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에서 피어나는 꿈 같은 은혜와 축복
2002-09-04 16:08:28


갈라디아서3:1-7
인생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60-70-세까지 산다고 하면 파란도 많고 곡절도 많을 것입니다. 웃을 때도 있고 울 때도 있고, 근심과 걱정으로 인하여 오히려 이 세상에 나지 않았으면 하는 때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고해와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서 인생이 얼마나 고달프고 괴로움이 많은 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빛나는 자 혹은 높이울 자' 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쿠라라"는 성 프란시스가 태어난 아시시 지방에서 귀족의 딸로 태어나 프란시스의 설교를 듣고 18세에 수도원에 들어가 성 대미안 성당에서 41년간 살고 60세까지 살았던 성녀였습니다.

그녀는 성 프란시스가 죽은 후에 프란시스의 참다운 정신을 지켜나갔다고 합니다. 그녀는 포도넝쿨로 만든 침대에서 목침을 베고 잤으며, 옷 안에다가는 콕콕 찌르는 돼지 털가죽을 대어 입기도 하였습니다. 밤을 기도로 밝히는 때도 있었지만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불을 켜고 예배종을 울렸습니다. 법왕은 성 대미안 성당에 재산을 주어 다른 수도원과 같이 먹기에 곤란받지 않고 평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려고 애썼으나'쿠리라'는 이것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러한 그녀가 251년 가을 임종의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천사와 같이 거룩하게 빛났으며, 위로하려고 모여든 사람들에게"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하나님의 종 프란시스에게 배운 후로는 어떠한 아픔도 괴로움도 병도 견디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성 프란시스가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의 고난에 같이 참예 했었고 그 모든 것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이겨냈던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4절에"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얻는다는 진리를 분명히 가르치신 바울 사도의 서신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한 유대인 일파가 들어와서 선전하기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없고 할레와 모세의 모든 율법과 제도까지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믿는 그들은 그 선전대로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 사도가 올바른 진리를 가르쳐 주기 위하여 갈라디아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은 믿음으로 시작하였다가 잘못된 교리 때문에 할레와 율법으로 돌아가면 과거에 받은 많은 괴로움이 결국 헛된 데로 돌아간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저는 고난 속에 담겨진 깊은 뜻을 소개합니다.
1. 인생고란 말이 있습니다

태어난 것이 괴로우며, 늙는 것이 괴로우며, 병드는 것이 괴로우며, 죽는 것 또한 괴로움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은 나그네와 객과 같아서 험한 산과 높은 고개와 넓은 강과 같이 위험하고 험한 길이 많고 평탄하지 않으니 어찌 불평이 없으며 번민과 고통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빈부귀천과 유, 무식은 물론하고 전부가 슬픔의 들과 고뇌의 바다에 던져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난한 자는 의지할 곳이 없고,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으니 추위와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없으니 가난이 고통이요, 부자는 사람을 사용하되 신용할만한 사람이 없으며, 또 재산 보호에 따르는 고난 때문에 부자 또한 고통이요, 무식한 자는 모르는 것 때문에 괄시를 받으니 고통이요. 유식한 자는 아는 것 때문에 병이 생겨 고통입니다.

일본의 한 청년 찰학자는 인간문제를 연구하다가 살맛이 없다고 하여 자살하였습니다. 무식한 자는 유식한 자의 비아냥과 천대로 고통이 많습니다. 자식이 없는 자는 없어서 고통이요, 있는 사람은 있어서 고통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하여 자식 있는 자의 고통을이야기 하였습니다.

같이 살고 같이 죽을 것 같이 인정도 많은 것 같은 친척과 죽마고우도 내가 어려움에 빠지면 돌아보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생명과도 같이 사랑하던 애인도 홀연히 변하여 버리는 세상입니다. 힘쎈 항우를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라도 병마에 시달려 고생하다가 죽기도 합니다. 부자라도 하루 아침에 망하여 가난하게 되고, 만인에게 높임을 받던 자도 하루 아침에 감옥에 가는 일도 있습니다. 이것이 다 인간생활의 고통인 것입니다.

미국의 연극 배우로 세계적으로 유명하여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으며, 수 많은 재산을 소유하였고, 미인인 연극배우를 아내로 삼았고 자녀도 있고 모든 것이 풍성했던'채플린'은 말하기를"나는 세상에서 제일 많은 근심을 가지고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고난을 당합니다. 예수를 믿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론 우리는 그 이유를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고난에도 목적이 있고 그 가운데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쇠덩어리는 풀무불 속에 들어가서 녹아져야 강철이 됩니다. 금덩어리도 불에 들어가지 않고는 정금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큰 조개라도 그 속에 깔깔한 모래가 들어가지 않으면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지 못합니다.
거센 파도를 경험 한 사람이 진정한 마도로스가 되는 것입니다. 곡식이 잘 익어 곡간에 들어가려면 햇빛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비,바람과 찬서리도 있어야 합니다.
그와 같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인격과 성품, 그리고 능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로 성장하려면 때로는 고난도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시편119편71절에"고난당하는 것에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욥의 고난이 없이 인내의 욥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삼손이 불레셋에 내려가다가 사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 사자와 싸워서 죽이고 지나갔는데 돌아오다가 보니 사자의 시체 속에 벌들이 꿀을 만들어 놓았기에 마침 시장했던 삼손이 그 꿀을 먹었던 일이 있습니다.

인생행로에 있어서 이처럼 사자와 같은 위기를 만나고 고난을 만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니라 괴롭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잘 견디기만 하면 그 속에 단꿀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 속에서도 꿈 같은 은혜와 축복이 있습니다.
오히려 고난 속에서 인간의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고난 속에서 겸손과 사랑, 동정심과 지혜와 용기를 얻게 됩니다. 이런 고난을 통하여 자신이 성장하게 됩니다.

신앙의 위대한 인물들의 인격은 고난 속에서 더욱 성숙해 졌으며 성장하였음을 압니다. 고난의 밤이 필요합니다. 시련의 골짜기도 때로는 필요합니다.
2. 우리가 겪게되는 고난은 과연 무엇입니까?
① 질병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를 사랑하시고 그 사람도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쇠약하여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 몸의 일부가 불구가 되어 늘 그것 때문에 고통을 가슴에 안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때로는 병상에 눕게 됩니다
"병은 눈썹에서 떨어진다"는 속담과 같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언제 어느 때 병에 걸릴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더욱더 하나님께 가까이 하게 하고 더 큰 은혜를 받게 하는 은혜의 가시가 될 수 있다고 고백한 바울의 고백처럼 때로는 병이 하나님의 은혜의 가시가 있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 프랜시스'는 본래 부자집 아들로 태어나 세상의 향락을 좋아했으나 그가 큰 병에 걸려 누워 있을 때 그는 마음의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부자란 무엇인가? 삶이 무엇이냐? 왜 살아야 하는가?
이처럼 병 중에서 그는 비로서 인생무상을 깨닫고 새 사람이 되어 평생을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게 됩니다.
'죤 밀턴'은 소경이 되어 이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된 후에 오히려 그의 신령한 영의 눈이 밝아져 그가 하늘의 낙원을 보게 되었고 그 결과 그토록 유명한"실락원"이라는 작품을 썼으며. "베토벤"은 귀머거리가 된 후에 영원한 하늘의 음악을 듣고 더욱 유명한 명곡을 남겼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사도 바울도 그 육신을 괴롭히던 가시 때문에 고통했지만 후에는 가시로 인한 고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후에는 육신을 괴롭히던 가시로 인하여 더 은혜받고"나는 약할 때에 강하니라"고 외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계십니까?
질병과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과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질병이 헛되고 무가치한 것만은 아닙니다.

히스가야도 질병 중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기도하여 은혜를 받았습니다.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도 폐병으로 사선을 넘는 고통 가운데서 은혜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학교에서 질병으로 고통의 과정을 학습하게 된 것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 실패의 고난이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여 하루 아침에 망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사업의 실패는 자신 뿐만 아니라 가정과 다른 사람에게까지 큰 고통과 충격을 안겨 주게 됩니다.

사업 실패뿐만 아니라. 예비고사. 입학시험, 취직시험, 여러 가지 시험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혼에도 실패하여 후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실패가 많은 세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실패의 고난도 헛되이 받아서는 안됩니다.
참으로 성공한 사람은 실패를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에디슨'은 수없이 실패한 사람인데 실패한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옛 말에"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실패 가운데 성공의 요소도 있으니 그것을 찾아내라는 말입니다. 실패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칠 것은 고쳐야 합니다.

실패의 쓰라린 경험을 통하여 새로운 지혜를 찾아내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정직하게 실패를 시인해야 합니다. 남의 탓으로 돌린다든지 운명이니 하면서 구질구질하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실패를 통하여 재기의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젊어서의 고생은 돈 주고도 못산다"고 했으며"한번 실수는 병가의 상사"라는 말도 있습니다. 실패의 죽은 사자 속에서 꿀을 찾아 내듯이 고난의 학교에서 실패의 학습과정을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합니다.

한번의 실패는 인생의 좋은 경험이 됩니다.
이런 실패를 통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형성되고 더욱더 보람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잠언24장16절에"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려지느니라"고 했습니다. 실패했다고 해서 비굴하게 고개 숙이고 마음마저 여리면 안됩니다.

그럴수록 더욱 진실되게 의롭게 살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넘어지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납니다. 실패의 고난 속에서 오히려 올바른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실패의 쓴잔을 통하여 고난 속에 담겨진 은혜와 축복을 찾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③ 슬픔의 고난이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 눈물을 흘려보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닙니다. 왜 이 세상은 눈물의 세상입니까?.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울면서 왔고 세상을 떠날 때도 눈물 가운데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한번 왔다가 한번 가는 세상입니다. 노인도 가고 청년도 가고 때로는 어린이도 갑니다. 의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이제는 인간 베아로 복제 인간을 만들어 낸다고 할지라도 역시 인간은 한번은 가는 것입니다. 가는 것은 인간의 기술로는 막을 길이 없습니다.

히브리서9:27절에는"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는 말씀 그대로 가야 합니다. 때로는 갑자기 가기고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언제 눈물의 시간이 찾아올런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슬픔은 우리 모두의 공통된 경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눈물의 사자도 축복의 선물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캄캄한 밤에만 멀리 하늘의 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눈물의 랜즈를 통하여 영원한 세계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절망에서 영원한 소망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요한복음11:25절에"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눈물의 사다리를 통하여 우리는 영원한 세계로 들어갑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눈물을 통하여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사랑과 동정심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가장 고귀한 심령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눈물은 정성의 상징이요, 양심의 심볼입니다.
눈물 한 방울의 값을 친다면 진실로 한량이 없습니다.
눈물은 인생에서 가장 순수한 것입니다.
가장 맑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눈물은 우리에게 감명을 주고 감격을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울어야 할 때에 울지 않는 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울 때에는 울어야 합니다.
눈물이 매말라 간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인정의 눈물, 사랑의 눈물, 감사의 눈물, 감격의 눈물, 참회하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자가 정말 사람다운 사람입니다.

우리의 가슴속에는 항상 많은 눈물의 샘이 흐르고 있어야 합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은 벌써 인간이 아닙니다.
눈물은 인간을 심화시키고 향상시키는 정신의 깊은 원천입니다. 우리는 이 원천을 메마르지 않게 해야 합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란 책을 쓴 '스토우' 부인은 귀한 아들을 잃고 그 큰 슬픔 가운데서 당시 흑인 노예매매제도에 의하여 아들과 생이별하는 흑인 어머니를 동정하며 그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위대한 작품의 배후에는 큰 슬픔이 있었습니다. 슬픔은 때때로 이렇게 위대한 창조적 활동으로 승화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슬픔의 고난도 헛되이 받지 아니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을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학교에서 슬픔의 눈물을 잘 배워서 슬픔 속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음을 믿고 그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④ 비난과 속임수의 고난이 있습니다.

전적으로 믿었던 사람을 통하여 속임을 당하는 고난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스가랴13:6절에"혹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상처는 어찜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로는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이 배반하고 돌아서서는 온갖 거짓말로 비방하고 훼방하는 고통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시편31편13-14절에서 다윗은"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으오며 사방에 두려움이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치려 의논 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여호와여 그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라 하였나이다"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니라"(마5:1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고생되는 일이라도 고생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면 고생도 낙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여름은 의례 더운 것입니다. 이때 덥다 덥다 하며 떠들어 보아도 더위는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보다도 도리어 덥다는 번뇌의 마음을 버리면 몸은 시원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형편이 좋은 성공의 때도 있지만, 형편이 좋지 못한, 가난하여 지고 병들고 비난과 핍박을 당하는 때도 있습니다. 이런 때에 싫다고 떼어 버리려고 떠들어 보아도 잘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마음대로 가난이나, 질병이나 실패나 곤고함이나. 슬픔을 내쫓으려고 애쓰기 전에, 가난이나 근심이나 슬퍼하는 마음을 내어쫓으면 마음은 항상 평안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마음 먹기에 따라서 더위도 피할 수 있고, 가난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고통을 피할 본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고통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고 있는 것이니 고난 중에도 참는 것이 고통을 피하는 길이요 방법입니다. 사자같이 무서운 고통이라도 참는 자에게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잠시 지나 갑니다.

영국출신의 작가이며 변호사였던'스티븐슨'은 결핵을 치료하기 위하여 요양차 몰로카이 섬에 갔다가 그곳 나병환자들의 건강상태를 보고는 거의 신앙을 버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간호사들의 뜨거운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는 것을 보고는 믿음을 다시 되찾게 됩니다.

이 시간 소개하는 글은 그가 나병환자 촌에 있는 방명록에 쓴 것입니다. 그 글을 소개하고 마치려 합니다.
- 고통 속의 아름다움 -
이 곳에서.
그들의 뒤틀린 팔다리와
뭉개진 얼굴 모습을 본다면
그리고
매 앞에서도 미소를 짓는
순진한 병자들에게
한없는 연민을 느끼게 된다면
아마
어리석은 사람은
곧 그의 하나님을 부정하고픈
시험에 빠질 것이다

그들을 보면
움츠러 든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천천히 들여다 보면
고통스런 가슴속에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 슬픈 해안가를 거니는
그들을 ** 보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도
침묵하고
찬양하게 될 것이다
(R. L. Stevenson)

* 찬송가 535장-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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