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인격으로 무장한 설교 /목회자가 풀어주는 삶의 매듭 2002-08-31 01:03:49 ![]() 부산 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 설교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대학 교수는 같은 원고를 가지고 매년 새로운 학생들에게 가르치므로 여유 있게 강의안을 발전시켜 나갈수 있다. 그러나 목사는 한 교회에서 같은 성도들에게 매번 새로운 설교를 해야 하므로 설교준비에 대한 부담은 너무나도 무거운 것이다. 설교에는 지식의 밑받침도 있어야 하고 청중이 잘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감동을 줄 수 있도록 기교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는 설교자 자신이다. 어떤 교역자들의 모임에서, 소그룹 성경공부에 대하여 토론을 벌이던 중에 장소 문제, 시간문제, 인원수문제, 교재 문제 등등 여러 가지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결론은 소그룹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교역자가 문제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다. 그렇다. 설교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자 자신인 것이다. 특히 설교는 신앙과 인격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성도들은 설교를 들을 때, 특히 담임교역자의 설교를 들을 때 그 교역자의 신앙과 인격에 대한 선입관이 있다. 신앙과 인격이 훌륭한 교역자의 설교를 들을 때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무게가 있게 들리고 큰 감화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과 인격에 문제가 있는 교역자의 설교를 들을 때는 아무리 좋은 설교를 해도 자꾸만 그의 인간적인 결점을 생각하게 되므로 비판만 하게 되고 은혜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장 교역자에게 필요한 것은 생활로 보여 주는 설교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살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설교를 하면 큰 은혜를 받고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된다. 그러나 교역자 자신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설교한다면, 이것은 도둑놈이 아들 에게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라"고 훈계하는 것과 같으니 은혜가 될 리가 없는 것이다. 기도에 관한 설교도 마찬가지이다. 교역자자신이 평소에 뜨겁게 기도 생활을 하면 기도에 관한 특별한 설교를 하지 않아도 교회 안에는 기도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자연히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가 된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에 관한 명 설교를 해도 교역자 자신이 기도하지 아니하면 그 교회는 기도의 불이 꺼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과 동시에 교역자 자신이 그 본문 말씀을 통해서 깨달은 바를 전하되 특히 본인이 깨달은 교훈을 잘 정리해서 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대로 본인이 살면서 얻은 교훈을 간증하는 내용까지 포함할 수 있다면, 청중은 큰 감동을 받고 즉시 생활에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설교는 ① 잘 알아듣고 잘 깨닫게 해주는 설교이다. ② 큰 감화를 받아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게 해주는 설교이다. ③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악마와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충성하는 일꾼으로 만드는 설교이다. 설교자는 교인들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 지를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한 교회에서 수십년씩 목회를 했어도 교회가 질적 양적 성장이 안되고 있다면 무엇보다도 설교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강단에서 항상 좋은 설교가 전달되면 교인들의 변화가 빠르고 자연히 교회 성장도 그 속도가 빨라진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무엇보다도 설교를 잘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설교를 위해서는 신앙과 인격의 무장이 잘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필자는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설교 자료의 수집과 정리 필자는 주일 대예배 외에는 강해 설교를 해보려고 힘써 왔었다. 그러나 지나간 몇 년 전부터는 주일 대예배 시간에도 마태복음부터 시작해서 차례대로 강해 설교를 하고 있다. 지금은 요한복음 1장을 하고 있다. 이렇게 강해 설교를 본격적으로 하면서부터 무슨 설교를 할까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언제나 본문은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교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그 본문 말씀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전할메시지가 없을 때이다. 그러므로 우선 성경의 어떤 책을 가지고 강해를하려고 하면 우선 좋은 책을 준비해야 한다. 좋은 주석과 강해집이 준비되어 있어서 충분히 좋은 자료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필자의 경우는 밥은 못 먹어도 책은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약 일만 권의 책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분별력이 없어서 아무 것이나 사 들였으나 이제는 책을 충분히 살핀 후에야 산다. 그리고 모든 자료를 60가지 주제로 나누어서 보관하고 설교집은 본문별로 정리하여 아무때든지 참조할 수 있게 해 놓았다. 특히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도 성경 본문별로 보관해서 언제든지 들어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교역자는 누구보다도 많이 듣고 보고 배워야 한다. 마치 좋은 젖이 넉넉히 나오게 하려면 먼저 영양 있는 음식을 잘 먹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역자들에게 당부하고싶은 말은 충성을 다해서 열심히 뛰라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자가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빨리 큰다. " 강해설교의 예 필자가 출애굽기 3장 1-12절의 말씀으로 강해 설교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간단히 그 방법을 서술하려 한다. 먼저 본문 말씀을 여러번 읽는다. 그리고 나서 본문의 내용을 정리해 본다. 본문의 내용은 호렙산에서 양을 치고 있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는 사명을 주시는 말씀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되 반드시 적당한 일꾼을 통해서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세는 어떤 인물인가? 40년 동안 애굽 왕 바로의 궁중에서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였다(행7:22). 그뿐 아니라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지나면서 영적으로 준비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 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다.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영력을 키웠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에 아라비아로 가서 3년간 준비했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은 광야 대학에서 영력을 준비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본문의 역사적 배경 : 그 다음에는 본문 말씀의 역사적 배경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겠다는 말씀은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창세기 15장 13 ∼16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사백 오십년을 보내다가 그 후에 큰 재물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리라"고 했다. 이 말씀이 그대로 성취될 때가 된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다. 이 때를 알고 행하면 성공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 그러므로 때가 안되었을 때는 기다려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언약의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할 괼요가 있다. 하나님은 인간과 교제하실 때 언제나 '언약'을 하시고 그 언약대로 행하신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결코 그 언약을 어기시는 법이 없으신 것이다. 신·구약성경을 보라! 한가지라도 틀린 적이 있는가? 앞으로도 반드시 그 언약의 말씀대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예언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떨기나무의 불 : 그 다음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떨기나무의 불이다. 이 불은 타지 않는 불 이였다. 여기에서 이 불이 세상의 불과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임재를 알려 주는 표적(sign)인 것이다.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실 때에도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고 했다. 이 불이 곧성령은 아니다. 다만 성령이 임재하심을 보여주는 표적일 뿐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불 자체가 성령인 줄 알고무조건 불 받겠다고 하다가 미혹의 영을 받고폐인이 되는 자가 있다. 거룩한 땅 : 그 다음에 생각해야 할 것은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어떻게 미디안광야가 거룩한 땅인가? 성경에 '거룩'이란 말이 쓰여진 용도를 보면 ① 하나님께 쓰여졌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② 그 자체는 거룩하지 않아도 하나님께 속한 것을 거룩하다고 했다. 예를 들면 성전, 성구, 성직, 성일(聖日) ‥‥ ③ 하나님이 임하신 곳은 거룩하다고 했다. 땅 자체는 거룩하지 않으나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순간 거룩한 땅이 된 것이다. 성전도 성령이 임하실 때 거룩한 성전이 되는것이다. 우리의 몸도 성령을 모심으로 거룩한 몸이 되는 것이다. ④ 하나님께 드려질 때 거룩하다고 했다. 스가랴 14장21절에 보면 제사 드리기 위해서 사용되는 솥을 성물(聖物)이라고 했다. 우리의몸도 하나님을 위해 바칠 때 거룩한 제물이 되는 것이다(롬12:1). 신을 벗는 것 : 그리고 신을 벗으라고 하셨는데 이 뜻을 알려면 룻기 4장을 보아야 한다. 거기에 보면 기업 무를 우선권이 있는 사람이 그권한을 포기하고 보아스에게 넘겨 주면서 신을 벗어 주겠다고 했다. 여기서 '신을 벗는 것'은 모든 권한을 포기하고 양도한다는 의미가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들은 무엇보다도 모든권한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양도해야 한다는것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는 것이다. 모든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도 포기하고 하나님께 양도할 때 꺼떤 명령에도 순종할 수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이 되는 것이다. ------------------ 목회자가 풀어주는 삶의 매듭- 갈등이나 스트레스 혹은 위기에 처한 사람을 간호하고 부양하고 치료하여 회복시키고 성장케 해 주는 일은 교회가 세워진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그러나 목회상담이 실천신학 분야의 한 학문으로 정립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었다. 이 글에서는 서구와 한국교회 목회상담 역사를 간략히 살피고. 목회상담의 기능과 목표와 성경적 기초를 정리해 본 다음에. 한국교회 안에서 목회상담을 발전시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될만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국내외 목회상담 역사 미국에서 현대 목회상담의 필요성을 처음 강조하기 시작한 사람은 보이슨 (Anton T. Boisen, 1876-1965)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기간이 길지는 않았으나 세 차례에 걸쳐 심각한 정신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1925년에 그는 미국 메사추세츠주 우스터 주립병원의 원목으로 일하면서 신학생들을 데려다가 3개월씩 환자들을 돌보는 실습을 하게 하였다. 보이슨은 단순히 교실 수업만 하는 것 보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직접 대면하여 실습까지 겸하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교육이라고 생각하였다. 자기 자신이 환자로서 입원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는 환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환자에게 실제로 필요한 도움을 줄 사람이 얼마나 요청되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또 의과대학생들이 환자들을 직접 대하여 실습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신속한 방법인가를 깨닫고 있었다. 이리하여 임상목회 교육운동 (Clinical Pastoral Education Movement)이 한 의료모델 (Medical Model)로 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보이슨의 이 일은 1930년에 임상훈련회의 (Council of Clinical Training)탄생시켰고 그의 방법론은 곧 미국의 수 많은 신학교 커리율럼에 포함되었다. 이 분야의 또 다른 개척자들로는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원목 딕스 (Russel L. Dicks)와 원장 캐봇 (Richard C. Cabot)이 있다. 딕스 자신의 입원 수술 경험은 그에게 인간의 필요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더해 주었다. 그는 고통과의 싸움. 개인적인 의심. 염려. 두려움. 마취에 대한 공포심. 단조로운 병원 생활의 착잡함. 여러 의사들과 간호원들의 서로 다른 태도.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그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 말하였다. 이러한 현대 목회상담의 개척자들 명단에는 또한 와이스 (Carrol A. Wise)와 힐트너 (Swrd Hln.er) 죤슨 (Paul Johnson) 오우츠 (Wye E. Ots) 홀먼 (Charles Hlan) 등이 포함된다. 영국에서는 1935년에 웨더헤드 (Leslie Weatherhead) 심리학을 목회 현장에 적용하는 일에 두각을 나타내였다. 그는 정신과 의사의 치료와 동시에 목회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런던에 한 진료소를 세워 운영하였다. 오늘날 목회상담은 세계의 거의 모든 신학교에서 실천신학의 한 분야로 가르치고 있다. 한국내의 신학교들에서도 목회상담을 학과 과정에 포함시키고 있다. 국내 신학교들은 상담학을 전공한 실천신학자들을 외국에서 초빙하여 특강을 들으면서 목회상담학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그리고 관심이 있는 교수와 학생들이 목회상담을 전공하기 위해 구미로 유학을 하기도 했다. 그 중에 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여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수가 하나 둘 늘고 있다. 현재 목회상담을 전공하고 있는 해외 유학생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추세여서 머지 않아 그 영향이 한국교회에 미치게 되리라 기대된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목회상담은 서구의 그것에 비해 학문적으로 정립이 되지 못하였고 또 서론 성도에서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외국의 양서들이 번역되고 국내의 저작자들이 책을 내면서 일반 교인들에게까지도 도움이 되고 있다. 한편 목회상담을 전공하지 않은 평신도들 가운데서는 개인적으로 연구하여 좋은 프로그램을 계발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음을 본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목회상담이 절실히 요청될 것을 감안할 때 하루속히 양질의 목회상담자를 길러낼 필요를 느낀다. 목회상담의 기능 그렇다면 목회상담의 기능은 무엇이겠는가. 클렙쉬와 제이클 (W. A. Clebsch and C. R. Jaekle)은 목회상담의 기능을 치료와 부양. 지도와 화해로 본다. 치료는 상처로 인해 기능이 마비되거나 손상을 입은 사람을 온전케 회복시키거나 현재의 상태에서 앞으로 더 발전해 나아가게 하여 장상적인 기능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부양은 상처를 받은 사람 혹은 위기에 처한 사람이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거나 치료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뜻한다. 지도는 위기나 복잡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도와서 현재와 미래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칠 생각과 행동을 취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을 말한다. 화해는 내담자 자신이나 이웃과의 관계 혹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거나 손상되었을 경우 이를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가리킨다. 클라인벨은 여기에 한 가지 기능을 추가하였다 (Howard Clinebell, Basic Types of Pastoral Care and Counselling, Nashville.: Abingdon, 1984, p. 26) 곧 양육이 그것이다. 양육은 내담자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온전한 인격적 성장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 목회상담은 내담자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목회상담을 통해 교인들을 돕는 시기를 놓고 볼 때 예방상담과 개입상담과 후속상담으로 구별할 수 있다. 예방상담 (Prevention)은 교인들이 아직 위기에 처하거나 문제에 부딪히거나 상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가능성이 있는 위기나 문제나 상처들에 대해 미리 인식하고 이해하도록 해서 사전에 방지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예방상담은 교육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개입상담 (Intervention)은 이미 위기나 문제에 봉착해 있는 교인들을 앞서 말한 기능으로 돌보아 주는 것이다. 후속상담 (Postvention)은 이미 지나간 위기나 문제나 상처를 잘 마무리짓고 그것을 통해 유익을 얻도록 뒤처리를 해주는 것을 가리킨다. 한국교회가 특히 예방상담에 중점을 두고 아울러 개입상담과 후속상담을 균형있게 운영한다면 많은 효과를 거둘 것이다. 목회상담의 목표 여기서는 데이비스 (C. Davis, Baker Encyclopedia of Psychology, 1985, pp. 805, 806)가 제시하고 있는 목회상담의 기본적인 목표들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첫째로. 내담자를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계속 교제하게 한다. 둘째로. 내담자가 자기 자신을 바로 이해하고 처신하도록 도와준다. 셋째로. 가치관과 감정 혹은 내면적인 문제와 위기를 균형있게 파악하고 대처케 한다. 넷째로. 인간관계를 질적으로 향상시키도록 도와준다. 다섯째로. 성경의 자원을 삶의 모든 상황에 적용시켜서 책임을 질 줄 알게 하고 바람직한 결정과 실행을 하게 하여 전인격적으로 영적 성장을 이루게 한다. 여섯째로. 진리와 은혜 가운데서 이웃과의 화해와. 상처받은 사람들의 치료와 사랑을 베풀고 용서를 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짐을 함께 나누어 지는 법을 배우도록 도움을 준다. 목회상담의 목표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내담자가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안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주위로 자기 이웃을 사랑하도록 잘못된 부분을 고쳐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목회상담의 목표는 직접적으로는 현재의 위기나 상처나 문제점 해결에 있고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이르도록 영적인 성숙을 이루게 하는 도움을 주는 데에 있다. 목회상담의 성경적 기초 목회상담의 모범을 보여주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심성을 가장 정확히 진단하시고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적용하여 내담자의 위기나 문제나 상처를 해결하여 주셨다. 따라서 목회상담의 원리는 우선 성경에 찾아야 하고 (특별계시의 원리) 또한 인간의 심성(일반 계시적 원리)에서 찾아야 한다. 성경은 목회상담의 영적인 가치관과 윤리적인 지침과 궁극적인 목표를 제시해 주는 진리이다. 일반계시의 영역에서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 정신의학 등은 성경이 진리를 내담자의 위기나 문제 상황에 적용하는 방법론을 제시해 준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그 하나님이 모든 진리의 창조자시요. 또한 모든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시라면 특별계시를 통해서 주신 성경의 진리와 일반계시를 통해서 주신 학문의 방법으로 찾아낸 진리가 조화를 이루리라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상담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상담자)이 도움을 구하는 사람 (내담자)의 말을 듣고 그에게 바람직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으로 응답해 줌으로써. 신뢰에 바탕을 둔 특별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인간관계를 성경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 한 예를 든다면 요한복음 3:1-15의 주님과 니고데모. 그리고 4:1-42의 주님과 사마리아 여자가 있다. 지면관계상 상설을 줄인다. 아무튼 성경은 목회상담의 기초를 이룬다. 목회상담에 직결되는 성경의 기본적인 용어 몇가지를 예로 든다면 코이노네오(교제하다, 행2:42; 갈2:9 등), 오이코도메오(덕을 세우다. 성령 안에서 신자 개개인이 교회 전체와 바른 관계를 맺는 것. 살전5:11; 고전13:4; 롬14:1―21; 15:1, 2; 엡4:2; 등), 파라클레오(위로하다, 안위하다, 고후1:3, 4; 요14:16; 골2:2; 4:8; 등), 누쎄테오(권면하 다, 지식적인 면에서만 아니라 정서와 의지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변화를 가져오도록 타이르고 깨우쳐 바로잡아 주는 것. 엡6:4; 행20:31; 고전4:14 ; 설전5:12, 14; 살후3:15), 파이듀오(양육하다. 교육의 한 방법으로서 성숙한 사람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을 성숙한 태도와 가치관을 통해서 깨우치고 지도하고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것. 창18:1; 신12:12; 잠3:11; 13:24; 19:18, :1, 3참조. 고전11:32; 고후6:9; 갈4:1; 딤후2:25; 3:16을 보라), 디다스코 (가르치다. 설교와 권면과 대면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 딤전4:11; 6:2; 골3:16; 등), 오페일로 (담당하다. 의무를 지다. 로마서15:1에서는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것. 그리고 갈라디아서6:2에서는 서로의 짐을 지는 것, 등) 안테코마이 (붙들어주다. 데살로니가전서5:14에서 힘이 없는 자를 붙들어 주는 것을 의미), 등이 있다. 몇 가지 제안들 이러한 것이 목회상담이라고 한다면 한국교회가 목회상담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질문은 던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할 것이냐 하는 것이 우리의 지대한 관심사가 된다. 먼저 한국의 신학교들에서 목회상담을 가르칠 전문적인 학자 양성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구미처럼 학교와 병원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길을 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미 시도하고 있는 병원과 학교가 있음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더욱 활발히 진척되어 정착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목회상담이 학문적인 면과 임상적인 면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 지도자 양성에 힘쓸 때 큰 효과를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학교에서 배출된 목회상담 지도자들은 각 지역교회에 돌아가서 어떤 형태로 목회상담을 운영할 것인가. 한국교회는 먼저 각 지역교회에서 전교인을 대상으로 1년에 적어도 한 차례 이상 예방상담 프로그램을 공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러한 공개 프로그램에는 누구나 부담없이 참석할 것이다. 참석해 보면 개인적으로 상담을 요청할 사람도 생길 것이다. 그러한 개인상담은 누가 맡을 것인가. 목회자 혼자서 다 감당할 수는 없으므로 평신도 상담 요원을 육성해야 할 것이다. 정리한다면 한국교회가 예방에 초점을 둔 전교인 대상 공개 그룹 상담과 개인 비공개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또한 평신도 상담 요원들을 육성하여 급증하는 수요를 충당해야 하리라는 것이다. 교회마다 아동. 십대. 청년. 신혼부부. 중년. 장년. 노년. 등 생애의 특징있는 부분들을 세분하여 그 시기에 알맞는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정기적으로 운용한다면 바람직한 결과를 얻으리고 생각된다. 교회에는 중증환자로부터 별문제도 아닌 단순한 일로 찾아오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교회의 목적과 기능과 역량의 한계를 벗어난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가능한 한 속히 전문가에게 의뢰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믿고 의뢰할 전문가들을 확보해 두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이 앞으로 한국 교회가 풀어 나아가야 할 과제들이다. 아무쪼록 한국교회가 평안하고 건강한 교인들을 바로 키우는 일과 함께 위기와 문제에 부딪힌 교인들을 도와서 해결하게 하고 상처받고 좌절한 교인들을 치료하여 성장케 하는 일도 균형있게 할 수 있게 될 것을 기대한다. 김만풍 목사 ----------------------- -강해설교는 가장 성경적인 설교- 근자 (近者) 이르러 많은 목회자들이 강해설교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시도하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20 세기 이전 시대는 일반적으로 제목설교의 시대요. 20 세기는 제목설교와 강해설교의 혼재기(混在期)만일 주님이 더디 오신다면 21 세기는 강해설교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강해설교란 무엇이며. 강해설교는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 사람마다 강해설교의 정의를 다소 달리하고 있지만. 필자는 이렇게 정의한다. “강해설교란 주어진 성경 본문(text)을 문자적―문법적―역사적인 방법으로 해석 (interpretation)하여 일정한 조직 (organization) 하에 현대의 청중에게 적용 (application)시키는 설교이다.” 이 정의에 의하면 강해설교는 네가지 요소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본문과 해석과 조직과 적용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이 네 가지 구성 요소를 중심으로 강해설교의 작성 원리를 간단히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본문 선택과 중심내용 찾기 강해설교는 철저히 본문 중심의 설교이기 때문에 본문없는 강해설교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다. 강해설교에 있어서는 본문이 가라고 하면 가고 본문이 서라고 하면 선다. 본문이 말하면 설교자도 말하고 본문이 침묵하면 설교자도 침묵한다. 설교자의 주관이나 감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 있나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문과 연관하여 설교자가 고려해야 될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본문의 선택이다. 강해설교를 하기 위해서 맨 먼저 해야 될 것은 본문의 선택인데. 본문의 선택은 단일한 사고 단위 (思考單位) 중심으로 결정되어야 하다. 단일한 사고 단위란 말은 단일한 주제. 단일한 내용이라고 표현해도 큰 차이가 없다. 강해설교에 있어서는 한꺼번에 이것 저것 잡화상식으로 던져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만을 깊이 있게 전문점식으로 주는 것이다. 잡다한 내용을 피상적으로 전해주면 교인들의 마음 속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내용만을 깊이 있게 전해 주면 상당히 많은 것이 교인들의 마음 속에 간직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본문의 선택부터 바로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 장을 설교한다면 1 장 4 절부터 9 절. 10 절부터 17 절. 18 절부터 25 절. 26 절부터 31 절까지가 각각 하나의 사고 단위가 될 것이다. 둘째. 단일한 사고 단위가 되는 본문을 선택했으면. 이제 그 본문의 중심내용 (central idea)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중심내용이란 본문의 핵심적 내용에 청중의 필요를 감안해 보편적 형태로 표현한 명제를 말한다. 그것은 바로 설교자가 청중의 마음 속에 심어주고자 하는 진리를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중심내용은 대개 주어 (또는 주제)와 술어로 구성된다. 여기에 말하는 주어란 문법상의 주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상의 주어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일한 사고 단위가 되는 본문에서는 항상 하나의 주어 또는 주제밖에는 없다. 본문의 주어를 찾아내기는 그리 쉽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주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계속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이 본문은 무엇에 관해서 말하고 있나.”“내가 이 본문을 가지고 무엇에 관한 설교를 할 것인가.” 주어는 설교에 있어서 구심점이 된다. 많은 설교의 경우 이 구심점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설교가 산만해져서 교인이 30~40 분간 설교를 듣고도 무엇에 관한 설교를 들었는지 꼬집어 말할 수 없게 된다. 잡다한 내용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구심점이 분명하지 않으면 설교를 듣는 교인들은 암중모색(暗中摸索)을 하다가 결국은 암초에 좌초되고 말 것이다. 중심내용에 있어서 주어보다는 덜 중요하지만 술어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술어란 “주어를 어떻게 설명(묘사)해 주느냐.” 하는 것을 말한다. 의미의 가장 기본 단위는 문장이기 때문에 주어에 술어가 더해져야 하나의 문장이 되어 의미가 고정된다. 가령 누가복음 14 장 25 절에서부터 35 절을 본문으로 해서 설교한다면. 주어를 “참 제자의 각오” “참 제자의 자세” 등으로 표현할 수 있겠고. 술어는 “대가를 치른다”가 되겠다. 그래서 이 양자를 결합하면 “참 제자가 되려는 자는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라는 중심내용을 갖게 될 것이다. 바람직한 해석 방법 단일한 사고 단위가 되는 본문을 선택한 후 중심내용을 찾았으면. 그 다음에는 본문을 해석하고 연구하여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본문 자체는 건물의 골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여기에 살이 붙여져야 건물이 완성되는데. 이 살에 해당되는 것이 본문을 해석하고 연구하여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이다. 본문을 해석하고 연구하여 자료를 모을 때 한가지 명심해야 될 사실은 논문 자료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설교 자료를 모은다는 사실이다. 논문 자료는 이론적이고 사변적이지만. 설교 자료는 실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료 수집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료를 모으면 투자한 시간에 비해서 실제로 얻은 소득은 그리 신통치 않을 수도 있다. 본문을 해석하고 연구할 때 다음의 두가지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첫째. 해석 및 연구는 항상 문맥 (conte) 맞게 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단어의 의미는 문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문맥을 떠난 해석은 결단코 용납될 수 없다. 둘째. 우화적 해석은 반드시 배격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강해설교와 우화적 해석은 공존할 수 없다. 그것은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공존할 수 없는 것과 유사하다. 설교자들 가운데 교훈문학 (didactic literature)을 우화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훈 문학의 경우에는 선포해야 할 진리가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사문학 (narrative literature) 이르면 상황은 굉장히 달라진다. 우화적 해석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우화적 해석을 다반사로 하는 설교자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 사사문학을 우화화 (寓話化) 하지 않고 바로 설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원리화 (原理化)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사문학의 경우에는 원리를 잘 찾아내어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설교자가 강해설교를 잘 하는 설교자라고 할 수 있다. 본문을 해석하고 연구하는 과정을 몇 가지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순서는 바뀔 수도 있다). 첫째. 본문을 관찰하고 묵상하라. 관찰(observation)이란 저자가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바를 찾아내는 것이다. 본문을 피상적으로 보면 사실의 나열같은 것만 보이지만 깊이있게 보면 많은 영적 진리가 발견될 것이다. 평소에 경건의 시간을 깊이있게 가지고 있는 설교자는 본문에서 영적 진리를 찾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관찰할 때 한가지 반드시 기억해야 될 것은 단어와 단어와의 관계. 구와 구와의 관계. 절과 절 상호간의 관계. 단락과 단락간의 관계 등 관계 중심으로 관찰을 하라는 것이다. 둘째. 참고 자료를 사용해 자료를 수집하라. 자료 수집을 위해서는 좋은 주석. 원어 사전. 성서 사전. 성구 사전 등의 참고서가 필요하고 이런 서적을 사용해 중요한 단어. 문법. 역사적―문화적 배경 등을 연구해야 한다. 1.대지는 상호 유기적인 관계로 . 설교를 할 때 조직 (또는 구성)을 짜임새있게 해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동일한 내용을 전달할 때에도 무질서하게 전달하는 것보다는 이로정연 (理路整然)하게 전달하는 것이 청중에게 훨씬 더 잘 이해된다. 설교의 조직은 서론. 본론. 결론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많은 설교자들의 경우 설교할 때 서론이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데 이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서론은 설교를 소개하는 것이다. 외판원이 자신의 상품을 잘 소개하면 고객으로부터 호의적 반응을 얻어 많은 상품을 판매할 수 있겠지만. 상품 소개가 시원치 않으면 아무 것도 팔지 못하고 말 것이다. 서론이 바로 그렇다. 서론은 청중이 설교를 들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길이로 말하면 2~3 분에 불과하겠지만 그 중요성은 결단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서론에서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못하면 설교가 끝날 때까지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서론이 아무리 좋아도 서론만 가지고는 설교가 되지 않는다. 서론은 본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서론 그 자체로서 존재 목적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론은 멋지게 잘 제시되었지만 본론이 그에 따르지 못하면 공수표를 남발한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 그러면 어떤 본론이 좋은 본론인가. 여기서는 본론의 여러가지 측면 중에서 조직의 측면만 간단히 살펴보겠다. 필자는 이미 앞 부분에서 본문을 선택해 중심내용을 찾고 또 관찰과 묵상 및 연구를 통해서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 관해서 언급했다. 이렇게 하여 모아 놓은 자료를 일정한 순서에 따라 배열해야 한다. 정리되지 않은 자료 그 자체만으로는 설교가 될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자료를 정리해 본론을 조직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본문의 성격과도 연관이 있고. 설교자의 취향이나 특성과도 연관이 있지만 흔히 쓰이는 몇가지 방법은 설명형. 원리적용형. 귀납적 구성법 풔잔변형된 귀납법 등이다. 증명형. 변증법적 구성법. 연역적 구성법 등도 있지만 앞의 세 가지 방법이 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생각된다. 설명형은 중요한 진리나 교리를 단계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원리적용형은 대개 1 대지에서 원리를 제시하고 나머지 대지에서는 그 원리를 적용해 가는 방식이다. 귀납적 구성법은 대개 서사문학을 본문으로 택할 때 사용하는 방식인데. 1 대지에서는 본문 자체의 스토리 story 2 대지에서는 본문에서 나온 원리를 그리고 3 대지에서는 그 원리를 적용해 가는 방식이다. 각 대지를 표현할 때 한가지 기억해야 될 것은 대지 상호간에 유기적 관계가 있도록 표현에 유의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에 설교자의 많은 묵상과 연습을 필요로 한다. 본론이 제시된 다음에는 본론으로부터 자연스러운 결론이 도출되어야 한다. 결론은 본론을 요약 정리하여 청중의 행동을 촉구하는 부분이다. 멋진 서론과 본론이 그에 상응하는 결론으로 끝난다면 설교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될 것이다. 추상을 벗어난 구체적인 적용으로 적용이란 성경 본문이 가르치는 진리 (또는 원리). 교훈 청중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청중이 메시지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적용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이 목적은 결단코 달성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설교에서 적용이 없다면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설교라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설교는 적용과 흥망을 같이한다고 할 정도로 중요하다. 설교자는 두 세계 사이에 서서 두 세계를 연결시키는 교량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성경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 사이에 있는 갭 (gap)을 잘 메우느냐 잘못 메우느냐 하는 것은 설교자가 적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적용을 제대로 못하면 성경은 청중에게 닫힌 책이 되고. 따라서 그것은 박물관에나 소장되어야 할 낡아빠진 고문서 (古文書)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청중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현실적 필요가 적용을 통해서 채워지지 못하면 성경은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적용에 관해서 해야 할 말이 굉장히 많이 있지만. 모든 설교자가 반드시 기억해야 될 한가지 원리는 적용은 구체적이라야 된다는 것이다. 막연하고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적용은 아무리 반복해도 힘이 없고. 따라서 청중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청중은 구체적인 적용에 대해서만 효과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 어떻게 적용을 해야 구체적인 적용이 될 수 있는가. 첫째. 구체적인 예화를 사용하라. “충성하자” “믿음으로 살자”는 식의 추상적 진리를 수십번 반복하는 것보다 참으로 충성한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 참으로 믿음으로 산 한 성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예화는 본질상 구체적이기 때문에 적절하고도 효과적인 예화는 설교를 재미있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적용을 구체화시켜 준다. 둘째. 구체적인 방법을 몇가지 제시하라. “믿음으로 살자”는 말만 계속 반복하는 것보다는 믿음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깊이 있게 제시하면 적용이 구체화되어 청중의 행동 변화에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셋째. 우리의 실제적인 삶의 문제와 연결시켜라. “믿음으로 살자”는 원리를 적용할 때 우리의 직장 생활에서. 가정 생활에서. 학교 생활에서 대인 관계에서 우리가 실제적으로 겪는 문제를 끄집어 내서 성경의 원리와 연결시켜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성경의 가르침과 우리가 처한 상황이 이원화(二元化)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어 성경의 가르침이 생명력을 가지고 현대인의 가슴 속에 파고 들어갈 것이다. 강해설교는 가장 성경적인 설교이다. 그러나 강해설교를 잘 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부단한 노력과 연구를 필요로 한다. 노력을 하고 연구를 하되 일정한 방향에 따라서 해야 할 것이다. 방향 없는 연구는 목적지 없는 여행과 같다. 본고 (本稿)가 강해설교를 하려는 설교자에게 그런 방향 역할을 하는데 일조 (一助) 하기 바란다. 목회와 신학/ 장두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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