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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발톱의 은혜 / 신32:10-12 2005-10-14 13:33:52 read : 65536
독수리 발톱의 은혜
신명기 32장 10~12절
전에 저를 금란교회로 파송해주신 고 이경재 감독님의 간증 가운데 “팔아먹은 은혜”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목사님이 학교에 다닐 때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그 반에서 공부를 제일 못하는 학생이 연애편지를 써달라면 써주고 공부를 가르쳐 달라면 가르쳐 주었는데, 나중에 그 사람은 돈을 잘 벌어서 부자로 잘사는데 이 목사님은 전도사 생활을 하면서 너무나 가난해서 신혼생활에 땟거리가 없어 금반지도 팔아먹고 옷도 팔아먹고 심지어 놋대야도 다 팔아먹었다고 합니다. ‘저 형편없는 친구는 잘사는데 나는 왜 요 모양 요 꼴인가’ 하고 원망스러운 생각도 들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밤에는 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찬송을 부르는데, “나의 모든 보배는 저 천국에 쌓였네. 나의 평생 자랑은 십자가뿐이로다” 하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부자 친구는 6.25 사변이 터졌을 때 재산 때문에 피난을 못 나왔고, 이경재 목사님은 가볍게 피난 나와서 축복 가운데 목회를 잘하며 잘살고 있다고 하시면서 “팔아먹은 은혜”도 있다고 하는 말씀을 감명 깊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 새 중의 왕이라고 하는 독수리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옵니다. 특히 여호와 하나님을 독수로 비유한 말씀이 몇 번이나 나옵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32장 11~12절에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한 말씀같이 독수리는 그 새끼를 모질게 훈련을 시킵니다. 절벽 바위틈에 집을 짓는데 제일 밑에는 가시나무 가지를 물어다가 얼기설기 둥지를 틀고 그 위에는 토끼 같은 짐승의 가죽을 덮고 그 위에 자기 가슴에서 털을 뽑아 푹신푹신하게 깔아놓고 알을 까서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 키웁니다. 이제 웬만큼 자라면 새끼를 등에 업고 하늘 높이 올라가서 떨어뜨리면 새끼는 죽는 줄 알고 죽을 힘을 다 써서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보다가 기진맥진하여 저 밑으로 떨어지려고 하면 어미가 지켜보다가 떨어지기 전에 쏜살같이 내려가 다시 등에 업고 높이 올라가서 또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훈련시키려고 날갯짓을 하며 등에 업히라고 하면 푹신푹신한 둥지에만 앉아 있으려고 뒷걸음치며 새끼가 업히려고 하질 않는다고 합니다. 어미는 하는 수 없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부드러운 털도 흩어버리고 그 밑에 있는 짐승의 가죽도 들추어버립니다. 그러면 그 밑에 가시나무만 남으니까 찔려서 앉아있을 수가 없게 됩다. 그러면 하는 수없이 어미 등에 업혀서 나는 훈련을 받는다고 합니다. 어미 독수리는 그 새끼를 편안한 보금자리에 앉아만 있게 하지 않고 그 날카롭고 무서운 발톱으로 둥지를 다 흩어버리고 혹독한 훈련을 시킵니다. 본문 11절에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라고 한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훈련시키시고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날도 독수리와 같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우리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무섭게 흩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건강을 흩어버려 장미빛 같던 얼굴이 창백해지며 건강을 잃기도 하고, 넓고 좋은 집에 살던 사람이 사업이 망해서 사글셋방살이를 하게도 되고, 반석같이 탄탄하던 사업이 하루에 부도가 나 무너지기도 하고, 수십 층 빌딩이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리기도 합니다. 고통과 질병과 슬픔을 통하여 고통과 질병과 슬픔이 없는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면 안 되고 두려워하거나 낙심하면 안 됩니다. 그 무서운 독수리의 발톱이 하나님의 큰 은혜요,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경재 감독님 말씀대로 재물이 없어지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골에서 목회할 때 논에서 김을 매는 것을 보니까 뿌리가 지나치게 무성하고 깊이 뿌리를 내리면 손으로 끊어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땅 속 뿌리가 너무 무성하면 위에 있는 벼 이삭이 충실치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벼의 입장에서는 고통스럽지만 뿌리를 사정없이 끊어준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534장 4절에 “큰 풍파 일어나는 것 세상 줄 끊음일세. 주께서 오라 하시면 내 고향 찾아가리” 하는 가사와 같습니다.
어느 맷오리 한 마리가 먼 나라를 향해 하늘 높이 날아가다가 너무나 배가 고프고 피곤하니까 혼자 떨어져서 쉬어가려고 어느 집 지붕에 내려 앉았습니다. 지붕에서 내려다보니까 마당에 자기와 비슷한 집오리들이 고생도 안 하고 편안히 먹고 잘 지내더랍니다. 그 맷오리가 주린 배나 좀 채우고 잠시 쉬었다 가려고 내려앉아 모이를 실컷 먹고 나서는, ‘조금만 더 쉬었다 가자’ 하고 하루 이틀 지나다보니 살이 뒤룩뒤룩 쪄서는 막상 날아가려고 해도 지붕 위에까지밖에 날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집오리들과 살다가 어느 날 잡혀서 오리구이가 되어 먹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달리 저 높은 곳, 천국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같이…”. 여호와 하나님은 왜 독수리의 발톱같이 인정사정없이 보금자리를 흩어버리실까요?
1. 창공을 바라보게 하시려고
독수리 어미는 자기 새끼가 부드러운 보금자리에서 둥지 안만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원치 않고 높고 푸른 창공을 바라보고 힘 있게 날아오르기 원하기 때문에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정없이 보금자리를 헤쳐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도 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흉년을 맞아 국무총리가 된 요셉이 있는 애굽으로 이주해가서 편안히 살게 되니까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에 요셉을 모르는 바로왕이 나타나 벽돌을 굽게 하며 채찍으로 내리치고 혹독한 노동을 시켰습니다. 그제서야 약속의 땅 가나안을 사모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출애굽기 3장 9절에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애굽의 보금자리를 바로라고 하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흩어버리셨습니다. 이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가나안 땅을 바라보게 되었고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부흥집회에 한 젊은 목사가 참석했는데 한쪽 눈이 돌아가서 잘 보지 못하더랍니다. 집회를 마치고 강사 방에 들어와 자기는 누이동생이 홧김에 집어던진 물건에 눈을 맞아 보지 못하게 되어서 그 후부터 누이동생을 걸핏하면 때리고, 비관하고, 폭악해져가고, 술만 퍼마셨는데 어느 날 교회에 나가 십자가를 발견하고 영의 눈이 열리게 되서 기쁨과 행복 가운데 살게 되었다고 하면서 “내 눈 하나와 그리스도와 바꾸었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패배와 실패를 당하여 “나는 별 수 없는 삼류인생이야” 하며 자포자기 하지 말고 눈을 들어 창공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큰 꿈과 기대를 가지고 멀리 바라보십시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린 것 같아도 사방이 꽉 막혀서 도저히 나아갈 길이 없어도 눈을 들어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이 절망적인 환경이 바뀔 것을 믿고 기대하십시오. 하나님께는 절망이 없습니다. 시편 121장 1~2절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했습니다. 산과 바다와 별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땅만 내려다보며 한숨만 짓지 말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큰 기대를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기대와 소망을 품으라고 하십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고 하십니다.
유명한 Oral Roberts 목사님은 언제나 시키는 인사말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Something good is goning to happen to you).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바라는 것이 없고 기대하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도 어떻게 해 주실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시시때때로 찾아와 속삭입니다. “너는 별 수 없는 존재야. 네 인생은 끝장난 거야”, “너는 가방 끈도 짧고 특별한 재능이나 이렇다할 능력이 없지 않냐?”, 혹은 “너는 사실 가망이 없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아. 골치 아픈 세상 더 살 필요 없이 깨끗이 끝내버려”라고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런 마귀의 거짓말에 속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이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귀한 존재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불안 마귀야, 의심 마귀야, 물러가라” 하고 꾸짖어 물리치고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날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앞길도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또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감싸고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항상 나를 따라다니고 있음을 감사합니다” 하고 승리와 축복을 생각하십시오. 멋지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십시오. 암탉과 함께 모이를 쪼고 있는 한 독수리와 함께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눈을 들어 높은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독수리의 눈을 보십시오.
2. 믿음의 날개를 튼튼하게 하시려고
폭풍이 몰려올 때 다른 새들은 들어가 숨지만 독수리는 가슴을 펴고 그 폭풍을 타고 높이높이 오릅니다. 이렇게 새 중의 왕이 되려면 보금자리에만 편안히 있으면 안 되니까 독수리는 그 무서운 발톱으로 부드러운 보금자리를 사정없이 흩어버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날개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강제로 보금자리에서 나와 하늘을 날게 만드는 것입니다.
편안하면 믿음의 날개가 힘이 없습니다. 세상의 달콤한 것만 계속 먹으면 믿음이 약해집니다. 가끔은 즐거운 시간도 갖고 맛있는 것도 먹을 필요가 있겠지만 항상 맛있게 먹고, 편안하고, 육신쾌락만 추구한다면 영성이 쇠퇴합니다. 어려운 질병에 걸리거나 경제적으로 실패할 때, 사랑하는 식구가 위태로울 때,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도하게 됩니다. 독수리는 폭풍이 불어올 때 그 폭풍을 타고 구름 위로 높이 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이 좋아서 독수리의 발톱으로 보금자리를 흩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0~33절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유익을 위해서 고난과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이지 고통 받는 것이 좋아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또 시험 당할 때는 버림 당한 것 같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 보이지만 반드시 이길 힘을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지렛대를 활용하면 옮기지 못할 바위가 없습니다.
3.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고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보금자리면 의지하고 있던 새끼들이 무서운 발톱이 그 둥지를 다 흩어버릴 때 가시만 남아 찌르고 아프니까 마지못해 어미 등에 올라탑니다. 정말 새 중의 왕이 되는 길은 어미 등에 업히는 것인데 보금자리만 의지하고 안주하려들 때 하는 수 없이 무서운 발톱으로 보금자리를 흩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하나님 외에 사람이나 물질이나 권세를 더 의지할 때 괘씸히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15일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데 40년이나 배회하며 광야에서 고생시킨 것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광야에서는 집도 지을 수 없습니다. 즉시 세웠다 헐었다 하는 천막뿐입니다. 복덕방도 없고 은행도 없습니다. 슈퍼마켓도 없고 쌀가게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만나도 며칠 분씩 쌓아놓으면 즉시 썩어버립니다. 물질이나 사람이나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거나 사랑하면 안 된다는 것을 훈련시킨 것입니다. 최근 제가 만난 어느 목사님은 제일 사랑하고 믿었던 장로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더랍니다. 저도 헌금 많이 할 것이라고 믿고 의지했던 장로가 배신하므로 세계가 떠들썩하도록 고통과 시련을 당했습니다. 목사는 하나님만 의지해야지 사람이나 물질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17장 7절에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물질이나 재산을 아무리 쌓아놓아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놓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안 먹고 안 쓰며 하나님께도 안 드리고 자식한테 물려줘봤자 다 쓸 데 없는 일입니다. 남편한테는 사랑 못 받았지만 자식한테는 효도 받으며 행복하겠지, 하지만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친구도, 자식도, 아내도, 의지하지 마십시오. 세상 것은 의지한 만큼 상처를 받습니다. 영원히 실망시키지 않는 친구는 예수님뿐입니다. 만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참 만족을 주십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2005년 8월 28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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