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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길을 던진 청교도의 설교 /정장복 총장의 설교 코멘트
    2015-12-16 14:01:34   read : 3002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1.한국교회 초기의 설교

    1) 선교사들의 설교

    기록에 의하면 1800년대 말에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한 선교사들은 대부분 미국의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학교 출신들이었다. 19세기 말 당시 주로 미국의 복음적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신학교들은 신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성들이 있었다.

    즉, 19세기에 등장한 성경 비평연구 방법에 대해 비판적 입장, 축자영감설에 가까운 문자적 성경 해석 주장, 정치와 종교의 철저한 분리, 그리고 경건주의의 추구 등이다.

    이러한 신학적 훈련을 받은 청교도 형의 선교사들은 보수적∙탈정치적∙성경 중심적이었으며,복음적 신앙을 강조하였다. 특별히 그들은 개인의 회심과 구원의 내적 확신 등을 강조하였고, 성도들의 신앙과 윤리를 중요한 설교 주제로 다루었다.

    먼저, 선교사들의 설교관을 보면 설교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고, 그 말씀을 바로 해석해야 된다고 강조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얻는 복된 방법이 오직 설교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그 외에 논문이나 심방, 성례전 등은 복음을 증거하는 보조적인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청교도적인 보수적 신앙관을 가지고 설교를 한 그들의 설교의 내용과 주제를 살펴보면,
    첫째로 그들은 설교에 있어서 성도들의 신앙과 윤리를 중요한 주제로 하여 가르치고 선포했다.

    특별히 그들은 믿음에 대하여 많은 강조를 했는데, 이는 선교사들이 순수한 복음 전파를 목표로 한 복음주의자들이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한국교회 실천신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곽안련 선교사는 그의 설교에서 구한말에 나라가 넘어지고 고난받는 한민족은 어떤 다른 메시지보다는 순수한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야 한다고 설교하였다.

    또 선교사들은 성도들의 삶의 변화를 촉구하는 내용을 설교의 주요 주제로 삼았다. 그들은 철저한 회개를 바탕으로 엄격한 윤리적인 삶을 설교에서 강조했는데, 이는 청교도적인 경건한 삶을 생활화하고 있던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설교의 주제였다.

    유명한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는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이라 그의 설교에서 “만일 우리가 오래 전부터 행하던 악한 풍습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가지고 있어 자기의 임의대로 할 것 같으면, 그리스도와 같이 죽었다고 할 수 없다”라고 설교함으로써 마약과 투전, 축첩 등에 찌들어 있던 한민족을 경계했다 .

    더 나아가서 선교사들은 종말과 경성된 삶에 대해서도 많은 강조를 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마음 문을 열고 깨끗하게 예비하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되, 정욕을 떠나 일절 악한 것을 버려야 한다고 설교하였다. 오톡스는 ‘하나님을 만날 준비’라는 설교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날마다 준비하기에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여기서 종합적으로 주목할 것은 선교사들이 이렇게 믿음을 강조하고, 청교도적인 경건한 삶을 강조하는 것이 하나의 전제 조건, 즉 내세의 영생을 얻기 위해 금세에서의 고통을 믿음으로 참고 이겨야 하며, 철저한 회개와 더불어 경건한 생활이 필수적이다라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장은 일제의 침략 하에서도 신앙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다는 점에서는 크게 평가받을 만하나, 한편으로는 고난 당하는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피안에 대한 소망을 말하는 신앙의 이분법적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둘째로 선교사들의 설교 내용에는 교리에 대한 주제가 많다는 점이 그 특징이다.

    즉, 선교사들은 교리 설교를 많이 하였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대속주로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리고 지금도 성도와 동행하시는 구주로서의 예수님 이해’라는 설교에서 기독론에 대한 설교를 했으며,
    게일 선교사는 ‘독일무이하신 하나님의 도로서의 성경 이해’라는 설교에서 성경론에 대해서 설교한다. 이 외에도 선교사들은 동정녀 탄생, 부활, 재림 등의 핵심적인 교리들에 대해서 빈번하게 설교하였다.

    셋째로 선교사들은 비록 정치적인 설교를 하지 않았지만, 나라를 잃어버린 한민족에게 애국 사상을 고취시키는 설교를 하기도 하였다.

    장로교 선교사였던 마포삼열은 한민족의 장래와 축복은 정치나 군사적 시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무장,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고 설교하였다.

    이 메시지는 나라를 잃어 방황과 좌절과 낙심 중에 있던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설교였다. 그는 한국이 살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이런 식의 설교를 통해서 한국의 자유와 독립 사상을 일깨우는 소중한 사역을 감당하였다.

    이렇게 선교사들은 비록 정치적인 일선에 제일 앞장서서 정치적인 설교를 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그들의 선교 초기부터 복음적인 입장에서 나라 사랑과 독립 사상을 은근히 고취하는 설교를 하였다.

    마지막으로 선교사들의 설교 형식을 보면, 그들은 주로 성경 본문에 얽매이지 않는 제목 설교를 하였다. 이 제목 설교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방법이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은 거의 모두가 이 방법을 선호하였다.

    이들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설교 본문을 1~2절에 국한시키는 한편, 본문의 성구 가운데 한 단어 또는 한 구나 절에 설교의 초점을 맞추고 전개해 나갔다.
    에드만 선교사는 ‘신자의 생활과 상관된 대문제(요6:68~69)라는 설교에서 ‘우리가 뉘게 가오리까?’라는 본문에 착안하여, 설교를 3개의 대지로 나누어 전개한다.

    “첫째, 예수님이 아니면 교육 쪽으로 향할까?
    둘째, 예수님 아니면 과학 방면으로 향할까?
    셋째, 사회주의 방면으로 거하겠는가?”라는 식으로 전했다.

    선교사들은 특별히 설교에서 예화를 많이 사용하였다. 그들은 설교에서 예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평양신학교의 교지였던 ‘신학지남’에는 창간호부터 ‘강도에 인용할 만한 비유’, ‘강도에 사용할 비사’라는 고정란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이를 적극적으로 권장하였다.

    이렇게 한국교회 설교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온 선교사들의 설교에 그들의 신학적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보수적 복음주의로 특징지어지는 선교사들의 신학은 신학의 빈곤, 교회론의 약화, 사회 부재의 영혼 구제, 정치 무관의 정교 분리주의, 합리성의 결여, 그리고 이원론적 신앙이라는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설교는 초기 한국교회의 설교 사역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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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의 권위는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권위를 권위주의로 착각한다. 어떤 이들은 권위를 영향력, 통제력, 힘으로 이해하고 설교단에서 행해지는 설교를 통해 회중을 통제하려고 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권위를 가지고 설교하는 것과 회중 위에 군림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설교자는 권위를 가지고 설교하며, 단순한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여기서 설교자의 권위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부여되는 권위이다.

    설교자가 설교할 때 권위가 있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설교자가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에 권위가 있다.

    둘째, 하나님의 임재 약속을 실행하는 성례전과 말씀을 선포하는 예배 안에서의 위치 때문에 설교자는 권위를 가진다.

    셋째, 설교자가 단순히 성경 해석자가 아니라 현 시대 삶의 딜레마와 혼란에 대한 주석자이며, 세계의 구조와 하나님의 지혜 속에서 이들의 관련성을 보며 이들의 진행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권위를 가진다.

    넷째, 설교자는 영적 지도자로서 영적 삶의 고결함 때문에 권위를 가진다.

    그러면 설교단에서의 설교자는 어떻게 권위를 가질 수 있는가? 첫째, 설교자의 권위는 신앙인으로서 말씀을 선포함에 있다. 설교에 있어서 ‘나는 그 말씀이 진실임을 안다. 그 말씀이 나의 삶에서 일어났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소유한 권위는 탁월하다. 진실하게 믿는 설교자는 그가 믿는 것에 대하여 정열적이게 된다.

    사도적 설교의 힘은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선포한다’는 이 원리에 기초한다. 사도들의 열정적인 삶을 믿는 자로서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형성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았고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들이 있었다. 이렇게 신앙적 경험을 소유한 설교는 열정적이며 권위적인 설교가 된다. 또한 승천하신 구세주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발전되고 부활의 삶을 확신하게 한다.

    둘째, 설교자의 권위는 하나님 말씀의 전령자로서 선포함에 있다. 설교자의 권위는 설교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안에 있다. 설교자는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말하는 하나님의 전령자이다.

    이 전령자로서 말씀 선포의 임무는 신적인 부름을 받은 설교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설교자는 단순한 지원자가 아니며, 하나님에 의해 보냄을 받는다. 하나님이 전령자로서 설교자를 보냈기에 설교자는 그 메시지 그대로 전해야 한다.

    그래서 설교자들은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십니다’라는 말을 한다. 심지어 사도들은 보냄을 받은 자로서 이 세상에서 주님을 신실하게 대표해야 하며, 하나님의 전령으로 설교자는 권위를 가지고 선포해야 한다.

    셋째, 설교자의 권위는 성인으로서 선포함에 있다. 한 설교자의 삶이 그리스도를 점점 닮아간다면 그 설교자의 말씀 선포의 권위 또한 상승된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삶을 자신의 삶에서 형성시킨 설교자의 권위와 능력은 감탄할 만하다.

    설교자의 권위는 자신이 설교한 것을 실천하고나 노력할 때 주어진다. 설교자가 더욱 더 친밀하게 그리스도를 알고자 노력한다면 그는 권위를 가지고 더욱 힘있게 그리스도를 설교할 수 있다. 권위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설교자의 삶에 머물 때 형성된다.

    넷째, 설교자의 권위는 능숙한 예술가로서 말씀을 선포하는 데 있다. 설교는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예술이다. 설교자는 말씀의 주석에서부터 해석까지 하나님의 백성에게 설교하는 데 능숙해야 한다.

    다섯째, 설교자의 권위는 전문가로서 말씀을 선포하는데 있다. 만약 한 사람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전문가라면 그는 이 분야에 있어서 권위를 가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설교자가 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그것에 숙달되어 있으며 성경에 권위자가 된다면 그 때 이 설교자는 설교를 열정적이고 대담하게 선포할 수 있다.

    설교자는 성경의 사람이며 성경의 권위를 가져야 한다. 그는 성경의 내용을 이해하고 진리를 변호하며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설교자는 성경에 대한 전문가이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의 감독자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라는 문제를 연구해야 한다. 또한 설교자는 성경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그의 사역과 관련된 문학 등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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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설교자들은 소명을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신학교를 찾아 온 지망생들에게 소명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 모두가 자신이 소명을 받았다고 대답한다. 유의할 것은 소명이란 일시적인 감정에 의한 욕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과 소망은 별개의 주제다. 진정한 설교자는 한 인간의 욕구보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하여 세워진다. 이 소명이 분명한 사람마다 그들의 행보는 빨랐고 흔들림이 없었다.

    한국의 초기 선교사들은 한국교회의 설교자들을 배출하면서 소명에 대하여 각별한 교육을 시킨 바 있다. 그 대표적인 기록은 한국교회의 목사들이 기초적으로 알아야 할 제반 사항을 열거했던 목사지법(牧師之法, 1920) 가운데 “상제의 명심”에서 소명에 대한 철저한 다짐을 펼치고 있다.

    첫째, 목사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든지, 받았으면 어떻게 그 소명을 입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둘째, 소명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어떤 시험이나 위험이나 곤란에 직면해도 소명을 따르는 일념만이 있을 뿐이다.

    셋째, 소명은 하나님의 전권이기에 인간이 논할 성질의 것이 아니며 참된 소명은 단순히 인간에 의한 감동의 단계를 넘어, 성령님의 직접적인 역사 아래서 이루어진다. 넷째, 소명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공사(公使), 청지기, 종이라 칭하게 되고 자신을 택하여 세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말씀만을 전하여야 한다.

    설교자가 되기 전에 설교자로서 나서려는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짐할 필요가 있다. 불확실한 소명 의식은 언제나 위태롭기 때문이다. 확고한 소명 의식이 없는 설교자는 확고한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없다.

    특별히 현대라는 시대에 설교의 사역을 감당하게 되는 설교자들은 그 자신들이 어떤 존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우선적으로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미 연합장로교의 예배 모범>에 있는 대로 설교자란 자신의 생활과 목회에서 구별된 삶의 요소를 가지고 활동해야 한다. 주님은 구별된 은사를 말씀의 종들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 기능뿐만 아니라, 소유자의 전인격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며 그들의 생활과 생각과는 다른 차원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여기서 설교자가 부름받은 인간으로서 자신을 다짐하는 것은 설교자의 중요한 요소다. 즉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기 위해 이 땅에 보냄을 받았고, 이 길만이 평생동안 설교자가 걸어야 할 외길임을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바로 이러한 투철한 소명 의식 때문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바르게 외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 생에 전체를 바칠 수 있었다.

    설교자는 부름받은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하나 더 제기돼야 할 문제는 설교자가 그 부름을 ‘어떻게 받게 되었느냐’는 질문이다. 그 시기에 관하여 레슬리 타자드(Leslis Tizard)의 말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소명이란 어떤 극적인 순간에 올 수 있고 오랜 시간을 거쳐서 점진적으로 올 수도 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소명이 언제, 어떻게 왔다고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밝힐 수 있는 설교자는 많지 않다.

    그러나 설교자가 되는 것만이 나아가야 할 자신의 길임을 점진적으로 확신하게 되며 다른 길은 없다고 느끼게 될 수 있다. 마틴 루터도 수년후에 인간이 늙고 눈이 어두운 말을 끌고 간 것처럼 하나님이 자신을 이끌어 가셨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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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길을 던진 청교도의 설교

    정장복 총장(한일장신대학교)

    청교도란 1559~1567년까지 영국에서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교회가 깨끗하게 되기를 추구하며 교회 생활을 한 사람들을 말한다. 당시의 설교자들은 참된 교회를 이루겠다는 신념을 자신들이 전하는 설교의 중심에 놓고 이를 표현하려고 애썼다.

    엘리자베스 1세의 치세기간에 옥스퍼드대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철저한 개혁의 추구는 칼뱅의 신학에 의한 경건과 말씀의 추구를 신앙 운동으로 연결시켰다. 이들은 로마 가톨릭상을 고집하면서 하나님의 은총과의 계속적인 연접만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이 말씀의 증거에 열정을 쏟게 되었다. 이러한 경건과 말씀 중심의 신앙은 바로 영국의 퓨리탄 문학과 복음주의 운동의 길을 터놓는 공헌을 했다.

    설교 사역에 불길을 던졌던 또 하나의 사건은 1611년 영국 제임스 왕의 후원 아래 흠정역(King James Version) 성경의 출판이었다. 이 성경이 나오자 영어권의 모든 교회는 그 말씀을 뜨거운 감격 속에 읽지 않을 수 없었으며, 목사는 회중에게 그 말씀의 심오한 뜻을 밝혀 찾아오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에 많은 설교자들은 더욱 깊은 연구를 계속하게 되었고 말씀 속에서 새롭게 발견된 진리를 설교단을 통하여 전달하기에 바빴다. 이 때부터 성경을 읽는 무리들이 급증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생의 새로운 개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도덕과 신앙의 보다 나은 향상에 깊은 관심을 두는 교회 형성을 촉진시켰다. 이러한 결과는 영국 사회의 여러 분야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존 밀턴과 존 번연 같은 위대한 퓨리탄 문학의 기수들을 산출하여 말씀의 생활화를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청교도 설교는 케임브리지에서 윌리엄 퍼킨스, 폴 베인스, 리차드 십스, 존 코튼, 존 프레스톤, 토마스 구드윈에 의해 16세기와 17세기의 전환점에 창조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찰스 스펄전, 존 라일, 알렉산더 화이트에 의해 19세기 말까지 이어졌고, 20세기에는 오직 마틴 로이드 존슨 목사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주로 17세기에 영향을 끼친 청교도 설교는 그 이후 영국에서는 차츰 감소했으나 미국에서는 계속되고 있다.

    영국 땅에서 이러한 개혁의 바람을 17세기 후반까지 거세게 일게 했던 퓨리탄 설교자들로서 설교의 역사에 기록해 두어야 할 인물로는 두 설교자를 들 수 있다.

    먼저 당시의 정치적 분열과 교회의 갈등에서 빚어진 혼돈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외쳤던 리처드 박스터이다. 그리고 ‘천로역정’의 저자로서 청교도의 신앙의 첩경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권력의 지배층을 향한 예언자적 설교 때문에 설교의 금지령을 받기도 하고 감옥 생활도 감수해야 했던 17세기 말의 존 번연이다.

    그 외에 우리가 좀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아야 할 사람은 찰스 스펄전이다. 그는 16세에 회심하여 22세에 설교자가 된 후 죽을 때까지 일을 계속하였다. 스펄전은 교리상으로는 침례파였지만 영적인 면과 설교 스타일에 있어서는 청교도적이었다.

    그의 음성은 독특한 매력과 음색을 지녔다. 또한 그의 설교는 직접적이고 개인적이었는데, 그의 설교는 속기로 기록, 인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배부되었다. 영감에 의한 명백한 그의 신념과 성경은 완전하여 무흠하다는 확신은 그에게 놀라운 능력을 주었고, 그래서 같은 시대의 다른 설교자들을 능가하는 많은 영향을 주었다.

    청교도의 설교 사상은 네 가지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첫째는 지성의 탁월함에 대한 신념이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설교자가 그 말씀을 설명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된 으뜸가는 의무이다.

    둘째는 설교의 절대적 중요성에 대한 신념이다. 청교도들에게 있어 설교는 공적 예배의 정점이며, 더욱이 설교는 교회에 있어 은혜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설교는 매우 엄숙하고 중대한 사역이다. 목회자와 회중에게 주일 설교는 그 주간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건이다.

    셋째는 성경의 생명을 주는 능력에 대한 신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창조주 자신에 대한 기록된 증거이기 때문에 성경은 영혼의 음식이다. 청교도들은 이를 인정하였고, 그러므로 설교자는 성경의 내용으로 회중을 먹여야 함을 주장한다.
    목자로서의 설교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생명을 주는 진리들로 설교하여 자기 성도들을 양육하는 데 주된 관심을 두는 사람이어야 한다.

    넷째로 성령님의 주권에 대한 신념이다. 청교도들은 설교의 궁극적인 효과는 사람의 능력 밖에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직무는 단순히 말씀을 가르치는 데 충성하는 일이다. 이 진리를 확신시키고 마음에 새기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청교도들은 ‘결단’을 감언이설로 꾀는 현대 복음 전도의 호소를 인간이 성령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잘못된 시도라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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