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장 큰 복 2002-05-23 15:49:34 본문 : 마가복음 10장 28~31절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금세(今世)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來世)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복(福)을 받으며 살고 싶어하는 마음은 다 같습니다. 누구나 몸이 건강하고 재물이 많고 장수하고 자손들이 번성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기를 소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은 참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은 복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받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어서 늘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사실 이 세상 복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언제 잃어버릴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현재 가지고 있다 해도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수명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장수한다 해도 70년이요 특별히 몸이 건강하여 80년을 산다고 해도 그 기간은 너무나 짧습니다. 세월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성경에서도 세월의 흐름을 “날아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시 90:10). 그런데 우리의 삶은 이 세상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육신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영혼은 영원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몸은 죽어도 영혼은 결코 죽든지 소멸되지 않습니다.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든지, 지옥에서 마귀들과 함께 영원히 고통을 당하며 살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결단코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둘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이 자리에 함께 앉아 예배드리고 있지만 그날에는 둘로 쫙 갈라집니다. 마치 양과 염소로 나뉘어지듯이 천국에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으로 정확하게 갈라집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하기를 원하십니까? 이제부터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떤 복을 받아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복중의 가장 큰복은? 1.예수님을 믿어 구원얻는 복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천국시민이 됩니다.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믿음의 조상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들의 자손 중에 메시아가 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28:10-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의 꿈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야곱은 꿈속에서 땅에서 하늘까지 닿은 아주 긴 사다리와 그 사다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5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좬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좭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야곱이 꿈에 본 사닥다리를 주님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어떤 특별한 뜻이 연관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인간들은 모두 다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행위와 공로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구원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죄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야곱이 꿈에서 본 사닥다리와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자신이 좬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좭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요14:6).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 이외에는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습니다(행 4:12)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브라함이 낳은 직계자손이라고 해서 모두 다 구원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은 이방인이 되었고 사라가 나은 [이삭]은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아들중에서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고 [에서]는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직계자손도 이러한데 하물며 우리는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이방인 아닙니까? 이처럼 구원얻을 가능성이 전혀 희박한 저와 여러분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천국의 기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2.은혜를 받는 복입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무지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매순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창세 전에 택함을 받았으며,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사함을 받았고,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이 반드시 받아야 할 큰 복은 성령충만한 은혜를 받는 복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얻게 해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닫고 늘 감사하면서 살게 마련입니다. 오래 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 한 토막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 시민을 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의 큰 도전을 주었던 [라이언 화이트]라는 한 어린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라이언은 13살 때 혈우병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수술중에 수혈한 피로 인해 에이즈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라이언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낙망하지 아니하고 예전과 다름없이 밝게 학교생활을 해나갔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염려하는 부모님을 위로하며 기쁘게 살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신문기자들에게 알려지면서 라이언의 삶이 매일 매일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신문과 텔레비전 등 전파매체를 타기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을 비롯하여 부동산 재벌들 그리고 마이클 잭슨 등 내노라는 유명 인사들과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위로하고 선물을 주며 관심을 보내왔습니다. 그후 라이언은 5년을 살다가 18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습니다. 그 소년이 죽기 전에 그의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 내용이 한 크리스천 잡지에 실리면서 또 한번의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이제는 네게 아무 것도 해줄 것이 없구나. 이 아빠가 더 이상 어떤 선물도 줄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아빠, 전 지금까지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아무도 아빠같은 선물을 준 사람은 없어요. 아빠는 저에게 죽어서도 천국에 갈 수 있는 티켓을 선물로 주셨잖아요. 바로 예수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아빠 때문에 교회에 나가서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선물로 얻었는걸요. 이보다 더 위대한 선물은 아마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바로 이 모습이 은혜받은 신자의 모습입니다. 은혜를 받아야 행복한 신자가 됩니다. 은혜받은 신자는 구원의 확신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확신이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죽음이 와도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베푸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늘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갑니다. 늘 마음의 천국을 이루며 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면서도 천국을 맛보며 살게 됩니다. 은혜받은 신자는 교회에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기뻐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예수믿고 첫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때는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좋고, 판잣집에 살아도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밤을 세우며 공부를 해도 피곤하지 않았고 늘 기쁘고 좋았습니다. 공부하는 것도 즐겁고 교회가는 것도 즐겁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은혜받은 자가 아니면 이런 맛을 도저히 맛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은혜를 받아야 비로소 행복한 신자가 됩니다. 미국의 C.C.C를 대표하는 빌브라이트 박사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런던의 어느 정류장에서 한 노인이 지나가는 한 여인을 불러세웠습니다. “부인 미안합니다만 제가 감사를 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이 부인이 깜짝 놀라 “내게 감사하다니요?”하고 되물었습니다. “저는 승차권을 받는 직원입니다. 부인께서 항상 제 옆을 지나가실 때마다 언제나 밝은 미소와 함께 아침인사를 해주었습니다. 그것이 제게 얼마나 각별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비오는 날이나 밝은 날이나 언제나 똑같은 미소와 인사를 하셔서 ‘어디서 그런 행복한 미소가 나온담, 언제나 사람이 행복할 수 잇는 것은 아닌데, 그런데 이 부인은 늘 행복해 보이니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미소가 부인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 틀림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이 지나가실 때 그 손에 작은 성경책이 들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성경으로부터 행복한 미소가 나오는게 아닌가 생각하고 저도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성경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성경을 읽고 있는데 드디어 그리스도를 찾았습니다. 이제는 저도 그 행복한 웃음을 웃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드리고 싶어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받은 성도는 얼굴이 밝습니다. 근심거리가 많아도 하나님께서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을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축복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늘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복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건강하고, 얼마나 장수하며,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재산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서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울 것이 없고 책망받을 것이 없는 모습으로 서려고 하면 우선 믿음으로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힘쓰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먼저 믿은 자에게 많은 영혼을 구원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실 때에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부탁하신 지상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완전히 복음화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된다면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고생이 되고 많은 핍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받을 칭찬과 상급과 면류관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서 잠시받는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닌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30절을 보면,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 핍박만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금세에 백배의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31절에서 좬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좭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말씀을 특별히 하셨을까요? 일반적으로는 예수님을 먼저 믿음 사람은 나중에 믿은 사람보다, 예수님을 믿은지 오래된 사람은 이제 예수님을 믿은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보다 은혜도 더 많이 받았을테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 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은혜를 한번 뜨겁게 받았다고 해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날마다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하늘 양식인 만나와 같은 것입니다. 만나는 그날에만 먹어야 했습니다. 그날을 넘기면 모두 다 상하여 다시 먹을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받을 은혜는 오늘 받아야만 합니다. 따라서 내일을 위한 은혜는 내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한번 받은 은혜의 체험이 영원히 계속되는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어리석게도 예전에 받은 은혜를 추억하며 오늘 받을 은혜를 소홀히 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히 자기 자신이 얼마나 은혜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요한계시록 3:17절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인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좬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좭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좬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좭라고 진단하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습관적인 신자가 되기 쉽습니다. 일주일 내내 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으로 자기의 할 일을 다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십일조 헌금만 드리면 모범적인 신자가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래 가지고서 어떻게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악마와 죄를 이기며 살 수 있습니까? 경건을 유지하며 거룩한 신자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날마다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각자 은혜받은 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바쳐서 이 민족을 복음화하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흠과 티와 책망받을 것이 없는 성도가 되고 하나님 앞에 칭찬과 면류관 상급을 받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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