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라(2) 2002-10-16 12:03:48 2002-10-06 // 호세아 11:1~11 - 불변적 사랑 - Ⅰ. 이스라엘의 변절(호 11:5~7)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변덕과 불신앙, 배신과 배반, 배은과 배약은 실로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부요, 아니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호 11:1). 우리 성경은 저희가 애굽 땅으로 다시 갈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애굽으로 다시 가려한다고 하였습니다(호 11:5, 9:3). 지난날에 저들은 한 장관을 세워서 애굽으로 다시 되돌아가자고 선동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 일이 있었습니다(민 14:1~4). 그리고 애굽의 고기 가마를 그리워하면서 하늘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를 싫어한 일도 있었습니다(출 16:1~3, 민 11:1~9). 저들은 다시 애굽으로 되돌아 갈 수 없는 특별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저들은 이미 종되었던 애굽에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들을 앗수르 사람들에게 붙였습니다(호 11:5). 저들은 순전히 저들 자신의 인위적인 생각과 수단으로 하나님을 떠날 것을 계획하고(plan), 설계하고(design), 모의하고(counsel),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행동을 감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저들을 앗수르의 칼과 빗장에 넘겨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저희의 계책을 인함이니라」(호 11:6)고 하였습니다. 다시 호세아 11장 7절에는 저들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 곧 지극히 높으신 자신에게로 돌아오라고 불러도,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머리를 들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려고 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이미 세속에 온전히 빠져버린 상태였음을 뜻합니다. 그들의 생각, 그들의 계획, 그들의 말, 그들의 행동 모두가 세상적이요 마귀적인 계책으로 충만해져 버린 상태였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그 자체가 거짓과 위선뿐이라고 하였습니다(호 12:1). 실로 죄로 인하여 타락하고 부패한 사람들의 소행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타락한 계책(호 11:6)을 호세아 12장 1절은 다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날마다 거짓과 포학을 더하며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호 12:1)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동풍을 따라 가고, 바람을 먹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헛된 것, 공허한 것, 잡을 수 없는 것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속을 좇아 미친 듯이 달려가는 이스라엘의 배신과 배약과 배은을 나타내고 있는 말씀입니다. 실로 사람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절의 모습들입니다. Ⅱ. 하나님의 불변적 사랑(호 11:8~11)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변절은 극에 달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사랑은 변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불변적인 사랑의 표현을 보십시오. 1. 내가 너를 놓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호세아 11장 8절에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어찌’라는 말은, 사람으로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전제하고 하는 말입니다.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나의 손에 있는 너를 남에게 결코 넘겨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9절에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내가 너를 버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호세아 11장 8절에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버리겠느냐’라는 말은 특별히 ‘원수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원수는 애굽이요, 앗수르요, 바벨론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저들에게 내어준 듯하였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려는 징계의 수단이요, 성화의 수단이요, 구원의 수단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또 이 말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 버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부요, 아니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녹이고 연단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3. 내가 너를 멸망시킬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호세아 11장 8절중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아드마’나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에 접하고 있던 이웃 성읍들로,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불심판을 받을 때 함께 멸망해버린 곳입니다(창 14:2, 6, 신 29:23). 저 성읍들은 멸망의 표본들이었습니다. 결코 이스라엘에게는 그럴 수가 없다는 하나님의 자기 사랑의 주장입니다. 4. 너를 향한 내 마음은 확고부동하다고 하였습니다. 호세아 11장 8절에 또 말하기를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나 여호와의 사랑이 심히 뜨거워져 있는 상태라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내 마음이 돌아왔다’는 말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심판(징계)에서 구원의 사랑으로 돌아서신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때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공의성입니다. 그러나 저들이 애굽에서, 앗수르에서, 바벨론에서 매맞는 것을 보신 하나님은 또한 그 속에 있는 긍휼(자비의 사랑)로 불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식을 향한 공의의 부성(父性)에서, 자식을 향한 사랑의 부성(父性)으로 돌아왔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죄에 대한 심판에서 구원의 사랑으로 돌아서신 것을 말합니다. 그 공의와 사랑의 교차 선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불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할퍼(Harper)는 이 사실에 대하여 ‘여기 정의의 명령과 사랑의 요구 사이에 갈등하고 있는 선지자의 마음의 투쟁을 읽을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 원문의 뜻은 ‘하나님의 마음이 온전히 뜨거운 그의 긍휼 하나로 넘쳐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옛날 요셉은 동생 베냐민을 보고, 아우로 인하여 그 마음이 불타는 듯 하므로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 울었다고 하였습니다(창 43:30).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어찌 여기에다 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호세아 11장 9절에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확실하고 분명한 뜻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 자기 사랑의 확고부동함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창세전의 하나님의 마음은 멸망이 아니고 구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큰 이유는 바로, 그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호세아 11장 9절 중에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범죄하고, 타락하고, 배신하고, 배약하고, 배은하고, 배반한 이스라엘을 놓을 수 없고, 버릴 수 없고, 멸망시킬 수 없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Ⅲ.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에 불변하십니다. 오늘 주어진 본문은 죄인을 향한 그의 사랑이 변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말라기 3장 6절에도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본문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사랑의 불변성을 전제하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1. 하나님은 그 본질이 불변하십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은 그 약속(언약)도 불변하십니다. 히브리서 6장 18절에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가지 약속은 변치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구원과 축복에 대한 약속이요, 둘째는 그 성취입니다. 그래서 민수기 23장 19~20절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은 그의 권능이 불변하십니다. 이사야 48장 12~13절에 「야곱아 나의 부른 이스라엘아 나를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에 폈나니 내가 부르면 천지가 일제히 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창조와 통치와 섭리의 권능입니다. 4. 하나님은 그 공의가 불변하십니다. 창세기 18장 25절에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라고 한 아브라함의 기도에서 이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 성경에는 하나님 자신의 자존성(출 3:14, 요 1:1), 무한성(절대완전성-시 145:3 ; 절대영원성-시 90:2, 엡 3:21 ; 편재성-시 139:7~10, 행 7:48~49), 유일성(신 4:35, 6:4), 등을 무수하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존, 하나님의 불변, 하나님의 무한, 하나님의 유일성 등은 바로 그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라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그는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자존자이시요, 사람은 유한자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요, 사람은 그에게 지음을 받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요, 사람은 상대자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자이시요, 사람은 그분에게 구원을 받아야 할 멸망받을 절대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며, 하나님의 길은 사람의 길과 다르고, 하나님의 판단은 사람의 판단과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고 하였습니다(사 55:8~9) 사무엘 선지자는 영감 속에서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 15:29)라고 하였습니다. 영감의 사도 바울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3, 36)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라!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신, 망, 애가 있습니다. 사람은 죄로 인하여 약합니다. 환경과 여건에 따라 시시 조석으로 잘 변합니다. 배신하고, 배반하고, 배약하고, 배은하는 악의 습성들이 많습니다. 사람된 나 자신에게는 전혀 소망이 없습니다. 캄캄합니다. 절망뿐입니다. 무능뿐입니다. 선한 일에 전혀 가능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인 내가 아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나를 구원하고, 사랑하고, 축복하심에 불변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바로 그 분이 나의 나된 전(全) 가능입니다. 전(全) 미래요 희망입니다. 자기 백성을 향한 불변의 사랑, 끝까지 가는 궁극적 구원의 사랑(요 13:1)이 나의 나된 전부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공적인 행복의 삶을 주께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약한 자 같으나 강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실상은 모든 것을 가진 자요, 죽는 자 같으나 살고, 망하는 자 같으나 흥하고, 패한 자 같으나 이기고, 어리석은 자 같으나 지혜로운 자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자로 넉넉히 이기고 또 이기는 승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세력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불변적 구원의 사랑을 힘입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롬 8:39).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불가불 구원과 영생만이 있을 따름입니다(롬 8:1). 결코 죄로 인한 멸망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할렐루야!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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