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 - 사람의 나라
2002-06-07 19:20:42




■ 설교자:박 종 화 목사
■ 설교일:2001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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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말씀: 출애굽기 20:1 ~ 6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선기지 못한다.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서신서 말씀: 로마서 14:17 ~ 19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그리스도를 이렇게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평화를 도모하는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씁시다.

복음서 말씀: 누가복음 17:20 ~ 21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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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공격을 당하다." "America under attack" 한 신문의 제목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실제 공격당하는 것은 미국인데, 전세계의 사람들이, 나라들이 공격을 당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은 테러 집단이 무장도 하지 않은, 방어나 공격체계 하나 없는, 민간인들이 모인 뉴욕의 무역센터를 비행기로 공격했습니다. 수천 명이 죽었고, 앞으로 밝혀지겠지만 아마 수만 명이 죽은 것으로 드러날 것 같습니다.
최첨단의 기술과 건축공법으로, 인간이 가진 최고의 지혜를 발휘해서 세워 놓았건만, 그것이 가장 원시적인 방법인 비행기 충돌 하나로 삽시간에 무너지는 비극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인간의 능력과 지혜가 인간의 작은 폭력으로 그냥 사그라져 갔습니다. 미국만 아니라, 전세계를 방어한다고, 세계경찰을 자임하면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지휘하는 펜타곤이 작은 비행기 한 대의 충돌로 건물 일부가 와해되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질만능과 군사적 능력의 최고치가 그냥 작은, 정신 빠진, 원시적인 한 테러집단에 의해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극렬한, 극악한 소수의 테러리스트는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삽시간에 죽일 수 있었습니다. 최신 무기도 아닌 민간 항공기가 첨단 군사력의 심장부를 찔렀습니다. 경제대국, 군사대국, 정치대국의 자존심은 완전히 내려앉았습니다. 분노, 보복이 천지를 진동합니다. 아마 아프가니스탄에 이제 곧 폭탄 세례가 떨어질 것 같습니다.
소련의 브레즈네프 총서기관이 1979년, 2주일이면 가능하다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습니다. 그러나 2주일은 고사하고 10년이 지난 1989년, 고르바초프는 소련군을 철수시켰습니다. 그 항전의 십여 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은 엄청난 비극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 일이 또 반복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세계는 당혹해 하고 있습니다. "큰일났구나. 좌절이구나. 우리가 만든 문명은 뭐냐. 우리의 안보는 어디에 있나. 우리의 능력은 어디에 있나. 왜 삽시간에 이렇게 무너져만 가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아마 여러분도 심각한 갈등 속에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20세기에 인류는 세계의 조직화된 큰 권역별 문제들 속에서 살았습니다. 유럽에서는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등장해서 소위 말하는 파쇼주의와 나치주의를 내걸었습니다. 모두가 다 극단적 군국주의입니다. 이 피해가 얼마나 컸던가 하는 것은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 모든 사람이 외친 "전쟁은 그만"이라는 한마디를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우리 나라를 포함해서 모든 나라가 틴도(神道)라고 하는 일본 천황주의, 군국주의 발굽에 얼마나 짓밟혔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습니까? "다시는 전쟁은 그만!" 그 목소리가 지금도 우리 귓가에 울려퍼지고 있고, 아직도 우리는 치를 떨고 있습니다.
우리는 극단적인 파쇼주의의 고통도 맛보았습니다. 군국주의의 아픔도 맛보았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극좌에 속하는 공산주의의 엄청난 파괴력도 맛보았습니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우리에게는 극우의 폭력도, 극좌의 폭력도 인간을 얼마나 무참하게 짓밟는가를 뼈저리게 체험하고, "다시는 전쟁은 그만!"이라고, "이제는 평화를!"이라고 외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오늘 위험하다는 우리 나라가 아닌, 서울이 아닌, 삼팔선이 아닌, 전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하는 워싱턴에서, 뉴욕에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것도 백주에! 집 밖의 안보가 아니라 안방의 안보가 걱정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20세기는 그랬다 치고, 21세기에는 평화가 올 줄 알았는데, 작지만 엄청난, 굉장히 극렬한 또 하나의 비극이 현실화되었습니다. 우리가 "테러"라고 말합니다만, 이 테러 집단은 그냥 사람들이 모인 폭력 집단이 아닙니다. 테러 집단에도 사상적 뿌리와 신앙적 뿌리가 있습니다. 호메니의 등장으로 이란에서는 소위 말하는 호메이 체제가 등장했습니다. 그걸 우리는 이슬람권 내의 원리주의라고 부릅니다. 또한 근본주의라고 이름합니다.
근본주의, 영어로 하면 펀다멘탈리즘(fundamentalism)이라 하는 것은 자기 종교, 자기 신앙 외에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와 다른 것은 그야말로 밟아 없애야 하는 자기만의 독선적 상태입니다. 이것이 정치로 옮기면, 정치적 펀다멘탈리즘이 됩니다. 오늘 뉴욕과 워싱턴을 강타한 테러 집단도 이런 이슬람의 종교 정치적 근본주의에 깊이 뿌리를 둔 집단입니다. 이런 집단은 지금 뉴욕, 워싱턴만 노리는 것이 아니라, 서울도 노릴 수 있고, 전세계 어느 곳이든지 노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엄청난 파쇼주의와 공산주의의 위협과 또 텐도주의를 보았지만, 지금은 그와는 다른 상황을 보고 있습니다. 국가도 아니면서, 권역화되지도 않으면서, 국경을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한 작은 원리주의자들의 테러집단 때문에 전세계가 가슴을 조이고 살아갑니다.
사실 우리는 국가와 국가, 집단과 집단의 전쟁을 막으려고 노력하지만, 오늘 21세기의 전쟁은 전혀 다른 양태로 진전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컴퓨터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컴퓨터 네트워크가 끊어지면, 바로 그 순간 행정과 금융만 아니라 우리의 사고까지, 그 모든 것이 정지되는 지경에 와 있습니다. 기술문명이 발달할수록, 문명의 동선이 끊길 때의 충격도 커집니다.
누가 우리가 먹는 물, 상수도에 독약을 뿌린다면, 전쟁이 아닌데도 순식간에 수만 명, 수천 명이 살상 당할 수 있습니다. 생화학무기가 사용되면 총과 미사일을 든 전쟁 없이도 그냥 수많은 사람이 쓰러져 갈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같은 나라는 지금 전쟁보다는, 그 흉악한 질병, 에이즈라는 질병이 더 완전하게 인간을 초토화 하고 있습니다. 이건 또 하나의 신체적 테러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마약과 같은 것이 남미와 아시아를 휩쓸면서, 인간의 정신을 완전히 파멸시키고 있습니다. 무기를 들고 폭탄을 들어야 전쟁이 아닙니다. 오늘의 전쟁은 또 다른 소규모이나 강력한 집단이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는 그런 전쟁입니다. 또 다른 반평화, 반윤리, 반정의 가 몰려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뉴욕과 워싱턴에서 사건을 일으킨 집단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가 벌이는 전쟁은 '거룩한 전쟁'이다. 우리는 희생당해서 순국선열로 존경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알라신을 위한 영원한 순교자로 칭송받고 싶다. 우리는 죽은 게 아니라, 알라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이 사람들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전부터 거룩한 전쟁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서구의 모든 물질문명과 군사주의와 패권주의 도전한다고 선언을 해왔습니다.
이들의 테러 때문에 전세계가 공통으로 분노를 발합니다. 일차적 분노는 테러집단을 응징하자는 데로 몰립니다. 그러나 항상 응징이 끝나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다른 곳을 향한 이차적 분노가 미국민들 사이에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물질문명의 최고치, 뉴욕의 World Trade Center같은 우리의 문명의 극치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믿었던 펜타곤의 국방력은 그렇게도 허약합니까? 뭘 했습니까?" 자체 비판의 물결이 들끓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야 진실로 평안할 수 있고 안전할 수 있을까 하는 논의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우리 모두의 관심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설교제목을 "하나님의 나라와 사람의 나라" 이렇게 잡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룹니까? 사람의 나라는 어디에 있고,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성서 말씀 보겠습니다. 누가복음서에 보면, "사람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언제 옵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의 대답입니다. "그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대로 오지 않는다. 그 나라는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하지도 말라. 그 나라는 바로 당신들 안에 있습니다."
"어디 가면 편합니까? 세상 어느 구석을 비행기 타고 가면 편합니까? 하나님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편한 나라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당신 스스로가 편할 수 있다면, 당신이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그곳이 평화가 있는 곳입니다.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말을 뒤집어 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찾는 사람의 심정을 이렇게 거꾸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피하고 싶은 악은, 파멸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란에 있습니까? 아프가니스탄에 있습니까? 중동에 있습니까?" 대답은 이렇습니다. "악과 파멸은 바로 당신들 옆에, 당신들 안에 있습니다. 내가 가고 싶지 않은 지옥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옥은 아프리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은 바로 당신들 안에 있습니다. 천당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도 당신들 안에 있습니다. 멀리 가지 마시고, 남에게 책임 회피하지 마십시오. 내 안에, 당신들 안에 지옥과 천당이, 악마와 천사가, 슬픔과 기쁨이 교차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결단을 내리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산다는 것은 몸으로 살고 영으로 사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영과 몸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으면서, 이렇게 제자들에게 설파하고 죽어갔습니다. "내가 지금 독배를 마심으로써 내 영혼은 영원히 불멸의 삶을 살게 된다. 내 몸은 그 동안 내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었는데, 이제 내 혼이 몸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자유를 누릴 것이니라." 이 소크라테스의 독배 마시는 장면을 이론화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제자인 플라톤이 유명한 책을 하나 썼습니다. {파이돈}이라는 책에서, 다른 것은 그만 두고, 영과 죽음 얘기를 이렇게 썼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사람이 일하다가 자고, 자다가 깨어나고 하는 이런 리듬의 반복입니다. 잔다고 하는 말은 죽음을 뜻하고, 깨어서 일한다는 말이 사는 것을 뜻합니다. 삶과 죽음이 리듬처럼 이렇게 굴러갑니다. 그런데 삶과 죽음을 넘어서서, 자고 깨는 몸 속에서 자지도 않고 깨지도 않으면서 인간을 지배하는 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걸 가리켜서 영혼이라고 합니다. 그 영혼은 자지도 일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 육의 영역을 초월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사람이 태어나면서 생각해 보니까, 인간의 몸의 운명과 상관없는 영혼이 자기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혼의 선재설(先在說)을 주장합니다. 세 번째로는 죽는 광경을 봤더니, 영혼은 죽은 이후에까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영혼 후재설(後在說). 이 세 가지가 {파이돈}에 담긴 설명입니다. 영혼은 몸과 같이 있으나 몸에 속하지 아니하고, 몸보다 먼저 있었고, 몸 이후에도 있고! 그래서 영혼불멸!
그렇습니다. 오늘 뉴욕의 WTC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서, 테러리스트들은 그랬을 것입니다. "미국의 몸뚱이가 완전히 무너지는구나. 이제 우리는 완전히 세계경제의 그물에서 해방이다! 워싱턴의 펜타곤이 완전히 지리멸렬하는구나. 그 육으로부터 해방이다!" 이렇게 외쳤을 것 같습니다. 플라톤의 논리를 빌리지 않더라도, 사실은 폭탄을 투여할 수 있는 만용, 이것은 몸과 영혼이 분리된다고 확실히 믿는 펀다멘탈리스트한테 가능합니다.
저는 신앙적으로 이렇게 봅니다. 뉴욕에서 무너진 건물 잿더미 속에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치면서 죽어 가는 그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죽어갔습니다. 펜타곤 건물이 무너질 때 하나님의 오른팔이 잘려 나가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아우성 속에 하나님의 영은 함께 계십니다. 영과 육을 분리하는 사고는, 그 이원론적 사고는 내 영, 홀로의 영이 살기 위해서 다른 모든 육체가 죽어야 할 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고난 당하는 우리 현실 속에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그 하나님은 "해방"받고 계십니까? 아닙니다. 그 하나님은 고통 속에 함께 계십니다.
성서 말씀 어디를 찾아보아도 몸뚱이와 영혼이 분리되었다는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서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몸 속에 들어와 인간의 영과 합하고 인간과 함께하신다는 말씀이지, 사람이 죽으면 사람의 영도 떠나버리고, 하나님도 떠나버리고, 사람 이전에 영이 따로 있었고, 죽으면 육과 분리되어 영으로 있는 그런 인간, 그런 하나님은 제가 성서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나 죽으나 임마누엘, 함께하십니다. 인간의 고통 속에 같이 고통해야 하나님이지, 인간이 죽어 가는데 하나님은 나 몰라라 멀리 있는다면, 그것이 무슨 하나님입니까? 그런 하나님 뭐 하려고 믿습니까? 그런 영혼불멸의 하나님은 우리한테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혼자 계시지 않고, 예수라는 분을 통해서 인간이 되셨습니까? 뭐 하러 십자가에서 찔렸으며 피를 흘리셨습니까? 우리가 믿는 그 하나님은 혼자 계시지 않고, 우리와 똑같은 육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테러의 희생자일 수 있고, 매맞음의 희생자일 수 있고, 분노의 희생자일 수 있고, 오만과 좌절의 희생자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현대문명이 하나님 보시기에 탐탁한, 하나님 나라에 근접하는 문명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안전과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저는 잘라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됩니다.
내 영혼을, 우리의 집단적 이기주의적 영혼을 다른 사람의 육체와 몸을 부수고 해방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과 우리의 영혼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며, 그속에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고 생각하면, 거기다가 어떻게 총질합니까? 상대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들이라면, 그 사람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밟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 영혼과 몸의 분리, 이원론적 사고, 이것이 펀다멘탈리즘을 만들어 갑니다. 적어도 그렇게 믿는다면 사람을 착취하십시오. 그리고 폭력을 행사하십시오. 그러나 그 테러를 저지를 때 하나님이 고통 당하고 죽어갑니다. 그 소리를 들으십니까? 하나님은 오늘 엄청나게 아파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너희들은 지옥은 다른 데서 찾으면서, 천당도 다른 데서 찾으면서, 왜 나를 하나님이라 부르느냐? 너희들 속에 천국과 지옥, 악마와 천사, 악과 선이 함께 존재하느니라."
오늘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몸의 행위가 아니라,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 서로 의라고 느끼고, 서로 평화를 느껴야 기쁨이 올 게 아닙니까?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기쁘고 함께 평화를 누리고 함께 의를 경험하는 곳, 그곳이 바로 하나님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사람들이 곡해해서 영혼불멸설을 만들었듯이, 육을 떠난 혼 속에 있는 의와 평화와 기쁨이 아닙니다. 인간의 육체 속에 들어와서 참 인간이 되신 거룩한 영, 성령 안에서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어떻게 해서 거룩합니까? 하나님은 죽어 가는 사람들 속에 함께 계시기 때문에 거룩합니다.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울부짖음 속에서 함께 울고 계시기 때문에 정말 거룩합니다. 그래서 성령입니다. 그런 영은 죽음을,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시는 영, 함께 사시는 영, 그래서 인간의 죽음 속에 들어와서 죽음을 죽음으로 남겨놓지 않고, 죽음을 넘어선 새로운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시는 영입니다. 악령은 파괴하나 거룩한 영은 살립니다. 살려 주십니다.
저는 오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을 본받았으면 합니다. 그 거룩은 함께하는 거룩함입니다. 저는 앞으로 전세계 속에 각양각색의 극단주의적, 원리주의적 테러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늘의 영을 모시고 사는 길입니다.
테러가 없고, 착취가 없고, 벽이 없고, 서로 함께 회개함으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영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올바른 일 하다가 고난받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영은 버리고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위로의 영으로 함께하십니다. 그러나 끝내 그 영은 살리는 영, 부활의 영입니다. 그 영이 영원한 영이십니다. 그 영을 오늘 우리는 복으로 받았습니다. 그 영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영과 함께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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