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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강해설교 작성법/ 본론 작성의 단계
    2002-01-23 07:34:17   read : 4679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론 작성은 크게 여섯 단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편의상 그렇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본론을 만들어 가다가 보면 어떤 경우에는 순서가 바뀔 수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몇 단계가 거의 동시에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 단계를 바로 이해하고 나면 설교 준비 과정에서 순서가 바뀌든 몇 단계가 동시에 진행되든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Ⅰ. 본문 선택



    강해 설교를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단일한 사고 단위(思考單位; a single unit of thought)를 가지고 있는 본문을 선택해야 한다.

    훌륭한 연설이나 설교는 한 번에 한 가지 문제나 주제만 취급해야지 한 가지 이상의 문제를 취급해서는 안 된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야 하며, 토끼를 쫓아가도 한 마리만 쫓아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소기(所期)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강해 설교는 단추에서부터 관(棺)까지 모두 취급하는 잡화점이 아니라, 한 가지 품목만을 중점적으로 취급하는 전문점인 것이다.

    독자들 가운데서는 어렸을 적에 볼록 렌즈를 이용해 종이를 태워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볼록 렌즈로 종이를 태우려면 렌즈의 초점을 정확히 맞추어 종이의 어느 한 지점에 집중시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결코 종이를 태우지 못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설교나 연설도 마찬가지이다.


    효과적인 스피치(speech)가 되기 위해서는 단일한 주제를 취급해야 된다. 단일한 주제의 필요성은 수사학자나 설교학자 모두가 강조하고 있다. 브리건스(William N. Brigance)는 말하기를, 효과적인 연설은 "하나의 특정한 것 즉, 중심 내용(central idea)에 집중한다"고 했고, 1)릿핀(A. Duane Litfin)도 브리건스와 같은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연설이 최대한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의 주요 명제(major proposition)를 다소간 충분히 전개하도록 시도해야 한다" 2) 뿐만 아니라, 연설에 있어서 통일성(unity), 질서(order), 진보(progress)의 3요소는 핵심적인 것인데, 하나의 핵심 명제가 연설에 분명히 있을 경우 이 세 가지가 성취될 수 있다. 3)

    설교학자들도 수사학자와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라빈슨(Haddon W. Robinson)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중심적이고 통일적인 생각이 효과적인 설교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원리를 무시하는 것은 설교자가 말해야 할 것을 제쳐놓는 것이다."4) 스팁스(Alan M. Stibbs)5)나 페리 (Lloyd M. Perry) 6) 등도 라빈슨과 모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설교가 단일한 주제만을 취급하기 위해서는 본문을 선택할 때 단일한 사고 단위가 되는 본문을 선택해야 한다. 본문이 너무 길어서 하나 이상의 주제를 포함하고 있으면 그것을 좀더 짧게 끊어서 하나의 주제만 포함하도록 재조정해야 할 것이고, 너무 짧아서 단일한 사고 단위를 구성하지 못한다면 조금 길게 잡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어떤 본문이 단일한 사고 단위가 되느냐 안 되느냐에 대해서는 설교자마다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설교자는 사고 단위를 조금 넓게 잡기도 하고, 또 어떤 설교자들은 다소 좁게 잡기도 하는데, 어느 경우라도 본문이 단일한 사고 단위를 구성하고 있다면 용납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의 길이를 정할 때 우리 말 성경에 사용되고 있는 단락 구분 기호(ㅇ)가 상당히 좋은 안내 역할을 하지만, 그것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서신의 경우는 본문을 짧게 잡아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락 구분 기호가 절대적으로 맞지는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마태복음 6:19-34의 경우, 한글 성경은 이 본문 전체를 하나로 잡고 있지만, 아마 둘로 나누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즉 6:19-24까지를 한 단락으로 그리고 6:25-34까지를 다른 단락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창세기 2장 18절 이하를 설교한다면 본문은 20절이나 21절에서 끊어서도 안되고, 3장으로 넘어가도 안될 것이다. 이 경우는 18절부터 25절까지가 하나의 사고 단위인 것이다. 가령 고린도전서 1장 4절부터 9절까지를 하나의 사고 단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 넓게 잡아서 4절부터 17절까지를 하나의 사고 단위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본문만 더 보도록 하자. 만약 요한복음 21장 15절 이하를 설교한다면, 한글 성경의 단락 구분을 따라 23절까지를 하나의 사고 단위로 보고 설교할 수도 있고, 17절까지만으로 끊어서 설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하나의 사고 단위가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경우 본문을 짧게 잡느냐 길게 잡느냐 하는 것은 청중, 설교의 목적, 설교자의 능력이나 취향 등에 따라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Ⅱ. 중심 내용 파악



    단일한 사고 단위를 가진 본문을 선택하고 나면 우선 본문을 여러 번 읽어야 한다. 때로는 수십 번을 읽으면서 묵상해야 한다. 그래서 본문 전체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한 후에 그 본문의 중심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중심 내용(central idea)이란 본문이 가르치는 핵심적인 내용을 보편적 진리의 형태로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명제(proposition)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본문의 중심 내용과 설교의 중심 내용이 일치하기도 한다. 특히 교훈 문학의 경우에는 본문 자체가 보편성을 갖는 교훈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양자가 일치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서사 문학의 경우에는 양자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의 중심 내용이 보편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본문의 중심 내용에서부터 보편적인 원리를 발견해 내어야만 그것이 설교의 중심 내용으로 적합하게 될 것이다(이 부분은 뒤에 '석의적 대지'와 '설교적 대지'를 논할 때 좀더 자세히 취급될 것이다).

    필자가 강해 설교 세미나를 수십 차례 인도해 본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목사들은 본문의 중심 내용을 파악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문장 수련을 제대로 받은 사람들은 본문을 읽고 그 대의(大意)를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본문의 중심 내용을 파악하려면 본문의 주어가 무엇이며, 또 술어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내야 하고, 만일 그것이 보편적인 명제이면 그대로, 보편적인 명제가 아니면 보편적인 명제로 바꾸어서 현재 시제로 표현해야 된다.

    여기서 말하는 주어란 문법적 주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주어진 본문 전체의 주어를 말하는 것이다. 한 본문에서 문법적인 주어는 여러 개가 있을 수 있지만, 본문 전체의 주어는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주어란 쉽게 말하면, 본문 전체가 무엇을 말하려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를 주제(theme)라는 단어로 바꾸어 표현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술어도 물론 문장 전체의 술어를 뜻하고 있다. 술어는 본문이 주어를 어떻게, 무엇이라고 설명하느냐에 대한 답변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7) 설교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주어(또는 주제)가 분명하지 않으면 설교에 구심점이 없다. 그런 설교는 산만하고 복잡하게 되어서 청중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독자들 가운데는 도대체 중심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설교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의문을 가진 분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세미나에 참석한 목사들 가운데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상당히 많은 것을 보았다. 그런 의문을 갖고 있던 분들이 여러 번의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 본문의 중심 내용을 파악하는 법을 배우고 나서는 필자의 세미나를 통해 이것 하나 배운 것만으로도 설교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본문의 중심 내용을 바로 파악하면 설교의 방향이 정해지고, 설교의 목적을 큰 어려움 없이 정할 수 있게 되고, 또 많은 경우에는 설교의 대지까지도 손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가령 마태복음 6:13-16을 본문으로 할 경우 중심 내용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빛과 소금'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과연 본문은 우리가 아는 하늘의 태양이나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에 관한 것을 말하려고 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본문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빛이나 소금은 다른 무엇을 가리키기 위한 수사적 표현이지, 문자적인 빛이나 소금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빛과 소금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그 무엇'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 또는 행실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본문의 주어로서는 '영향력 있는 삶'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술어를 무엇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까?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빛과 소금으로 비유되고 있기 때문에 "영향력 있는 삶은 빛과 소금 같다"고 하면 무난할 것이다.

    본문을 야고보서 3:13-18로 할 경우 중심 내용을 무엇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본문을 몇 번 읽어보면 본문이 '지혜'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은 물론 지혜에 관해서 말하고 있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너무 막연하다. 지혜에는 여러 종류의 지혜가 있지 않는가? 인간적인 지혜, 세상적인 지혜, 하나님으로부터의 지혜 등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지혜라는 것만 가지고는 본문의 주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이 언급하고 있는 지혜는 어떤 종류의 지혜인지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본문의 15절과 17절에 유의해 보면 본문이 말하고 있는 지혜는 다른 종류의 지혜가 아니고 '위로부터의 지혜', '신적(神的)인 지혜', 또는 '경건한 지혜'를 말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주어에 대한 술어는 무엇이라고 보아야 할까? 본문은 '위로부터의 지혜'에 관해서 무엇이라고 설명하거나 묘사하고 있는가? 본문은 위로부터의 지혜를 여러 가지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선행으로 나타나며, 자랑하지 않으며, 거짓말하지 않으며,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가 있고, 편벽과 거짓이 없고, 화평케 한다.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표현을 사용하면 '위로부터의 지혜'라는 주어에 대한 술어로서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포괄적인 표현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몇 가지 가능성이 있는 표현으로는 의의 열매, 성령의 열매, 선한 열매, 선행 등을 들 수 있겠다. 어느 것이나 사실상 그 의미는 거의 유사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 같다. 따라서 본문의 중심 내용은 "위로부터의 지혜는 선행으로 나타난다"든지 "위로부터의 지혜는 풍성한 영적인 열매로 나타난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베드로전서 3:1-6을 본문으로 택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본문의 중심 내용을 파악하려면 우선 본문을 여러 번 읽어야 한다. 충분히 본문을 읽고 난 후에 본문 전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독자들은 본문이 무엇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본문을 여러 번 읽어보고 나면, 본문이 '아내'에 관한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큰 어려움 없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본문에서의 주어(또는 주제)는 '아내'인가? '아내'라는 주어만으로 사실 너무 막연하고 또 범위가 너무 넓다. 본문을 좀더 자세히 읽고 묵상해 보면 본문이 분명히 아내에 관해 말하고 있긴 하지만 아내에 관한 일반적인 면이 아니고 어느 특정한 면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본문이 아내의 어떤 면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몇 가지 가능성이 금세 부상(浮上)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내의 행위, 아내의 신앙, 아내의 치장 등이 후보자로 등장하겠지만, '아내의 순종'으로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특별히 6장 1절, 5절, 6절 등을 보면 본문이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을 중점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의 주어를 '아내의 순종'으로 잡았다고 해서 아직 본문의 중심 내용을 다 파악한 것은 아니다. 본문이 아내의 순종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아내의 순종만 가지고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아내의 순종은 시대착오적 사고 방식이란 것을 말하려고 하는지, 아내의 순종은 비성서적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내의 순종은 바람직하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내의 순종이 어떠하다는 것 즉, 아내의 순종을 설명해 주는 부분이 있어야만 비로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감이 잡히게 된다. 이 부분이 바로 술어인데, 독자들은 아내의 순종이란 주어에 대한 술어가 무엇이라야 된다고 생각하는가?

    우선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술어는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아내의 순종은 행위로 표현되어야 한다"라든지 이와 유사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2절, 3절, 4절 등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지고 만다. 2-4절은 내면적인 미덕 내지는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행위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행위'와 '내면적 아름다움'을 합친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아내의 순종은 내적인 아름다움으로부터 나오는 행위로 표현된다"라든지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말이다. 아마 이것이 본문의 중심 내용을 보편성을 갖는 한 문장으로 간단히 표현하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교훈문학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 서사문학의 경우는 어떤가? 사도행전 16:19-34을 본문으로 선택해서 그 중심 내용을 한 번 찾아보자.

    본문을 몇 번 읽어보고 난 후에 먼저 주어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우선 생각할 수 있는 주어는 '빌립보 간수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빌립보 간수의 구원이 본문의 주어(또는 주제)라고 생각하는가? 필자의 견해로는, 본문이 주로 말하고 있는 것은 간수의 구원이 아니라고 본다. 그의 구원이 본문에 언급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은 바울과 실라의 고난 또는 그 고난 중의 태도나 신앙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바울과 실라가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나 그 감옥에서도 실의와 좌절과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아니하고 찬송과 기도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간수와 그 가족이 구원받게 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렇다면 주어를 '바울과 실라의 신앙'으로 보고, 중심 내용을 "바울과 실라는 고난 중에도 찬양과 기도를 함으로 옥문이 열리고 간수가 구원받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고 하면 어떨까? 이 경우에는 문제가 있다. 본문은 서사문학이기 때문에 '바울과 실라의 신앙'이라고 하면 보편성이 없다. 또 술어도 문제가 있다. "옥문이 열리고 간수가 구원받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는 것도 보편성이 없다. 이런 중심 내용은 오늘날의 독자나 청중과의 연계성이 없어지고 만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보편성이 없는 석의적 중심 내용을 보편성이 있는 설교적 중심 내용으로 바꾸는 것이다. 설교적 중심 내용은 석의적 중심 내용에 근거를 두면서도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극한 고난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찬양과 기도를 한 바울과 실라의 신앙을 보편성이 있게 표현하면 '환경을 초월한 신앙'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아마도 사람이 갈 수 있는 곳 가운데 가장 비참한 곳은 감옥일 것이다. 그것도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이 감옥에 들어가 채찍에 맞고 착고에 채여 꼼짝 못하는 상황이라면 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 환경에 짓눌려 참으로 비참하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달랐다. 그 가운데서도 찬양과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신앙이 환경에 좌우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본문의 주어는 일단 '환경을 초월한 신앙'으로 정하기로 하고, 이제는 이 주어에 대한 술어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본문은 '환경을 초월한 신앙'이라는 주어가 어떻다고 설명하는가? 본문은 바울과 실라가 복음으로 인한 고난 가운데도 위축되거나 좌절되지 않고 감옥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옥문이 열리고 그 결과 간수와 그 가족이 구원받게 되었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술어는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어떤 표현이라야 할 것이다. 몇 가지 가능한 표현은, "환경을 초월한 신앙은 죄인의 구원을 가져왔다", "환경을 초월한 신앙은 하나님의 위로를 가져왔다" 등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마도 보편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본문의 의도를 살릴 수 있는 표현은 "환경을 초월한 신앙은 믿음의 승리를 가져온다"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 '믿음의 승리'라는 표현은 사도들의 꿋꿋한 신앙,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 간수와 그 가족의 구원을 다 포함하는 포괄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본문만 더 고찰해보도록 하겠다.

    본문을 서사문학인 사무엘하 6:1-15에서 택한다면 그 중심 내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본문을 몇 번 정독(精讀)해 보면 본문은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다윗이 처음에는 언약궤를 수레에 실어 옮기려 하다가 실패했으나, 두 번째는 레위 사람들의 어깨에 메어서 옮김으로 무사히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게 된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본문의 주어와 술어는 무엇이라고 해야 하겠는가? 우선 가능한 중심내용은 "다윗은 언약궤를 레위인의 어깨에 메게 함으로 예루살렘으로 옮길 수 있었다"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위의 경우에는 주어가 '다윗이 언약궤를 옮긴 방법'이라든지 또는 이와 유사한 문구(文句)가 될 것이기 때문에 보편성이 전혀 없어져 버리고 만다. 그것은 너무 석의적(釋義的)이고 과거 지향적이기 때문에 본문의 가르침에는 충실하지만 현대의 청중과는 너무 유리되어서 그들로부터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보편적인 진리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윗이나 언약궤 같이 시간의 제한을 받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것은 훌륭한 하나님의 일이었기 때문에 주어를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방법'이나 '하나님의 일의 성취'라고 할 경우 별 문제가 없을 것같이 보인다.

    이제 술어를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다윗이 언약궤를 성공적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을 수레에 싣지 않고 레위 사람들의 어깨에 메게 했기 때문이다. 민수기 4:15과 7:9을 보면 언약궤를 레위 사람의 어깨에 메어서 옮겨야 함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은 언약궤를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으로 옮길 때 성공했지만 그렇게 아니할 때 실패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의 성취'라는 주어에 대한 술어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중심 내용은 "하나님의 일의 성취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라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라고 표현하면 본문의 가르침에도 부합하면서 현대의 청중에게도 어필(appeal)할 수 있는 좋은 표현이 될 것이다.

    여기서 중심 내용의 파악과 관련하여 한 가지 언급해야 될 것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발견한 중심 내용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중심 내용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완결된 것이 아니고, 잠정적인 중심 내용을 가지고 본문을 연구하면서 본문과 맞아 들어가지 않으면 수정을 해야 된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야 잠정적인 중심 내용이 본문의 중심 내용으로 확정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본문의 중심 내용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는지 독자들이 스스로 한 번 연구해 보기 바란다.

    1. 예레미야 1:4-19

    2. 다니엘서 1:1-21

    3. 누가복음 12:13-21

    4. 누가복음 18:1-8

    5. 로마서 12:1-2

    6. 고린도전서 3:10-15

    7. 고린도후서 6:14-7:1

    8. 갈라디아서 6:6-10

    9. 골로새서 3:1-4

    10. 야고보서 2:14-26





    Ⅲ. 본문 연구 및 자료 수집



    단일한 사고 단위를 가진 본문을 선택한 후 그 본문의 중심 내용의 파악이 되고 나면, 본문을 깊이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해야 된다.



    A. 필요한 참고서

    본문을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하려면 개인적인 기도와 묵상도 필요하지만 다른 참고서의 도움도 역시 필요하다. 어떤 설교자들은 설교 준비를 할 때 성경 한 권만 가지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공부하기 싫고 게을러서 그렇기도 하고, 영적인 교만 때문에 즉,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영적으로 더 깊이가 있고, 더 복음적이고, 더 신령하기 때문에 볼만한 책이 없다는 식의 사고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교만 중에 영적 교만만큼 무섭고 독선적이고 파괴적인 것도 없다. 영적 교만과 독선으로 가득 찬 설교자가 과연 좋은 설교자가 될 수 있을는지는 극히 의문스럽다.

    독서하지 않는 설교자는 발전이 없고, 설교자가 발전하지 않으면 교회도 발전하지 않는다. 독서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는 설교자로부터 먹을 만한 꼴이 부단히 공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요한 웨슬리(John Wesley)는 사역에 있어서의 독서가 생명줄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독서를 하든지 사역을 그만 두든지 하라"(Either read, or get out of the ministry)고 말하지 아니했던가?

    현재 달라스 신학교 총장으로 재직중인 찰스 스윈돌(Charles R. Swindoll) 목사는 달라스 신학교에서 개최된 목회자 학교에서 '목사와 강단'이란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그 자신의 독서에 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스타인벡(Steinbeck)에서부터 밤벡(Bombeck- 이러한 작가는 실제로 없지만 '스타인벡'과 같은 음으로 끝나는 단어를 사용해 표현을 재미있게 하기 위한 것임)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있으면 모두 다 읽는다. 나는 다른 주석서들을 읽는다. 나는 다른 목사들(의 책)을 읽는다. 나는 과거의 목사들의 책을 읽는다. 나는 논문도 읽고, 될 수 있는 한 잡지도 읽는다. 여행 중에도 나는 독서를 한다. 여행할 때 나는 아직 읽기를 시작하지 않았지만 읽고자 하는 책 7권을 가지고 간다. 독서, 독서, 독서! 왜냐 하면 그것은 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독서하지 않으면 나는 생기를 잃어버리고 시대에 뒤지게 된다. 나는 우리 성도들이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는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내 가까이에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해주는 상이한 사람들로부터 자극을 받는다.8)



    공부하고 독서하는 설교자만이 성장할 수 있고, 성장하는 설교자만이 신선한 생명의 양식을 양들에게 부단히 공급할 수 있다.

    설교자가 그의 서재에 갖추어야 될 책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일일이 다 열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는 그 중 몇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1) 성경

    설교자 가운데 특히 원어에 자신이 없는 분들은 성경 번역판을 몇 종류 사용할 필요가 있다. 한글 개역판은 물론 새 번역, 표준 번역, 현대인의 성경, 현대어 성경 등도 참고서로 사용할 수 있다. 성서원어대전(한국 성서 연구원)이나 헬-한 대조 신약성경(지평 서원) 등을 활용할 수 있다.

    또 영어를 안다면 영어 번역판도 몇 종 갖출 필요가 있다. 영어 번역판 가운데는 KJV(King James Version), NKJV(New King James Version), NASB(New American Standard Bible), NIV(New International Version) 등이 좋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 성경 공부를 하기 위해서 사용한다면 NKJV나 NASB가 가장 좋을 것이다. NKJV는 KJV의 문체는 따르되 KJV에서 사용된 고어(古語), 오역(誤譯) 등은 수정하였기 때문에 KJV보다 개선되었다고 생각한다. NASB도 KJV나 NKJV와 같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고, 또 그 번역진은 보수적인 학자들이다. NIV도 보수적인 학자들에 의해 번역되긴 했지만, KJV, NKJV, NASB 등과는 번역의 철학이 다르다. NIV는 직역보다는 원문의 의미 전달에 강조를 두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의역(意譯)의 성격이 강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참고하기에 좋은 번역판이다. 9)

    그러면 KJV(흠정역)의 경우는 어떤가? 언어는 역사성과 사회성을 갖는다. 따라서 그것은 세월이 지나고, 또 사회적 환경이 바뀌면 그 의미에 변화를 가져온다. KJV는 1611년에 출판된 성경이기 때문에 현대인에게는 너무 낡았다. 이는 우리 나라로 말하면 임진왜란 직후에 해당되는데, 그 때의 조선어를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자고 한다면 모두 다 웃을 것이다. 지금도 미국 사람들 가운데는 KJV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사용해 왔고 익숙하기 때문에 계속 고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글 개역성경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지만 우리가 이것을 고집하는 것과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근자에 이르러는 이송오 씨가 대표로 있는 소위 <말씀보존학회>에서는 KJV와 그 한국어 번역판 '한글 킹제임스성경'만이 유일무이한 성경이고 그 외의 모든 번역판은 사탄의 모조품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變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에서도 피터 럭크만(Peter Ruckman) 같은 극단적인 사람들이 KJV는 영감된 성경이고 그것만이 유일하다는 식으로 학문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하나의 학설을 진리인 양 주장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많은 사람들을 오도하는 무리가 있는데, 이송오 씨는 럭크만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해 한국에서 퍼뜨리고 있다. KJV가 좋은 번역판 중의 하나이고 따라서 전반적으로 믿을 만하다는데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영감되었다든지, 유일무이한 번역판이라는 주장은 용납할 수 없다. 영감은 원본에만 해당되는 것이지 번역판에는 결코 해당이 되지 않는다. 10)

    그러면 과연 KJV는 절대무오한 번역판인가? 이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사본학과 본문 비평학 분야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전문적인 문제까지 언급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KJV나 한글 킹제임스성경에는 오역이 상당히 많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 중 몇 가지만 언급함으로 KJV 같은 번역판의 무오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만 말하고자 한다.

    ① 창세기 1:28

    한글 개역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 하여 땅에 충만하라"

    한글 킹제임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시 채우고"

    KJV: "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히브리어 원문: .... ("그리고 땅을 채우라")



    여기서 문제가 되는 히브리어 단어는 '말레'( )라는 단어인데, 브라운-드라이버-브릭스(Brown-Driver-Briggs)의 히브리어 사전에 의하면, 이 단어의 의미는 채우다(fill), 가득하다(be full)이다.11) 『구약 원어 신학 사전』(Theological Wordbook of the Old Testament)에서도 동일한 설명을 하고 있다.12) 그렇기 때문에 '말레'라는 단어는 "다시 채운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냥 "채운다"는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KJV는 분명한 오역이고, 한글 킹제임스는 KJV의 오역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채우다"와 "다시 채우다"의 차이는 무엇인가? 창세기 1:1과 1:2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갭 설'(Gap Theory)의 근거가 바로 KJV 번역에 입각한 창세기 1:28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왜 일부 사람들이 고집스럽게 "다시 채운다"는 번역을 고집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13) 갭설은 성경적 근거가 희박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극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만 지지를 받고 있다.

    ② 민수기 33:52

    한글 개역판: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파멸하며 산당을 다 훼파하며 "

    한글 킹제임스: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들의 모든 그림들을 파괴하고 모든 부어 만든 형상들을 다 파괴하며 산당들을 다 뽑아낼 것 이며"

    KJV: "Then ye shall drive out all the inhabitants of the land from before you, and destroy all their pictures, and destroy all their molten images, and quite pluck down all their high places"

    히브리 원문: ..... ("그리고 그 모든 석상들을 멸하며" )



    여기서 문제의 핵심이 되는 단어는 '마스키트'( )라는 단어이다. 브라운-드라이버-브릭스의 히브리어 사전에 의하면, 이 단어는 "show-piece, specifically carved figure of idolatrous symbols"(전시물, 특히 우상적 상징의 새긴 상), "figure"(상) "imagination, conceit"(상상) 등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14) 『구약 원어 신학 사전』에서도 '마스키트'의 의미를 동일한 맥락에서 설명하고 있다.15) 그렇기 때문에 민수기 33:52은 KJV나 한글 킹 제임스 같이 '그림'으로 번역해서는 안 되고 '새긴 상(像)' 또는 '석상(石像)'으로 번역해야 될 것이다. 히브리어를 아는 지 모르는 지 알 수는 없지만 원어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KJV의 번역을 맹신하는 럭크만(Peter Ruckman)은 사람들이 KJV의 '그림'이라는 번역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각종 그림이나 TV를 즐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16)

    ③ 사도행전 19:37

    한글 개역판: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잡아왔으니"

    한글 킹제임스: "이 사람들은 교회들의 물건을 훔치지도 않았고 너희의 여신을 모독하지도 아니하였는데 너희가 여기로 데려왔으니 "

    KJV: "For ye have brought hither these men, which are neither robbers of churches, nor yet blasphemers of your goddes"

    헬라어 원문: .... ("신전의 물 건을 훔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신을 모독하지도 아니 하였는데")



    여기서 문제의 촛점이 되는 헬라어 단어는 '히에로쉴루스'( )라는 단어의 의미이다. 이 단어는 KJV나 한글 킹제임스성경같이 "교회의 물건을 훔치는 자들"이 아니고 "헬라인의 신전의 물건을 훔치는 자들"을 의미한다. 바우어(Walter Bauer)의 헬라어 사전에 의하면, 이 단어는 분명히 "신전 물건을 훔치는 도둑"(temple robber)을 의미한다.17) 문맥적으로도 "교회 물건을 훔치는 자"로 번역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바울 사도가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기 때문에 에베소 지역에 기존 교회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KJV나 한글 킹제임스성경은 교회가 이미 존재하고 있은 것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KJV나 한글 킹제임스성경의 분명한 오역이다.

    ④ 로마서 1:18

    한글 개역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 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한글 킹 제임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가운데서 진리를 붙잡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거니와"

    KJV: "For the wrath of God is revealed from heaven against all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of men, who hold the truth in unrighteousness"

    헬라어 원문: ...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불경건과 불의에 대 하여")



    이 구절에 관해서 KJV 맹신자인 럭크만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경 66권 중 어디에서도 여기에서보다 성경에 대한 배교적인 왜곡이 더 명백하게 나타난 곳은 없다. 이 로마서 1장에는 배교자들의 모든 것이 나타나는데, 교수들과 진화론자들과 동성연애자들과 완고하고 거만한 자들과, 특히 하나님을 알았던 그 죄인들(21절)은 단지 하나님께서 "진리로써" 계시하셨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붙들되 배교자들처럼 불의 가운데서 붙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노하심에도 불구하고, 이 역본에 의하면 당신은 단지 "진리를 막지만" 않으면 배교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18)



    여기서 문제의 핵심이 되는 단어는 '카테코'( )인데, 이 단어가 여기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밝혀진다면 긴 논쟁은 불필요하게 될 것이다. '카테코'는 신약 성경에서 모두 19회 사용되고 있는데, '막다, 방해하다, 억누르다, (감옥에) 가두다, 붙잡다, 간직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19)

    '카테코'는 물론 KJV의 경우와 같이 '붙잡다'로 번역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막다, 억누르다'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로마서 1:18-32은 이방인의 죄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19절 이하에서 바울 사도가 말하는 바는 자연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에 관해서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하나님 대신 우상숭배를 함으로 각종 범죄에 빠진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18절에서 그 이방인들이 진리를 붙들고 있고, 그것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카테코'를 '막다, 억누르다'로 번역하면 19절 이하의 내용과 잘 부합된다. 둘째, 만약 '카테코'를 KJV같이 '붙잡다'로 번역하면, 이방인들은 불경건한 상태에서 진리는 간직하고 있으면서 행동은 불의하게 나타났으니 위선자라고 할 수 있는데,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 그들의 위선적인 죄에 관해서는 공격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막다, 억누르다'는 번역이 옳다. 셋째, 성경 어디에서도 이방인이 예수 없이도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가르치지 않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 없이도 이방인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되는데,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정면 배치(背馳)된다. 끝으로 주석가들이나 헬라어 사전 및 KJV 이외의 다른 번역판들은 모두 로마서 1:18을 '막다, 억누르다'로 번역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KJV의 '붙잡다'는 분명한 오역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다.

    ⑤ 빌립보서 1:13

    한글 개역판: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한글 킹제임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갇힘이 모든 궁전 안과 다른 모든 곳에도 알려졌음이라"

    KJV: "So that my bonds in Christ are manifest in all the palace, and in all other places"

    헬라어 원문: ...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다른 사람들에게")



    여기서 문제의 핵심이 되는 단어는 '프라이토리온'( )인데, 이 단어는 여기서 '황제의 시위대'를 의미한다. 물론 때로는 '프라이토리온'이 총독이나 왕의 관저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이 당시에 벌써 로마 황제의 궁전 전체에 복음이 증거되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황제의 궁전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셋집'에 살면서 착고에 매여 시위대의 감시를 받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행 28:30).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프라이토리온'을 '궁전'이라고 하는 것은 오역이다.

    본문의 의미를 좀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할 수만 있으면 여러 가지 번역판을 서로 대조해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만일 단 한 가지의 번역판만 가지고 있다면 어느 구절의 표현이 모호할 때 그 번역판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 가거나, 아니면 결론을 내리는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번역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들을 서로 대조해봄으로써 그 의미를 좀더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2) 성구 사전

    성구 사전(concordance)은 잘 모르는 성구를 찾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단어 연구를 하는데 있어서도 필수 불가결하다. 어느 주어진 단어가 특정한 문맥 내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가를 연구하려면 성구 사전을 이용해야 된다. 한글로 된 것 가운데는 『성구 대사전』(혜문사), 『최신판 성구 사전』(한국 성서 협회) 등이 있으나, 필자의 생각에는 두 권으로 된 『성구사전』(기독교 문화 협회)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원어와 영어를 아는 설교자들은 훨씬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구약의 경우에는 위그럼(George V. Wigram)의 The Englishman's Hebrew and Chaldee Concordance of the Old Testament (기독교 문화 협회에서 우리 말로 번역했음)가 이용하기에 용이하고, 조금 전문적인 것으로는 맨덜컨(Salomon Mandelkern)의 Concordance on the Bible이 있다. 신약의 경우는 모울턴과 기던(W. F. Moulton and A. S. Geden)의 A Concordance to the Greek Testament나 위그럼(George V. Wigram의 The Englishman's Greek Concordance of the New Testament(기독교 문화 협회에서 번역했음)가 좋을 것이다.



    (3) 주석

    설교자는 성경 각 권당 최소한 3-4권의 주석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다. 주석은 시리즈로 된 것을 구입할 수도 있고, 낱개로 된 것을 구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구약 주석 시리즈로 카일과 델리치의 주석(기독교 문화사)이 좋다. 이상근 박사의 구약 주석 시리즈도 좋은 주석이다. 신·구약을 다 포함하고 있는 주석 시리즈로는 『두란노 강해 주석』이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잘 다루고 있기 때문에 좋은 주석이다. 미국의 보수 신학자들이 저술하여 프랭크 게이블라인(Frank Gaebelein)이 편집한『엑스포지터스 성경 연구 주석』(기독 지혜사)도 좋고, 워드 주석(Word Biblical Commentary)도 전반적으로 좋은 주석이다. 『성경 주석 뉴 인터내셔널』(생명의 말씀사)도 추천할 만한 책이다(이 시리즈의 구약편은 현재 미국에서 계속 출간 중에 있음). 이상근 박사의 신약 주석이나 『알포드 신약 원어 주해』(기독교 문화사)도 좋은 주석이며, 주석은 아니지만 원어 연구에 도움이 되는 책으로는 라버트슨(A.T. Robertson)의 『신약 원어 해설』(요단 출판사)이 있다. 어느 한 저자의 주석이 아니고 여러 저자의 주석을 모자이크식으로 편집한 소위 종합 주석 가운데에는 『호크마 주석』이 비교적 좋은 것 같다.

    그 밖에도 주석은 많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가능하면 최근에 나온 것, 그리고 학문성과 보수성을 동시에 갖춘 저자의 주석을 우선적으로 구입하고 그 외의 것들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을 때 구입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4) 사전류

    사전류에는 원어 사전과 성서 사전의 두 종류가 있는데, 원어 사전 가운데 한글로 된 것 중에는 쓸 만한 것이 전무한 상태이다. 영어로 된 것 가운데는 발터 바우어(Walter Bauer)의 헬라어 사전(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과 브라운-드라이버-브릭스(Brown, Driver and Briggs)의 공편(共編)인 히브리어 사전(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with an Appendix Containing the Biblical Aramaic)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외에도 히브리어 사전으로는 루트비히 쾰러와 발터 바움가르트너(Ludwig Koehler and Walter Baumgartner)의 공편인 Lexicon in Veteris Testament Libros와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TDOT), Theological Wordbook of the Old Testament(TWOT) 등이 좋고, 헬라어 사전으로는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TDNT),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NIDNTT), J. P. 루와 유진 나이다(J. P. Louw and Eugene A. Nida) 의 공편인 Greek- 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Based on Semantic Domains, 호르스트 발쯔와 게르하르트 슈나이더(Horst Balz and Gerhard Schneider)의 공편인 Exeget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EDNT) 등이 좋은 사전이다. 이 가운데 TWOT는 『구약 원어 신학 사전』이란 제목으로, 단 권으로 된 TDNT(Ed., Gerhard Kittel)는『신약 성서 신학 사전』이란 제목으로 요단 출판사에서 번역되었는데, 적극 권장하고 싶은 책들이다.

    성서 사전으로는 『위클리프 성경 사전』(지평서원), 『성서 대백과』(기독지혜사), 『기독교 대백과 사전』(기독교문사) 등이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 하겠다. 영어로 된 것 가운데에는 Zondervan Pictorial Encyclopedia of the Bible(Ed., M. C. Tenney),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Ed., G. W. Bromiley), Encyclopedia of the Bible(Ed., Walter Elwell), Dictionary of Jesus and the Gospels(Eds., Joel B. Green, Scott McKnight and I. Howard Marshall), Dictionary of Paul and the Letters(Eds, Gerald F. Hawthorne, Ralph P. Martin and Daniel G. Reid) 등을 추천하고 싶다.



    (5) 기타

    위에 언급한 책들 외에 성서 배경에 관한 책들을 몇 권 갖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성서 고고학에 관한 저서도 한두 권 구비해야 하고, 성서 지리나 유대인들의 관습에 대한 책도 몇 권 갖추어야 할 것이다. 유태인의 관습에 관한 책으로는 롤랑 드 보(Roland de Vaux)의『구약 시대의 생활 풍속』(대한 기독교 출판사)과 프레드 와이트(Fred Wight)의 『성지 이스라엘의 관습과 예의』(보이스사), 윌리엄 콜만(William Coleman)의 『성경시대의 상황과 풍습』(서울서적)등이 추천할 만한 책이다. 최명덕 교수가 쓴 『유대인 이야기』(두란노) 도 유대인 관습 이해에 주요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 밖에도 다른 설교자의 설교집이나 강해집 같은 것도 구비해서 참고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남의 설교를 베낀다는 것과 참고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에 참고하는 것은 적극 권장할 만하다. 남의 설교집을 전혀 참고하지 않는 설교자는 사실상 거의 없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필자도 남의 설교집을 참고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만든 설교 아웃라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사용하기도 한다.



    B. 연구 방법

    강해 설교는 귀납적 성경 연구(Inductive Bible Study)에 근거하고 있다. 귀납적 성경 연구 자체가 강해 설교는 아니지만 강해 설교와 귀납적 성경 연구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귀납적 성경 연구에 의해 얻어진 결과가 곧 바로 강해 설교로 이어진다. 귀납적 성경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미국 달라스 신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하워드 헨드릭스 (Howard Hendricks)가 그 아들과 공저(共著)한 『삶을 변화시키는 성경 연구』(Living by the Book)와 로버트 트레이너(Robert Traina)의 『귀납적 성경 연구』(Methodical Bible Study)가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1) 관찰(Observation)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고 설교하기 위해서 관찰을 잘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마케도니아(Macedonia) 대왕 필립 2세(B.C. 382-336)에게 참으로 구하기 힘든 명마가 있다면서 말을 팔러 온 사람이 있었다. 눈으로 보기에도 무척 훌륭해 보이는 말이기에 왕은 수하에 있는 명장들에게 한 번 시승해 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타겠다고 자청한 백전 노장들이 하나같이 모두 실패하고 만다. 백전 노장도 제대로 다룰 수 없는 말이라면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 왕은 그 말을 돌려보내려고 하는데, 옆에 서 있는 어린 알렉산더 왕자가 "말을 다룰 줄도 모르고 대담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저렇게 훌륭한 명마를 알아보지 못하는구나"라고 중얼거린다. 처음 이 말을 들은 왕은 예사로 생각했는데 몇 번이나 거듭 한탄조로 말하는 아들의 말이 귀에 걸려서 왕이 한 마디 한다. "너는 저 말을 탈 수 있겠느냐?" "예." "천하의 명장들도 다 못타고 말았다. 만약 실패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말 값을 제가 물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한 번 타 보아라."

    알렉산더는 깨끗이 성공했고, 그 날부터 명마 부케팔루스(Bucephalus)는 알렉산더의 분신(分身)같이 알렉산더와 하나가 되어 천하를 질주하며 대공(大功)을 세운다. 부왕은 내노라 하는 명장들도 실패한 것을 어린 왕자가 성공한 것이 너무 대견스러워 "오, 내 아들아! 너는 너에게 알맞는, 그리고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왕국을 찾음이 좋겠다. 마케도니아는 너에게 너무 작기 때문이야"고 덕담 (德談)을 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면 알렉산더는 다른 사람들이 못타는 말을 어떻게 탈 수 있었을까? 그는 실패자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말이 지니고 있는 약점을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 말은 비록 천하의 명마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그림자 공포증과 고성(高聲) 공포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20)

    관찰의 힘은 그렇게 위대한 것이다. 그러면 설교자가 본문을 연구하기 위해서 주로 관찰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일까? 설교자가 반드시 관찰해야 될 대상은 크게 네 가지이다. 즉, 단어(Key Words), 문장의 구조(Structure), 문학 장르(Literary Form) 및 분위기(Atmosphere)이다. 21)

    첫째, 중요한 단어를 관찰해야 한다.

    본문에 나오는 단어나 표현 중 잘 이해가 안 되는 단어, 생소한 단어, 신학적으로 중요한 단어가 있으면 반드시 관찰하고 연구해야 한다.

    둘째, 문장의 구조를 관찰해야 한다.

    구조란 두 단어 이상이 모여 형성하는 상호간의 관계를 말한다. 설교자가 관찰해야 할 관계에는 문법적 관계(Grammatical Relationships)가 있다. 명사와 동사가 모이면 주어와 술어의 관계가 형성될 것이고, 형용사와 명사가 모이면 수식어와 피수식어의 관계가 형성된다. 단어가 여러 개 모이면 주어, 목적어, 술어의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설교자는 논리적 관계(Logical Relationships)도 관찰해야 한다. 한 문장과 다음 문장이 인과관계, 목적, 조건, 결과, 대조, 비교, 설명, 예증 등의 관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설교자는 이런 관계를 주의해서 본문을 읽고 연구해야 한다. 시간적 관계(Chronological Relationships)나 지리적 관계(Geographical Relationships)도 결코 경시하지 말아야 할 관계이다.

    셋째, 문학 장르로 관찰해야 한다.

    교훈 문학은 상당히 논리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논리의 흐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훈 문학은 압축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단어 연구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진다. 서사문학은 사건 전체가 무엇을 말하려는 지를 바로 파악해야 한다. 시가 문학은 수사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관한 배려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시란 절제된 감정을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기 때문에 시인의 감정을 바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넷째, 분위기를 관찰해야 한다.

    저자의 분위기가 슬픔의 분위기인지, 공포의 분위기인지, 외경의 분위기인지, 기쁨의 분위기인지 등을 관찰하는 것도 본문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면 설교자가 본문을 관찰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사실의 발견이다.

    설교자는 설교하기 전에 자신이 택한 본문을 샅샅이 연구해야 한다. 본문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가를 발견해야 하는 것은 물론, 본문에서 반드시 취급해야 될 중요한 부분을 간과(看過)하지는 않았는지 세심하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사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육하원칙 (六何原則), 즉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했는가 하는 원리를 적용하면 될 것이다.

    둘째는, 관찰에 있어서 사실의 발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영적 원리(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교훈 문학의 경우에는 원리가 본문에 이미 나타나 있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므로 원리를 찾기 위해서 크게 고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사문학에 이르게 되면 상황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서사문학에서는 때로 원리를 찾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본문을 우화적으로 해석해서 원리 아닌 원리를 가지고 적용해서 설교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본문의 내용을 다소 각색(脚色)하거나 윤색(潤色)해서 다시 들려주는 것으로 설교를 끝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서사문학을 바르게 설교하는 방법이 아니다. 서사문학을 우화화(寓話化)하지 않고 바르게 설교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은 『원리화』(principlization)이다. 원리화란 "서사문학에서 오늘날의 신자에게 적합성이 있는 영적, 도덕적, 또는 신학적 원리를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22) 대지를 만들 때에도 원리화의 과정을 통해서 나온 대지는 『설교적 대지』라고 하여 『석의적 대지』와는 사뭇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제3장 제5절을 참고할 것).

    서사문학의 경우에는 사건 자체만 나타나 있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는 설교할 만한 것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 사건에서 원리를 찾게 되면 설교할 내용은 굉장히 풍부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2:1-4을 중심으로 하면 어떤 원리가 가능하겠는가?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협동하면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된다", "힘을 합치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 등의 원리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마가복음 4:35-37에서는 어떤 원리가 가능할까? "주님과 동행해도 어려움은 있다", "영적으로 바로 서 있어도 역경은 있다" 등의 원리가 가능할 것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9년 4월호).






    장두만



    강서침례교회 담임목사,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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