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회복 2002-08-13 16:49:06 (스 3:1-7) 2002-07-28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다가 페르시아 왕 고레스 가 바벨론을 정복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명령을 내려 포로생활을 끝내 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때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일은 주전 536년 경, 지금으로부터 2540년 전쯤에 있었습니다.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고국으로 돌아옴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나라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완전한 형태의 회복은 아니었고 페르시아의 식민지 형태였지만 이 제 꿈에서도 그리워하던 고국 땅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회복한 이스라엘 백성은 또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오늘 본 문의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의 회복이 진정한 회복 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회복 없이 나라만 회복하였더라면 껍데기 회복에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번 주간 목요일부터 광복절이 들어 있는 8월이 시작됩니다. 1945년 광복절에 우리는 국권을 회복했는데 그 때 온전한 독립과 민족의 화해와 정통성 같은 알 맹이 회복도 이루어졌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 회복은 세 가지의 회복을 통해 구체화됩니다. 그 세 가지 회복 은 예배의 회복, 절기의 회복, 예물의 회복입니다. 본문 가운데 5절에 이 세 가지 회복이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먼저 번제를 드렸습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는 오늘날의 예 배입니다.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포로생활을 할 때는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를 드렸습니다. 거룩한 절기들을 지켰습니다. 본문에서 집중적으로 말하고 있는 절기는 초막절입니다. 4절,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초막절은 장막절이라고 도 하고 수장절(收藏節)이라고도 합니다. 수장절은 거두어 저장하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에 해당되는 절기입니다.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초막절과 함께 다른 절기들도 지켰 습니다. 이스라엘에는 3대 절기가 있습니다. 초막절과 유월절과 칠칠절입니다. 유월절은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인데 무교절이라고도 하는데 양력 3, 4월 경입니다. 지금의 부활절과 비슷한 때입니다. 이 유월절도 지켰습니다. 에스라서 6장 19절 이하에 유월절 지키는 이야기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칠칠절은 초실절이라도 하고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양력 5, 6월경, 지금의 성 령강림절과 비슷한 때입니다. 이 칠칠절이 바로 오늘 우리가 지키고 있는 맥추 감사절입니다. 다른 교회들은 6월말이나 7월초에 맥추감사절을 지키는데 저희 교회에서는 6월 마지막 주일이 창립기념주일이기 때문에 7월말에 맥추감사절을 지켜오고 있습 니다. 내년부터는 유월 초에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것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 것이 성서에서 말하는 때와도 가깝고 합당하고 휴가철을 이전이어서 온전한 맥 추감사절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추수감사절도 저희 교회에서는 11월초에 지키고 있지요.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맥추감사절도 잘 지키게 되었습니 다. 그 다음에는 예물을 드렸습니다.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리 되" 기쁜 마음으로 예물을 드렸습니다. 봉헌의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바벨론 땅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는 제사를 드리고 절기를 지키고 예물을 드리 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흔들리고 위협받았습니 다.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이 세 가 지 회복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바로 세우려고 힘썼습니다. 이 일에 앞장 선 지도자들이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 스룹바벨이고 뒤에 에스라가 가 세합니다. 에스라는 특히 율법의 회복을 위해 노력합니다. 예배의 회복, 절기의 회복, 예물의 회복, 이 세 가지가 합해서, 보세요, 성전의 회복에 이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느부갓네살의 침공 때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성전의 지대 (地臺), 기초부터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을 회복하고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합니다. 7절은 성전건축을 준비하는 내용입니다.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 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사전 준비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3장 8절에서 성전 기초 공사에 착수하여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합니다. 4장은 방해하는 세력이 있어 성전공사가 중단되는 이야기입니다. 16년 동안 중 단되어 있었습니다. 5장은 성전 건축이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6장에서는 성전을 완공하여 봉헌합니다. 에스라서 6장 15절과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리오 왕 제육년(기원전 516년 입니다)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즐거이 하나님의 봉헌식을 행하니" 저희 교회는 지금 에스라서 4장에 머물러 있는데 빨리 에스라서 5장 성전 건축 재착공을 시작하고 이어 에스라서 6장 성전 봉헌의 역사까지 가야 하겠습니다. 예배 회복, 절기 회복, 예물 회복, 그리고 나서 성전 회복, 이 같은 회복의 역사 의 기초에 깔려 있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감사의 회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감사가 넘쳤 을 것입니다. 시편 126편이 이 때 부른 노래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시126: 4)라고 노래할 때 감사가 넘쳤을 것입니다. 그 감사를 바탕에 깔고 예배와 절기와 봉헌을 회복해 나가고 성전도 회복하는 것입니다. 감사가 회복되어야 예배의 진정한 회복도 이루어집니다. 예배의 본질은 감사입니다. 구원의 은총에 대한 감사, 한 주간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올해의 상반기를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 감사가 있어야합니다. 감사가 없는 예배는 사랑이 없는 결혼생활과 같습니다. 교회에서 '기념예배'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창립 40주년 기념예배, 출 판기념예배, 취임기념예배, 회갑기념 예배, 원칙적으로 잘못된 말입니다. 모두 감사예배가 되어야합니다. 감사가 회복되어야 절기의 진정한 회복도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절기들은 모두 감사를 기둥으로 하 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칠칠절, 초실절은 첫 열매를 주신 것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초막절, 수장절은 광야에서 초막을 치고 지내던 것을 생각하면서 광야 생활을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또 곡식 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감사가 빠진 절기는 진정한 절기가 아닙니다. 형식만 남은 것이 됩니다. 예언자 들은 이것을 꾸짖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국경일들이 감사가 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8월 15일 광복절에 우리 나라 사람들이 해방을 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를 드립니까? '우리 나라 에 해방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다'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해방을 위해 힘쓴 애국선열들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이제 8월 15일은 '하루 노는 날' 이런 의미가 강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은 8월 15일을 여름휴가에 연결시켜 하루라도 더 쉬려고 합니다. 감사를 잃 어버린 광복절, 광복을 주신 하나님께 죄송하고 조국광복을 위해 애쓴 순국선열 들에게 죄송한 일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교회들이 평화통일 남북공동기도주일 혹은 평화통일 기원주일이 라고 하면서 8월15일에 새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감리교에 서는 8월15일이 들어 있는 주간의 주일인 8월 둘째 주일을 북한선교주일, 구체 적으로는 평양신학원 후원주일로 지킵니다. 오늘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우리에게 큰 감사가 넘쳐야합니다. 감사가 회복되어야 예물의 진정한 회복도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을 바칠 때는, 봉헌을 할 때는 감사한 마음으로 바쳐야합 니다. 감사헌금만 감사한 마음으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헌금을 감사한 마 음으로 바쳐야 합니다. 마지못해 바쳐서는 안됩니다. 헌금봉투에는 돈을 담기 전에 감사한 마음을 먼저 담아야 합니다. 군대 생활을 할 때 위문 편지를 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쓴 편 지를 받으면 힘이 됩니다. 그런데 위문편지들 가운데 성의 없는 편지가 많습니 다. 한 편지를 베낀 것이, 그러니까 쓴 학생의 이름만 다르고 내용은 거의 같은 것이 같은 내무반에 배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나 이 편지, 선생님이 쓰라고 해서 억지로 쓰는 겁니다' 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솔 직한 것은 좋지만 안 받은 것만 못하지요. 우리들이 감사한 마음이 없이 성의 없이, 억지로 내는 예물은 이런 위문편지와 같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신앙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 살게 하시고, 일용할 양식 을 주시고,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물 이 진정한 봉헌입니다. 감사가 회복되면 예배가 회복되고 절기가 회복되고 봉헌이 회복되고 나가서는 성전도 회복됩니다. 요즘 저희 교회에는 설교 시간에 옆 사람과 인사 나누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 습니다, 주일 저녁 예배에 안 나오는 분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것입니 다. 옆 사람과 인사 나누시기 바랍니다. "감사가 회복되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감사가 회복되면 기쁨도 회복됩니다. 감사가 회복되면 축복도 회복됩니다. 감사가 회복되면 재물도 회복됩니다. 감사가 회복되면 건강도 회복됩니다. 감사가 회복되면 의욕도 회복됩니다. 감사의 회복은 아주 쉽습니다. 믿음의 저울을 바로 잡으면 됩니다. 저는 어제 색다른 설교준비를 잠깐 했었습니다. 토요일에 설교준비 할 때는 묵 상하고, 성경주석 보고, 예화집 보고, 초고 만들고, 기도하고, 수정하고 이렇게 하는데 어제는 이런 준비를 잠깐 했었습니다. 목사님들은 주일에 교인들에게 평안한 얼굴, 혈색 좋은 얼굴을 보여 주어야 합 니다. 이것을 '얼굴로 하는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로 설교를 하기 전에 얼굴로 설교해야 합니다. 그래서 토요일에 만나 서로 얼굴을 마사지해주는 목 사님들도 계시고 점심 시간에 만나 보신탕을 드시는 목사님들의 모임도 있다고 합니다. 어제 '내일은 맥추감사절인데 우선 감사에 넘치는 얼굴을 보여주어야 하겠다''라 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이 시합을 앞두고 몸 만들기에 힘쓰는 것처 럼 감사가 넘치는 얼굴을 만들기 위해 힘썼습니다. 먼저 감사하기 어려운 일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것들이 과연 감사하기 어려운 일인가 생각하고 감사한 일로 만들면 감사하는 얼굴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우선 준공되지 못한 본당 건물이 있습니다. 저 건물이 저에게 주는 스트레스, 이것은 메가톤 급입니다. 때로는 저 건물을 보면 한숨이 푹 나오기도 합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고 건축위원장님과 장로님들은 더할 것이고 성도 여러분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또 교회가 여러 면에서 변화되고 새로워져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교회가 상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언제 좀 펄쩍 뛰어오르겠나 이것도 스트레스입 니다. 교회 주변은 보시는 대로 아직 황량하고 진입로는 불편합니다. 차량 운행 문제, 특히 교회학교 어린이들 차량 문제, 복잡합니다. 지난 주간에 동두천 조금 못 미친 곳에 있는 기도원에서 하는 어린이 성경 캠프에 어린이들 데리고 가고, 오 는 데 어린이들을 교회에서 캠프장까지 수송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강남, 수서, 구성, 용인, 영통, 인덕원, 수지 안의 여러 곳의 어린이들을 교회까지 오게 하고 또 성경 캠프 마치고 집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교사들이 수고를 많이 하는 것 을 보았습니다. 수지 일대의 교통이 날로 복잡해지고 있는 것도 부담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과연 감사를 가로막을 수 있는 일입니까? 건축 문제, 교회의 변화, 이런 것들을 스트레스이기는 발전을 위한 것이니까 '축 복 받은 스트레스'입니다. 또 앞으로 잘 해결될 것들입니다. 교회 앞의 진입로를 12m 도로로 확장하는 일 이 구체적으로 준비되고 있고, 주변 환경도 빠르게 개선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해결할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논문작성법 과목을 여러 해 가르쳤는데 학생들에게 200자 원고지로 100매 이상 되는 격식을 갖춘 논문을 써내라는 숙제를 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여러분,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분량의 글을 써 본 일이 없죠? 고민되시죠?' 하 면 학생들이 일제히 '네!'합니다. '아마 분량을 좀 줄여주려고 그러나 보다' 기대 하고서 힘차게 대답합니다. 거기에 대한 저의 말은 '고민은 고민인데 창조적인 고민이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잘 하세요!' 하면 '창조적인 고민'이라는 말에 학생 들이 아무 말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학기가 끝나면 아주 유익했다고 고마워들 합니다. 건축 문제 같은 것들 스트레스는 스트레스인데 축복 받은 스트레스이니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이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 그 때 스트레스 주셔서 긴장하게 하 시고 기도하게 하신 것을 감사 드립니다' 할 것입니다. 감사한 것들을 찾을 때, 우선 살아있는 것이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저도 한 두 번 스스로 인용한 일이 있는데요 목사님들이 설교 준비할 때 많이 참고하는 「새 예화 종합 대사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 '감사' 항목에 제 일 먼저 올려 있는 예화를 그대로 읽어 드립니다. 어떤 사람이 중병으로 장기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했다. 때는 4월 초 순, 나무마다 새 움이 돋아나고 있었다. 나무 밑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깐 쉬 는데 머리와 나무 사이에도 생명력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병상 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던 일을 생각하면서 이 사람은 자기가 생명을 가지고 이렇게 생명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고맙 게 느껴졌다. 이 사람은 이것을 "생명에의 감사'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생명에의 감사"를 상기하며 극 복해 가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어떤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1982년 봄에 장티푸스로 입원했다 가 복막염이 병발해서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오랜 입원 생활 끝에 회복되어서 퇴원해 나오는데 살아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감사할 수 없었습니다. 방송국에서 보내준 차를 돌려보내고 집에까지 걸어오면서 봄기운이 감도는 거리에서 한없 는 생명감을 느꼈습니다. 그 때 슈바이처 박사의 "생명경외"라는 논문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여러분, 우선 살아있다는 것을 감사하고 그 생명을 보람있는데 사용하시기 바랍 니다.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영원한 나라에 가서 영생을 누리며 살 수 있 다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백지 수표를 품에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 감사한 일입니다. 가장 감사한 일입니다. 정 말 감사한 일입니다. 한쪽에는 무게가 정해진 추들을 놓고 한쪽에는 무게를 알고 싶은 물건을 놓고 어느 쪽으로 기우나 살피면서 무게를 다는 저울이 있습니다. 천칭(天秤)이라고 합니다. 한쪽에 내가 살아 오늘 이렇게 예배 드리고 있다는 것 하나를 놓았으면 다른 쪽에 가난, 취직 문제, 사업이 뜻대로 안 되는 것, 사고를 만난 것, 주변사람들 과 뜻이 좀 안 맞는 것, 마음에 안 드는 일들, 손해 본 것, 무엇을 올려놓아도 이쪽이 무거워야합니다. 감사하지 못할 것들은 모두 상대적인 것들입니다. 감사 한 것들은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홍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백라일텔'이라는 말을 합니다. '라디오에서 백 번 광 고하는 것보다 텔레비전에서 한 번 광고하는 것이 낫다'는 뜻입니다. 영생의 삶 한 가지가 감사하지 못할 조건 백 가지보다 낫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고장난 저울입니다. 믿음이 고장났다는 말입니다. 고쳐야 합니다. 이것을 저는 조금 전에 믿음의 저울을 바로 잡는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믿음의 저울을 바로 잡으면 감사가 회복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이렇게 살아서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 드리고 있다는 것 이 일의 의미를 생각하면 감사를 쉽게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까 '색다른 설교준비를 잠깐 했다'고 했습니다. 길게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한 두 가지만 생각하면 감사의 얼굴이 만들어지지 않을 수 수 없었기 때문 입니다. 오늘 저에게는 또 하나 감사가 있습니다. 지난 6월에 평양에 다녀왔는데 그 때 위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북한이 자랑하는 아리랑 축전을 관람하지 않는다고 주일에 교회 가지 못하게 하고 묘향산 관광 을 가라고 해서 방북단 일행이 여섯 시간, 정확하게는 다섯 시간 20분 동안 호 텔 식당에서 금식을 하며 기도회를 가진 일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TV에서 그것을 다 촬영해서 얼마 전에 방영을 했는데 성도들이 그것을 보고 잘 보았다는 인사를 하고 시청 소감이 인터넷에도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 데 저희 아파트에는 기독교 TV가 안 나와서 저는 어떤 장면이 방영되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인사도 제대로받을 수 없었습니다. 방북을 주관했던 한민족복지재단이라는 단체에서 그 비디오를 보내주어서 어제 저녁에 비로소 보았습니다. '아, 이런 장면이 방영되어서 성도들이 그런 인사를 하는구나!' 알았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방북단 일행이 평양에 도착했을 때 제가 "여기오니까 눈물이 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그 때 사실은 '여기는 제2의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감리교 선교사 제임스 윌리암 홀 목사의 희 생을 기억해야 하는 곳입니다. 1907년의 대부흥운동이 시작된 곳입니다. 다시 한 번 그렇게 되기 바랍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검은 안경을 쓴 친구가 딱 붙습니다. 그럴 때 보안 계통에서 신경을 쓰는 것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마찬 가지이겠지만 이쪽에서는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추는 것으로 알고 있 는데 이 친구는 딱 붙어서 위협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혼자 온 것이 아니고 단 체가 왔는데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부드러운 내용으로 바꾸었습니 다. 평양 한복판에서 집단으로 농성하며 북한에 항의하는 말을 마구 해가며 예배를 드릴 때 모두 '여기서 못 돌아갈지 모른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이 방영되었지요. 저는 북한선교 방송을 오랫동안 했고 지 금도 부분적으로 하고 있고, 통일에 대한 글이나 강연을 많이 하는데 그 내용이 대부분 북한에서 좋아하지 않는 것이고 그 프로그램에 나온 대로 앞에서 메가 폰 들고 금식기도회를 주도한 그룹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가더라도 나는 못 돌아갈 것이다' 생각하고 거기에 대비한 일들도 약간 했습니다. 거기에 억류되어서 고난을 겪어도 감사드렸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쪽에서 강하게 나가니까 북한도 굽히더군요. 저는 햇볕정책을 주도하 는 당국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그 문제가 잘 해결되어서 돌아 와서 이렇게 맥추감사절 에배를 드리고 있는 것, 감사한 일입니다. 잊고 있다가 비디오 덕분에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맥추감사절을 맞이할 때마다 여러 내용의 설교를 했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출애굽기 23장 16절에 있는데 이는 가나안 에 들어가기 이전에, 가장 어려울 때 선포되었으니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감사해야 한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맥추절에는 첫 열매를 바치며 감사해야 하고 올해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하고 올해 남은 부분들도 잘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미리 감사해야 한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우리가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것을 감사하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또 젊었을 때, 잘 될 때, 평안할 때, 지금, 감사하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올해는 감사가 회복되는 맥추감사절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믿음의 저울을 바로 하고, 믿음의 거울을 닦고, 믿음의 안경을 닦고 감사를 회 복하시기 바랍니다. 2002년 목양교회 성도들의 맥추감사절이 감사가 회복되는 맥추감사절이 되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에서 해방되어 돌아오면서 감사를 드렸고 그 감사를 바탕 으로 예배와 절기와 예물을 회복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죄의 포로, 사망 권세의 포로, 허무의 포로, 무의미의 포로, 불안의 포로에서 해방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새벽기 도회에서 한상균 목사님이 "잃어버린 감사를 되찾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는데 잃 어버린 감사를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예배가 진정한 예배가 되고 맥추감사절은 진정한 맥추감사절이 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예물을 봉헌하게 됩니다. 기쁨도, 축복도 회복되고 성 전도 회복됩니다. 감사의 회복으로 많은 것이 회복되고 축복을 체험하는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여 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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