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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전
2002-02-18 15:40:07   read : 35250



(고린도전서 3:16-17) 2002/02/10


우리가 생각 없이 그냥 살아가니 이 세상의 신비로움을 모르고 그냥 지나칠 때가 많지만,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우리는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때때로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병아리가 물 한 모금 머금고 하늘을 쳐다보고 또 한 모금 머금고 또 하늘을 쳐다보듯이, 우리도 하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두더지처럼 땅만 보면 안 됩니다. 일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하기 전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을 끝내고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늘을 자꾸 보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밤하늘에 반짝이는 영롱한 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신비롭게 생각되는지 모릅니다. 밤하늘의 별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렇게 수놓으셨고, 저 별들은 어떻게 저렇게 영롱한 빛을 뿌리는지 …. 또 별들은 수없이 많은데, 달은 오직 하나뿐인 것도 신비합니다. 수줍은 아가씨처럼 다소곳이 은은한 빛을 비추는 달, 계수나무가 있어 보이는 그 달을 볼 때마다 참으로 신비롭고 놀랍습니다. 또 태양은 어떻게 저렇게 이글이글 탑니까? 이 지구촌을 살리는 저 태양은 그 열, 그 빛, 그 부피, 그 크기가 창조 이후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 도로에 차들이 즐비하게 다니고 있는데, 그냥 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기름을 태우며 가는데, 그 기름이 땅 속에서 끝없이 솟아나와 다 감당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신비롭습니까?
신비로운 것이 어디 이것뿐입니까? 사람이 뿜어내는 탄소를 식물, 나무들이 다 마시고 산소를 뿜어내어 이 세상을 신선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 오묘한 세계를 생각하면 놀랍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별을 보고 "이상하다. 별들이 어떻게 하늘에 달려 있나?" 태양을 보고 "이상하다."라고 할 뿐이지만, 우리는 "아! 하나님께서 저렇게 지으셨구나. 할렐루야!"하게 됩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하루 살고 오늘 죽어도 신비로움에 감격하고 행복하게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것을 깨달으면 하루를 살고 끝나도 행복한 날이 되는 것입니다.자연을 볼 때마다 찬양이 솟구쳐 나오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너무나 신비로운 행복입니다.
식물을 보아도 신비롭습니다. 땅에서 자란 식물이 어떻게 꽃이 되고 잎이 되는지, 이슬 머금은 풀잎은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지, 같은 땅에서 자란 풀이 어떻게 나무가 되어서 가구로 만들어지고, 기둥이 만들어지고, 집이 지어지는지 ….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토끼를 위해 부드러운 풀을 주시고, 우리의 집을 위해 단단한 나무를 주시고, 또 만 가지 과일, 오곡백과를 주십니다.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리고 모든 피조물의 생물 세계에는 암수가 있어서, 꽃도 암꽃 수꽃이 있고, 모든 동물에도, 물고기도 암수가 있고 잠자리도 암수가 있고 빈대와 벼룩도 암수가 있어서 새끼를 낳습니다. 신비롭습니다.
처녀 총각이 결혼하면 여자의 태에서 조그만 생명체가 자라 사람이 되는데, 그 조그만 것에서 어떻게 눈 두 개, 귀 두 개, 코 한 개, 이 몇 개 … , 그렇게 정확하게 나오는지 기가 막힙니다.
우리 교우들이 아기를 낳아 교회에 처음 데리고 오면 제게 기도를 받습니다. 그때 보면 얼마나 신비한지 모릅니다. 제가 기도하기 전에 아빠를 보고 아기를 보고, 엄마를 보고 아기를 봅니다. 어떻게 그렇게 아기가 아빠 엄마를 닮는지, 국화빵입니다.
우리 교회 여직원이 작년에 결혼을 했는데, 몇 주 전에 아기를 낳아서 데리고 왔습니다. 아빠를 얼마나 닮았는지…. 제가 아기를 보며 아기 엄마에게 "참 신비롭지요?"라고 하니, "예, 너무 신비로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사람의 몸 안에 생명이 있는지, 암탉이 달걀을 품으면 거기에서 어떻게 삐약삐약 하는 병아리가 나오는지, 참 놀랍습니다.
우리 장로님들을 모시고 오스트레일리아에 갔을 때, 한 작은 동물원을 방문했습니다. 거기에서 캥거루를 보았는데, 캥거루의 몸에 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옷감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쇠가죽으로 만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으로 태어날 때부터 있는데, 거기에 새끼가 들어가서 삽니다. 신기해서 한참 보았습니다. 아주 조그만 새끼가 얼굴을 쏙 내밀더니 주머니 속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마치 "안녕?"하고 인사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 후에 다른 새끼가 얼굴을 내밀었는데, 그것은 "뭘 봐!"하는 것처럼 심술궂게 생겼었습니다. 얼마나 귀엽고 신기한지, 기가 막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보다 더 신비로운 것이 있습니다. 여인의 태 속에 생명이 잉태되는 것, 캥거루 주머니에 새끼가 있는 것, 달걀 속에 병아리가 있는 것은 불신자들도 깨닫지는 못하지만 보기는 합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이 보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깨닫지만 불신자는 알지도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가슴에, 우리의 몸 안에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알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우리 몸 안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쏙 들어와 계십니다. 참 신비롭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588년 전에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것입니다.
요엘서 2장 28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하나님께서 예언하셨습니다.
이 예언대로 여러분과 제가 성령을 받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33절에 예수님을 본 세례 요한이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저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곧 세상을 떠나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니 제자들이 아주 섭섭해하며 "주님께서 가시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라고 할 때도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 속에 있게 하시리니…" (요한복음 14:16-20)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영원토록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후에 가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영원히 계십니다. 할렐루야!
캥거루 주머니 속에 있는 새끼는 자라면 부모를 떠나갑니다. 여인의 태 속의 아기도 열 달이 지나면 밖으로 나옵니다. 거기에 영원히 있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한 여 집사님이 모 종합 병원에서 아기를 낳을 때의 일입니다. 아무리 힘써도 아기는 나오지 않고 얼마나 아픈지, 고통과 두려움으로 "주님! 주님!"하며 울부짖었답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 의사 선생님이 아기에게 호되게 꾸중을 하시더랍니다.
"야, 이놈아! 빨리 나와서 예배 드릴 생각은 하지 않고 왜 이리 꾸물대냐? 늦장 부리지 말고 빨리 나와!"
그 꾸지람을 듣고 아기가 나오더랍니다.
아기가 어머니의 태 속에 있는 것이 신비롭지만, 열 달이 되면 나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영원히 같이 계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우리가 바람을 보지 못해도 바람이 있는 것을 아는 것처럼, 성령을 보지 못해도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우리가 느낍니다. 할렐루야!
성령은 살아 계시는 영입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차를 마실 때, 친구를 만날 때, 일을 할 때도 성령께서는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Here I am!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주님께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문 밖에서 서서 두드리십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누구든지 예수 믿겠다고 마음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I will come in)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and eat with him, and he with me.)』 할렐루야!
우리가 식사할 때도 차를 마실 때도 주님의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깨끗하게 살 때 같이 계시다가 우리가 더러운 일을 하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떠나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영원히 거하십니다. 영원히 떠나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기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기쁜 것은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돈이 잘 벌릴 때 기쁘고, 자녀 교육이 잘 될 때 기쁘고, 부부가 서로 사랑할 때 기쁘고, 병에서 낫게 될 때 기쁘지만, 그보다 더 기쁜 것은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건강하고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성공해도 성령이 없으니 지옥에 가는데,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비록 이 세상의 것은 부족해도 성령이 계시니 하나님께서 계시니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를 살 때도 주님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하는 것입니다.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할렐루야!

그런데 교회당을 하나님의 성전(the temple of God)이라 합니다. 교회당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께서 열왕기상 9장 3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름이 영원히 여기에 있고, 내 마음과 내 눈이 항상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교회에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이름이 영원히 거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남자가 친구 집을 방문했습니다. 친구가 까만 옷에 단추를 달고 있었습니다.
"야, 이 사람, 자네 마누라는 무엇 하나? 왜 자네가 직접 단추를 달고 있는 거야?"
"이것은 내 옷이 아닐세."
"그러면 누구 옷인가?"
"내 마누라 옷일세."
"아니! 마누라 옷의 단추를 왜 자네가 다는 거야?"
"내가 좋아서 하는 걸."
공처가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아내가 예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제 사위와 딸이 저의 어머니께 인사 드리러 와서 밥을 먹는데, 신랑이 신부 밥 위에 반찬을 놓아주더랍니다. 신부가 신랑에게 반찬을 놓아주는 것이 아니라 신랑이 신부에게 반찬을 놓아준 후에 자기가 먹고 또 신부에게 반찬을 놓아주고 자기가 먹고….
어머니께서 저희에게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세상에! 살다 살다 별것을 다 보았다. 희한한 것을 다 보았다."라고 하셨습니다.
제 아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좋아했습니다. 만일 제 아들이 며느리에게 그렇게 하면 제 아내가 무어라 하겠습니까?
공처가를 약한 남자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내를 너무 사랑하면 공처가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소문난 한 공처가가 있었습니다. 딱할 정도로 부인에게 잘 하고 부인 말을 잘 듣는 남편인데, 하루는 부인에게 이웃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큰 소리를 막 질렀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서 수군거렸습니다.
"아이고, 저러다가 부인에게 쫓겨날라?"
얼마 후에 한 사람이 공처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어떻게 하려고 부인에게 그렇게 소리를 질렀소?"
"집사람이 '당신은 소리도 한 번 지르지 못하는 바보요."라고 해서 소리를 지른 것이오."
대단한 공처가입니다.
어쨌든 아내가 귀하면 아내를 위해 단추도 달아주고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교회를 바보처럼 사랑하고 섬기게 됩니다.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만 하나님의 성전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우리의 몸도 하나님의 집인 것입니다. 우리 몸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시니 우리도 하나님의 집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전, 교회를 헬라어로 히에론이라고 하는데, 히에론은 성전의 마당, 공원을 다 포함한 성전을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성전을 헬라어로 보면 나오스로 되어 있습니다. 나오스는 성소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the temple of God으로 되어 있지만, 헬라어 성경에는 히에론이 아니라 나오스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 중에서도 예배를 드리는 본당처럼 귀한 하나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교회 주차장이나 교육관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본당처럼 귀한 성전인 것입니다. 귀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몸을 아름답게, 단정하게 가꾸어야 됩니다. 우리 나라의 원수를 모시는 청와대는 잔디 하나, 나무 하나, 꽃 하나도 잘 가꿉니다. 청와대에 들어가 보면 휴지 하나도 없습니다. 어느 곳이나 깨끗합니다.
우리는 이 세계, 우주의 원수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있으니, 참으로 깨끗해야 합니다. 목욕도 자주 하고, 머리도 단정하게 깎아야 합니다. 머리가 길든 짧든 그것은 자유지만, 단정해야 합니다. 옷도 좋은 것이 아니라도 깨끗하고 단정하게 입고 음식도 알맞게 먹어서 매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성령께서 답답해하실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배가 많이 나온 사람은 승진에서 제외를 시킨답니다. 자기 몸 관리도 못하는 사람에게 회사 경영을 맡길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미국의 장교들도 배가 나오면 진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뛴다고 합니다.
우리는 중역이나 장교 이상인 하나님의 성령의 전입니다. 그러니 우리 몸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우리 몸을 깨끗하게 하고, 해로운 것은 먹지 말고 귀한 것을 먹어야 합니다.
좋은 말을 사려면 20억 원을 주어야 한답니다. 만일 20억 원을 주고 말을 샀다면 그 말에게 소주를 먹이겠습니까? 담배를 두 갑 세 갑씩 피우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얼마짜리입니까? 여러분 다리 하나를 일억 원에 팔라고 하면 잘라서 팔겠습니까? 여러분의 이가 하나라도 빠져 보세요. 일억 원이라도 주고 그대로 심고 싶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몸을 값으로 치면 한이 없습니다.
또 우리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이 귀한 몸, 주님께서 계시는 몸인데 아무것이나 먹고 함부로 하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생각도 거룩해야 됩니다. 내가 품은 생각을 내 아내는 모르고, 내 아내가 나쁜 생각을 품어도 나는 모를 수 있지만 성령께서는 아십니다. 그러니 거룩한 생각을 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 손으로 하는 일, 발로 가서 하는 일이 다 거룩해야 됩니다.
침례교회에서는 세례를 줄 때 사람을 물에 집어넣었다가 꺼냅니다. 봄, 여름, 가을에는 강가에 데리고 가서 강물에 집어넣고, 겨울에는 강단에 세례 욕조를 준비해 두고 거기에 집어넣습니다.
침례교회에서 한 청년이 침례를 받는데, 오른손을 자꾸 물 밖으로 내놓았습니다. 목사님이 손을 물 속으로 눌러 넣어도 자꾸만 다시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왜 이래요?"
"이 손이 침례를 받으면 저는 먹고 살 길이 없어요."
"왜?"
"저는 쓰리꾼입니다. 이 손이 침례를 받고 나면 쓰리를 못할 건데 그러면 저는 어떻게 먹고 살겠습니까?"
누가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것이 몽땅 성령에 잠겨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멸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이 말씀에 가슴이 철렁하지만, 오해하면 안 됩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설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혼자 이 말씀을 읽으면 혹 더러운 일을 했을 때 '아이고, 예수 믿는 내가 음란하거나 더러운 일을 하면 그대로 멸망하는구나.'하고 낙심해서 교회를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은 세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해석은 거짓 선지자, 거짓 선생들을 하나님께서 멸하신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는 음란한 도시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며 거룩하게 사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거짓 선지자, 거짓 선생들이 '영혼만 거룩하면 된다. 몸은 막 살아도 된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서도 음란을 행하며 막 사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하나님의 성전인 교인들을 더럽게 살도록 교육하는 거짓 선생들, 교인들을 더럽히는 거짓 선생들을 하나님께서 멸하시리라.'고 한 것입니다.
둘째 해석은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종들를 박해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멸하신다는 것입니다. 더럽힌다는 말을 헬라어로 보면 파괴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의 문을 닫고 교회를 창고로 쓰면서 목사님들을 죽인 북한을 하나님께서 망하게 하셨습니다. 교회 문을 닫고 하나님의 종들을 괴롭힌 러시아가 거지 나라가 되었습니다. 교회를 박해한 회교 나라들이 망했습니다.
교회를 파괴하는 나라는 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망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교회가 선 도시, 나라는 복이 있습니다.
셋째 해석은 경고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몸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옥에 던지십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이 말씀은 경고입니다.
마가복음 9장 43절 이하에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갖고 지옥에 빠지는 것보다 낫다.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발 없이 천당 가는 것이 발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낫다.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뽑아 버리라. 한 눈으로 천당 가는 것이 두 눈을 갖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낫다."
이 말씀에 은혜를 받고는 '아멘!' 하며 눈으로 범죄했다고 눈을 뽑아 버리고, 손으로 죄를 지었다고 손을 찍어 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 중에 손이 남아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눈이 성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눈이 백 개라도 모자라고, 손이 백 개라도 더 찍을 손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손을 찍고 눈을 뽑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정도로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너희 손은 거룩해야 하는데 그 손으로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니 손을 찍는 마음으로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자라 불리는 어거스틴도 과거가 그리워서 그것을 참느라 자기 팔을 물어뜯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거스틴이 회개한 후에도 옛날 애인이 보고 싶어 자기도 모르게 애인을 만나러 가다가 '아이고, 우리 주님께서 나 때문에, 내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리며 돌아가셨는데 내가 또 나쁜 짓을 하러 가다니…. 용서 받고 구원 받은 내가 또 그리로 가다니…. 나쁜 놈! 이 더러운 놈!'하며 자신의 살을 막 물어뜯어서 그의 팔은 흉터 덩어리라고 합니다. 몇 번이나 옛날에 죄를 지었던 곳에 가고 싶었지만 자신의 팔을 물어뜯으면서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죄를 짓는 곳에 가고 싶을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발을 찍는 마음으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보지 않아야 될 것을 알면서도 보는 때가 있는데, 눈을 뽑는 마음으로 보지 말라는 것이지, 진짜로 눈을 뽑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멸망당할 수 있다.'라는 경고를 받으면서 우리 몸을 지켜나가야 죄 많고 유혹 많은 이 세상에서 우리 몸을 거룩되이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우리 몸을 조금 멸하기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는 축복으로 병을 주셨습니다. 야곱에게도 축복으로, 천당에 보내시려고 병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너무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세상에 정과 미련이 남아서 뒤를 자꾸 돌아볼 수 있는데, 몸이 너무 아프면 '빨리 천국 가고 싶구나.'하며 쉽게 떠나게 됩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이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도 복이지만, 고통 당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 저렇게 괴로움을 당하게 하실 바에야 차라리 데리고 가세요.' 하며 사랑하는 남편이나 자식의 죽음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슬픔을 이기게 됩니다.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도 당하지 않고 갑자기 죽으면 그 가족들의 충격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니 어떤 사람에게는 병도 복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벌로, 심판으로 하나님께서 몸에 병을 주기도 하시고, 사고를 주기도 하시고, 경제를 어렵게 하기도 하시고, 가정을 어렵게 하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죄를 지어서, 내 몸을 더럽혀서 하나님께 멸함을 당하면 안 되지.'하는 걱정은 하지 말고, '내가 귀하게 살아서 하나님의 기쁘심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아야지.' 하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몸이 거룩하면 의인이 되어 해처럼 빛나게 됩니다.
사무엘하 23장 말씀대로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게 하나님께서 그 집을 비추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거룩하게 됩니까?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계시지만 우리의 본능도 있어서 성령님의 인도를 따를 때는 거룩하고 본능을 따를 때는 그렇지 못합니다. 참 신앙의 사람이 가끔 실수를 하는 것은 그의 신앙이 가짜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육신의 본능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길은 성령으로 가득 채우는 길뿐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이 영어 성경에는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성령으로 채우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물독에 물을 가득 채우듯이 우리 인격에, 우리 가슴에 성령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인격(person)이지만, 성령을 우리 속에 가득하게 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비유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냇물을 건널 때, 물이 발목까지 차면 내 마음대로 건너고, 무릎까지 차도, 허리까지 차도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냇물이 목까지 꽉 차면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가지 못하고 물결 따라 가야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성령에 민감하지 못하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죄를 지으며 살아가지만, 성령에 충만하면 성령에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행적을 쓴 것이고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전인데, 마태복음이나 사도행전이나 비슷합니다.
왜입니까? 사도들이 성령을 따라 살아 예수님 비슷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성령을 따라 살면 우리의 일기가 성경 비슷하게 되고, 우리가 다니는 길에 예수님의 흔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말씀을 드립니다.
얼마 전에 제가 가슴을 치며 크게 후회를 했습니다.
모든 만남은 하나님 앞에 있는데, 저는 1년에 아마 30개 정도의 호텔을 옮겨 다닐 것입니다. 감사한 일은 하나님께서 지난 번에 묵었던 호텔의 홋수는 다 잊게 하시고, 항상 묵고 있는 호텔의 홋수만 기억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때까지 묵었던 호텔의 홋수를 제가 다 기억한다면 얼마나 혼돈이 오겠습니까?
제가 호텔에 묵을 때마다 방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들을 돕기 위해 늘 마음을 썼습니다. 과일 껍질도 비닐 봉지에 싸놓고, 침대도 잘 정리하고, 타월도 조심해서 사용했습니다. '목사가 사용한 방은 다르구나.'라는 것을 보여 주기 애쓰며 새 돈을 준비해서 팁으로 놓아두곤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제가 그분들에게 예수님을 직접 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성령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이렇게 합니다. 첫째 날과 둘째 날에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침대 시트를 교환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는 메모지와 새 돈 몇 천 원을 놓아둡니다. 마지막 날에는 '안녕하세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이 가정에 넘치기를 기원합니다……양곡교회 목사 올림'이라는 전도 메시지를 쓰고 만 원짜리 지폐를 베개 밑에 놓아둡니다. 호텔에서 잠을 자고 난 후에 만 원을 놓아두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만 원짜리 지폐를 보면 놀랄 것입니다. 그리고 편지도 읽어볼 것입니다.
만일 그분이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분이라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제가 20년 넘도록 집회를 인도하러 다니면서 묵었던 호텔이 700∼800개나 되는데, 왜 진작 이렇게 전도하지 못했는지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일찍부터 이렇게 전도했으면 몇십 명, 몇백 명의 영혼을 구원했을 텐데 말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나는 성령의 인도대로 잘 살고 있어. 이만 하면 괜찮아.'라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더 겸손히 엎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을 열어 주십니다. 깨닫게 해 주십니다.
록펠러 집안은 철저하게 성령 중심, 말씀 중심으로 사니, 만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예수님의 흔적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워싱턴 D.C.의 한 고등학교에서 록펠러씨의 손자, 부시 대통령의 손자와 함께 공부하는 한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용돈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 자기 용돈과 같더랍니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나 그들의 용돈이나 같았던 것입니다. 세계적인 부자 록펠러씨도 미국 대통령 부시도 손자에게 용돈을 조금밖에 주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에게 돈을 많이 주면 자녀가 방탕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목사님,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라고 하겠지만, 저는 해야 되겠습니다. 돈을 많이 주면 방탕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요구하는 것보다 조금 적게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록펠러씨의 손자가 돈을 가장 알뜰하게 쓴다고 합니다. 반드시 십일조 헌금을 드려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용돈이 모자라면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여 돈을 벌어서 쓴다고 합니다.
록펠러 집안 사람들이 그렇게 사니, 그들을 만나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는 것 같은 찡한 감동을 받고, 4대가 지나도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구름 없는 아침처럼 하나님께서 세워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과거는 다 용서 받고 잊읍시다.
이제부터 거룩한 참 성전답게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갑시다. 우리의 손, 우리의 발, 우리의 눈, 우리의 온 몸이 거룩하여서 성령의 탄식거리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기쁘심이 되며,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고, 아침에 돋는 해처럼, 비 없고 구름 없는 아침처럼 주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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