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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문장으로 하라
    2024-06-18 07:25:50   read : 770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감동적인 설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설교자의 특권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영혼과 전 인격을 변화시키는 설교를 할 수 있다면 무엇을 바랄 것인가! 설교자들은 감동적이고 영적인 설교를 위해서 기도하며 항상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몇 번에 걸쳐서 그러한 설교를 함께 시도해 보고자 한다. 틀림없이 변화가 올 것이다.

    1. 뚜렷한 주제

    설교학 강의를 들으러 온 목사님들에게 묻는다. “지난주에 한 설교를 한 문장으로 말해 보시오.” 그러면 거의 대부분이 대답을 하지 못한다. 물론 별안간 들은 질문에 당황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을 주고 기다려도 준비가 안된 이는 그냥 우물우물하고 있을 뿐이다.

    기껏 한다는 게 이런 식이다. “‘사랑에 관해’ 했습니다.” “‘전도에 대해’ 말했습니다.” “‘기도에 관해’ 외쳤습니다.” “...에 관해”는 문장이 아니다. 문장을 완성해야만 한다. 그래야 내용도 거기 맞추어 만들어진다. 그렇게 되면 설교 전체는 확실한 통일성을 지닌다. 문장이 되지 않으면 내용이 불분명해 진다.

    칼빈 쿨리지는 미국 대통령이었다. 교회에서 돌아오자 부인이 물었다. “무슨 설교를 합디까?” 그는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죄에 대해서 하는 것 같던데...” 부인이 다시 물었다. “죄에 대해 뭐라고 합디까?” 더 오래 생각하다가 말했다. “설교자가 죄를 아주 싫어하는 것 같더라구.”

    설교가 한 문장으로 나오지 않는데 내용이 기억될 리 없다. “죄에 관해” 말했다면 듣는 이들도 “죄에 관해” 말했음만 기억한다. 설교자가 못 기억한 내용을 청중이 기억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러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설교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시루에 물이 다 빠져도 콩나물은 자란다고?

    설교가 기억되지 않는다면 신앙의 성장도 있을 수 없다. 그냥 가슴 뭉클한 종교심만 일으키려 설교해서는 안 된다. 영혼에 변화를 주지 못한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계심은 우리와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함이다. 그 말씀이 가슴에 남아 있음으로 하나님의 생명과 권능도 역시 그러하다.

    신학교 다닐 때 설교의 사표가 한 분 계셨다. 지금은 타계하신 김이태 목사이셨다. 그분 설교는 듣기도 좋았지만 내용이 오래 가슴에 남아있었다. 그분은 늘 충고했다. “설교 작성하기 전에 반드시 한 문장으로 써 놓으시오.” 이 한 문장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면 아직 설교 쓸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이다.

    이 한 문장이 확실해지면 설교의 대지들을 여기 맞추어 작성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모든 내용이 다 이 한 문장을 받치고 있는 것이다. 예화를 하건, 인용을 하건, 성경 구절을 주건 여하간에 이 한 문장을 설명하고 증명하고 기억시키기 위해서 전체의 내용들이 있다. 그러니 한 문장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 한 문장을 논지라고 한다. 주제, 아이디어는 논지의 이전 단계이다. 설교뿐 아니고 논문이나 글이나 강의나 반드시 논지가 있게 마련이다. 논지 없는 설교나 글은 방향 없이 흘러가게 마련이다. 시간이 흐르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설교나 글은 논지 하나를 전달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예수는 세상에 보내진 밝은 빛이시다.” 이 한 문장을 쓰고 설교의 내용을 작성한다고 치자. 그러면 예수가 세상의 빛인 이유를 열심히 설명하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서 나온 요지들은 다음과 같다.

    제목: 예수는 세상의 빛
    본문: 요 1:1-10

    논지: 예수는 세상에 보내진 밝은 빛이다.

    요지: 1. 어둠의 빛 되신 예수
    1) 예수는 생명의 빛이다.
    2) 예수는 계시의 빛이다.
    3) 예수는 자연의 빛이다.

    2. 참 빛과 빛의 증거자

    3. 세상의 빛
    1) 예수는 세상에 오신 참 빛이시다
    2) 그는 복음으로 세상을 비추신다.
    3) 그는 우리 심령에 빛을 주신다.

    이 요지는 학생이 작성한 것이다. 이 정도만 되도 통일성이 있다. 하지만 전체 내용은 “예수는 세상에 보내진 밝은 빛이다”는 논지를 설명하고 증명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논지와 직접 연관이 되지 않는 내용은 도입부분이나 설교 도중에 잠간 첨부할 수는 있지만 뼈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글의 끝부분에 고친 예를 하나 더 실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논지와 요지가 통일성이 있다 해도 여기 던져질 질문이 있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예수가 세상의 빛이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물론 논지의 내용을 복음적으로 하는 것과 그것을 삶에 적용시키는 과정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순서상 그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조금만 맛을 보자.

    내용이 논지를 제법 잘 증거한다 해도 그것을 삶에 적용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이 문장을 조금 손질해 보자. “예수는 세상에 보내진 빛이기에 영접한 사람은 그 빛을 소유하게 된다.” 논지를 복음적으로 고침으로 이 문장은 신자들의 삶과 연결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전체 요지도 다시 구성해 보자. 약간의 손질로 설교의 내용은 한 문장으로 연결되며 확실하게 부각이 될 것이다. 설교의 논리 진행을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것이 제대로 안되면 시작부터 헤매게 마련이요 듣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다.

    제목과 본문: 예수는 세상의 빛

    논지: 예수는 세상에 보내진 빛이기에 영접한 사람은 그 빛을 소유한다.

    1. 예수는 생명의 빛이기에 영접한 사람은 생명을 얻었다.
    2. 예수는 계시의 빛이기에 영접한 사람은 계시를 얻었다.
    3. 예수는 자연의 빛이기에 영접한 사람은 세상을 비칠 수 있다.

    2. 논지의 훈련

    더 나가기 전에 논지 훈련을 좀 더 해보자. 논지는 논문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어떤 글이건 설교건 반드시 논지가 필요하다. 그 훈련을 위해 필자의 <논문작성 이렇게 해라> (시대의 창)를 참조하기 바란다. 하나의 훌륭한 논지 만들기가 설교작성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그 논지를 증명하는 것이 설교의 전체 내용이다. 그러므로 논지와 증명하는 내용은 밀접하게 연결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서 “석탄은 날이 갈수록 덜 사용된다”는 논지를 세웠다 치자. 그 논지를 증명하는 요지를 보자.

    논지: 석탄은 날이 갈수록 덜 사용된다.
    1) 가정에서 기름을 때는 집이 많아졌다.
    2) 기관차도 더 이상 석탄을 쓰지 않는다.
    3) 공장에서도 석탄 때는 곳이 없어져 간다.
    결론: 고로 석탄은 날이 갈수록 덜 사용되는 게 분명하다.

    이것이 논리의 진행 방법이다. 논지에 관한 이러한 증명을 설교에 적용해 보자. 예를 들어, “새벽기도는 영적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는 논지를 증명해 보자. 물론 더 좋고 다채로운 논지와 요지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논지: 새벽기도는 영적생활에 큰 도움이다.
    1) 첫 시간에 하나님과 대화한다.
    2) 첫 시간에 말씀을 듣는다.
    3) 첫 시간에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
    결론: 고로 새벽기도는 영적생활에 큰 힘을 준다.

    이런 식으로 논지를 쓰고 요지를 써 나간다면 절대로 설교가 옆으로 흐르거나 통일성을 잃지 않는다. 이 훈련을 열심히 해야 한다. 논지의 요소들을 먼저 살펴보자. 논지는 그냥 쓰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간단해도 논리 훈련이 안 된 사람은 쉽게 만들 수 없다. 논지가 좋으면 내용도 좋아진다.

    예를 들어서 “남자는 여자보다 완력이 세다”는 논지가 있다고 치자. 이것은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이야기를 시간 허비하며 들을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좋은 논지가 아니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보다 힘 세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고 하면 훨씬 재미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들으려는 사람이 생긴다.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논지는 진리 중에 진리이다. 하지만 예수 수십 년 믿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들을만한 말은 아니다. 너무 뻔한 말이다. 그런 설교가 얼마나 많은가! 전체를 대표하는 한 문장이 너무 뻔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이다. 그러니 논지를 쓴 뒤에 물어보라. 너무 뻔한 소리 아닌가?

    예수 믿는 게 무엇인지, 예수 믿어 구원 받는 게 무엇인지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남들이 말하는 것보다 한 걸음만 더 들어간다면 달라진다. “예수가 내 죄 짊어진 것을 믿으면 죄로부터 오는 저주에서 구원받는다.” “예수의 생명을 의지하면 영원히 산다.” 평범한 앞의 논지를 조금만 더 설명하라.

    첫째로, 논지는 범위가 분명하고 명확해야 한다. 너무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으면 무엇을 주장하는지 모르게 된다. 그리고 논지가 애매하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다. 설교의 논지는 마음을 꿰뚫는 선명한 것이어야 한다. 설교자는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가?”에 확실한 대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논지는 그 스스로 퍼져 나갈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확장되거나 발전하거나 밝혀나갈 내용적 요소가 있어야 하겠다. 스스로 질문하라. 이게 무슨 소리인가? 꼭 말해야 할 내용인가? 그리고 진실인가? 이러한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이 나온다면 이 논지는 스스로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셋째로 설교 논지는 반드시 인간의 삶과 연관되어야 한다. 인간이 경험하는 심각한 문제들에 해답을 주는 것이다. 삶과 죽음, 용기와 두려움, 고통, 외로움, 약함, 병, 기쁨, 후회, 사랑, 희망 등등이다. 이 설교를 듣으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이 논지가 나의 삶과 무슨 상관있는가?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논지가 복음의 한 면을 말해야 한다. 반드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해 주신 일이다. 그래서 신자가 어떤 존재로 변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교훈이 된다. 그런 설교는 전혀 영적 힘을 줄 수 없다.

    성경적으로 교회사적으로 영혼이 변화하려면 반드시 복음이 들려졌다. 어떤 사람이 복음을 듣지 않고도 자기 잘못을 뉘우칠 수 있다. 악한 습관을 버리고 선한 행동의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신앙적 변화는 좀 더 근본적인 것이다. 죽었던 영혼이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한다.

    이점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부족하지만 다음 기회에 복음적 논지에 대해 공부하기로 하자. 여기서는 단지 논지는 반드시 복음의 한 면을 설명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그치자. 하나님의 복음이 아니면 율법이거나 그냥 일반 도덕이다. 또 많은 경우에 그저 자기의 생각으로 그치는 경우도 많다.

    논지를 쓴 다음 질문을 던져 보라.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그 대답으로 이 논지가 어떤 영적 변화를 주고 권능을 준다면 훌륭한 논지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 논지가 신자의 삶에 아니 말하는 사람의 삶에조차 아무런 힘도 변화도 도움도 주지 못한다면 논지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3. 제목과 논지

    제목은 언제나 약속을 주고 있다. 제목에 대해 확실하게 말해 주겠다는 약속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피”라는 제목이 있다 치자. 이 제목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피가 주는 유익을 설명할 것이다. 다른 이야기는 설교에서 나올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논지도 여기에 맞추어 작성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제목은 언제나 질문을 내포한다. “그리스도의 피”라는 제목은 어떤 질문을 일으키는가? “그리스도의 피가 무엇인가?” 또는 “그리스도의 피의 유익이 무엇인가?”등이다. 이 질문에 답해 보라. 그러면 분명한 논지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제목과 논지를 언제나 확실하게 연결시켜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설교 제목만 보면 논지가 떠오르고 결국 전체 내용이 다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제목과 논지가 내용상 다르면 혼란이 온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피”라는 제목을 잡고 나서 논지는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의지하자”는 식으로 해보자. 연관이 잘 되는 것 같지만 바른 논리 진행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확실한 표다”가 훨씬 제목과 논지가 연관되고 기억되는 복음적 논지이다. 즉 “그리스도의 피”에 내포된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누가 “그리스도의 피”란 제목을 보고 “그리스도의 피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식의 질문을 던질 것인가? 자연스런 진행을 따라야 한다.

    제목을 문장형으로 쓰는 분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 것을 도적질하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부모를 공경하라.” “미스바로 가자.” 이런 식의 제목은 청중의 흥미를 잃게 한다. 이미 내용을 다 들은 셈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장형의 제목은 조심해야 한다.

    제목은 여운을 남기며 호감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청중이 기대하면서 설교를 듣는다. 또한 설교를 듣고 나면 그 제목에 이해가 한 문장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확실하게 기억되는 설교가 될 것이다. 또한 설교 자체가 통일성이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듣는다. 조금만 연습을 하면 된다.

    그러면 이제 제목과 논지의 예를 몇 개 들어 보자. 이 예들을 보면서 제목과 논지를 확실하게 잡는 훈련을 하면 좋겠다.

    1. 사 30:45 “아침을 기다리는 사람들”
    논지: 이 땅에서 좋은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더 크고 영원한 아침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그리해야 한다.

    2. 갈 2:20 “두 개의 위대한 생애”
    논지: 두 위대한 생애는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다. 하나님 아들의 몸으로 내 저주스런 삶을 대신 살았던 생애와 내 몸을 통해 살아지는 하나님 아들의 생애이다.

    3. 마 27:11-14 “침묵”
    논지: 그리스도가 사람들의 송사에 침묵함은 우리 대신 행악자가 되심을 인정함이다.

    4. 단 1:8-16 “왕의 진미”
    논지: 세상 왕의 진미가 육체를 윤택하게 하듯 하늘 왕의 진미는 영혼과 육신 전체에 생명을 준다.

    5. 창 37:5-11 “위대한 꿈” (참조 행 2:17)
    논지: 위대한 꿈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반드시 주어졌다.
    이 꿈을 찾아서 유지하면
    1) 언제나 아름다운 꿈을 꾼다.
    2) 역경에서 좌절하지 않는다.
    3) 유혹에서도 넘어지지 않는다.
    4) 다른 사람에게도 꿈을 나누고 해석해준다.
    5)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신다.

    6. 요 19:28-30 “다 이루었다”
    논지: 십자가의 이 말씀은 우리 구원이 완성되었음을 선포한다.
    1) 구원에 대한 예언이 다 이루었다.
    2) 형벌의 지불을 다 이루었다.
    3) 의와 능력의 수여가 다 이루었다.
    4) 장래 문제해결까지 다 이루었다.

    7. 롬 3:23-26 “그리스도의 피”
    논지: 그리스도가 흘린 피는 구원의 확실한 증거이다.
    1) 내게 주어진 죄용서의 표이다.
    2) 하나님과 화목 되었다는 표이다.
    3) 내게 주어진 생명의 표이다.
    4) 내게 주어진 능력의 표이다.

    8. 요 15:5 “불멸의 지체”
    논지: 불멸의 지체는 그리스도와 한몸된 나와 교회이다.
    1) 그리스도가 돌보신다.
    2) 그리스도의 경험이 나의 경험이다.
    3)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다.
    4) 그리스도처럼 절대로 망하지 않고 불멸한다.


    학생의 설교요지
    제목: 끊임없는 전진 (빌 3:10-16)
    논지: 중단한 전진은 전진이 아니다. 계속 전진을 위해 다음이 필요하다.
    1. 경주자에게는 계속적인 속력이 필요하다.
    2. 경주자에게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3. 경주자에게는 지구력이 필요하다.
    4. 경주자에게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고친 설교요지
    제목: 끊임없는 전진
    논지: 끊임없는 전진은 주가 내안에 계심을 믿을 때 가능하다.
    1. 주께서 내 안에 계시니 계속적인 속력을 내라
    2. 주께서 내 안에 계시니 주께서 의지를 돕는다.
    3. 주께서 내 안에 계시니 지구력을 도우신다.
    4. 주께서 내 안에 계시니 인내심을 발휘하라.

    앞의 요지와 고친 요지 사이의 차이점은 그리스도를 의지한다는 믿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리스도가 하신 일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더 발전시켜야 할 요지이다.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하신 일이다. 이것이 찬송의 내용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하나의 복음적인 설교 주제가 스스로 힘을 내 뻗어나갈 수 있도록 확실한 한 문장의 논지 작성을 시도했다.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지만 이처럼 중요한 과정도 없다. 논지는 꼭 말해야 할 내용을 한 문장으로 줄인 것이다. 그것이 청중의 가슴에 뜨겁게 살아있다면 설교는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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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홍 설교학
    설교의 교정
    설교의 수정(1)
    22. 지도력과 설교
    21. 설교자의 이미지
    20. 설교자의 확신
    19. 설교계획
    18. 예화
    17. 시작과 마침
    16. 귀납법적 설교
    15. 사다리모양 설교
    14, 전통적 대지설교
    13. 원리 증명 적용
    12. 대조적 주제설교
    11. 설교 형태
    10. 주제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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