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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귀한 사람(3)
    2002-11-22 09:57:33   read : 5313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살전 2:1-8 // 2002년 10월 27일

    오늘 <종교 개혁주일>을 맞아, 종교 개혁의 근본 정신은 다른 게 아니라 "진정한, 본래의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군더더기를 다 없애고,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을 강조하되, 단적으로 말하면, '성경(聖經) 중심의 생활'을 하자는 겁니다. 물론 이것은 화석화(化石化)되고, 고집스러운, 소위 '정통 보수 신앙'을 갖자는 게 아닙니다.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 때 구원과 행복과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마르틴 루터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목숨을 걸고 교회를 새롭게 하기 위해 애쓴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저는 존귀한 사람들, 즉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존귀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본문을 읽으면서 생각해 봅시다.



    1.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사람이 존귀한 사람입니다.

    4절에 보면,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사도 바울의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갈라디아 1:10에서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아주 강하게 말했습니다. 또 디모데후서 2:4에서는, "군사(軍士)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우리를 군사로 모집한 자(하나님)를 기쁘게 하는 게 군사 된 우리가 할 일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효(孝)란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고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 속을 썩이고 신경을 쓰게 만들어 드리면―아무리 좋은 걸 해 드린다 해도―그게 바로 불효(不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신앙 생활의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일까요? 두 가지라고 봅니다.



    먼저, 바른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런 예배가 바른 예배요 영적 예배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이고, 거창한 의식과 음악을 준비해서 떠들썩하게 진행한다해도, 정성이 결여된 예배라면, 그건 진정한 예배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祭物)'로 드릴 때, 그게 바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예배입니다. 내년 2003년도 목회 계획을 수립하면서, 무엇보다도 예배를 잘 드리는 운동, 예배 갱신(更新)에 관한 것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의 현존(現存)을 경험하지 못하고, 삶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생명력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성찬식(聖餐式) 기도문에는 예배에 대한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오 주님! 우리가 여기 당신 앞에 우리 자신과 우리 영혼과 우리 몸을 당연하고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나이다. 우리가 죄와 허물이 많아 하나님께 제사드리기를 감당할 수 없으나 감히 간구하오니, 우리의 이 마땅한 의무와 봉사를 받아 주옵소서." 또한 영국 성공회(聖公會)에서 쓰는《공동기도서》를 보면, 예배에 대한 정의가 잘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받은 바, 위대한 은혜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며 그의 지극히 높으심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거룩하신 말씀을 들으며, 몸과 마음을 위하여 요구되고 필요한 것들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함께 모이는 것이다."



    우리가 영적 예배를 드려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드리는 것이 영적 예배입니까? 정신을 차리고 말씀을 듣고, 찬송을 부를 때는 힘차게 정성껏 부르고, 기도할 때는 마음을 다하여 진실하게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누구에게 드리는 겁니까?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에 들어와 예배드릴 때는 팔짱을 끼지 말고, 다리를 꼬고 앉지도 말고, 멍하니 딴 생각을 하지도 말고, 졸아서도 안 됩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사, 즉 영적 예배를 드립시다.



    ② 정직하고 겸손하게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미가 6:8에 보면,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公義)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잘 사는 게 무엇입니까? 호화스럽게 사는 게 잘 사는 게 아닙니다. 질서를 잘 지키고, 정직하고, 겸손하게 사는 게 잘 사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공평하고 너그러운 자세를 가지고 사는 것, 바른 자세를 가지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겁니다. 사람이 몸이 건강하려면 자세를 바로 가져야 합니다. 삐딱하게 앉으면 척추가 휘고 건강에 해롭습니다. 그러나 바르게 앉고, 바르게 걷는 사람은 아주 건강하게 오래 삽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바른 자세―정직하고, 진실하고, 겸손하게 사는 것―를 가지고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립시다.



    2. 탐욕을 버린 사람이 존귀한 사람입니다.

    5절을 보면,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탐욕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단순하게 살아라"는 내용의 책이 잘 팔리고 있습니다. "단순하고 무식해야 행복할 수 있다; 단순한 열정; 단순하게 그리고 조금 느리게; 단순한 기쁨; 단순하게 더 단순하게; 단순함이 최고의 경쟁력이다; 삶은 단순한 길; 단순함의 원리; 단순하게 사는 법; 아이를 단순하게 키워라; 단순성의 기독교" 등등.



    세상이 너무 복잡해서 단순한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복잡한 것, 시끄러운 것, 여러 가지로 얽혀있는 것보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데서부터 삶의 기쁨과 행복이 생기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을 부지런히 연습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누가복음 12:15에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사회 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그의 만년에《소유냐 존재냐 To Have or To Be》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소유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할 것이냐" 하는 문제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 말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 주님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부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우리 삶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삽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산다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체(主體)는 하나님이십니다. 내(自我)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려면 우선 탐심을 버리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무엇을 많이 쌓아놓으려고 탐욕을 부릴 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것, 즉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모든 일에 자족(自足)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11에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自足)하기를 배웠노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자족하게 되기를 힘쓸 때 우리는 자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쓸데없이 욕심을 부리면, 결국 행복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욕을 부릴 것이 아니라 자족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이며, 여기에 행복이 있고, 또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작가 한 수산씨는《단순하게 조금 느리게》라는 책에서 "가난을 줄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부자가 되는 길이고, 하나는 욕망을 줄이는 것이다"라는 톨스토이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들국화가 아름다운 것은 거친 들판,

    억센 풀들 사이에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도 소박함이나 단순함의 아름다움을 알기에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을 가르치는 것은 장미였습니다.



    장미는 그 꽃이 화려할수록 향기가 약합니다.

    수수하고 덤덤할수록 깊고 진한 향기를 뿜어냅니다.

    멀리, 오래.

    장미를 길러보면 압니다.



    모든 나무들이 그 옷을 훌훌 벗는 가을입니다. 지난 수요일(23일)이 상강(霜降)이었습니다. 즉 서리가 내리는 계절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모든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 가을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탐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도 저렇게 훌훌 다 벗고, 본향(本鄕)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자유(自由)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유함이 복음의 핵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찬송 202장 1절). 이 찬송은 요한복음 8장 36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함은 너희가 참으로 자유 함이라"는 말씀과 요한일서 1장 7절의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는 말씀을 가지고 지어진 은혜로운 찬송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요, 이런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 정말 삶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특히, 자족하며 사는 사람에게 자유함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명심보감》을 보면,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빈천하여도 또한 즐거우나,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귀해도 또한 근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소유가 아닌 존재에, 탐욕을 부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존귀한 사람이 되도록 하십시다.



    3. 따듯한 마음으로 약한 자들을 돌보는 사람이 존귀한 사람입니다.

    7절을 공동번역으로 읽어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내세울 수도 있었으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는 마치 자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여러분을 부드럽게 대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잘 새겨보면, 아주 귀한 말씀입니다. 2천년 전에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에게는 전혀 권위적인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 교우들을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부드럽게 대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기가 대단히 어려운데 말입니다. 저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다 높아지려 하고, 강해지려 하고, 위대해 지려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는 생명의 약동이 불가능합니다. 생명의 본질은 부드러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자(老子)는 부드러움의 상징으로 '물'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물보다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강한 것을 이기는 데는 그것을 당할 것이 없다.

    어떤 것도 물을 대신할 만한 것이 없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기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것을 행하지 않는다.



    민수기 12:3에 보면 모세를 지칭하여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地面)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고 했습니다. 사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 인물입니다. 그의 인격이 완성된 모습이 바로 '온유함'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모세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온유한 사람이었다고 하나님이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마태복음 11:29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21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이 온유한 마음이며, 온유함이 사랑과 같은 것으로 묘사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약한 자들이 많습니다. 그 약한 자들을 돌보되, 마치도 어머니의 심정으로 부드럽게 돌보는 것이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 된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 중에 '온유'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찰스 알렌이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만(自慢)은 우리 자신만을 봄으로써 생기지만, 온유함은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생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생활, 성령 충만한 생활을 통해, 우리는 온유해 지고,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오 주님, 남을 누르고, 지배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라,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약한 자를 섬기고, 돕고, 붙들어 주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약한 자를 돌봄으로써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존귀한 사람들이 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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