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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삽시다
2002-11-21 12:34:40   read : 65536

2002. 10. 27 // 고린도전서 7:8-15

계절이 바뀌듯이 세상 풍조도 바뀌고 사람들의 의상도 바뀌고 언어도 바뀝니다. 20년 전에 사용했던 언어들이 사라지고, 그때는 생각도 못 했던 언어들이 자꾸 생겨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도 바뀌고 식생활도 바뀌고 부부 생활의 패턴도 바뀌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뀌는 것 때문에 세상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가정이 흔들리고 기업이 흔들리고 나라가 흔들리는 것은 세상 풍조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점일획도 변함 없이 든든히 서 있습니다.
세상 풍조를 따라가면 우리의 인생이 흔들립니다. 부부 생활도 흔들리고 우리의 삶도 흔들립니다. 하지만 말씀에 주목하고 말씀을 따라 살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목회를 하시는 많은 분들이 “세상이 바뀌니 교회도 바뀌어야 한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는데 교회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일리 있는 말씀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따라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세상을 따라 갑니까? 세상에 무엇이 있다고 교회가 세상을 따라 간단 말입니까? 교회가 어떻게 대학 교수의 가르침을 따라 갑니까? 교회가 어떻게 정치 지도자의 철학을 따라 갑니까? 교회가 어떻게 과학자의 학설을 따라 갑니까? 교회가 어떻게 디자이너의 의상을 따라 갑니까?
세상에 별 사람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따라야 되고, 세상이 교회에 맞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부부 생활, 가정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이 가르치는 대로 살려고 야단인데, 세상에는 가정의 전문가가 없습니다. 가정에 대해 책을 제일 많이 쓰고 여기저기에 다니면서 ‘가정은 이래야 된다.’라고 강의한 사람이 이혼했습니다. 그는 혼자 외롭게 살고 있고, 그의 남편은 미국에서 다른 여자와 살고 있습니다.
가정의 전문가는 오직 한 분, 가정을 지으신 하나님뿐이십니다.
가정 생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흔들리지 않는 가정이 됩니다.
달빛도 별빛도 전혀 없는 칠흑 같은 밤에, 전함 한 대가 전진하다가 불빛을 보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배를 오른편으로 빨리 바꾸어라.”
그러자 상대방이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그 배의 방향을 왼편으로 바꾸시오.”
그 말을 듣고 투 스타인 함장이 화가 나서 명령했습니다.
“나는 함장이고, 투 스타다. 너는 계급이 뭐냐? 어서 방향을 바꾸어라.”
“저는 해군 이등병입니다. 하지만 저는 방향을 바꿀 수 없으니 그 배의 방향을 빨리 바꾸도록 하십시오.”
이등병 주제에 투 스타의 말을 거역하니, 함장은 더욱 화가 났습니다.
“어서 방향을 바꾸지 못하겠나?
“저는 비록 이등병이지만, 여기는 등대입니다. 그 배의 방향을 바꾸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전함이라도 등대와 부딪치면 깨어지게 됩니다.
등대는 바꿀 수 없습니다. 배가 등대에 맞추어야지, 등대가 배에 맞출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학자는 학자대로 자신들은 굉장하고 교회는 이등병처럼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등대입니다. 인생의 등대입니다. 가정의 등대입니다.
이 등대에 맞추면 살고, 이 등대에 맞추지 않으면 개인도 가정도 파괴를 당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채워주지 못합니다. 청와대가 교회를 채워주지 못합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에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교회가 세상을 채웁니다. 우리 양곡교회가 경남을, 한국을, 청와대를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풍조가 어떻게 바뀌든, 세상 사람들의 부부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든 우리는 상관할 것 없이 가정을 지으신 하나님의 교훈대로 살아야 복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복된 가정이 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오늘 말씀의 가르침에 의하면, 먼저 감사해야 합니다.
한 주 동안 본문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다가, 결혼해서 부부가 되어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깨달았습니다.
본문 8절을 보면,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말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혼인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하지 않아 결혼의 신비를 모르고 늙어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결혼하고 싶어도 결혼하지 못하고 인생을 홀로 보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어떤 백인 할아버지를 만나 전도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의 연세가 일흔 일곱이었습니다. 가족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니 가족이 없다고 했습니다. 왜 가족이 없느냐고 물으니 결혼하지 않아서 외롭고 고독하게 혼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결혼할 수 있었는데 이런 저런 핑계로 하지 않았더니 지금까지 혼자 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노인이 얼마나 고독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얼마 전, 예수 제자회 모임이 부천에서 있었습니다. 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그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잠시 인사만이라도 드리고 오려고 부천으로 갔습니다. 김포공항에 내려 부천으로 가는 택시를 탔는데, 운전 기사분이 선글라스를 끼고 운전했습니다. 얼마나 멋있어 보였는지, 제 아내가 “오! 멋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 아내의 눈높이가 조금 높은데 멋있다고 했으니 얼마나 멋있는 남자였겠습니까? 제가 봐도 정말 잘 생긴 사람이었습니다. 자녀가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물으니 자녀가 없다고 했습니다. 언제 결혼을 했기에 아직 자녀가 없느냐고 하니, 결혼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멋있는 남자가 마흔 세 살이 되도록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혼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아가씨와 사귄 적도 몇 번 있었답니다. 그런데 2, 3년쯤 사귀다 사랑이 깊어졌을 때 어머니와 장애자인 형님을 모시고 살아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면 아가씨들이 떠나간답니다. 미스 김도 미스 박도 떠나가더랍니다.
본인은 잘 생겼지만 경제 능력이 없는 어머니와 장애자 형님을 부양해야 된다고 하니, 아가씨들이 부담이 되어 떠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때까지 결혼하지 못하고 혼자 사는 것이랍니다. 제 아내가 그분에게 교회에는 희생 정신이 있는 자매들이 있다며 교회에 다니라고 전도하니, 그분도 몇 년 동안 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4700원이 나왔는데, 제 마음이 뭉클해서 2만 원을 주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이 주십니까?”
“어머님께 과일이라도 사드리세요. 그리고 믿음 생활을 하세요. 희망을 갖고 사세요.”
저희 부부를 내려주고 달리는 그 택시를 바라보니 너무나 고독해 보였습니다.
혼자 산다는 것이, 결혼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지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 과부라는 말은 꼭 과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홀아비도 포함됩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아내가 세상을 떠나 홀로 되면 그 허전함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오래 전의 일입니다. 제가 버스를 탔는데 옆자리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가 눈물을 뚝뚝뚝뚝 흘리면서 손수건이 아닌 타월로 눈물을 닦으셨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계속 흐르는 눈물만 닦으셨습니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그러자 그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그 영감, 며칠 전에 할머니를 잃었다오. 할머니를 땅에 파묻고 저렇게 우는 거라오.”
여러분, 열 효자보다 악처가 낫고, 열 효자보다 악한 남편이 낫습니다. 친구가 없는 것은 별 문제 아닙니다. 부모님은 계시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데, 아내나 남편이 없으면 얼마나 힘 드는지 모릅니다.
제가 사랑하는 한 분이 뉴욕에서 사시는데 그분이 52세 때 부인이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여의사를 비롯하여 그분과 결혼하려는 여자들이 많이 나타났고 주위의 사람들도 재혼하라고 권했지만, 부인이 너무 귀했던 분이라 다른 여자는 눈에 들지 않으니 다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얼마 전에 제게 혼자 사는 것이 너무 힘드니 중매를 서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연세가 지금 59세입니다.
남편이랑 아내랑 더불어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오늘 아침에도 저는 그 행복을 만끽했습니다.
어제 밤에 기침이 많이 나오고 목이 매우 아팠는데 밤 12시가 넘도록 말씀을 준비했더니 너무 힘이 들어 제대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 바람에 아침에 늦잠을 잤습니다. 아내가 깨워서 일어나 시계를 보니 교회에 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두었다며 몸을 잠시 잠그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픈 목이 조금 나아질 것이라 해서 아내의 말대로 욕조에 들어갔더니 아내가 국에 밥을 말아서 들고 왔습니다. 약을 먹어야 하니 밥을 빨리 먹으라는 것입니다. 눈을 뜨자마자 어떻게 밥을 먹겠습니까? 게다가 성경도 읽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먹으라면 먹어야 하는 것을 알기에 욕조 안에서 말씀을 암송하고 밥을 먹었습니다. 제 평생 욕조 안에서 밥을 먹기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있는데 아내가 큰 타월에 뜨거운 물을 적셔서 물 밖으로 나와 있는 제 어깨를 덮어주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제가 아내의 사랑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욕조에서 나오니 아내가 제 옷은 물론 넥타이까지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것을 보며 ‘아, 가끔은 아프기도 해야 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아내가 없었다면 아침에 일어나 기침을 하면서도 싸늘한 물 한 잔만 마시고 오지 않았겠습니까?
전에 한 번 말씀 드린 기억이 나는데, 어느 농가에서 인절미를 만들던 날 일어난 일입니다. 인절미를 만들던 며느리가 인절미를 떼어서 콩고물에 두르륵 말아 가지고 자기 남편의 입에 넣어주곤 합니다. 별명이 떡서방인 시아버지는 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천장만 보고 있습니다. 시어머니가 들어와서 보니 상황이 그렇습니다.
“얘야, 네 아버님께는 떡을 드렸니?”
“어머님, 아버님은 상에 차려 드려야지요.”
“모르는 소리 말아라. 저리 비켜.”
어머니가 인절미를 뚝 떼어 콩고물에 두르륵 말아 가지고 “영감 여기 있소.”하며 아버지의 입에 넣어주니, 아버지가 입이 미어지도록 떡을 먹으며 “이놈아, 너만 색시 있냐? 나도 있다.”라고 했답니다.
색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잔소리를 해도 아내가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바람을 피우는 남편이라도, 술을 마시고 새벽 2시에 들어오는 남편이라도 남편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감사해야 됩니다.
일본의 한 해군 장교가 전쟁에 패한 스트레스와 죄책감으로 좌절에 빠졌습니다. 정신이 죽으면 몸도 죽게 됩니다. 암 치료에 뛰어난 의사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암 세포는 별것 아닙니다. 암 세포는 흔들리고 약합니다. 치료는 강합니다. 당신은 치료 됩니다.’라고 하면 치료의 효과가 갑절로 늘어난다.”
정신이 죽으면 몸도 죽는 것입니다. 정신이 죽으면 가정도 죽게 됩니다.
그러나 감사하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일본의 해군 장교도 좌절감으로 정신이 죽으니 몸도 죽게 되었습니다. 몸이 점점 마비되어 나중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이웃에 사시는 분이 와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회복되기를 원하면 하루에 천 번씩 감사하시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도 잡는다고, 그는 하루에 천 번씩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사이 그의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어느 날 그의 아들이 그가 좋아하는 감을 사들고 왔습니다.
“아버지, 감을 사 가지고 왔어요.”
“오, 아들아. 고맙다.”하며 감을 받으려고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는데 팔이 쑥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길로 그는 차츰차츰 회복되어 정상이 되었습니다.
감사하면 가정이 회복됩니다. 감사하면 부부 사이도 회복됩니다. 불평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그런 남편을 붙여주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아내를 붙여주신 데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뜻이 계셔서 그런 사람을 내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감사하면 어느 날 변화됩니다. 감사로 나아가면 어느 날 기쁨이 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복된 가정이 되려면 감사해야 하고, 그리고 혼인한 사람은 이혼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혼인한 사람은 이혼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뽑지 못하는 큰 못을 하나님께서 친히 박으셨습니다.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0절)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라 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3절에서 6절을 보세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묻습니다.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이혼해도 됩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읽지도 못했느냐?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이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될지라 하지 않으셨느냐? 그러니 이제 둘이 아니고 한 몸이니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결혼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두 여자가 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서로 자기 아이라 우기니, 솔로몬 왕이 아이의 몸을 반으로 자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생명을 어떻게 자릅니까?
결혼은 한 몸이 되는 것인데, 결혼하여 한 몸이 되었는데 어떻게 칼로 자릅니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5장 32절에 보면, 만일 아내가 음행 했으면 이혼해도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오늘 본문에는,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예수를 믿는 아내에게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갈라서자고 하면 갈라설 수 있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예수를 믿는 남편에게 남편이 예수를 믿는다고 갈라서자고 하면 갈라설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음과 음행으로 인해서는 이혼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이혼할 수 없다고 못을 박으셨습니다. 설혹 남편이 예수를 믿지 않아도 같이 살아서 그 남편을 구원하고, 아내가 예수를 믿지 않아도 그 아내와 살아서 아내를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도 거룩하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남편과 아내 중 한 사람만 예수를 믿어도 그 자녀는 예수를 믿게 됩니다. 부모가 다 믿지 않고 아버지나 어머니 한 사람만 믿어도 영향을 받아 그 자녀는 예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한 몸인 남편이나 아내가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버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남편이 믿는 아내 때문에, 믿지 않는 아내가 믿는 남편 때문에 거룩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남편을 전도할 수가 있습니다.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남편이 믿지 않아도, 아내가 믿지 않아도 갈라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라기서 2장 16절에도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궤사, 괴상한 일을 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혼을 괴상한 일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혼은 생각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한 가정을 꾸며 나갈까?’하는 생각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혼하려 하면 이혼할 이유는 다 있습니다. 이혼할 이유를 찾으면 이혼할 이유는 다 있는 것입니다.
저와 제 아내도 이혼하려 했는데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정말 사랑했습니다. 목숨을 걸다시피 사랑했습니다. 1년, 2년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사랑하던 사이였는데, 결혼하니 이혼할 이유가 하나, 둘, 셋, 넷, …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혼하려 했는데 하나님의 간섭으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상적인 부부도 이혼할 이유를 찾으면 이유가 다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찾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으니 이혼해도 된다. 이혼해라.’하는 것은 마귀의 부추김입니다. 성령께서는 ‘결혼 생활에 승리해라. 너희는 한 몸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나누지 못하게 하십니다.
미국의 한 남자는 아내가 너무 싫어 도저히 함께 살 수가 없어서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가장 큰 결혼 상담소를 찾아가 자기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자는 이러이러하다며 그런 여자를 소개해 달라고 했습니다. 결혼 상담소의 직원이 컴퓨터에 입력되어 있는 3만 명의 여성 가운데 그의 이상형과 가장 맞는 한 여성을 골라주었습니다.
“이 사람이 당신에게 가장 잘 맞는 여성입니다. 이 사람이 당신에게 가장 합당한 배필이니 사귀어 보도록 하십시오.”
그런데 사진을 보니, 얼마 전에 자기와 이혼한 자기 부인이었습니다.
자기는 아내가 싫어서 이혼했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는 그 아내가 자기에게 가장 잘 맞는 이상적인 아내였던 것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 아내나 남편을 바꾸어 새 사람과 살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별 사람 없습니다.
따라 합시다.
“바꾸어 봐도 별 수 없다. 새 사람도 곧 헌 사람 된다.”
자기 아내나 자기 남편을 두고 새 여자나 새 남자를 사귀면 아슬아슬한 재미가 있고 신바람 날지 모르나 그 여자나 남자와 한 번 살아 보세요. 한 달도 살지 못할 것입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귀에게 속지 마세요. 이혼은 생각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가정으로 만들어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하는 것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제 남편을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목사님은 제 아내를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지, 목사님도 제 아내 같은 여자라면 살지 못하실 거예요.”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나, 그렇지 않습니다.
스위스의 철학자 폴 투루에니가 말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이란 문제가 없는 가정이 아니다. 문제를 극복하는 능력을 가진 가정이다.”
덜컹덜컹 하는 소리가 나지 않는 가정은 없습니다. 문제 없는 가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문제를 극복하며 나아가 이기는 것이 가정의 매력이고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 합시다.
“할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기독교인은 “할 수 있다.” 사람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가능의 사람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
콜로라도 주 스프링필드 근처 요충지에 한 도시와 한 도시를 이어주는 도로가 있었습니다. 아주 짧은 거리로 다른 도시에 갈 수 있는데도 길이 너무 가파르니 혹 차가 뒤집혀질까 봐 사람들이 그 길로 가지 않고 외곽지로 빙 돌아서 갔습니다. 그래서 그 도로가 폐쇄될 지경이 되었는데, 뜻 있는 한 사람이 거기에 팻말을 세웠습니다.
“당신도 넘어갈 수 있다(Yes, you can.)."
가파른 도로를 보고 다른 길로 돌아가려던 사람이 “당신도 넘어갈 수 있다(Yes, you can.)."라는 팻말을 보는 순간, “오! 할 수 있구나.”하고 그 도로로 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 도로가 살아난 것입니다.
내 생각을 바꾸면 우리의 모든 것이 바뀝니다.
‘우리 부부도 행복할 수 있다. 우리 가정도 행복할 수 있다.’라는 비전을 갖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무엇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영어를 꽤 오래 공부해 왔지만 영어 설교 통역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영어로 설교하시는 분을 모셨을 때 ‘누구를 세워서 통역하게 할까?’하고 고민하다가 답답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번에 오시는 목사님께서 영어로 설교하실 텐데, 어떻게 하지요? 누구를 세워서 통역하게 할까요? 저는 통역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아서 자신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요?”
그런데 성령님께서 ‘너는 할 수 있다(Yes, you can). 네가 해라.’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합니까?’
‘할 수 있다. 해 봐라.’
그래서 제가 “주여, 제게 힘을 주십시오.”하고는 통역하기 위해 섰는데, 그때 원고를 보지 않고도 99% 정도 통역을 했습니다. 그 후 몇 번 더 통역을 했더니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이제는 영어로 설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못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생각이 얼마나 중한지 모릅니다.
다시 한 번 따 라합시다.
“나는 할 수 있다(Yes, I can.)”
미국 LA 남쪽 빈민가에 사는 한 흑인 부부가 열 명의 아들딸을 낳았습니다. 집이 가난하여 정부의 보조를 받고 살았는데, 열 명의 아이 중 가장 예민한 아홉 번째 아이가 그 환경에 좌절하여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당시 흑인들의 영웅인 세계 복싱 챔피언 슈가레이가 특강을 하러 왔습니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이 “슈가레이! 슈가레이!”하고 외쳤습니다. 그의 강연이 끝나자 모든 학생이 일어나 박수를 치며 열광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구석에 쳐박혀 딴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슈가레이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얘야, 너 어디 아프니?”
“아니예요. 나는 학교도 싫고 집도 싫고 다 싫어요.”
그는 아이를 안아 주며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뭐니?”
“저는 그리피스 조이너예요.”
“너는 무엇을 잘 하니? 누구나 잘 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 한 가지는 있잖아.”
“예, 저는 달리기를 좋아해요.”
“그래, 그러면 너도 세계적인 육상 스타가 될 수 있다. 꿈을 가지는 것은 부자가 되는 것이다. 꿈을 크게 가지면 부자가 된 것이다. 네가 꿈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너를 세계적인 육상 스타로 만들어 주신다. 내가 기도해 주지.”
그리고는 이 챔피언이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때부터 아이가 확 바뀌었습니다.
“아, 나도 할 수 있구나.”
그는 뛰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뛰었습니다. 드디어 88올림픽 때 육상 부분에서 3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손에 거머쥔 그리피스 조이너가 되어 세계 방송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쁜 몸매, 진한 매니큐어, 철렁이는 귀걸이에 살짝 미소를 띤 얼굴로 달리던 아가씨를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어릴 때의 비전이 그를 바꾼 것입니다.
‘그럭저럭 살다가 가지 뭐.’라는 생각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일어나 빛을 발하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일어나 빛을 발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럭저럭 목회하면 되지.’한다면 우리 양곡교회는 평생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양곡교회가 세계를 구원하게 해 주십시오. 한국과 세계의 소망이 되게 해 주십시오.”하며 비전을 갖고 나아가니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쓰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비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땅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이 번역한 ‘마법의 오두막집’이라는 책이 나와 제가 읽어보았습니다. 그 책을 보면 땅은 배신하지 않습니다. 땅은 우리가 뿌리는 대로 거두게 합니다.
가정도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어떻게 살든, 아내가 어떻게 살든 나는 밀알이 되어 내 가정에 사랑을 심고 예의를 심고 기도를 심으며 노력하면 가정은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관심을 갖고 가정을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이 교회는 나를 몰라주네.”
그런 말을 하지 마세요. 그것은 사탄의 말입니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교회에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십니다. 교회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합니다.
인생은 거울과 같습니다. 내가 거울 앞에서 웃으면 거울에 비친 상도 나에게 웃어주고, 내가 거울 앞에 겸손히 머리를 숙이면 거울에 비친 상도 내게 고개를 숙여줍니다.
남편이 나쁜 것 아닙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잘 하면 남편도 내게 잘 합니다.
아내가 나쁜 것 아닙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잘 하면 아내도 변하여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지만, 어느 날 아내가 죽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죽습니다. 항상 함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남편이 죽고 아내가 죽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오늘 본문이 가르치기를 “그냥 사는 것이 최선이다. 남편과 아내가 살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나거나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 바울처럼 그냥 지내라.”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7장 39절에 말씀하십니다.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결혼할 수 있으되 주 안에서만 하라고 하십니다.
그 당시에는 핍박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기다리는 바울로서는 그냥 사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나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혼자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가르칩니다.
누가복음 2장 36절에서 38절에 보면, 안나는 결혼한 지 7년 만에 과부가 되어 84년간 혼자 살았지만, 주야로 기도하며 성전을 섬겼습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먼저 떠나면 더 기도하고, 교회에서 더 열심히 봉사하며 사는 것이 최선인 것입니다.
그러면 차선은 무엇입니까?
정욕이 불같이 타올라 시험에 들 사람은 혼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모두 자기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목회를 해 보니 젊어서 혼자 된 사람은 나중에 마귀에게 훼방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젊어서 혼자 된 사람은 나중에 성적으로 실수하는 일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남편이나 아내가 먼저 떠났으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최선이라던 말을 조금 수정합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디모데전서 5장 14절)
그러니 결론은 이렇습니다.
혼자 된 사람은 결혼할까 말까 하면 안 됩니다. 할까 말까 망설이다 보면 세월이 다 가고 맙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으니 망설이지 말고 자신이 젊었다고 생각되면 재혼해야 됩니다. 그러나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되면 재혼은 생각도 말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나이는 누가 결정해야 합니까? 자신이 알아서 결정해야 합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젊었다 싶으면 재혼하고, 자신의 생각에 나이가 많다고 생각되면 혼자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돌아보면, 부부가 아무리 행복하게 살아도 인생 끝에서 돌아보면 그저 긴 꿈에 불과합니다. 부부가 아무리 힘들게 살아도 인생의 막을 내릴 때 돌아보면 한 편의 꿈에 불과합니다. 인생은 나그네 생활, 한편의 드라마입니다. 인생의 결국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루하루 구체적으로 살 때는 인생이 중하지만 인생을 끝낼 때는 모든 것이 꿈이고, 남는 것은 오직 하나 믿음뿐입니다.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 나그네 삶을 끝내고 참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정에 너무 크게 기대하지 말고, 남편과 아내에게 너무 크게 기대하지 말고, 주님께 기대하면서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가정을 가꾸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홀로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재혼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삶의 목적을 주님께 두고 잘 달려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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