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에서 은혜로 2002-11-22 10:00:38 read : 5963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벧후 1:1-11
저는 기독교 계통의 고등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몇 해 한 일이 있습니다. 담당
한 과목은 국어였는데 신학교를 나온 교사였기 때문에 학생들의 신앙활동도 많
이 지도하였습니다. 그 때 가르쳤던 학생들 가운데 목사가 된 분들이 여럿 있
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교회를 개척하고 저에게 주일 저녁 설교를 부탁하였
는데 응낙하고 갔다가 크게 낭패를 하고 체면이 많이 깎인 일이 있습니다.
이 목사님이 교회 이름을 '한소망교회'라고 했기에 교회 이름 풀이를 중심으로
설교 준비를 했습니다. '한'이라는 말에는 하나 뿐이라는 뜻도 있다, 크다는 뜻
도 있다, 바르다는 뜻도 있다, 이렇게 '한'이라는 글자의 뜻을 대여섯 개 정도
풀어서 설교원고를 준비했습니다.
오늘 오후에 저희와 같은 지방의 한사랑교회가 성전을 마련하고 입당 예배를
드리는데 축도 순서를 맡아서 갑니다만 '한'이라는 글자에는 뜻이 참 많습니다.
한글학회에서 나온「우리말 큰 사전」을 보면 열 개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설교 순서 전에 이 목사님이 '성도 여러분, 제가 이 교회 이름을 왜 한
소망교회라고 했는지 이미 여러 번 말했지만 오늘 저녁에 귀한 손님이 오셨으
니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했는데 '한'의 뜻을 설흔 개 정도 말했습니다.
제가 준비한 내용을 다 이야기하고 심지어는 '한소망'에는 '한을 소망으로 풀자'
는 뜻도 있다고 했고 '한국의 소망'이라는 뜻도 있으니까 한국의 소망인 통일을
이루는데 앞장서는 교회가 되자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제가 설교를 하기 위해 섰습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설교할 수 있었
겠습니까?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한'이라는 글자는 저에게 '한 맺힌 글자'가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쓰는 '은혜'라는 말도 '한'이라는 말만큼 뜻이 많습니다. 그리고 범위
가 아주 넓습니다.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은혜 많이 받으십시오'
'분위기가 은혜스럽습니다'
'은혜가 넘칩니다'
'은혜의 대잔치'
'그렇게 하면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법으로 하지 말고 은혜로 합시다'
'은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밖에도 많습니다.
이 은혜라는 말은 한 맺힌 말이 되어서는 안되고 말 그대로 은혜스러운 말이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많이 쓰는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하는 식의 말에는 은혜의 본래 뜻은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은혜의 부분적인 뜻, 또는 본래의 뜻은 아닌데
굳어져 버린 것을 습관적으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본래의 뜻을
알아야합니다.
은혜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말입니다.
은혜는 우리의 기본적인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에도 들어 있습니다. 사도신경의
끝 부분에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라는 말이 있는데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
과' 이것을 두 글자로 줄이면 '은혜' 이렇게 됩니다.
십자가는 은혜가 전해지는 통로입니다.
은혜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오랫동안 사용해 온 감리교 교리적 선언 네 번째 조항이 은혜에 대한
설명을 잘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기도의 생활을 믿으며 죄를 용서하심과 모든 요구에 넉넉하신
은혜를 믿으며"
그렇습니다. 은혜는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통해 죄사함을 받아 거룩해지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
도록 부름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 드리고
있는 것, 은혜입니다.
종교개혁의 삼대구호가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sola fides)'오직 말씀으
로'(sola Scriptura)
그리고 '오직 은총으로'(sola gratia)입니다. 은총은 은혜와 같은 말입니다.
믿음과 말씀에 대해서는 종종 강조한 일이 있어서 이번에는 은혜에 대해서 말
씀드려야겠다고 설교의 주제를 정했습니다.
그리고 은혜에 대해서 준비하는 동안에 정말 내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게된
은혜에 대한 감사를 새롭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는 것도 중요하고 느끼는 것도 중요합니다.
느끼는 것 없이 알기만 하면 이론적인 신앙에 그치고 맙니다.
또 아는 것 없이 느끼기만 하면 감정적인 신앙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 둘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합니다.
은혜에 대해서 느끼는 가운데 특별히 누구보다도 부족한 존재이면서도 하나님
의 종이 되어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들을 돌보고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은혜 가운데 은혜라는 것을 강하게,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한 주간을 퍽 은혜롭게 보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은혜에 대해서 같이 생각하는 것을 계기로 이 한 주간을 감사하
며 은혜롭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은혜'라는 말을 머리에 담겨 있는 상태에서 성경을 읽어나가는 중에 베
드로후서에 이르러 많이 놀랐습니다. 베드로후서의 모든 말씀이 은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은혜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장 1절을 봅니다.
앞부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평범한 어부인 베드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 그 베드로가 사도가
된 것, 은혜입니다.
우리가 성도된 것도 은혜입니다.
뒷부분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여러분과 제가 의롭다 함을 입어 믿음을 갖게된 것, 은혜에 대한 간결하고도
힘있는 설명입니다.
2절에서는 은혜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고 있고 3절 앞부분에서는 "그의 신기
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한 능력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라고 말
합니다. 이것도 은혜입니다.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선물로 우리에게 주
신 것입니다. 값없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값없이 받은 것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정말
가치가 큰 것은 값없이 받은 것들입니다.
어떤 분이 장기를 이식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이 분
은 장기를 구하기 위해 여러모로 애쓰고 있는데 장기를 이식해 줄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이식해 줄 사람을 찾으면 그 사람의 장기가 거부작용을 일
으키지 않나 검사를 해야 하는데 문제가 되는 일이 많습니다. 겨우 이식할 수
있는 장기를 만났는데 이번에는 너무 많은 돈을 요구해서 아직 장기이식을 하
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이 분이 크게 깨달았습니다. '아, 하나님은 너무나 귀한 장기들
을 많이 우리에게 무료로 주셨구나!' 그렇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귀한 것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공짜로 받았습니다. 내 심장, 나의 눈, 내 지체들, 내
몸과 마음과 시간과 존재, 부모 형제, 처자, 조국과 자연, 태양, 물, 이 소중한
것들, 거저 받은 것들입니다.
거저 받은 것들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은혜입니다.
여러분,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고 이 은혜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4절 이하, 우리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도 은혜입니다.
10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우리
가 부름 받고 택함 받은 것, 은혜의 다른 표현입니다.
베드로후서는 이렇게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이어지다가 3장 18절에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
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으리라" 은혜로 끝을 맺습니다.
베드로후서는 거짓교사들, 영지주의자들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는
성경인데 은혜를 바탕으로 하고 그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 해 전에 성경을 선교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읽은 일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은 복음으로 땅을 정복하라는 선교
명령이다, 아브라함은 선교사이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보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는 것은 파송식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계약을 맺은 것은 선교민족으로서의 계약이다, 사도들도 선교사들
이다, 성경의 끝인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은 선교의 완성이다, 이렇게
보면서 성경을 읽는 가운데 큰 은혜를 받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제 성경을 은혜의 관점에서 새롭게 읽어야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은혜를 받아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받기 위해 힘써야합니다.
어떻게 하면 은혜를 풍성하게 받을 수 있습니까?
먼저 정직해야합니다.
잠언서 14장 9절은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라고 가르쳐야합니다.
특별히 자신의 죄에 대해서 정직해야 합니다.
'나는 죄가 없어' 하는 것 정직한 것 아닙니다. 허세입니다.
'죄의 문제, 별 것 아니야! 사람이 어떻게 죄를 안 짓고 살아? 더구나 요즘 세
상에서 말이야!' 하는 것 정직한 것 아닙니다. 자기합리화입니다.
'죄의 문제, 쉽게 해결할 수 있어!' 정직한 것 아닙니다. 무식입니다. 무식해서
용감한ㅁ 것입니다.
'죄의 문제,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어' 하는 것도 정직한 것 아닙니다. 교만입
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죄의 문제는 심각한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 보았지
만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정직한 것
입니다.
바울은 죄의 문제 앞에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
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하는 것은 가장 정직한 고백
입니다.
루터도 죄의 문제 앞에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깊이 깨달았습니다.
루터는 수도원의 수도사였습니다. 그것도 수도원들 가운데에서도 아주 엄격하
기로 유명한 수도원의 수도사였고 그곳의 수도사들 가운데서도 수도원의 엄격
한 계율을 지키느라고 힘쓴 모범적인 수도사였습니다.
그런 루터가 자신을 죄인이라는 깨닫고 '어떻게 하면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매달립니다. 그 결과 '지금 천주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 가지고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하면서 일으킨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485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은 기독교를 공로의 종교에서 은혜의 종교로 전환시킨 사건입니다.
그 전까지는 교회는 자기의 힘으로 구원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가르쳤
습니다. '착한 일을 통해서 구원 받을 수 있다', '독신 생활을 하면 구원 받는데
큰 도움이 된다', '성지 순례를 하면 구원에 도움이 된다', '성자의 유물을 보면
구원 받는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유물에 대해서는 '무엇을 보면 연옥 생활이 몇 년 탕감된다', 이런 것들이 무슨
점수처럼 매겨져 있었습니다. 이번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의 유골함으로 추정
되는 성서유물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고 있는데 천주교에서는그 유물을 어느 정
도 평가할지 잠시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이런 것들은 선행과 경건한 삶을 격려하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결국에
는 내 공로를 내세우게 되고 내가 은혜 받고 축복 받는 것은 내가 잘 났기 때
문이라는 나 중심주의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만듭니다.
공로주의는 결국 인간 자신이 중심에 자리잡게 만들고 자기의 의 가운데서 인
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들고 죄 의식을 없앱니다.
이런 것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은혜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믿는 신앙을 가
져야 합니다.
공로에서 은혜로 전환이 이뤄져야합니다. 루터는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 앞에 떳떳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것을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독일 아우그스타나 신학대학 총장인 볼프강 좀머(Wolfgang Sommer) 박사가
종교개혁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퍽 도움이 되는 말을 했습니다. 그대로 옮겨드
립니다.
루터의 신학적인 사상의 첫 번째 표제어는 '죄이다. 루터의 신앙 이해는 그
의 죄 이해에서 출발한다. 루터의 모든 분투는 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은
혜로운 하나님을 붙들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런 공로를 요구하지 않고 인간을 받아주시는 은
혜로운 하나님이 나타난다
계속합니다. 어떻게 하면 은혜를 풍성하게 받을 수 있습니까?
겸손해야 합니다.
잠언서 3장 34절은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
를 베푸시나니" 라고 말하고 있고 베드로전서 5장5절 후반부에는 "하나님은 교
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가르치고 있습
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어!' 교만입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어떻게 하면 은혜를 풍성하게 받을 수 있습니까?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를 많이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
에게 많을 지어다" 알아야 면장도 하고, 알아야 은혜를 풍성하게 받습니다.
아는데 철저하게 알아야합니다. 헬라말로 그저 아는 것은 '그노시스'라고 합니
다. 베드로 사도는 여기서 '그노시스'라는 말을 쓰지 않고 '에피그노시스'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노시스'보다 더 크고 철저하고 완전하고 구체적
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초대교회 때 영지주의자들이라는 무서운 이단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영에 대해
서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자신을 영지주의자라고 했습니다. 헬라말로는 '그노시
스트'라고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서 더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
는 뜻으로 그노시스보다 한 단계 위인 '에피그노시스'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습
니다.
.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여기서 아는 것은 그저 책을 통
해서 아는 것,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한 객관적인 지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지식은 영생을 가져다주거나 은혜와 평강을 풍성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컴퓨터를 배우는 분들, 운전을 배우는 분들, 책을 통해서 남의 말을 듣고서 컴
퓨터를 잘 사용하거나 운전을 잘 알 수 있습니까? 아니지요. 실제로 컴퓨터를
두들겨야 하고 핸들을 잡아야합니다. 실수도 하고 자기만의 독특한 방법을 개
발하기도 하면서 익히게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여기서 안다고 하는 것은 믿고 사
귀고 같이 삶으로써 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를 깊이 사귀고 믿으며 그들을 체험하고 아는 삶 속에는 참으
로 풍성한 은혜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직한 사람들 되고, 겸손한 사람들이 되어, 특히 죄의
문제에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들이 되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깊이 앎으로
은혜를 풍성하게 받기 바랍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합니다. 받되 풍성하게 받아야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롬3:24, 딛3:7).
은혜를 받아야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느9:17).
은혜를 받아야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행15:11)
은혜를 받아야 위로와 소망을 받을 수 있습니다(살후2:16).
은혜를 받아야 다른 좋은 것들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은혜라는 말을 조사하다가 큰 것을 하나 깨달았습니다.
본문 2절에 '은혜와 평강'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이 '은혜와 무
엇'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사무엘하 2장 6절, 15장 20절, 요한복음 1장 14
절, 그밖의 많은 곳에 은혜와 진리라는 말이 나오고 느헤미야 9장17절, 다니엘
서 1장9절에는 은혜와 긍휼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밖에도 은혜와 영화(시
84:11), 은혜와 권능(행6:8), 은혜와 자비(욜2:13 욘4:2), 은혜와 사도의 직분(롬
1:5), 은혜와 의의 선물(롬5:17) 등 많습니다.
이것을 은혜를 받으면 평강이 따라온다, 은혜를 받으면 진리가 따라온다, 은혜
를 받으면 자비가 따라온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경우나 은혜가 먼저 나옵니다. 은혜가 뒤에 나오는 경우가 없습니
다.
저는 이것을 '은혜를 받아야 평강도 누릴 수 있다' '은혜를 받아야 진리도 깨달
을 수 있다' '은혜를 받아야 긍휼도 입을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말하면서도 바울 사도가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서 축도의 원형을 제시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
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같이 은혜를 먼저 말
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를 받아야 다른 좋은 것들도 받을 수 있습니다.
계속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기쁨도 누릴 수 있습니다.
은혜는 기쁨입니다. 은혜를 헬라말로 '카리스'( )라고 합니다. 카리스는 '기
쁨'을 말하는 '카라'에서 왔습니다.
은혜는 기쁨인데 일반적인 기쁨, 인간이 주는 기쁨과는 다른 기쁨입니다. 위로
부터 주시는 기쁨입니다. 거저 주시는 기쁨입니다.
진정한 기쁨, 인간이 추구하는 참 기쁨, 그리고 평강, 그것은 하나님과 그리스
도에게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1장 2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
욱 많을지어다"라는 말씀의 숨은 뜻입니다.
은혜를 받아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누가 나를 사랑하는데 내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시는 것, 이것은 총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남달리 봐주고 사랑해주고 관심을 가져 주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나에게는 그런 총애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데 이유 없이 곱게 봐주고 대우해
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은혜를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받은 은혜를 깨달아야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
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
혜로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생애의 모든 것을 '은혜' 두 글자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아서는 안됩니다.
은혜를 소중하게 여겨야합니다.
은혜 받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6장 1절과 2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
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였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은혜에서 떨어지면 안됩니다.
갈라디아교회의 교인들은 은혜에서 떨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
도는 갈라디아서 5장4절에서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
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라고 갈라디아 교인들을 꾸짖
고 있습니다.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면 안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0장 29절에서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
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
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고 경고하
고 있습니다.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꿔서는 안됩니다.
유다서 1장 4절은 이단에 대해 말하면서 이단은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감사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저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해야 합니다(시145:7).
은혜 받은 사람은 여호와의 은혜를 보답해야 합니다(시116:2).
은혜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해야 합니다(롬5:2).
은혜 받은 사람은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해야합니다(고후9:8).
은혜 받은 사람은 은혜의 영광을 찬송해야 합니다(엡1:6).
이럴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해 주십니다. 은혜 위에 은혜를 덧입혀 주십니다.
은혜는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은혜의 시작입니다. 우
리가 은혜 받은 자로 합당한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나가서 좋은 은혜
를 베풀어주십니다.
응답하시고 돕는 은혜에 이르게 하십니다. 감리교 신앙고백에 있는 데로 모든
요구에 넉넉하신 은혜를 주십니다.
드라마 사극에서 신하들이 임금에게 '성은이 망극하여이다'라는 말을 하는 장면
을 보게 됩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저것은 하나님께나 쓸 수 있는 말인데…'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성은(聖恩)은 '거룩한 은혜'라는 뜻이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 진심으로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은혜의 깊은 뜻을 깨달아 더 풍성한 은혜를 받고 은혜의 종교인 기독교의 성도
다운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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