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포기된 자의 소생 2002-10-16 11:54:35 read : 42511
사도행전 15:36-41 // 2002. 10. 13.
36)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 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지금부터 50년전 1952년 7월 4일, 캘리포니아의 한 해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텔레비젼 중계를 통해 그 해변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러했을까요? 이는 자연에 도전하는 한 여인을 지켜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여인은 약 34km 떨어진 카탈리나 섬에서 헤엄을 치기 시작해 15시간이나 지나 곧 이 해변에 곧 도착할 예정이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당시 34살 난 플로렌스 채드위크(Florence Chadwick)이었습니다. 그는 여자로서는 최초로 영국과 불란서 사이의 도버해협을 이미 두 번이나 헤엄쳐 건넌 여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날의 수영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닷물은 매우 차가웠고 안개는 짙게 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와 수행원들은 이제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참으라고 격려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15시간 55분만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안타깝게 하는 것은 육지를 1/2마일 앞에 두고 포기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플로렌스는 "안개가 걷혀서 내 눈으로 캘리포니아 해변의 육지를 바라볼 수만 있었다면 나는 포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술회했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약 두 달 후 이 여인은 다시 같은 해협을 정복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그 날도 역시 짙은 안개가 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안개를 무릎 쓰고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헤엄쳐 나갔습니다. 왜냐하면, 플로렌스는 그 짙은 안개 너머에 분명히 있는 그 목적지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플로렌스는 카탈리나 해협을 정복한 첫 번째 여인이 되었고, 더 나가서는 남자가 세운 당시 기록을 무려 두 시간 정도나 앞당기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사람은 한 번 포기를 했으나 다시 도전할 때는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가야할 길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사는데 있어 한 번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도전할 때는 포기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적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여정 가운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는 눈에 보이는 목표를 향해 나갈 때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데, 우리는 영적인 눈으로 보는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나가야 합니다.
오늘 성경본문을 보면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마가라 하는 요한입니다. 그는 초대교회가 형성될 때 핵심적인 인물은 아니었으나 많은 것을 보고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난 다락방 주인 마리아의 아들이었으며 바나바의 조카였습니다. 그는 삼촌 바나바가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을 떠날 때 함께 따라 나서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적인 사명감이 적었던 그로서는 참아내기 힘든 여행이었습니다. 그는 도저히 견디어 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교여행을 중간에 포기하고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포기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는 마가가 경험한 첫 번째 실족이었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심기일전하고 다시 선교여행을 따라나섰습니다. 아마도 삼촌 바나바가 그의 조카 마가를 격려해서 다시 선교여행에 참여하도록 시도한 것같습니다. 그래서 마가도 다시 선교여행에 참여한 것같습니다. 때는 자신의 한계를 알고 스스로 여행을 포기했었는데, 이번에는 마음을 굳게 먹고 함께 마치기를 원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의지입니다. 지난 번에 포기했던 것을 격려에 힘입어 하는 것이지요. 마가도 삼촌 바나바의 격려에 힘입어 새롭게 힘을 내고 선교여행에 나서게 된 것은 앞에서 언급한 채드위크의 경우와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단지 분야가 다를 뿐이지요.
아무튼 젊은이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다시 시도해 보려는 자세입니다. 비록 중간에 넘어지는 한이 있어도 다시 해 보려는 것이 젊은이들의 특징일 것입니다. 미국의 기독교 심리학자요 장애인들과 인생의 마지막을 보낸 봉사자 헨리 나우엔이 말하는 바와 같이 젊은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 준 사람들을 믿기보다는 그들 자신이 실패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합니다”(상처입은 치유자, 48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 젊은이들이 가지는 특징입니다. 바로 그 모습을 마가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신앙에 있어서는 젊은 마음을 유지하여야 합니다. 어려운 일로 인해 한계와 좌절을 맛보고 포기할 수도 있지만, 이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은 젊은 마음을 가진 영원한 젊은이들입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은 영적인 면에서 영원한 젊은이들입니다. 저는 모든 교우들이 이러한 영적 젊음을 유지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목표라 한다면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하지만, 이때 마가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는 다름 아니라, 바울이 그의 동행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한 번 데리고 다녀보니 아마도 매우 힘들게 했던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기서 마가는 포기를 당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는 자기가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보다 더욱 뼈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마가는 대안을 찾게 됩니다. 그들은 바울과 헤어져 다른 곳으로 선교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곳은 바나바의 고향이었습니다.
분열은 우선 부정적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었음을 안다면, 우리는 더욱 놀라게 됩니다. 마가는 삼촌 바나바에 의해 포기되지 아니하고 소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마가가 삼촌 바나바를 따라 구브로에서 어떤 사역을 하였는지 잘 알려지지는 않습니다. 더 이상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삼촌의 고향에서 선교여행을 따라 다니면서 그는 많은 훈련을 받았고 신앙의 성숙을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나중에 아주 훌륭한 일꾼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마가는 마가복음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믿어지고 있으며, 전승에 의하면 마가는 사도 베드로를 따라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은 갑자기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마가의 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많은 훈련의 기회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가를 숨은 일꾼으로 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고 숨겨졌다고 해서 결코 하나님이 그 사람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도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형들에 의해 팔려 멀리 떠나야 했습니다. 애굽의 시위대장 집의 종으로 팔려갔지만 그리고 모함을 받아 옥에 갇혔지만, 그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또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인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바로 그러한 요셉을 하나님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인생에 있어 넘어지고 쓰러져 세상 사람의 눈에 띄지 아니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마음 아프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기간을 통해 우리를 훈련시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더욱 풀무에 단련시켜 정금과도 같은 훌륭한 보화로 키우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일생에 일곱 번이나 낙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었고, 시골에서 잡화점을 경영하다 파산하여 그 빚을 갚는데 15년이나 걸렸으며, 하원의원에 두 번씩이나 떨어졌고 상원의원에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며 일했던 사람입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었습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대안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사람의 욕심을 위하여 무조건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의 것을 포기할 때 하나님의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삶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무조건 포기하지 않는 삶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우리도 하나님께 사로 잡힘을 포기하지 않는 삶입니다.
어느 한 분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 사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학교를 떠나 사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친구들과 함께 사회활동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이 자신을 도와주기를 원하고 기도하며 열심히 살아갔습니다. 이제 승진하여야 할 시점에도 왔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빨리 승진하여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그는 기도 가운데 한 가지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옆에는 세상 동료들이 아주 빠르게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자기 앞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디로 달려가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얼마나 빨리 달렸든지 주변에 무엇이 있는 지조차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역시 그들을 따라 잡으려고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고 오히려 발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무진 애를 쓰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뒤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나와 함께 가자!” 그러한 음성을 듣고 뒤를 돌아보니 자기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열심히 뛰려던 노력을 그만두고 주님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비로소 주변 환경이 보이기 시작했고 자신이 가야할 길이 환히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그는 그의 인생관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추구했던 세상적인 목표를 포기하고 오늘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기쁨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욕망을 포기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욕심을 포기할 때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참 목표를 알고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아무리 남이 따라오지 못하는 앞선 삶을 산다 할찌라도 자신에게 기쁨이 없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가의 경우도 그 정도로 그쳤으면 우리의 관심을 끌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서로 합할 수 없다면, 서로 헤어져 일을 하면 되겠다는 결론 밖에 주지 못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사역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다음으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다른 본문들이 있습니다. 이 본문들을 살펴볼 때 하나님의 놀라운 경영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훈련의 시기를 거치게 한 후 하나님은 사도 바울과 마가로 하여금 다시 마음을 합하여 일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인생말년에 기록된 것으로 여겨지는 디모데후서 4:11에 의하면 마가의 이름이 다시 나옵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여기에 놀라운 서술이 나오지 않습니까? 마가가 바울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골로새서 4:10에 의하면 마가는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히는 일까지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고생하는 것이 싫어 바울은 떠났던 마가가 그와 함께 옥에 갇히는 고난까지 감당한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를 말합니다. 그리고 마가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골로새 교회를 향하여 마가가 이르거든 영접하라는 부탁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데, 마가는 바울의 마음에 들 수 있을 정도로 컸던 것 같습니다. 삼촌 바나바와 함께 선교여행을 다니며 그는 많은 신앙적 경험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고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기회에 다시 바울을 만나게 되었고 바울을 돕게 되었고 바울로부터 신임을 얻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울을 다시 만나는 순가 마가는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자기를 포기했던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계속 버림을 받게 될 것인가? 상당히 긴장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바울에 의해 신임을 얻고 없어서는 안될 사람으로 소생된 모습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하나님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여덟 번째 일어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넘어짐이나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쓰러지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사람들은 주변에 실수나 어려움으로 인해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에 대하여서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언제 어떻게 사용하실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나에게도 부족함이 있음을 알고 격려하고 도울 때 더욱 아름다운 삶을 서로 이루어 나가게 하는 것이지요.
 |
 |
|
 |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 김효자 /사업자번호831-29-0156/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 /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4394-4414 /E-mail:v919@naver.com |  | Contact Webmaster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