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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자의 기쁨
    2002-11-21 12:31:54   read : 6553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년 10월 6일 // 누가복음 10 : 17-20

    눅 10:17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눅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눅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눅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이 충만하고 축복된 삶이 되기 위한 필수적 요소 A B C가 있는데 하나는 말씀 하나는 기도 하나는 전도입니다. 말씀을 '영혼의 양식'이라고 합니다. 말씀을 먹지 않고는 우리의 영이 자랄 수 없습니다. 주린 영이 만족할 수 없습니다. 또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호흡입니다.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산 믿음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나의 의식의 흐름이 기도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신앙생활의 요소인 전도를 '영혼의 운동'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가장 강하게 하고, 왕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균형 있게 자라고 성숙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이 세 가지 요소들이 작용을 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역동적 믿음을 갖게 하고 우리를 순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전도입니다. 그러나 역시 우리에게 가장 부담이 되는 것도 전도입니다. 나 하나의 믿음도 겨우 지탱하고 있는데 자꾸 목사님들은 전도하라고 요구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부담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유명한 신학자 '피터 와그너' 라고 하는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전도는 주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전도의 은사를 가진 것은 아니다. 대개 전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그 교회에 10-20%정도가 있는데 교회는 그 분들을 잘 발견하고 개발하여 전도자로 세워야 한다." 그랬습니다. 전도를 해야한다는 것은 알지만 대게 80%는 전도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전도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말입니다.

    저는 불신의 가정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예수를 믿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저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기도하였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믿음이 자라고,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후에 항상 제 마음속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의 아버님에 대한 전도였습니다. 아버님을 뵈면 도저히 전도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 그것은 틀림없는 복음입니다. 그보다 더 큰 효도와 공경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백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70평생을 살아온 그분만의 세계관이 있고, 문화가 있고 전통이 있고, 가치관이 있는데 '예수 믿으십시오.' 라고 요구하는 그것이 아버님의 그 모든 것을 바꾸라고 하는 것 같아서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이 전도를 망설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아버님의 구원에 대해서 기도가 나옵니다. 수년동안을 그렇게 기도하던 어느 날 성령께서 제게 말씀하여주셨습니다. '네 아버님이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마지막으로 아버님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 무엇이겠느냐? 예 전도이옵니다. 그러면 망설이지 말고 전하거라.' 이 음성을 듣고 저는 용기를 내서 아버님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나의 상상을 뛰어넘어 아버님은 주님을 영접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그 날 저는 저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기쁨이 저미어 오는지 주님 앞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도가 되기 전까지는 굉장한 부담이 되었는데 전도를 하게 되니까 한 영혼이 구원을 받아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사실 앞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늘의 기쁨을 얻게 되는 길은 바로 전도입니다. 그래서 전도자에게는 이 세상 그 무엇이 줄 수 없는 놀라운 기쁨을 얻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 땅에서 죄인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한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에서 잔치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에게는 바로 그 하늘의 기쁨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70인의 제자들이 주님으로부터 파송을 받아 복음을 증거하고 돌아왔습니다. 주님 앞에 돌아오는 그들의 모습 속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가득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10절에도 "70인이 기뻐 돌아와" 그랬습니다.
    기쁨이 충만하여 그들은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 초자연적 기쁨을 얻고 돌아온 것입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것에 대한 기쁨, 불신자를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들이 결박되고, 귀신이 항복하고, 귀신이 떠나가는 것을 체험한 것에 대한 기쁨,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얻고 돌아왔습니다.

    전도자에게는 이런 기쁨이 있습니다.
    지난 몽골 단기 선교 때의 일입니다. 단기 선교를 다 끝내고 내일이면 한국에 돌아가는 날입니다. 마지막 밤에 우리는 숙소에서 퇴수회를 가졌습니다. 간증을 나누고 고백을 나누었습니다. 두 자매의 고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몽골의 어느 대학에서 한국어과를 전공하는 솔롱고라고 하는 자매님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수 믿은지 얼마 되지 않지만 저는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저를 불러주셨는지를 알았습니다. 한국에 형제 자매들이 먼 몽골까지 와서 진심으로 영혼을 사랑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다른 나라에 선교사로 나가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저를 부르신 줄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 부르심을 위해서 준비하고 기도하며 살겠습니다." 또 한 자매의 고백이 우리를 감동시켰습니다. 정확하게 이름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만은 마지막 날 재래시장을 들렀다가 갑작스럽게 우리 팀이 봉변을 당했습니다. 옷이 찢어지고, 얼굴이 붓고 선교사는 이빨이 나가서 한 달 동안 밥을 먹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몽골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시에 사라졌습니다. 차가운 마음으로 겨우 그 싸움판을 빠져나와 숙소에 돌아왔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기도를 하는데 성령께서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뜨겁게 몽골의 영혼을 사랑하였는데 사단이 몽골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빼앗아가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밤 하나님은 선교사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사도 바울의 영혼 사랑의 마음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증거 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무리들이 누더기에 싸서 바울을 성밖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죽지 않았습니다. 실신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바울은 다시 돌무더기의 현장, 죽음의 현장인 루스드라에 또 들어갔습니다. 왜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주셨습니다. 잠시 몽골의 영혼을 미워하고 분노한 것을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셔서 그들이 영혼을 사랑할 마음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본 한 자매가 고백을 합니다. "강탈하고 때리고, 욕한 사람들을 잠시 미워한 것을 회개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이 예수님의 사랑인지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고 처음 이렇게 참여를 하였습니다 만은 이제는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그 자매는 지금까지 신실하게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한 영혼의 아름다운 고백과 진정한 삶의 변화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전도자, 선교 자들에게는 이런 기쁨과 영광과 감동이 있습니다. 우리 덕일의 가족들의 삶 속에서도 이런 기쁨과 영광과 감동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전도자의 기쁨을 얻을 수 있는가?

    첫째는 순종입니다.
    예수님께서 70인을 훈련시키신 후에 그들을 각 처로, 각 마을로 각각 둘씩을 짝을 지어 보냈습니다. 그들이 갔던 지역은 그렇게 때가 묻지 않고, 순수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소돔과 두로와 시돈보다 더 악하고 강퍅하고 사악한 뱃새다, 가버나움 지역을 전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제자들을 파송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3절을 보시면 "갈찌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전도가 되기 힘들고 복음을 듣지 않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상상을 초월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강퍅하던 영혼들을 주님 앞에 돌아왔습니다. 그들을 사로잡고 있던 악한 영들이 결박되고, 귀신들이 항복하고, 사단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전도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합니다.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이 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라고 하신 말씀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전하라고 하신 말씀에 입을 벌려 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70인의 제자들이 순종했을 때 내 생각과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역사가 벌어졌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저 사람이 도저히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포기를 하고 지냅니까? 저 사람은 절대로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을 꺼야! 저 사람은 너무 완고해, 저 사람은 안 돼, 저 사람은 천주교 믿는데 뭐! 저 사람은 교회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온 사람이야! 이것은 전부다 누구의 생각입니까? 내 생각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70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기의 생각들을 어떻게 하였습니까? 다 접었습니다. 오직 그들이 한 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만 한 것입니다. 가라고 하니까 갔습니다. 전하라고 하니까 전하였습니다. 자기의 생각과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을 파송하신 주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만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전도하라고 하면 성도님들은 "목사님 저는 내성적이라 입이 안 떨어집니다." "저는 배운 게 없어서--" "저는 성경을 잘 모릅니다." "교회에 다닌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저는 아침 열시에 나가서 저녁 열 시에 돌아오니 시간이 없습니다." "제 주변에는 믿지 않는 사람이 없이 다 믿습니다." 그럴듯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도에 대한 오해입니다. 전도를 내가 하려고 하니까 부담이 되고, 그렇게 핑계가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날 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네 백성의 질고를 내가 보고 들었다, 이제 네가 바로 앞에 가서 너의 백성을 이끌어내라" 고 하십니다. 그 때 모세는 뭐라고 변명하였습니까? "나는 안됩니다." "나는 80세 노인입니다." "살인하고 숨어서 지낸지 40년입니다." "나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처가살이 목동인데 가진 것이 없습니다." "나는 말을 못합니다." 등등 여러 가지 변명을 합니다. 그 때 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결같이 하신 말씀은 "모세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내가 너와 정녕 함께 하겠다."
    함께 하겠다는 말은 "너는 1%도 할 것이 없다. 너는 단지 가기만 하면 내가 100% 책임져주겠다. 가기만 하라." 그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전도에 초점을 맞추어 적용을 해보면 우리가 전도하려 할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다 해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힘으로, 그의 지혜와 그의 능력과 그의 지위로 그의 백성을 구원하려 할 때는 100%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후에 모세는 담대해져서 바로 왕 앞에까지 가서 그의 백성들을 완벽하게 구원해냈습니다.
    마태복음 4 :19절에서 예수님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되게 하리라' 는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결코 내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게 해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 행전 13 : 48절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그랬습니다. 영생을 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영생을 가지고 불신자를 찾아가서 우리가 스스로 나누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나가서 복음을 전하다보면 이미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기로 작정된 자가 걸려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입니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가라고 하면 가는 것입니다. 전하라고 하면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들이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전도를 이렇게 비유합니다. "전도는 다 익은 감을 따오는 것이다." 내가 감을 익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를 발견해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너희는 가서"-- 가라고 하니까 불신자들에게 가는 것입니다. "전하라" 하니까 예수 믿으십니까? 전하는 것입니다.

    고구마 전도왕인 김기동 집사님의 간증 속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그네를 타고 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놀이터 앞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있으니까 이 초등학교 4학년이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왜 그리 담배를 많이 피우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며느리하고 싸워서 나왔는데 "그냥 심심해서 피운다고" 대답했습니다. 꼬마가 계속 같은 질문을 하자 할아버지 역시 그냥 심심해서 피운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다가 꼬마다 "할아버지 심심하면 교회에 나가세요" 하고 아무 생각없이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너 어느 교회에 나가냐?" 하고 묻더랍니다. 요 앞에 있는 교회 나갑니다. 대답했더니 "너 언제 나가냐? 몇 시에 가냐? 자세히 묻더랍니다. 꼬마는 일요일 9:40분에 교회 버스 타고 간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몇 동 몇 호에 사는데 그 때 교회버스 타고 함께 가지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초등학교 4학년이 어머니 한데 어떤 할아버지하고 이런 저런 일이 있었다고 하니까 엄마 집사님이 "그 할아버지가 우리 교회교인인가 본데 버스를 처음 타시는 것 같으니 네가 잘 안내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약속시간보다 10분 일찍 가서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할아버지가 양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버스를 타고 교회에 도착하였는데 이 할아버지가 아이 손을 꼭 잡고는 "애야 오늘 이 할아버지가 교회 처음 나왔는데 어떻게 하면 되냐?"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꼬마는 할아버지를 전도사님에게 모시고 갔습니다.
    이 꼬마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전도한 것이 아닙니다. 갈급한 상태로 살아가는 작정된 영혼을 만났던 것입니다. 작정된 영혼은 누가 예수 믿으라고 해도 믿을 사람입니다. 전도는 내가 예수 믿게 하고 내가 등록을 시키고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해서 바로 그렇게 작정된 영혼을 찾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전도자의 기쁨의 비결은 순종함으로 나타난 놀라운 역사로 인하여 기뻤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구원 하려할 때 하나님은 그냥 보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에 필요한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권능을 입혀 주십니다. 우리는 걱정을 합니다. 나는 말을 못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돈이 없습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도를 해보십시오. 전도에 필요한 것들을 주님께서 공급해주십니다.

    주인이 종에게 추수를 명하실 때는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반드시 낫을 줍니다. 밭을 메라할 때는 호미를 줍니다. 밭을 갈라 할 때는 쟁기를 줍니다.
    사단의 손아귀에 매여 있는 영혼을 구원하려 할 때 주님은 절대로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순종하여 가는 자들에게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권능을 입혀주십니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전도보고를 합니다.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항복하더이다." 칠십 인도 깜짝 놀랐습니다. 상상을 초월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주여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항복하더이다." 너무 너무 기뻐서 그렇게 고백을 하니까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절-19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어디에서 나타나는가? 교회 안에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삶의 현장가운데로 나갈 때 나타납니다. 순종할 때 나타납니다. 입을 열 때 나타납니다. 복음을 선포할 때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영적인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 능력이 나타나는 현장은 교회가 아니라 교회 밖, 여러분의 삶의 현장입니다. 그 곳에 복음을 들고 나갈 때 나타나고 복음을 선포할 때 나타납니다.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중국이 1961년 문화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선교사를 추방하였습니다. 성경을 다 불태웠습니다. 교회의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많은 선교학자들은 중국 선교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후에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가 없고 목사가 없고 성경이 없는 그곳에 5천만에서 1억 명이 가까운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들이 핍박하고 방해하기 위해서 집회 장소를 찾다가 자기의 병이 낫는 경험을 하면서 온 가족이 구원을 받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불같은 성령이 임재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억압과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감추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간증하였기 때문에 사도행전에서 나타나는 초대교회의 역사를 중국교회는 30여 년 동안에 다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가지고만 있을 때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손해가 있고 핍박이 있지만 복음을 전하고 간증하고 나눌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6:20절에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현장에 나가니까 능력이 임하고, 전파하니까 표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교회 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작은 선교사입니다. 복음을 증거 하십시오. 나누십시오. 작정된 영혼들이 여러분들 통해서 주님 앞에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사단에게 얽매여 있는 영혼들이 해방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는 약하지만 주님께서 주신 영적 권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 바로 전도자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귀중한 비밀이 있습니다. 전도자의 진정한 기쁨, 최고의 기쁨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많은 영혼이 구원받아 주님 앞에 돌아올 때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 자가 고침을 받을 때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가 맡은 순이 부흥하고 우리 교회가 날마다 구원받은 자의 수가 늘어나 부흥한다면 얼마나 기쁨이 있겠습니까? 내가 전도하고 양육한 사람이 믿음이 점점 자라서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다면 얼마나 기쁨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눈물과 피와 땀을 흘리며 영혼을 돌보고 섬겼지만 보이는 열매가 없습니다. 목양하고 있는 교회가 확확 성장하지 않습니다. 순이 괄목하게 성장하고 부흥하지 않습니다. 내가 맡은 교회학교 반이 쑥쑥 자라지 않습니다. 그런가하면 사랑과 관심으로 양육한 사랑하는 지체가 믿음에서 떠나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저들의 사역이 실패하였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버마의 선교사 '저드신 아도니람'이라고 하는 선교사는 11년 동안 복음을 증거하였는데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선교사님의 사역을 실패로 규정할지 모릅니다. 일년동안 열심히 순원들을 섬기고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정도 부흥시키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의 사역은 실패하였습니다' 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실패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늘에 네 이름이 기록되었느니라. 네 눈물과 아픔과 고독을 아노라. 네 수고를 아노라. 그러니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전도자, 선교사는 하늘에 내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전도자는 이 땅에서 나타난 영광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내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여야 합니다. 보이는 열매가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순이 부흥하지 못했다고 자신의 부족을 탓하지 마십시오. 영혼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했다면 여러분의 이름은 하늘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고 기뻐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미국의 에스베리 신학대학원에 '헨리 모리슨' 이라는 학장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이 은퇴하신 후에 연로하신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두 내외분이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가서 그 오지에서 몇 년 동안 선교하는 가운데 뜨거운 기후와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고생을 하고, 갖가지 풍토병에 시달리다가 전염병에 걸리게 되었어 거의 쓰러질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안식년을 얻어서 꿈에도 그리던 고향 땅을 향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배로 대서양을 건너서 뉴욕 항을 항해하며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배가 뉴욕 항에 가까웠을 때 부두에는 수많은 환영하는 인파가 모여있었습니다. 선교사님 내외분 마음속에 혹시 우리를 환영 나온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기대가 찼습니다. 그런데 배가 항구에 이르자 장내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이 배는 당시 아프리카 사자 사냥을 같다가 귀국하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탑승했으니 그 일행이 먼저 내린 후에 차례로 내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조금전의 기대가 허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대통령 내외가 내리자 환영 팡빠레가 울려 퍼지고 빨강 주단이 배 앞에 깔리면서 환영 나온 군중들 가운데 대통령 내외분이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행이 떠나가자 그 수많은 군중들은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막상 선교사님 내외분이 내렸을 때는 환영 나온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허탈한 마음으로 또 기차를 갈아타고 밤을 새워 고향 땅인 켄터키 주 '윌모' 라는 곳으로 향해 갔습니다. 그런데 새벽 3시경 시골 역에 내렸을 때 역시 아무도 환영 나온 사람이 없었습니다. 너무도 실망이 되어서 무거운 가방을 들고 수여리 되는 시골길을 걸어가는데 마음속에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오 주님 저희가 아프리카 땅에서 고생하다가 고향 땅에 돌아왔는데 아무도 환영 나온 사람이 없네요."

    그 때 하늘로부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너무 고생이 많았다. 그러나 너는 아직 고향 땅에 이른 것이 아니다. 저 본향 천국에 이르게 될 때 너를 위한 성대한 환영 식이 있을 것이다. 그 때까지 잘 참고 견뎌야 한다."
    그 순간 선교사님의 두 내외분의 눈에서 뜨거운 감격의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고향집에서 요양 후 다시 아프리카를 떠나 일생을 헌신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을 환영해주는 사람들에 의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든지 없든지, 보이는 열매가 있든지 없든지, 눈물과 사랑으로 영혼을 섬기십시오.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진실하게 섬기십시오. 그럴 때마다 여러분의 진실한 사랑의 수고와 행위들이 주님의 책에 기록될 것이며 여러분의 이름이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에 기록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우리의 영혼이 본향인 주님 나라에 임하는 그 날, '사랑하는 내 아들아 그 동안 너무 고생이 많았구나 하시면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입을 맞추고 포옹하며 성대한 환영식을 베풀어주시고 주님과 더불어 왕 노릇 하는 영원한 영생의 복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 영광스런 그 날을 바라보며 오늘도 주님으로부터 파송 받은 작은 전도자로서의 위대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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