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한 행실 - 2002-06-13 20:07:32 read : 28959
그리스도인의 매력(1)
마태복음 5:14~16
석원태 목사
저 유명했던 헤로드투스(Herodtus)의 글에 이런 말이 씌어 있습니다. ‘칸티울레스 황제는 그의 왕후가 이 세상의 모든 여성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믿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가장 아름답다’는 말 ‘칼린스테’는 칼로스(kalov")의 최상급을 의미합니다. 그녀의 생김새의 아름다움 곧 매력에 대하여 말한 내용입니다. 이런 경우 칼로스(매력)는 생김새가 좋은 얼굴과 신체를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헤로드투스는 다시 이 말에 말하기를 ‘인생을 특징짓는 필수적인 것은 겸손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옛날부터 배워야 할 칼로스(매력)적 습관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칼로스란 말은 드러나고 보이는 모습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있는 정신적이요 도덕적이요 영적인 면도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진정한 겸손에서 나오는 미모만이 칼로스(매력)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핀다르(Pindar)는 ‘사람은 영원까지 이를, 꺼지지 않는 칼로스(kalov")의 행동적 빛을 가져야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헬라 말에 있어서 이 칼로스란 말은 전인격적 의미에서 고상하고 아름답고 명예스러운 뜻을 담고 있는 단어가 됩니다.
우리 신약성경에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칼로스라고 하는 단어가 100회 이상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목회서신 가운데(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무려 24회나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칼로스의 본체였습니다. 실로 그는 우리의 영원한 칼로스(매력)입니다. 그래서 역사의 대로(大路)는 예수 그리스도의 매력(아름다움)에 이끌린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매력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매력적인 사람, 아름다운 사람, 좋은 사람, 선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이 이 사실을 수없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매력’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Ⅰ. 착한 행실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착한 행실’이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착한 행실’(ta; kala; e[rga)은 바로 선한 행실, 좋은 행실, 아름다운 행실을 뜻합니다. 곧 매력적인 행실을 뜻합니다.
이 착한 행실을 ‘빛’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5장 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경우 ‘빛’과 ‘착한 행실’을 동일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빛이 되십니다(요일 1:5). 그리스도도 빛이십니다(요 8:12). 그리스도인 된 신자들도 빛이라고 하였습니다(마 5:14, 16).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빛의 본체이시요 참 빛이십니다(요 1:9). 그리스도인은 그 빛의 반사체가 됩니다(요 1:8, 9).
그 반사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착한 행실’, 곧 매력적인 행동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매력적 행동들을 세상에 드러내어 보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마치 ‘산위에 동네’처럼 드러나 보이게 하라는 것입니다(마 5:14). 그리고 등불처럼 등경 위에 두어 모든 사람에게 비취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 5:15).
예수님은 여러 가지 선한 일(요 10:32)을 사람들에게 나타내보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선한 일’로 인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돌로 치려 한다고 하였습니다(요 10:32~33). 예수께서 저들에게 나타내신 매력적인 일(선한 일)이 저들에게는 오히려 악하게 보였다는 말입니다. 그 여러 가지 선한 일 중에 하나가 선한 목자의 삶이었습니다(요 10:14).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지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고후 13:7b)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 교인을 향하여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을 향하여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 5:21)라고 하며 모든 사물을 식별하여 ‘선한 것’을 굳게 잡고 지켜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 디도를 향하여 「선한 일」에 모범이 되어 그것에 열심을 내라고 하였습니다(딛 2:7, 14).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일」을 힘쓰게 하고, 또 그것을 배우게 하라고 하였습니다(딛 3:8, 14). 히브리서 10장 24절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고 하였습니다. 13장 18절에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성경에서 말하는 선(kalov")은 어떤 사색적이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의 계율이 아닙니다. 그것은 행동하는 사랑의 매력을 말합니다. 사랑의 특성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잠잠하지 않고 가슴에 담겨있는 아가페적 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낼 때 그것은 선(kalov")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삶의 특색이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착한 행실의 빛 말입니다.
Ⅱ. 착한 행실을 묘사하고 있는 여러 비유들
우리 성경 마태복음 5장 16절에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라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실제적인 선행의 열매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곧 예수 구원에로 돌아오게 하는 결정적인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여러 경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0절에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6장 43절에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마 7:17~19). ‘좋은 열매’, ‘좋은 나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좋은 나무’란 그리스도인을 가리킵니다. ‘좋은 열매’란 그리스도인의 매력적인 행동적 삶을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13장 8절과 23절에 ‘좋은 땅’이란 말과 ‘혹 100배, 혹 60배, 혹 30배’란 말이 나옵니다. 여기 ‘좋은 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 깨닫는 마음, 결실하는 행동을 말합니다(막 4:8, 20, 눅 8:15). 말하자면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인격입니다. 마태복음 13장 24절에 ‘밭에 뿌려진 좋은 씨’라고 하였습니다(마 13:27). 여기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마 13:38), 곧 참된 신자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밭)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를 가리킵니다(마 13:19, 23). 그리스도인은 ‘좋은 땅’이요 또한 ‘좋은 씨’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축복의 사람들입니다. 그 자체가 매력입니다. ‘좋은 땅’, ‘좋은 씨’ 그 자체입니다. 바로 구속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의 매력입니다(고후 5:17).
요한복음 2장 10절에 나오는 ‘좋은 포도주’입니다. 물로 예수께서 만드신 포도주였습니다. 그것은 처음 포도주보다 더 좋은 포도주였다고 하였습니다. 더 맛있고 진한 매력적인 포도주라고 하였습니다. 질 좋고, 양이 많고, 맛좋은 포도주를 가리킵니다. 이것이 바로 표적(shmei'on)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좋은 포도주는 바로 새 술이요 새 복음의 상징이었습니다(마 9:15~17). 바로 신약입니다.
마가복음 9장 50절에 ‘좋은 소금’입니다. 소금의 매력은 그 짠맛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소금의 소금된 맛과 멋은 그리고 생명성은 그 특유한 짠맛입니다. 온갖 부패를 막고 맛을 창조하는 매력입니다. 말하자면 방부제, 조미료, 의료제, 정결제, 비료, 제물, 자기희생(녹음)이 소금의 독특한 매력입니다. 그것이 소금의 칼로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된 매력입니다.
히브리서 5장 14절에 ‘선악을 분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히 4:12)한다고 하였습니다. ‘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히 4:13). 선과 악을 분변하는 결정적인 척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과 생활의 유일무이한 법칙이 됩니다. 그 말씀의 척도에 따라 전 삶을 걸어놓는 그리스도인이 매력적인 사람이 됩니다. 여러 곳에 표현된 말씀들은 모두 칼로스가 붙어있는 내용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가 지닌 최대, 최귀, 최고의 복음전도와 선교의 무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교회가 세상에 던지는 매력입니다. 칼로스입니다. 외적 자태의 아름다움입니다. 그 아름다운 자태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적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사람들이 기독교에 이끌림 받는 매력은 보다 훌륭한 논쟁이 아닙니다. 교양적인 강좌나 시대의 첨단을 소개하는 세련된 유행이나 아니면 모방을 보급하는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교회가 세상에 던지는 매력은 바로 어둠을 비추는 빛, 곧 선한 행실, 매력적 행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매력적 행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인격이 거듭나는 새 마음의 토양, 곧 좋은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구속인의 마음에서 맺어지는 새 삶의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세상 가운데 희망을 주는 좋은 씨와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잔치의 맛과 멋을 주는 새 포도주와 같은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온갖 삶의 새 창조의 힘을 가진, 소금의 맛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록된 말씀에 의지하여 사고하고 행동하는 선한 말씀을 가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이 모든 경우에 칼로스(kalov")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매력적 행실, 선하고 좋고 아름다운 나무, 매력적 땅, 매력적 열매, 매력적 씨, 매력적 소금, 매력적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초기 박해 300년은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황제들과 시민들에게 정말 그리스도의 매력(kalov")을 던져준 순교의 시대였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많은 변절자도 있었으나, 사실상 박해 300년 어간에도 로마황제의 통치와 시민권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온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박해 속에서도 성장하여 갔습니다.
그 이유는 온갖 박해와 압제와 심지어 생명을 유린하는 로마 황제의 박해 속에도 한분뿐이신 예수만을 주(kuvrio")로 고백하는 기독신자들의 신앙고백의 매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로마제국이 아닌 영원한 그리스도 통치를 열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불타는 내세소망의 매력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박해자를 향한 고요한 사랑의 표정과 죽음의 고난 속에도 감수하는 그 얼굴의 인내 그리고 신자들끼리 나누는 뜨거운 형제애의 매력이 박해 속에서도 교회가 성장하는 비결이 되었습니다.
착한 행실의 빛! 좋은 땅! 좋은 열매! 좋은 씨! 좋은 포도주! 좋은 소금! 좋은 말씀! 그리스도인들의 매력입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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