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영혼의 보금자리 2002-01-29 13:11:25 read : 22438
사도행전 3 :1~10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부모가 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일단 자녀를 낳기만 하면 부모가 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부모의 의미는 그 이상입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가 새끼를 낳으면 강아지라고 하고, 그 새끼를 낳은 개를 어미 개라고 부릅니다. 그 개를 아무리 귀여워하더라도, 개가 새끼를 낳았다고 해서 어머니 개, 또는 부모 개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오직 우리 인간에게만 '부모'라는 호칭이 주어졌습니다. 존경의 뜻도 있지만 이렇게 구분하는 것은, 부모가 된다는 것이 단순히 생물학적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사회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부모는 단순히 자식을 낳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아이가 잘 자라도록 생물학적, 사회적, 도덕적으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부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식을 낳아 놓고 팽개치면 부모가 아닙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낳았으니까 부모인지 모르지만 사회적, 도덕적으로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부모가 되는 것은 자식이 올바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계속해서 만들어 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따뜻한 잠자리(이불, 베개, 담요), 기저귀, 내의, 외출복, 모자, 양말 등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잘 챙겨주어야 합니다. 아이를 가져서 출산을 앞두고 준비했던 그 옛날을 돌이켜 보십시오. 얼마나 준비할 것이 많습니까? 처음엔 저도 많이 당황했습니다. 몇 달을 두고 시장을 봐도 빠진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뿐입니까? 자식이 있을 때는 말을 삼가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는 아무렇게나 말을 했지만, 부모가 되면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말버릇을 그대로 따라하기 때문입니다. 행동도 삼가야 합니다. 자식에게 좋은 본을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명이며 의무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교회의 사명은 단 하나, 선교입니다. 믿지 않는 영혼들을 구원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새로운 영혼을 낳는 것입니다. 영혼을 낳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 교회가 아무리 화려하고 멋있는 예배가 있을지라도, 새로운 영혼을 생산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교회는 반드시 새로운 영혼을 낳아야 합니다.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영혼을 낳는다고 진정한 교회가 될까요? 그것은 생물학적인 교회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일까요? 새 신자가 날마다 늘어갈 뿐만 아니라, 들어온 새 신자들이 영적으로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여건이 구비된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교회입니다. 즉, 교회는 영적으로 자라나는 보금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영혼의 보금자리인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 해답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 있는데, 놀랍게도 교회가 이 땅에 처음 탄생한 이후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120 문도(門徒)에게 성령이 임해서 모두가 성령 충만을 받게 된 후 베드로가 설교를 합니다. 그 설교를 듣고 그 날 하루만에 3000명이 주님 앞으로 돌아와서, 그 날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저 교인이 된 것이 아니라, 제자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120 문도(門徒)와 사도들은 하루에 3000명이나 몰려든 그 교인들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보금자리를 만들어 갔다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제가 설교했는데, 3000명이 몰려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 교회가 그 3000명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요? 여기에 100명의 헌신된 지도자만 있다면 3000명이 아니라, 5000명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평신도 지도자입니다. 이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120 문도(門徒)가 이미 성령 충만을 받았고, 주님과 함께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비록 3000명이 몰려 왔지만 그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다고 증언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영혼이 자라나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배우는 교회
42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놀라운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는 성령 충만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43절을 보세요.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기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흔히 이런 기적이 일어나게 되면 한가지 특징을 볼 수 있는데, 말씀을 등한히 하는 것입니다. 기도원 같은데서 병이 낫고, 기적을 맛본 사람들은 간증을 많이 하고 무엇을 느끼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 깊은 곳에 '내가 성령님과 직통했는데, 무슨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가?' 라는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초대교회는 성령의 은사를 맛보고 난 직후에 이들은 사도들 무릎 앞에 앉아서 간절한 마음으로 가르침을 받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가? 말씀을 배우려는 열의가 가득 찬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고 말씀합니다. 새로 거듭난 영혼들이 말씀을 배울 수 있는 여건이 잘 형성된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새 신자들이 말씀을 배울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하루는 아동심리학을 전공하는 의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한국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아이는 영어를 좀 하는데, 부모가 영어를 못하니까 와서 통역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6세쯤 됐는데, 몸이 아주 작고 말랐어요. 병원에서 진단하기로는 육체적으로는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아이가 밥을 안 먹는다는 것이었어요. 부모가 따라다니면서 수저를 들고 다니는데, 아이는 밥에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애가 키가 안 크고 마를 수밖에 없죠.
드디어 이 의사의 상담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연히 아이에게 질문을 많이 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이 의사는 부모에게 자꾸 질문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식사습관을 물어야 하는데, 이 의사는 "아버지는 식사하실 때 어떻게 잡수십니까?" "저야 신문보고 책 좋아 하니까 책보고 먹죠." "어머니는 어떻게 하십니까?" "요리를 더 하기도 하고 ..." "같이 식탁에 앉아있지 않습니까?" "예, 같이 앉아 있지 않습니다. TV도 보면서 먹습니다." 부모들의 얘기를 다 들은 후, 그 의사의 처방은 간단했습니다. 앞으로 6개월 동안 부부가 같이 식사를 하는데, 아이 앞에서 밥을 맛있게 먹어달라고 했습니다. "밥을 어떻게 맛있게 먹습니까?" "그게 안 되면 몇 끼를 굶으십시오." 그런데 6개월 후 그 아이의 부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통역을 해줘서 고맙다는 전화였습니다. 제가 궁금해서 "아이가 어떻게 됐습니까?" "고쳤습니다" "어떻게요?" 의사가 시킨 대로 부부가 밥을 마구 퍼먹으면서 "맛있다 그지?" 하면서 먹었더니 아이가 밥을 먹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6.25 이전 세대를 보면 밥을 맛있게 드십니다. 그 당시엔 음식이 귀했으니까 한 그릇씩 떠 주지 않고, 밥상 가운데에 보리밥 한 그릇 비벼 놓으면 식사 기도 마치자마자 한 숟갈이라도 더 먹으려고 퍼먹기 시작합니다. 제가 영안 교회 와서 어느 집사님들과 영덕 게를 먹으러 갔는데, 식탁 한 가운데에 게를 쌓아서 두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게를 먹어 본 적이 없어서 먹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 전부 6.25사변 이전에 태어나신 분들이 다 앉아 계셨는데, 하여튼 영덕 게 앞에서는 목사고 집사고 없더군요. 저는 한 마리 겨우 먹었는데, 벌써 다른 분들은 서너 마리씩 드셨어요. 다음에 식사하러 가면 그분들 옆에 안 앉으려고 합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분들과 식사를 하면 밥맛이 납니다. 그분들은 뭐든지 맛있게 드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새 가족들이 말씀을 열심히 배우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가? 방법은 먼저 믿은 자들이 말씀을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목회를 오래 하지 않았지만, 여러 교회를 순방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강단에서 설교를 해보면 그 교회의 건강상태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받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시계를 자꾸 들여다보거나, 좁니다. 어떤 성도는 아예 예배 시간에 잡니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제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말씀을 잘 받습니다. 성도들의 눈빛이 반짝반짝합니다. 그런 교회는 건강한 교회이며, 새 가족들이 들어오면 보금자리를 만들어서 성숙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2절에서 말씀합니다.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같이'입니다. '갓난아이들 같이'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갓난아이들 같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지 않고 견딜 재간이 있습니까? 아이는 젖을 먹을 때까지 웁니다. 독일 군들이 많은 생체실험을 했습니다. 배가 고파 우는 아이들에게 젖을 주지 않고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배가 고파 아사(餓死)하는 것이 아니고, 울다가 지쳐서 죽더라는 겁니다. 사도 베드로가 이 말씀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고 종국적인 구원까지 성장할 수 있는가? 갓난아이 같은 태도로 간절하게 말씀을 사모하라고 말합니다.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가? 어떤 교회가 새 가족이 와서 잘 자랄 수 있는 보금자리가 완벽하게 갖춰진 교회입니까? 말씀을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가득 찬 교회인줄 믿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고, 알고자 하며, 받아들이고자 하는 열의가 용솟음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사랑하는 교회
42절을 다시 보십시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교제'에 대해 좀더 풀어 설명한 곳이 44절에서 46절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그 당시 초대 교회에서는 내 것을 내 것이라고 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서로 필요에 따라 자기의 것을 나누어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저 사람이 채워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욕심이 사라지고 가치관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교회란 어떤 곳인가? 가치관이 바뀐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욕심이 사라진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돈에 목숨건 곳입니다. 겉으로 멋있게 다른 말로 얘기하지만 종착역에 도달하면 돈입니다. 돈 문제가 걸리면 부모, 형제, 친구, 모두 필요 없습니다. 사생결단을 하고 달려드는 곳이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렇지 않음을 새 신자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교회 안에 가치관이 바뀌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교회에 오래 출석했고, 겉모습은 다 치장되어 있다는 이유로 지도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 깊이 들어가 보면 세상 사람의 가치관과 전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욕심이 꽉 차 있습니다. 말로는, 물질은 다 하나님 것이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자기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모을까 궁리합니다.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은, 세상 사람은 자기의 힘으로 돈을 모으지만, 교회 안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힘을 빌어서 돈을 모으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왜 새 가족들이 와서 자라나지 못하고 실족하고 돌아가는가? 교회 안에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구원받고 성령 충만한 사람은 이 세상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는 법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자족합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다 두고 떠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게 되면 이전에 보이지 않던 가난한 자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내가 그토록 애써 모았던 저금 통장을 과감하게 터는 겁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것이며, 이것이 참된 교회의 모습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젊은 부부가 수년간 모은 1000만원을 형제자매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간에는, 우리 교회 성도가 아닌 사람이 방송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았다고 현금 300만원을 들고 왔습니다. "목사님, 이것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주십시오. 영안 교회가 구제 사업하는데 써주십시오" 하면서 이름도 남기지 않고 떠나갔습니다. 한 집사님은 부부가 상의하여 그렇게 아끼던 다이아몬드 결혼반지를 과감히 팔아 가난한 사람을 도왔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들이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이 일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계속해서 하십시오! 우리 교회 지도층에 있으면서, 교회에 오래 다녔지만, 사랑의 헌금에 동참하지 않는 분들은 이 일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를 참된 교회의 모습으로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무엇으로 새 신자들이 교회와 세상이 다름을 알까요? 사랑뿐입니다. 초대교회는 자기의 재산을 과감하게 이웃과 나누었습니다. 믿은 지 수십 년 되어도 십일조조차 바치지 못해 부들부들 떠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한국 교회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교회가 변화되고 새 가족들이 이곳에 와서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
서울의 한 큰 교회는 전 교인이 장기기증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저도 이 일을 발표하고 전 교회가 이 일에 동참할 것입니다. 장기기증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어떤 교회는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교인들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가 복음을 가르칠 수 있는 길은 뜨거운 예배가 아니며, 화려한 건물이 아닙니다. 많은 숫자가 아닙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필요한 줄 믿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이 일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랑을 자녀에게 어떻게 심어줄 수 있을까요? 심리학자들은, 그런 사랑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고 얘기합니다. 그것은 부부끼리 서로 사랑하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부모가 자식은 끔찍하게 사랑합니다. 그러나 부부끼리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부정적인 것으로 세뇌교육을 시킵니다. "네 아버지가 젊었을 때 얼마나 내 속을 썩힌 줄 아니?"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는 친구가 주님을 믿지 않았을 때 저에게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어렸을 때의 소원이 '언제 커서 아버지를 한번 손봐주나!'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 친구의 어머니가 날마다 아버지 욕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요. 이런 가정에서 자녀들이 무슨 사랑을 배우겠어요?
자녀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것은 부부간의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짜 사랑해서 안고도 있지만, 어떨 땐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일부러 집사람을 안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집사람과 저의 사이에 못 오게 합니다. 그리고 가끔 집사람과 데이트를 나갑니다. 그러면 호진이가 어렸을 땐 못나가게 막았습니다. 그럴 때 광진이가 옆에서 호진이를 다른 방으로 끌고 가서 한방 먹입니다. "이 자식, 입 다물어!" 그리고 지난 어버이날에 광진이가 40,000원을 봉투에 넣어서 주면서 데이트하고 오라고 주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새 신자들에게 사랑을 입으로 가르치겠습니까? 먼저 믿은 자들이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며 하나되지 못하면서, 들어오는 새 신자들에게 하나가 되라고 가르치겠습니까? 그런 교회는 새 가족들이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회자 회의에서 어떤 교회가 부흥하느냐에 대해 말씀하시며, 싸움을 안 하는 교회는 부흥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목회를 해보니 그 말씀이 진리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 교회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교회는 저절로 부흥하는 겁니다. 서로 싸우지만 않으면 말입니다. 여기 앉아 있는 분들은 모두 먼저 믿은 자들입니다. "내가 증인이 되겠나이다" 라고 하셨다면 증인이 되십시오. 그렇게 되면 수많은 영혼들이 이 자리를 채울 것입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새 가족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새 가족의 신앙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섬기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성도들간에 서로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믿는 자의 가정을 들여다보니 사랑하는 가정입니다. 성도들의 부부관계를 보니 뭔가 달라 보입니다. 부모와 자녀간의 사이를 보니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른 점이 많습니다. 이렇게 서로사랑해 나갈 때, 새 가족들, 세상에서 버림받아 영혼이 시들했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그 영혼이 무럭무럭 자라날줄믿습니다.
3. 예배하는 교회
46절을 보십시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초대 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고 집에서 떡을 뗐습니다. 교회에서 모이고, 집에서도 소그룹으로 모이고, 모이면 음식을 해 먹고 나누어야 합니다. 교인들은 먹을 것만 탐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음식을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음식을 같이 먹는 사람들은 친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친한 사람하고 술 한 잔 하며 삼겹살 구워먹지, 처음 만난 사람과 식사하면 소화 잘 안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오픈해서 날마다 음식을 해서 나누어야 합니다. 음식 나눔을 통해서 교제가 됩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모였습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나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거룩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새 가족이 잘 정착하고 교회가 건강한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예배드리는 것을 보면 됩니다. 예배시간에 지각하지 마십시오. 만약 중요한 계약을 하기 위해 상대방이 이곳에 온다면 여러분은 늦게 오겠습니까? 어쩌다 한번 늦는 것이 아니라, 매일 늦는 사람이 계속 늦습니다.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배가 살아나야 합니다. 정말 마음속 깊이 기쁨으로 찬양하고, 박수도 힘차게 쳐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전심으로 참여하다 보면, 신앙은 자연스럽게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 드리러 올 때, 하나님께서 오늘 어떤 말씀을 내게 주실까 기대하며, 일찍 와서 기도로 마음을 준비하고, 찬송할 때는 기쁘고 간절하게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하고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신앙이 자라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영광을 돌릴 때, 주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하나님 앞에 가장 합당한 사람으로 조율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조율함을 받아야 합니다. 내 영혼의 부족함과 잘못된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고침 받고 돌아가는 겁니다. 예배 한번 잘 드리면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고, 심령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때로 예배시간에 병이 낫는다는 간증이 이런 이유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영혼이 고쳐지니까 육신도 고쳐지는 것입니다. 우리 영안 교회가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등록한 교인들을 상담하며 "왜 우리 교회에 등록하려고 합니까?" "제가 20년 동안 교회에 나갔는데, 예배에 감격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교회에서 처음 예배드리는 순간 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목사님!" 이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도록 모일 때마다 전심으로 예배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기뻐하시는 예배로 회복되는 아름다운 일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4. 선교하는 교회
47절을 보십시오.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그 날 하루에만 3000명이 구원받았는데, 그 후엔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 생겼다고 얘기합니다. 이것이 교회의본래 모습이었습니다. 1년, 2년이 지나도 새로운 사람이 정착하지 않고, 오는 것 같더니 다 빠져나가고, 오는 것 같더니 없어지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영혼의 보금자리 역할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거기 모인 자들이 예배를 드렸는데, 믿는 자들에게서 뿐 아니라,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영혼의 보금자리가 되는 교회는, 그 교회 교인들이 가는 곳마다 칭송을 받아야 됩니다. 가정에서, 반상회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어느 곳에 가든지 그 교회 성도들이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교회, 그런 교회가 영혼의 보금자리노릇을 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봅시다. 한국에서는 기독교 신자들을 싫어합니다. 지난주에 의사인 친척을 만났습니다. 참 좋은 사람이긴 한데, 예수를 안 믿습니다. 그래서 왜 예수를 안 믿느냐고 물어 보니, 그 날엔 마음 문을 열고 "그래, 이제 박 목사가 주지 목사가 되었는가?" 그러면서 비꼬는 것입니다. 제가 자세한 얘기를 했더니, 진심을 털어놓았습니다. 그의 할머니는 너무나 독실한 신자였는데, 그 할머니로 인해 넌더리가 나서 예수를 안 믿는답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가정에서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 손자가 넌더리가 났겠습니까? 오늘날 이런 경우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새로운 영혼들이 오면 그들로부터 이 교회에서 칭송이 퍼져나가야 하는데, 나쁜 행위들이 자꾸 퍼져 나갈 때 이 교회는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칭송 받고 있습니까? 남편(아내)에게, 자녀에게, 직장 동료에게, 친구들에게 칭송 받고 있습니까?
IMF 체제에 들어서면서, 고아 아닌 고아들이 고아원을 많이 찾습니다. 하루는 TV를 보면서 정말 마음이 아픈 장면을 보았습니다. 기자가 취재를 하는 중에, 6살 난 아이가 너무 처량하게 울어서 "넌 뭐가 그렇게 슬퍼서 우니?" 하고 기자가 물었습니다. 엄마가 자기를 여기 데리고 와서는 다음날 과자를 많이 사 가지고 올 테니까 여기 잠시만 있으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록 엄마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달이 지난걸 어떻게 아니?" 하고 물었더니 달력에 매일 표시를 해 놓고 날짜를 세고 있었습니다. 6살 된 아이가 정말 똑똑합니다. 그런데 그 고아원 원장의 얘기에 가슴이 더 아팠습니다. 그 아이가 다른 아이와 다르게 머리가 좋은데, 잘 때 베개를 꼭 껴안고 흐느껴 운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보면 자는 척 하는데, 눈물이 줄줄 흘러서 베개가 다 젖어 있답니다. 자신의 자녀를 버리고 어머니가 떠난 겁니다. 그런 아이가 한두 명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심각한 일은, 이 세상에 영적인 고아들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영원한 세계도 모르고, 그저 이 세상만 알고 방황합니다. 그들 마음속에도 뭔가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이끌어 줄 사람이 없고, 교회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방황합니다.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지금도 그들의 영혼을 위한 보금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누가 그들에게 영혼의 보금자리를 내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한번 이 일을 해보지 않겠습니까? 영혼의 문제로 말미암아 가정이 깨어지고, 죄악 가운데서 고민하며, 고아와 같이 방황하는 저 수많은 영혼들을 우리가 품고 이곳에 모시고 나와서, 그들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신앙이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우리가 그들을 위해 이 영안 교회를 영혼의 보금자리로 만들어 보지 않겠습니까?
교회가 무엇입니까? 이런 건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교회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들으며 여러분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합당한 영혼의 보금자리입니까? 당신 스스로 배우는 일에 얼마나 열심을 다해 합니까?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십니까? 시간이 없어서 성경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순위에 올라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공부 하는데 1시간에 10만원씩 준다고 하면 참석 안 하겠습니까?
주님과 영혼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수입의 얼마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저라고 왜 고민이 없겠습니까? 제 나이에 모아 놓은 재산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 고민이 생깁니다. 내가 돈을 모아야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을 줄 몰라서 안 모으겠습니까? 그러나 때로 누군가를 도우며, 돈을 모으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볼 때, 이런 저를 어리석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들도 저를 어리석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확인한 것은 이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이 세상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니 족한 줄로 여기고, 남을 도와야 하는 겁니다. 사랑의 표현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물질을 맡기셨습니다. 많은 것 가운데 남은 것으로가 아닌, 여러분을 정말 희생해서 남을 도와 본 적이 있습니까? 지난 수십 년 간의 신앙생활 동안 하나님 앞에 내놓을 사건이 있으십니까? 예배의 감격이 있으십니까?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계십니까? 자녀들이 여러분을 칭찬합니까? 아내가 여러분을 인정합니까? 남편이 여러분을 사랑합니까? 이 질문들이 우리 자신을 거울과 같이 비춰주는 조명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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