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라고 하면 어떤 입증을 요구하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실존적으로 입증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실용적인 면으로 입증하라는 것인지에 따라 답은 두가지로 나온다.
실존적 증명은 물론 가능하다. 인류 역사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신의식(神意識)을 포함해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 체험들을 했었고 그 체험들을 수없이 기록해 놓고 있다. 오늘도 최소한 세계 인류의 85%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증언하고 있다. 특히 기도의 구체적 응답,신유의 체험,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 등과 같은 종교적 체험은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사람들의 삶속에서 날마다 계속되고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절대적이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기도를 더 많이 한다. 이유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실재를 너무도 분명히 체험했기 때문에 그들은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는 사람이 어떻게 기도를 게을리 할 수 있겠는가? 생활속에서 얻은 하나님에 대한 실존적 체험을 표현하는 것을 소위 ‘간증’이라고 부른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개인,가정,교회공동체,역사를 통해 늘 경험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개인적 공동체적 경험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 실용적 증명은 가능한가? 가능한 정도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 사이를 비교하면 현실적으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 훨씬 더 의미있는 삶을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의 삶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행복하다는 것이 실용주의 철학의 대부인 하버드대의 윌리엄 제임스 교수의 결론이다.
유신론자의 삶이 무신론자의 삶보다 모든 면에서 실용적 가치가 더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하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더 일찍 믿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는 것이다.
“좀더 일찍이 믿었더라면…왜 예수 믿는 친구들이 더 일찍 얘기해 주지 않았는지 오히려 원망스럽다”는 말을 나는 자주 듣고 있다. 하나님을 믿으면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사랑 기쁨 평화 감사 안정 자존감 행복감 등이 가슴속에 솟아오른다.
영(靈)이신 하나님은 과학적 연구나 실험의 대상은 아니나 그 분의 존재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얼마든지 있고 논리적으로도 확률적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고 철학적으로도 유신론적 세계관으로 우주와 인간과 역사를 어떤 다른 세계관보다 단순하면서도 훨씬 더 일관성 있게 또 통합적으로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신학적으로는 말할 나위가 없다.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것을 ‘계시’라고 하는데 ‘계시’는 아는 쪽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주도적으로 알려주어야 한다. 유한하고 타락한 인간은 무한한 영이신 하나님을 스스로 알아낼 수가 없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고 하나님을 알고 경험한 사람들이 기록해 놓았고 그 기록을 통해 후세들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들의 증언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로 인해 오늘까지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끊임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번지고 있다.
위의 어느 한두 가지만으로는 완벽하지 못하나 누적된 입증들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요구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종착역이 있다. 사람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도달하기 위해 가장 확실하고 가능한 최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그 최선의 길이 바로 하나님이다. 다른 대안과 비교하면 그 증거는 압도적이다. 이성적인 접근은 우리를 성경으로 인도해주고 성경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