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는 신앙, 믿는 신앙
2002-07-29 19:07:33

본문 : 엡1:15-19 2001.8.5

주제 : 믿음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에 대한 대답은 분명합니다. 창조자이
신 하나님을 믿고 그의 외아들 독생자 예수를 구주로 믿으며,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믿음
이 온전치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가서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하고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리스도인들
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진지합니다. 그 사람
들은 무당이 써 주는 부적을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말씀을 소중히 여기
는 것보다 더 소중히 여깁니다. 그들은 윗도리 안쪽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거나 농안에 잘 넣어두거나 아니면 벽에 부쳐 둡니다. 여러분의
성경책과 여러분이 들은 설교를 어디에 그렇게 정성스럽게 간직하고
있습니까?
서울 미아리 고개에서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를 찾아가서 굿을 한
번 하기 위해서 그 사람들이 지불하는 금액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바치는 헌금 금액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가리켜 신앙인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무당 앞에서
아무리 진지하게 공을 드리고 많은 헌금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이들을
가리켜 ‘미신을 좇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믿음과 미신, 신앙
과 미신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미신을 우리말 큰 사전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는 것을 종교적 신앙처럼
맹목적으로 믿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재철 목사님은 미
신을 정의하기를 “돈이나 재물이나 달란트나 그 무엇이든 간에 나의
소유로 신을 달래고 어르려고 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이럴 때에
자신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오직 신을 변화시켜서 나의 목적을 성취하
고자 하는 것이 바로 미신입니다. 반면에 ‘신앙이란 절대자이신 신
을 인간이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그 신 앞에서
날마다 내가 변화되어 가는 것‘이라 정의했습니다. 따라서 미신과 신
앙의 차이점은 바로 나의 변화 유무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변
화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신앙이지만 자신에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
면 그것은 곧 미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배당에 나와 앉아 있다 하더라도 그것
이 하나님을 나의 재물이나 명예나 학식 등 나의 삶의 목적을 성취하
려고 한다면, 그것은 미신을 좇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그분
의 말씀 앞에서 내가 변화되어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간다면 그
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우리가 참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즉 주님 앞에서 날마
다 변화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
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된 믿음은 바른 앎에서 비롯됩
니다. 바르게 알아야 바르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
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무엇을 믿는 것인지, 어떤 하나님을 믿는 것인
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아는 것이 먼저냐, 믿는 것이 먼저냐? 하는 문제가 대두됩
니다. 어떻습니까? 아는 것이 먼저입니까? 믿는 것이 먼저입니까? 아
리송한 질문입니다.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고 다투는 것과 같
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치졸한 모습으로 논쟁 아닌 논쟁을 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알고 믿는 것과, 믿고 아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모르고 믿었더라도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 생기기까지는 앎
이 필요합니다. 알고 믿도록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기 위하
여 알려고 하거나 이미 믿음을 가졌으나 바르게 알려고 하는 것은 바
람직한 모습니다.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문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말을 못합니다. 반면에 말을 배웠습니다. 문법은 잘 모릅니다. 그러
나 뒤에 모르는 경우도 있고 아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가 정확한 말
을 하겠습니까? 문법을 모르는 말은 의사소통은 될지 몰라도 남에게
아름다운 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지 못한 가운데
서 믿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이제는 제대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
야 신앙이 든든해 집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편지한 내용 가운데 15-19절 말
씀을 잘 살펴보면, 바울은 위대한 사람이요, 기도 내용도 위대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울이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한 기
도 내용을 보면 바울의 신앙관이 어떤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온전한 믿
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믿는 신앙을 가질 때, 알아야 할 것
을 말씀한 것이 본문 내용입니다. 우리는 거저 믿기만 하면 되는 줄
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크게 네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계시의 영을 통해 하나님을 알도록 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해야 합니다.
3. 성소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이 풍성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
다.
4.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크심이 어느 정도 인지를 알아야 합니
다.
오늘은 첫 번째 알아야 할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
습니다. 철학은 인간을 핵심으로 두고 "너 자신을 알라"로 시작하지
만, 신학은 하나님에 핵심을 두고 "하나님을 알라"로 시작합니다. 우
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나님은 얼마
나 놀라운 분이고, 어떻게 살아계신 분이고, 얼마나 영광스럽고 위대
한 분인가?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지금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설명할 수 가 있
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만이 하나
님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는 영적인 통찰력이며, 계시의 정신은 계시
의 영입니다. 영성이 없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죽어있는 신앙생활
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해도 교리적으로나, 율법적
으로, 또는 윤리적으로나 알 따름일 것입니다. 정상적인 인간의 능력
으로 분별할 수 없는 진리가 알려지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
을 정상적인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서 주시는 계시의 영으로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1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
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인간이 갖고 있는
지식이나 지혜로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정
신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문서에 보면
‘영’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
나님이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알고,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임
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크심을 알기 위해서는 하
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라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눈이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육
안, 지안, 영안입니다. 육안은 육체의 눈을 통하여 보는 것이고, 지안
은 지식의 눈으로서 지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시력을 말하는 것입니
다. 글을 모르는 사람을 우리는 까막눈이라고 합니다. 하얀 건 종이
고 검은 것은 글씨라는 정도이지 그 내용에 대해서는 캄캄합니다. 그
러므로 지식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지안이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그리
고 영안은 영적인 세계를 보는 눈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지
만, 영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를 보는 것이고 영적
인 세계의 질서를 알고, 아직은 현실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믿음을 통
해서 다가오고 있는 하나님의 세계를 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런데 성경은 이렇게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영적인 세계가 더욱 중요
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후4:16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영적인 축복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
식보다 더 고상한 지식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님을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전에 알았던 지식, 예수님을 알
고 하나님을 아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다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습니
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데 방해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 것
은 아낌없이 버러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은 헬라적이라기 보다는 히브리적 개념입니다. 즉, 경험적인 지식, 경
험적인 앎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쉽게 얘기하면 하나님은 철학적인
어떠한 방법으로 알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
에서, 우리의 생활터전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와 만나지심으로
알 수 있는 그러한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
님을 알아야 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계시는 무엇
입니까? 하나님의 계시중에 가장 훌륭한 계시는 무엇입니까? 성경입니
다. 딤후3:15-16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
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
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물론 자
연을 통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보여주십니다. 사건을 통해서도 하나님
을 보여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과 계시의 영이 없으면 은
성경을 통하여 자신을 우리에게 다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는 성경을 통하여,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
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바로 알지 못한 믿음은 미신에 불과하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노력만으로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기도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
오. 주여,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
하면 이상한 종교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
다. 그래서 자꾸만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믿음으로 하지 않
습니다. 하나님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어디에서 출발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제일 안타까와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
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사1:2-3 "하늘
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
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 짐승들도 주인을 알아보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알
지 못하는 성도들을 보면서 하나님은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뇌수술을 받은 환자를 심방할 때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이 있습니
다. “나를 알겠습니까?” 알아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알아본다는 것
이 전제되어질 때 우리는 믿을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가 하나
님을 알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데 우리가 알아야 할 하나
님을 계시를 통해서 지혜를 통해서 알게 된다고 할 때에 하나님에 대
한 것을 우리는 성경속에서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적으
로 만난 것은 자신의 것으로만 간직해야 합니다. 개인이 만난 하나님
을 대중적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모습도 없지 않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가장 설명하신 것은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살
아오면서 배운 하나님에 대한 속성을 우리는 많이 들었고, 똑 학습을
해왔습니다. 예컨데, 창조하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치료하
시는 하나님, 구원자이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
는 하나님 등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하나님
을 바로 믿지 못할까요? 중요한 것은 껍질만 안다고 해서 속까지 아
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도 겉은 멀쩡한데 속은 다 썩었고 이미
암균이 번지고 있고, 어딘가 모르게 병들어가는 곳도 있지만 잘 모릅
니다. 신호가 와야 알 수 있습니다. 신호가 와도 사실은 어디서 무엇
이 얼마나 아픈지, 병들었는지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오
늘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할 때 기본을 넘어서서 성숙한 신앙이 되
기 위한 하나님에 대한 앎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 때에 우리의 믿음이 바르고 정확하기 때
문입니다. 올바른 믿음은 올바른 앎으로부터 출발합니다.
1. 마6:7-8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
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 하느니라 /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
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
아시느니라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어린 자녀가 필요한 것을 누가 잘 압니까? 아이입니까? 부모입니까?
부모가 더 잘 압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알고 이미 줄 수 있는 것은 우
리가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이미 내가 구하기 전
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제 세상에 살면서 필요한 것은 그만 구하시고 적어도 마6:33절 말씀처
럼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
을 가질 때 성숙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필요
한 것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자녀들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염려하
지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살아갈 자신의 인생을 고민하며, 세상에서
필요한 학문을 연구하고 습득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우리가 필요
한 것을 미리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에 기억해야 할 것은
성숙한 믿음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힘써야 합
니다.
2. 내가 원하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7:9-11절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
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 예수님은 하나님을
말씀하실 때 악한 부모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는데 하
믈며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
냐? 하셨습니다. 여러분 사업이 어려운 분 계십니까? 하나님은 누구보
다도 여러분의 사업이 잘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 아십니다. 지금 깨어
지거나 어려움을 겪는 것은 도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시기 때문입니
다. 우리가 세상에 살 때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정
확하게 알고 깨닫고 믿으면, 보다 더 성숙한 믿음이 됩니다. 여러분
이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 뒤에는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원하시는 큰
은혜가 있습니다. 요셉의 경우를 보세요. 요셉이 형들에 의해 애굽 상
인들에게 종으로 팔려간 것만 생각하면 절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다른데 있었습니다. 더 좋은 것을 예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
습니다. 애굽 총리의 자리를 준비해놓고 계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없었더라
면 어찌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겠습니까? 어찌 부활하신 후에
40일만에 승천하시는 영광을 얻겠습니까? 항상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할렐
루야!
3. 그분이 만들어 놓은 그분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눅12:31-
32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
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
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보면, 예수님이 우리가 있을 나라를 준비하러
가신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준비가 되면 우리를 부르러 오신다고 했습
니다.
4.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5:17절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
이제까지 일하시는 하나님, 즉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
가 잠자는 중에도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고 일하십니다. 지금
도 하나님은 나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
같이 주님은 피서를 가거나 혹한을 피하여 아름다운 남태평양으로 가
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렇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
을 가진 자로서 우리도 그분을 위하여 충성하고 봉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입니다.
요10:28-29절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
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
라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기 때문에 모든 창조물보다도 크십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만유보다 크신 분이심을 믿을 때에 우리
의 신앙이 달라집니다. 여기에 모험을 걸게 되고 어떤 것이든지 주님
이 하라 명하시면 하게 됩니다. 모험을 하지 않고는 결단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물위로 걸은 사건을 기억하십니
까? 앞에서 부르시는 예수님을 그는 믿었습니다. 어떻게요? 바다를 잔
잔케 하시는 주님으로 믿었고 그것이 자기에게도 나타내실 수 있다
는 모험을 가졌습니다. 신앙은 모험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하
나님을 위한 영적 모험의 여정에 나서기 위해서 자기 삶을 던질 때,
그가 두 발 딛고 서 있는 지점이 아무리 작고 또 그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이 세계를 반드시 변화시
켜 나가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살면서 빛의 자녀가 되는 모험을 회피하지 마십
시오. 부정직한 세상에서 정직을 선택하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마십시
오. 사술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진리를 선택하는 모험을 앞장서서
시도하십시오. 거짓과 불의가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진리와 의를 좇아
가는 모험을 시도하십시오. 미움과 질투와 그리고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패배하는 인생이 된다는 것을 나팔불며 다니는 세상을 사랑과
긍휼하심과 승리하는 모험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만유보다 크십
니다. 내가 아무리 작아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가 하는 일이
별로 대수롭지 않는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위한 모험을 감행
한다면 주님께서는 나의 삶을 통해 세계의 역사를 변화시켜 나갈 것입
니다.
6. 우리가 죽는 순간에 우리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눅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
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 세상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이 다가올 때 두려워합니다. 이유는 그것으로 끝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는 죽음의
순간이야말로 가장 장엄한 일이 발생합니다. 죽음의 순간이야말로 하
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영원하신 손으로 우리의 영혼을 받아 주시고
책임져 주시는 순간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그래서 시23:4 "내가 사망
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
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미
국 타임지를 창간한 헨리 루스 부인인 클레어 부츠 루스 여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죽은 날로 기억된다” 살아 있는 사람
들은 생일로 축하받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는 죽은 날만 기억합니다.
우리가 죽은 모습으로 우리를 영원히 기억합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출
생했는가를 잘 기억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나의 자녀”라고 인쳐 주셨습니다. 그런
데도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분을 우리 아버지라 생각하지 않고 그분에
게 등을 돌리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고 정확한 믿음으로 가지셔서 하나님을 영화
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미신속으로 빠지지 마시고, 그렇다고 맹목적
인 신앙이 아닌 하나님을 알고 믿는 신앙이 되셔서 세상을 변화시키
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변화가 여러분에게 계속 일어나기를 축원합니
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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