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라고 생각하십니까 2002-07-19 18:27:02 read : 24704
(12월2일 주일)
열왕기상 19장 8-18절
우리나라 초대교회 시절에는 목회자와 성경이 무척 귀했습니다. 그나마 선교사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교회가 세워졌고 한 교회만 돌볼 수 없는 선교사는 여러 교회를 순회하면서 주일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그외의 집회때는 그 교회의 교인중 그래도 글자를 알아 성경을 읽을 정도의 교인을 뽑아 조사로 임명하여 그에게 성경을 한 권 맡기고 예배를 인도하게 하였습니다. 경상북도 어느 산골의 예배당에 교인들이 모여오고 그 교회의 조사님이 예배인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을 봉독할 순서가 되어 조사님은 시편 23편을 봉독했습니다. 그러나 그 옛날 산골의 예배당에 전기불이 있을리 없었고 어두침침한 등잔불 아래에서 두터운 돋보기를 끼고 겨우겨우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나마 당시의 한글 성경에는 띄어쓰기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고 조사님의 한글실력이 모자라는지라 제대로 읽어 내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는나...의... 목자이시니...내가부...족...함이 없으리로...다..."겨우 겨우 성경봉독을 마친 조사님과 교인들은 그만, 이 본문을 이렇게 이해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 자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조사님은 성경을 내려놓고는 참으로 비장한 얼굴이 되어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여호와가 내 목 짜르셔도 내가 부족함이 없씀네다!" 조사님이 큰 소리로 외치자 온 교우들이 두 손을 들고 함께 외쳤습니다. "내두!... 내두!..."
성도 여러분! 삶 속에 여러 많은 일들이 있을 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신앙적인 지혜가 있으십니까? 그대로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의 승리후 너무 육체적으로 무리하여 쓰러졌으며 그의 영혼이 침체되었습니다. 그의 영혼이 침체된 이유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10절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오직 나만 남았거늘' 바로 이 생각이 그를 회복되지 못하게 하는 뚜렷한 이유였습니다.
여러분들은 "나 혼자 뿐이다" 이런 생각하신 적이 없으십니까?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이런 불평을 할 때가 있습니다. 별로 하는 일이 없는 분들은 이런 불평도 안 합니다. 이것은 꽤 열심히 하는 분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우리 여선교회 안에 여선교회를 위해 정말 애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형식적으로 얼굴만 내미는 사람들 뿐이야. 나 혼자 이렇게 할 필요가 있나?" "우리 교회 성도들은 헌금 열심히 없어. 나 혼자 어떻게 다 감당하나? 이 교회 안에 사람이 나 밖에 없나? 왜 언제나 나만 쳐다보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가정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먹고살자고 나는 뼈빠지게 나가서 고생하고 애쓰는데, 나는 안 먹고 안 입고 애쓰는데, 가족들은 뭘 하나? 같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펑펑 써대기만 하니, 난 못살아." 자기만 혼자 애쓴다는 생각,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도와주지 않는다는 생각, 나처럼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야말로 가장 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자신처럼 힘들게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과 번민에서 건짐받아야 합니다.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나만 일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본문에는 엘리야가 호렙산에 가진 체험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바람 후에는 지진이 있었지만, 지진 가운데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지진 후에는 불이 있었는데, 불 가운데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엘리야의 사역이 그와 비슷합니다. 엘리야는 온 이스라엘이라도 날려 버릴 만큼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가 기도하자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갈멜산 꼭대기에서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태웠습니다. 그가 또 기도하자 메마른 대지 위에 비가 내렸습니다. 그는 강한 바람 같은 존재였고, 지진 같은 사람이었고, 불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사역은 모든 사람에게 주목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세상을 뒤덮을 만한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엘리야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주저앉아 있지 않습니까? 바람과 지진과 불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잠시 후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주 작아서 잘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소리, 마치 없는 것처럼 작은 소리가 들렸는데, 놀랍게도 그 소리 중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엘리야 자신의 사역은 크고 요란하지만 현재는 하나님이 없는 사람처럼 쓰러져 낙심하고 있는 반면에, 이스라엘 구석구석에는 그 활동이 작고 드러나지 않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잘 들리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위해 말없이 조용히 헌신하면서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나만 홀로 남았다'고 했지만, 결코 엘리야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혼자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크고 요란하게 했다면, 세미한 음성처럼 작게, 조용하게, 하나님을 섬긴 하나님의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18절 말씀을 보면 바알신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무려 칠 천명이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나만 혼자 애쓰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나만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그건 교만입니다. 우리 교회가 여기까지 온 것은 나 혼자의 수고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를 사랑하는 많은 성도들의 수고 덕분입니다. 비록 그것이 작아 보여도, 소리가 요란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함께 하시므로 우리 교회가 이만큼 자란 것입니다. 우리는 동료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결과에 대해서 혼자 자신이 한 것처럼 자랑해도 안됩니다. '나 혼자 일한다'는 고독한 마음을 버립시다. 혼자서 애쓴다고 생각하다가 쓰러지지 마십시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 천명처럼 되어서 이 교회를 다 같이 함께 섬기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남을 도우라고 하십니다.
본문 15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은 아직도 불만이 가득한 엘리야에게 오히려 <일거리>를 맡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사엘을 찾아가서 기름을 부어 아람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자기 문제 해결도 어려운 엘리야에게 다른 사람이 왕이 되고 선지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의아한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내 문제도 복잡한데, 남의 문제까지 어떻게 관심을 가지느냐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방법과 우리 방법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네 문제를 덮어두고 남을 도우라!' 이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만, 남을 돕다 보면 내 문제는 시시하게 보이게 됩니다. 나 보다 정말 힘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기 문제는 오히려 감사할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목사님은 목회가 너무 힘들어 좌절할 때마다 농촌 교회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당신 교회에서 돕는 교회들을 찾아가서 그 곳 목회자를 만납니다. 어려운 점을 듣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되고, 오히려 농촌 목회자를 도울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새 자기 문제를 극복하게 되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 오히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찾아내어 도와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게 됩니다. 자기 문제는 작게 보고, 남의 문제를 크게 보아 줄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의 저자인 안이숙 여사께서 일제 때 감옥에 있으면서 같은 감옥 안의 흉악한 살인범들을 사랑으로 돌보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배고픈 것은 뒤로하고, 자기 밥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안이숙 여사는 남의 일을 돌봄으로써 영적 힘을 얻고, 침체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힘들 때일수록 남을 도우세요. 어려울수록 남의 문제를 돌아보세요. 그러면 아직 여러분이 힘들지만 쓸모 있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정말 힘들 때에라도 남을 위하여 기도해 보세요.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기도를 드리세요.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 자신의 문제는 저절로 이길 힘이 생길 것입니다. 그 축복의 기도가 우리 자신에게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셋째로 어느 정도의 고통은 짊어지고 살아야 합니다.
아무 문제도 없는 인생을 꿈꾼다면 세상을 살 수 없습니다. 주의 일을 하면서 아무런 어려움도 없기를 기대한다면 잘못입니다. 엘리야가 주의 선지자로 살기를 원한다면 지치고 피곤한 일은 감수해야 했었고, 당연히 어려움이 있을 것을 각오했어야 합니다. 여러분, 졸업하기를 원하면서 책상에 앉기를 싫어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입니다. 장사로 대성하기를 원하면서 새벽에 가게 문 열기는 싫어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려면 누구나 찌르는 가시를 안고 살아야 합니다. 찌르는 가시를 벗어 던지려고 하지말고, 그것을 품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모두 고통을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때로 고통은 우리 인생을 더욱 안전하고 성숙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를 피하지 말고 품도록 합시다. 그 문제를 하나님을 체험하는 거룩한 문제로 만들게 되길 기원합니다. 달걀을 품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품어야 병아리가 나옵니다. 조개가 아픔을 참고 모래알을 품으면 진주가 됩니다. 피하려고만 하면 안됩니다.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모든 것은 보기 나름입니다. 내게 주어진 아픔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한 선교사가 아프리카 오지에 갔습니다. 한번은 원주민들과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강가에 가더니 한 원주민이 사람들의 어깨에 커다란 돌을 하나씩 지워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선교사에게도 커다란 돌을 안겨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짐도 무거운데 큰 돌까지 안고 어떻게 강을 건너란 말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큰 돌을 꽉 안고 건너야 빠른 물살에 쓸려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돌 때문에 무겁기는 하지만, 돌 때문에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때로는 우리의 고통과 문제 거리 때문에 우리가 승리하고 성숙해간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어느 정도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문제 해결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도록 기도합시다. 문제는 언제나 그 속에 해결책이 있습니다. 문제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힘쓰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나 혼자다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 교회를 함께 사랑합시다, 다른 사람도 교회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혼자만 애쓰지 말도록 합시다. 우리 서로 교회 안에서 사랑합시다. 각자가 어렵지만, 남을 문제를 돌아보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도록 합시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문제쯤은 넉넉히 안고 갈 수 있는 강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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