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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 살람의집 / 희망의 설교자가 됩시다
    2004-01-13 14:25:30   read : 5273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목회자의 쉼터 경기도 파주 살람의집

    환대와 고요함이 어우러진 ‘평화의 집’

    글·권옥경 | 사진·정화영

    쉼이란 복잡하고 시끄러운 데를 벗어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한적한 곳에서 얻는 법이다. 하지만 따뜻한 환대가 느껴지는 곳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살람의 집>은 보통의 기도원이나 수양관처럼 크지 않은 집 같은 편안함과 환대를 받을 수 있는 아담한 쉼터다. 규모나 공간의 짜임새, 실내 장식의 아기자기함이나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나 식사가 마치 집에 온 듯한 푸근한 쉼을 선사한다.

    황토색 벽돌로 탄탄하게 짜여진 이국적인 유럽식 건물 두 채가 겨울 햇살을 맞으며 서 있었다. 팻말에 쓰여진 샬롬의 아랍어인 살람이라는 단어에서 짐작되는 것처럼 이곳은 아랍과 관계 깊은 곳이다. 이슬람연구소 소장인 전재옥 교수가 사재를 털어 만든 곳으로, 1998년도에는 선교사들의 쉼터로 이용되다가 2001년에는 연구소가 세미나를 할 수 있도록 또 하나의 별채를 신축해 지금의 살람의 집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슬람 연구만 하는 곳은 아니다. 이곳은 개인이나 교회의 수련회 장소로 개방되고 있다.
    입구에서 첫 번째 보이는 건물이 선교사들의 쉼터가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에는 서까래까지 보이도록 천정을 높이 한 큰 홀이 있고, 좌우로 전 교수 방과 선교사 방이 있다. 홀은 약 20평 정도로 되어 있는데 중앙에 난로를 두고 그 둘레로 의자들이 놓여 있다. 다른 건물이 지어지지 않았을 때는 이곳에서 세미나를 하며 둘러앉아 담소를 즐겼을 법한 공간인데, 지금은 전 교수와 선교사님들이 이용하고 있다. 액자 하나까지 전 교수의 특유의 심미안과 섬세함이 깃든 이곳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 바로 옆은 이슬람연구소 사무실이 있는 연구소 건물이다. 큰 홀에서 열렸을 세미나를 이 공간에 옮겨놓은 것 같다. 이 연구소 건물은 단층을 지하와 다락, 1층으로 공간을 나누어, 이슬람연구소 사무실, 예배실, 세미나실, 개인 숙소, 기도실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있다.

    1층에는 세미나실, 부엌, 식탁, 세미나실이 있는데, 중심은 세미나실이다. 원형으로 된 공간에 있는 세미나실은 햇볕이 가장 잘 들어오도록 통유리로 되어 있는 등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연구소의 각종 세미나를 염두에 두었다면 이곳이 가장 중요하리라. 최대 30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이곳은 원탁과 의자가 비치되어 있으며 세미나에 필요한 집기도 있다. 이곳은 따로 식당이 있지 않고 식사는 부엌에서 만들어 식탁에 둘러앉아 먹게 되어 있다. 집 주위의 텃밭에서 기른 야채도 맛볼 수 있다.

    나무 계단을 올라 다락으로 가면 작은 예수원에 온 기분이 든다. 이 작은 공간에 개인숙소 4개, 기도실, 13평의 세미나실 및 다목적 방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되어 감탄을 자아낸다. 복도에 1,000여 종의 이슬람 관련 서적이 있는 책장이 즐비하게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자연스럽게 이슬람 세계로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 개인 숙소에는 작지만 깨끗한 스탠드와 간단한 침구가 놓여 있다. 기도실은 열린 공간으로 되어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무릎 꿇게 되어 있다. 이곳이 답답하면 언제라도 이 건물 뒤로 난 산책로를 걸으며 묵상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지하층은 공간 전체가 트여서 예배실로 이용되고 있다. 현재는 예배 및 단체숙소로 이용되고 있다.

    서울에서 40분 정도 소요되는데, 자유로를 타고 가다가 가산동·구산동 표지판에서 파주 방향으로 10분 정도 가면 된다. 개인보다는 가족 단위로, 소그룹이나 세미나 장소로 추천하고 싶다.홈페이지
    (http://www. chollian.net/~iis) 참조. O31-946-7580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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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희망을 선포하자

    최승락|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우리에게 희망이 열려 있는 한 우리는 그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된다. 더듬어 느끼던 것의 실체를 알 수 있게 되고, 희미하게 보이던 것의 아름다움을 환히 맛볼 수 있게 된다. 기다림과 고통의 순간들이 허비된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이 있기에 인생이 더 값진 것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일출 장면은 언제 보아도 장엄하다. 특히 새해 첫날의 일출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장거리 여행의 수고도 마다치 않고 단잠도 포기한 채 높은 산봉우리 위로, 또는 망망대해가 펼쳐지는 바닷가로 나아간다. 필자에게는 지난 연말 여수 돌산 섬에서 새해를 앞당겨 일출을 맞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친구와 함께 새벽 일찍 차를 몰아 돌산 섬 남단의 향일암(向日庵)으로 향했다. 어둠을 뚫고 곧추선 바위 사이의 좁은 길을 지나 신라 고승 원효대사가 644년에 처음 세우고 수도했다는 산꼭대기의 암자에 도달할 수 있었다. 너무 일찍 올라온 탓인지 아직 해가 떠오를 기미는 보이지 않고 추위 속에서 침묵의 기다림이 한동안 계속됐다. 기다림 속에서 한 번씩 오간 말은 “지금이 몇 시쯤 되었는가”라는 질문이 거의 전부였다. 그리고 새들이 깨어 아침 맞을 준비를 시작할 무렵 한 무리의 참배객들이 적막을 깨트리며 산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바다 너머 수평선 위로 붉은 빛이 조금씩 두터운 구름층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꽤 오랜 시간 햇님은 사람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었다. 구름만 물들인 채 좀처럼 햇님이 얼굴을 내밀지 않자 사람들은 하나 둘 포기하기 시작했다. 구름 뒤로 이미 다 떠올라서 더 이상 기다려도 볼 것이 없다고 말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발길을 돌려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5분도 지나지 않아 햇님은 드디어 그 얼굴을 조금씩 내밀었다.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해를 향해 합장을 하고 소원을 비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무엇을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햇님은 그 얼굴을 똑똑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잠시의 시간만을 허용한 채 그 달려갈 길을 바쁘게 몰아가고 있었다. 햇님의 빛 속에서 환하게 드러난 세상은 참 아름다웠다. 어둠에 가려 우리가 서 있는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도 미처 알지 못했지만, 바위산을 둘러 곳곳에 피어 있는 빨간 색 동백꽃이 한결 돋보였고, 어둠 속에서 무심코 밟고 지나왔던 발 아래의 바위에는 자연이 새겨놓은 신기한 암각들이 해독을 기다리는 문자처럼 넓게 새겨져 있었다. 이런 모습이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든 자라 등과 같은 형상이라 해서 사람들은 이 산의 이름을 금오산(金鰲山)이라 불렀던가 보다.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우리는 오직 햇님의 빛 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희망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항일암에서 일출을 맞은 경험은 희망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희망은 무엇보다 어둠이란 현실이 있기 때문에 더욱 우리에게 필요하다. 인생의 여정 가운데서 우리는 때로 누구 하나 돌아보지 않는 외로움의 긴 터널을 홀로 걸어야 하는 순간을 만나기도 하고, 때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가난과 질병의 중압감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순간들도 만난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들이 일순간에 찾아오기도 하며, 오래 공을 들여 가꾸어왔던 소중한 것들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기도 한다. 눈앞이 캄캄하여 빛이 있어도 보이는 것이 없으며, 억눌린 가슴이 겨우 신음만을 입 밖으로 흘려보내는 그런 순간들을 맞을 때, 우리에게 희망은 정말 절실한 것이 된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희망의 실체를 더욱 깊고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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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속에 전도전략

    급변하는 시대에 한국 교회는 성장을 멈췄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교회의 사역들은 기존 성도들을 중심으로 행하고 있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많지 않은 상태다. 이런 시대에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생활 전도가 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하모사)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가 관계를 맺으며 생활에서 전도하는 것이다.

    전도자의 유형
    생활 속에서 전도하려면 우선 우리 주변에 있는 하모사들을 이해해야 한다. 여러 부류의 하모사들이 있다. 기독교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 배타적인 사람, 회의적인 사람, 상처받은 사람 등이 있다. 또 영적 진리를 찾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일부는 무신론자, 일부는 신앙심이 깊은 타 종교인일 수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하모사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도 여러 유형으로 독특하게 창조하셨다.
    성경에 보면 전도자의 유형이 크게 6가지로 나눠진다. 첫째는 직선형이다. 사도행전 2장에 등장하는 베드로와 같은 전도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적대적인 상황과 환경에서도 자신감을 갖고 강력하고 담대함으로 복음을 선포한다.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직선적인 전도자다. 이런 전도자는 교통 사고로 피투성이 된 사람을 만나면 “당신이 오늘 죽게 되면 하늘나라에 갈 확신이 있으십니까?”라고 질문하는 사람이다. 복음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헌신하는 전도자다. 베드로처럼,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 14:28)하며 주님께 순종할 때, 물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전도자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전도할 때 상황에 적합한 전략을 위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강하게 보이려는 욕망을 성령님께서 제어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전도 대상자의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말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하고 복음을 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둘째는 지성형이다. 바울처럼 철학적이며 논리적인 사고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다. 사도행전 17장 23절에서 바울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며 아덴 사람들에게 익숙한 시인의 말을 인용해 전도했다. 바울의 논리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는 말씀에 대해 확신을 갖고, 이사야서 1장 18절 말씀대로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하며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고후 10:5) 하는 것이다.
    지성형의 사람은 전도할 때 학문적인 주제나 논제들을 설명하다가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함정에 빠지지 쉽다. 전도 대상자들에게 정보보다 우리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 말씀처럼 “온유와 두려움”을 갖고 전도해야 한다.
    셋째는 간증형이다. 요한복음 9장에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처럼, 철학적으로 신앙을 분석하며 설명하는 전도자가 아니라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요 9:25)라고 고백하는 유형이다. 다시 말해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만 찬송하겠습니다”라는 전도자다. 인격적으로 만난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분명하기 때문에 다른 설명이 불필요한 전도자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는가 하는 간증은 복음이 아니라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간증만 전하고 복음을 설명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간증이 전도 대상자의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연구하며 전도해야 한다.

    관계 형성이 복음 전도에 앞서지 말아야
    넷째는 관계형이다. 마태는 관계 범주 안에 있던 사람들을 특별 파티에 초대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획한 전도자다. 전도 대상자들을 분석하고 필요와 접촉점을 파악해 파티를 준비했다. 마태는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고전 9:22)라는 말씀을 실행한 전도자였다. 신학적 교리를 언급하기보다 오히려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함으로써 복음을 전하는 우정 지향적인 전도자다. 하지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궁극적인 목표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다섯째는 초대형이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녀의 호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찾아왔다. 누가복음 14장 23절에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는 말씀을 실행할 수 있는 전도자다. 초대형 전도자는 항상 다른 목회자나 사역자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초대받는 사람들은 초대하는 사람의 삶에 예수님의 말씀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 만큼 복음을 설명하고 전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여섯째는 봉사형이다. 사도행전 9장에 소개되는 도르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전도한 제자다. 그의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는 말씀처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디딤돌로 삼는 전도자다. 인내심이 강하고 타인 중심적이며, 상대의 필요를 이해하고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복음을 전할 때 말보다 행동으로써 사랑을 보여주고, 힘들고 자질구레한 일에도 기쁜 마음으로 섬기며 전도하는 사람이다. 봉사형의 사람들은 섬기는 동기가 예수님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대에게 여러 방법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전도를 위한 관계의 유형
    자신에게 맞는 전도 스타일을 이해하고 실제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하모사와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를 원한다. 주변에는 하나님께서 이미 관계를 맺게 해 주신 하모사들이 있다. 이런 관계는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관계를 통해 친구 하모사들을 인도하기를 원하신다.
    전도를 위한 우정 관계에 7가지 특성이 있다. 하나, 진정한 관계이다. 전도 대상자와 관계를 맺을 때 진정한 친구가 돼야 한다. 전도를 위한 관계가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관계를 말한다.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친구가 돼야 한다. 조셉 알드리히(Joseph Aldrich) 교수는 “우리가 복음(Good News)을 전하기 전에 친구들에게 희소식(good news)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인들이 경험하는 관계는 피상적이며 임시적이다. 진정한 관계는 그들의 삶에 아름다운 선물이 된다.
    둘, 자연스러운 관계다. 누구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디자인과 성품 그리고 모습 그대로 관계를 세워나간다. 부자연스러운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한다. 친구들도 부담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만나면 자연스럽게 깊어져 가는 관계부터 시작한다.
    셋, 개인적인 관계다. 하모사들에게 복음을 가지고 접근하는 방법에 개인적인 방법과 일반적인 방법이 있다. 현대인들은 전도지, TV프로그램, 대형 전도 집회 등 일반적 방법보다 친구와 영적인 대화를 나누며 하나님을 이해하기 원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고민이 있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책이나 모르는 상담자를 찾지 않고 오히려 신뢰할 수 있는 친구를 찾는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문제도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와 나누기를 원한다.
    넷, 대화할 수 있는 관계다. 복음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가끔 친구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로마서 10장 14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기록돼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누군가 복음을 설명해 줘야 한다. 행함이 없는 신앙 고백은 설득력이 없듯이, 신앙 고백이 없는 행함은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는 삶 속에서 복음을 행동으로 보임과 동시에 설명해야 한다.
    다섯, 과정 지향적인 관계이다. 복음을 전할 때 무리하게 결정하기를 요구하거나 일방적으로 촉구해선 안 된다. 사람들이 복음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복음 3장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는 말씀을 듣고 이해하기까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우리도 하모사들이 복음을 이해하는 속도나 과정을 함께 인내하며 존중해야 한다.
    여섯, 관계 전도는 팀 지향적이다.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인도하시기 위해 여러 사람을 동원해 합력으로 선을 이루실 때도 있다. 전도할 때, 한 친구를 처음부터 결단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클리프 네틀(Cliff Knechtle)이라는 전도자는 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것을 많은 고리로 연결된 사슬로 비유했다. 사슬에는 처음 고리, 중간 고리, 마지막 고리가 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까지 많은 대화와 과정들에서 전도자들은 가끔 마지막 고리 역할을 하며 전도의 기쁨을 맛 볼 때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엔 중간 고리 역할을 한다. 처음 고리의 역할을 맡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께서 항상 자신을 마지막 고리가 되도록 사용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어느 고리를 맡든 우리는 전도의 기쁨을 느끼며, 충성으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요한복음 4장 36절에 예수님께서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처음 고리가 되었든, 마지막 고리가 되었든, 함께 기뻐해야 한다. 이런 성경적 원리는 우리로 하여금 협력과 제휴로 전도해 보다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함을 알게 한다.

    회개에 앞서 사랑을 느끼게 해야
    마지막으로 타인 중심적인 관계가 있다. 우리는 복음을 가지고 전도하려는 친구에게 다가 갈 때, 우선 그들의 필요와 관심 분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들의 취미, 관심 분야, 필요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접근해야 한다. 우리의 의견을 말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여러 의견들을 경청해야 한다. 무엇을 믿고 있으며, 어떤 가치관으로 살고 있는지 알아 봐야 한다.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 줄 때, 그들에게 존중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줄 때 우리가 원하는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아들이 말하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하며 회개하기 시작했다고 기록돼 있다. 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회개를 가능하게 만든 사랑’이었다. 이미 사랑을 체험한 아들은 준비한 회개를 할 수 있었다. 우리도 하모사들에게 회개를 요구하기 전에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사랑을 경험할 수 있도록 관계를 맺어야 한다.
    글·채수권 시카고 두란노와 JDM 편집책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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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가 교회를 낳아야
    합니다

    000000000하용조 |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이 땅의 유일한 소망인 교회는 결코 한 개인이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가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이 땅 위에서 사라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 땅 위에 새로운 소망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니 그분이 소망이십니다. 그리고 그 소망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을 떠나면서 남기신 것, 바로 자신의 몸인 교회였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소망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을 떠나실 때 재산을 남기신 것이 아닙니다. 명예를 남기신 것도 아닙니다. 그분은 자신의 피로 세우신 교회를 남기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이 남긴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보혈 외에는 타락한 이 세상을 구원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흘리신 피로 세우신 교회만이 이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소망이요 대안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을 보면 그 유일한 소망이 빛과 소금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포스트모던이라는 파도 속에 교회는 자신의 정체성을 빠뜨린 것처럼 보입니다. 종교다원주의라는 거대한 산 속에서 교회는 길을 잃어 그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유일한 소망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단지 또 다른 하나의 소망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염려가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향한 우리의 염려보다 교회가 담고 있는 소망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교회는 이 온 우주에 유일한 소망이요 대안으로 변치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교회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회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사라지지 않고 소망을 지켜나갔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꿈꾸셨던 그 교회를 우리 역시 꿈꾸며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제자들 위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실 때 눈에 보이는 지상의 교회가 탄생되었다는 것을 사도행전의 기록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교회의 핵심적인 가치는 건물이나 제도나 교파에 있지 않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을 경험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였습니다. 교회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은 바로 성령님에게 있습니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진정한 근거는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십자가의 교리에 집착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한다면 단지 부활의 신앙을 주장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에 그 핵심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처음으로 성령님의 임재와 다스림을 체험한 사람들은 새로운 천국의 언어를 경험했습니다. 더 이상 다락방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락방을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경험한 성령님을 통해 깨닫게 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큰 일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을 경험한 그들이 외친 메시지는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듣고 있던 사람들은 놀라며 서로 어찌된 일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열 한 사도가 다시 함께 서서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라고 선포했습니다(행 2:22∼24).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바로 이 일의 증인이라고 담대히 외쳤습니다.

    그들은 서로 모일 때마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공동체의 삶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신비스러운 경험입니다. 세상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그러한 새로운 사회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가르침과 기도와 교제와 찬양과 떡을 떼는 것과 성만찬과 세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남자나 여자나 어린이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동일하게 부으시는 성령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동일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가 서로 유무상통했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이렇게 단순한 것입니다. 성령님의 살아있는 능력과 그 활동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기적을 베풀어주시고 건물을 세워주시고 재정을 채워주십니다. 진정한 주님의 교회는 인종과 문화와 언어와 민족과 역사를 초월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적인 교회입니다.

    교회는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교파나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서 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인간적인 방법이나 동기로 교회를 세우려 할 때에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진정한 교회는 주님이 주인이신 교회이며 성령님이 이끄시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성령님께서 운행하고 다스리는 곳입니다. 교회는 결코 한 개인이 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교회가 세우는 것이며 교회가 교회를 낳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안디옥교회를 낳은 것이며 안디옥교회가 바울의 세 번에 걸친 선교 여행을 통해 중앙 아시아와 유럽 곳곳에 여러 교회를 세웠습니다. 초대교회는 베드로나 바울 개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교회가 교회를 세우지 않는 데 있습니다. 각자가 알아서 교회를 세우다 보니 이렇게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부모가 키워야 합니다. 길거리에 버리거나 고아원에 맡기면 안 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기도하며 정성껏 키워야 합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주님의 교회는 성령 받은 교회들을 통하여 계속 세워질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사도행전적인 교회는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여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교회는 유일한 소망입니다.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내가’, ‘우리가’, ‘재물이’, ‘권력’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이름을 내기 위해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몸인,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가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의 이름만이 남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교회가 교회를 낳아 진정한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시다. 교회가 교회를 세워 사람의 영광이 아닌 모든 영광을 교회를 세우신 성삼위 하나님께 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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