식과 습관과 회의에 빠진 신앙을 새롭고 활력 넘치는 것으로 바꾸기 위한 초
청입니다.
침체되고 세속화된 신앙에 부흥의 불길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초청입니다.
삶의 문제로 인하여 고통받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초청입니다. 민족 구원을 위한 교회의 선교적 사명에 대한 바른 대답을 얻기 위
한 초청입니다.
귀한 초청입니다.
아름다운 초청입니다.
여러분, 10절의 이 아름다운 초대를 통해 이루어진 축제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
기 바랍니다.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벌어지는 축제, 기쁨의 축제입니다.
혼자 즐기는 이기적인 기쁨이 아니고 공동체가 되어 나누는 기쁨이기 때문에
더욱 온전한 기쁨이 되고 최상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 축제의 기쁨 속에 나누어지는 사랑이 진정 영원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는 주일, 전 가족초청주일이 이와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게 되기를 바랍
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합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청소
년 시절, 어느 전도집회에서 구원에의 초대에 응해 앞자리로 나왔고 예수를 믿
게 되었고, 그리고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순서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구원에의 초대에 응했을 때에 일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
니다.
내가 그리스도께로 나아왔을 때, 나는 어떤 감동도 전혀 갖지 못했습니다.
나는 눈물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내가 집회에서 결단을 하고 앞으로 나갔
을 때 겁을 먹었던 것 외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습니다.
내가 맨 앞자리에 서 있던 그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바보스럽고 우매한 사
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에 내면에서 그 무엇인가 일어나
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어떤 기자가 내게 와서 그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면 나는 '글쎄올시
다. 나는 다만 앞으로 가서 저 설교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을 따름입
니다.'라고 얼버무렸거나 또는 그 비슷한 애매모호 한 대답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내면에서 그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것이 내 삶의 방향을 전환시켰으며 삶의 차원을 변화시켰고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여러분의 초청에 의해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나는 나의 내면에서 그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내 삶의 방향을 전환시켰으며 삶의 차
원을 변화시켰고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화를 가져다주었습니
다.'라고 고백하는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이 말씀드렸는데 본문에 기록된 초대는 성전이 중단된 상태에서 선포되었다
는 점에서 우리에게 더욱 친근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예표의 사람들인 우리가 다음 주일에 갖는 전 가족 초청주일이 스가랴서의 이
아름다운 초대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