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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고린도에서의 전도 2002-05-31 18:50:27 read : 26258
사도행전 18 : 1- 11
들어가면서
날아간다는 것이 날개를 쳐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한다면 독수리는 날지 않습니다. 다른 새들은 그렇게 날아가지만 독수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독수리는 선천적으로 바람의 흐름을 구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수리는 적당한 바람이 불때까지 다른 장소로 가지 않습니다. 적당한 바람이 불면 단지 공중에 떠서 바람에 몸을 맡길 뿐입니다. 독수리는 날개를 칠 필요가 없습니다. 독수리는 같은 자리에 날개를 고정시킬 수 있습니다. 독수리가 하는 일이란 바람을 타는 것 뿐입니다. 다른 새들은 폭풍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폭풍을 사랑합니다.폭풍 때문에 독수리는 더 높이 더 높이 날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수리같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악물거나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봉사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바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봉사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분별하여 그 목적과 함께 행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자신의 무질서함을 축복하시도록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열심히 일해서는 안된다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는 바다를 가운데 두고 둘로 갈라져 있는데 바다의 폭은 8km 밖에 되지 않지만 육로를 통하려면 어느곳에서든지 고린도를 경유하여야 합니다. 아니면 최남단을 통과해야 하는데 최남단 케이프 말레아(Cape Malea)는 대단히 위험하여 많은 사람들이 육로로 고린도를 경유하게 되므로 고린도는 교통의 요지이며 또한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또 당시 올림픽 경기 다음가는 고린도경기대회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특기할 것은 이 지역의 타락된 생활입니다. 아크로폴리스(Acropolis)언덕위의 아프로디테(Aphrodite)여신의 신전 여사제는 종교적인 창녀로 저녁이면 거리로 내려갔으니 당시의 타락상을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아덴에서 고린도까지의 거리는 약80km정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약 1년 반 정도 머물면서 전도했습니다. 오늘은 아덴에서 별 재미를 보지 못하고 고린도에 와서 전도하는 바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몇가지 신앙의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일하면서 전도하는 바울(1-4)
"1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업(業)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講論)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기술을 가르칩니다. 천하든 귀하든 상관치 않고 어디서라도 제 밥벌이는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큼의 기술을 가르칩니다. 만일부모가 자녀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고 그냥 살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먹고 살기 위해 도둑질 밖에 할 것이 더 있겠느냐는 얘기입니다. 또 유대의 랍비들까지 가르치는 일 외에 전문직을 갖는 것이 당시의 풍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학자가 아니라 노동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알고 가르쳐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전문기술이 있었는데 바로 천막제조(tent maker)였습니다. 천막 만드는 직업은 귀한 직업은 못되었습니다. 천막을 대부분 무엇으로 만들었겠습니까? 가죽. 가죽을 만지려면 먼저 죽은 짐승을 만져야 하지 않겠어요. 유대인들이 꺼리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이 기술을 배운 까닭은 바울의 고향 다소가 있는 길리기아 지방에 특별한 털을 가진 산양의 떼가 있어 그 털로 '길리기움'이라 부르는 천을 짜서 천막, 커텐, 벽걸이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처음에는 천막제조를 하면서 돈문제를 해결했고 4절에 보니까 안식일에만 회당에 나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주간 중에는 천막 만들어 돈벌고 주일에는 전도도 하고 설교도 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이런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고린도에서는 전업전도가 아니라(full time) 시간제로(part time)전도했습니다. 바울이 시간제로 일하며 전도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신학적이며, 목회적인 이견들을 남기고 있습니다. 요즘 말로 다시 말하면 세상 직업 가지면서 목회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대학교수를 하면서 목회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학교교사, 어떤 사람은 의사를 겸하며 목회도 합니다. 멋있어 보이지요? 우선 교회에 물질적인 부담을 주지 않으니 좋지 않습니까? 교인들 입장에서도 목회자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없으니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목회하는 입장에서도 편할 거예요. 내가 벌어 내 밥 먹는데 교인 눈치 볼 것 뭐 있습니까? 되는 소리 안되는 소리 듣기 싫으면 듣지 않으면 돼요. 하다 하다 않되면 안하면 돼요. 왜?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으니까. 교인도 편하고 목회자도 편하니까 멋있어 보이고 좋지 않겠습니까?
평신도는 자기 직업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전문직을 통해 전도할 때 놀라운 효과를 얻습니다. 의사가 전도해 보세요. 교육자가 전도해 보세요. 목회자 보다 훨씬 열매가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죽으나 사나 하나님 바라보고 성도를 바라보며 일해야 합니다. 부담도 가져야 합니다. 평신도들이 교회에서 하루 종일 일했다고 사례받습니까? 건축위원장 현장 상근한다고 사례비 줍니까? 교회학교 교사 하루종일 일한다고 사례합니까? 안합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다릅니다. 목회자는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 오직 성도만 바라보고 일해야 하고 부담가지고 사례비받고 일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회자가 사례비받고 일하는 것을 두고 인간적이라고 말합니다만,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을 모르는 소치입니다. 오히려 사례비 받고 일하는 것이 성경적인 모습입니다. 레위기7:32-34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또 너희는 그 화목제 희생의 우편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를 삼을찌니 아론의 자손중 화목제 희생의 피와 기름을 드리는 자가 그 우편 뒷다리를 자기의 소득으로 삼을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취하여 제사장 아론과 그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게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구약시대 제사장의 소득은 희생제물 중 가장 좋은 우편 뒷다리였습니다. 요즘 우리말로 하면 제사장, 즉 목회자의 소득은 교회에서 나오는 사례비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왜? 제사장, 목회자의 소득을 이렇게 정한지 아십니까? 민수기18:20절 이하에 그 대답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의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목회자의 소득을 교회에서 나오는 사례로 정한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평신도들은 세상의 기업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세상의 기업이 없이 오직 교회의 사례만으로 생활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역시 고린도전도에서 처음에는 자비량 선교했지만 실라와 디모데가 빌립보교회의 선교후원금을 가져온 후에는 복음 선포에만 전념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 대한 얘기 간단히 하고 넘어갑니다. 신약에 나타난 가장 아름다운 부부가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입니다. 소아시아 북부 본도 출신 아굴라는 명문 출신 브리스길라와 로마에서 만나 결혼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하기 1, 2년 전(AD52년경)로마황제 글라우디오가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습니다. 이유는 유대인 Crestes(Christus의 오기(誤記)가 아닐까?)의 선동으로 로마에 소란이 일어났으므로 차제에 유대인을 다 추방해 버립니다. 귀족 출신 브리스길라도 남편 유대인 아굴라를 따라 고린도에 와서 천막을 지으면서 먹고 살았습니다. 여기서 바울을 만나 평생 동역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16: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자신들이 직접 전도하고 주의 일 하는 것보다 바울이 일하도록 돕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대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의 복음사역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생명을 조금도 아까와 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와같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평생 바울이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무엇인가 가치있는 일을 위하여 자신의 일생을 바친다는 것은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배만 불리는 일에 전념하며 그들의 귀한 인생을 허비합니다. 그러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달랐습니다. 그들 부부는 주님의 귀한 사명에 자신들의 시간과 물질, 그리고 목숨까지도 투자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늘의 귀한 상급을 위해 주어진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일에 전념한다면 우리 역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하늘의 별처럼 그 이름이 빛날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지혜로운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2. 박해와 훼방 속에서도 전도하는 바울(5-8)
"5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6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하고 7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8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에 왔습니다. 아덴선교에서도 별 재미를 못보고 고린도에 와서는 천막을 만들며 생계를 유지하던 바울에게 실라와 디모데는 얼마나 반가운 사람이었겠습니까? 훗날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데살로니가전서3:6-7). 자기가 전한 복음을 통해 갖게 된 신앙으로 굳게 서 있다는 소식을 바울은 디모데에게서 듣고 큰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성도 여러분. 목회자가 제일 듣기 원하는 말 - 뭔지 아십니까? 교회가 평안하다는 것, 그리고 성도들의 신앙이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5절에서 주목할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 말씀에 붙잡혀 예수는 그리스도라 전했다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붙잡혔다" - 이 부분이 표준 새번역을 보면 "오직 말씀전하는 일에만 힘썼다"로 번역되어있는데 의미상으로는 표준새번역이 훨씬 가깝습니다. 오직 말씀전하는일에만 힘썼는데 그 내용이 무엇이었다구요? 예수는 곧 그리스도, 메시야이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 모두 "하나님 말씀에 붙잡힌"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말씀이 전파되는 일에만 힘썼다" - 다른 것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사람 비위 맞추는 것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힘썼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을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후에 이 열심을 가지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9:16) 바울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오직 복음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 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20:9) 성도 여러분. 예수 전하지 않아서 가슴이 답답해져 본적이 있습니까? 영혼이 불쌍해서 눈물흘리며 전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내 가족, 내 친구가 죽어가는데도 가슴이 답답하지가 않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여전히 유대인들은 훼방을 놓습니다. 6절을 보면 훼방하는 무리들에게 바울이 옷을 털었다고 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마태복음10:15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면서 듣지 않으면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라'했지요. 이 행동은 흔히 저주로 생각하는데 저주는 아니고 책임의 소재를 밝힌 것입니다. 행동과 말로 거역하는 유대인들에게 심판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이제 유대인들에게가 아니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선언합니다. 유대인들이 너무 복음을 받아 들이지 않자 이방인에게로 전도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유대인전도를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동족사랑이 남달랐습니다. 동족을 향한 사랑, 동족이 예수 믿고 구원받지 못함에 대한 슬픔과 고통을 로마서 9장에 고백합니다.
7, 8절에 보면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 집 식구들이 믿고 세례받았다는 말씀이 있지요. 성도가 되는 과정 :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듣고-믿고-세례받는 것입니다.
3. 환상 중에 힘을 얻는 바울(9-11)
"9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0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바울은 때때로 환상중에 주님을 만나고 힘을 얻습니다. 9절에 두가지 명령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Do not be afraid). 말씀에 붙잡혀 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환상을 통하여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 무엇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박해를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얼마나 시련을 많이 받았아요? 매도 맞고 감옥에도 가지 않았습니까? 돌에 맞아 죽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대상에 대하여도 두려워말라는 것입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는 그래도 전할만 한데 나보다 좀 나은 사람 - 경제적으로든, 아니면 사회적인 지위에서든 - 에게 복음 전하기는 쉽지가 않지요? 그러나 어떤 사람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더라도 두려워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똑같은 죄인입니다. 결과에 대해서도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면 예수를 전하면 믿을까 안 믿을까? 믿지 않는다면 공연히 헛수고 아닌가 그런 걱정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이 부분은 영어 표현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잠잠하지 말라'는 '계속 말하라'(keep on speaking)는 뜻이고, '말하라'는 '포기하지 말라'(Do not give up) '포기하지 말고 계속 말하라'는 뜻입니다. 표준 새번역에는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으라'고 끊임없이 말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으라'고 끊임없이 말한다는 것 쉽지 않습니다. '예수 믿으라'고 했는데 '너나 잘 믿어' '예수 믿는 네 사는 모습이 겨우 그꼴이냐?'하면 할말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래도 우리는 계속 말해야 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디모데후서4: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당신이나 제대로 믿어' - 이 소리 듣는 한이 있어도 계속 전해야 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이 말 한마디 못하면 벙어리교인에 불과합니다. 평생 예수 믿으면서 집사, 권사, 장로가 되고서도 아직 다른 사람에게 한번도 "당신 예수 믿으셔야 합니다" 권해보지 못한 사람 - 그런 사람있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자녀에게도 평생 "얘야 예수 믿어야 한다"한번 못하고 죽는다면 참으로 불쌍하고 불행한 부모입니다. "나도 제대로믿지 못하면서 자식에게 어떻게 믿으라고 해!" 나는 제대로 믿지 못해도 자식이라도 제대로 믿어야 할 것 아닙니까? 잠잠하지 말고 계속 말해야 합니다. 특별히 춘천중앙성도 여러분. 새성전에 가서 예배 드리면서 나혼자 좋은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면 되겠어요? "한분씩 꼭 전도하십시다" 아멘. 계속해서 잠자코 있지 말고 말해야 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9절의 명령과 함께 10절에서는 두가지 약속을 해 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I am with you) - 아무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자가 없을 것이라.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믿음을 가진 성도로서 이보다 더 큰 위로와 격려,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씀이 있겠습니까?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까지 이끌어갈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십니다.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리라" 민수기13, 14장을 보면 모두다 두려움에 싸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을 칠 때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담대하게 외칩니다.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적이 있더라도 해할 수 없습니다. 해롭게 할 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즐겨 암송하는 시편23:4말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사방의 위험에 처했을지라도 두려움 없습니다. 아무리 캄캄하고 어두운 밤길도 엄마손을 잡고 가는 아이의 마음은 편안합니다. 왜? 엄마가 보호해 주심을 알고 믿기 때문에. 또하나의 약속이있지요? 이 성중(城中)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전도의결실에 대한 보증입니다. 아직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백성이 이 성중에 많다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전하기만 해라. 이성에 믿는자가 많이 생길것이라는 보증의 약속입니다.
성도 여러분.
환상중에 바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도 모두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전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백성이 많다는 말씀. 열심히 전하기만 하면 춘천에도 구원받게 될 하나님의 백성이 많은 줄 믿습니다. "이겨놓고 싸운다" 성도의 싸움은 이겨놓고 싸우는 싸움입니다. 시기가 문제지 승리는 분명히 내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춘천에 아직은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 주변에도 많습니다. 우리 가정에도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그들이 끊임없이 복음을 들어야 믿게 됩니다.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전해야 합니다. 예수에 대해 듣지 못한 사람이 예수 믿을 수 있겠어요? 예수를 전하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들을 수가 있겠어요? 성도 여러분. 끊임없이 "예수 믿으세요" 전해야 합니다. 외쳐야 합니다. 벙어리가 되지 마세요. "예수 믿으세요" 이 소리 자꾸만 해야 자연스럽지 하지 않을수록 어색하기만 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외치기만 하면 구원받을 백성이 많이 있다는 사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정리
●바울은 고린도에서 훼방과 박해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오직 예수 전하는데에만 힘썼습니다. 그런 바울에게 하나님이 명령과 약속을 주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 무엇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 믿으시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외치기만 하면 이 성중에 구원받을 내 백성이 많도다. 성도 여러분. 평생 이웃이나 자녀에게 "예수 믿으라"는 말 못해 보신 분 있으십니까? 부끄럽게 여기시고 성전이전의 좋은 기회에 "같이 예수 믿읍시다"담대히 전하심으로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열매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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