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의 좋은 생각 2002-05-23 15:48:21 본문 : 이사야 55장 6절 ~ 13절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잠언 23:7절을 보면 좬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좭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 곧 그 사람의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고 하면 그 사람이 평소에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들어보면 알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고 하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가 알려고 하면, 평소에 어떤 생각을 주로 하며 사는지 살펴보면 됩니다. 내가 늘 좋은 생각을 많이 한다면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쁜 생각을 많이 한다면 나는 나쁜 사람입니다. 거룩하고 경건되고 아름다운 생각을 많이 한다면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음흉하고 음란한 생각을 많이 한다면 매우 세속적인 사람입니다. 이처럼 그 사람의 생각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습니다. 타락의 근성을 가진 우리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왜 이렇게 시끄럽고 살기가 어렵습니까? 좋지 못한 환경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환경이 왜 이렇게 나빠지고 있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가면 갈수록 인간들의 마음이 악해지고 부패하여 바른 양심이 실종된 어지러운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이 거짓되고 잘못되다보니 이 세상이 점점 악해지고 살아가기가 매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좬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좭라고 했습니다(렘 17:9-10).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 만물보다 더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물은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나운 짐승은 지금도 사납고 순한 짐승은 지금도 순합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점점 악해져서 이 세상 인심을 온통 황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계략을 품고 있는지. 또 마음이 선한지 악한지, 좋은지 나쁜지 사람의 마음을 시험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들이 홍수심판을 받게 된 원인을 창세기 6: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좬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좭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인간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꿈꾸는 것들이 모두 악하다보니 자연히 악에서 악이 나올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 세상이 점점 더 악해지므로 하나님이 지면에서 인간들을 모조리 쓸어버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나라를 좋은 나라 잘 사는 나라로 만들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도 한국 백성들의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가정도 교회도 직장도 사회도 이 나라도 그곳에 속해 있는 구성원들의 마음이 바르게 돌아서기 전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마음을 바꾸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15:11-24절에 소개되고 있는 탕자의 비유를 보면, 왜 그가 아버지 집을 떠나 탕자가 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생각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좋은 아버지를 모시고 효도하며 살았더라면 얼마나 행복하고 좋았을지 모르는데, 이래라 저래라 말씀하시는 것을 간섭으로 귀찮게 여기고 그것을 몹시 싫어했기 때문에 아버지 집을 떠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간섭이 없는 먼 곳으로 가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꿈을 펼치고 살면 행복하리라고 잘못 생각하여 집을 나간 것입니다. 이 탕자의 마음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르고 귀찮게만 생각했습니다. 신명기 6:24절과 10: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라” “하지 마라” 하시는 모든 계명은 우리가 “항상 복을 받으면 살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지 우리를 귀찮게 못살게 하려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싫어하고 도리어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은 짓을 계속했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이 모두 생각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솔로몬처럼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왜 망하고 타락했습니까? 한마디로 생각을 잘못해서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제가 상상해보건대, 솔로몬은 지혜가 출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나라와 사돈관계를 맺는 외교정책을 구사하여 평화를 구축하려는 기가 막힌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략상 그 나라들의 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 아내가 일 천명이나 된 것입니다. 한 여자를 한 번씩 만나본다 해도 수년이 걸릴테니 무슨 수로 그 많은 여자들을 통제할 수 있겠습니까? 자연히 이 여인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예전에 자기 나라에서 섬기던 각종 우상을 들여와 섬기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전도서 2:3절을 보면 생각을 아주 잘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아보려고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정력을 낭비하며 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솔로몬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고 축복하신 삶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쾌락의 노예가 되어 제 멋대로 살다가 일생을 망친 부끄러운 인물이 되었습니다. 모든 문제는 부패한 인간들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를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생각은 사단이 주는 생각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부패한 마음속에 악하고 더러운 생각을 집어 넣어줍니다. 마음이 더러워지고 부패해지면 사단이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악한 일에 그 사람을 들어 사용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생각을 한 것도 돈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2절을 보면,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 생각을 넣었다고 했습니다. 아무 사람에게나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돈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악한 생각을 집어 넣어줍니다. 그는 평소에 돈궤에 손을 대고 돈을 훔치는 양심이 화인 맞은 부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결국 사단이 예수님을 파는 악한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사단은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악한 생각을 하게 하여 악한 일을 하게 하고, 음란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음란한 생각을 집어 넣어주어 음란한 행동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거짓된 마음이 자리잡고 있는 사람에게 거짓된 생각을, 불의한 사람에게 불의한 생각을 집어넣어서 불의한 짓을 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타락의 근성을 가진 우리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자칫 잘못 생각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따라가는 생각입니다. 우선 사람은 자신의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중요하게 여기고 판단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그들 앞에는 홍해 바다가 있고, 뒤에는 애굽 군사의 추격이 있었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절대 절명의 위기입니다. 따라서 다급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전능하심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도자 모세는 달랐습니다. 100% 불가능한 현실 앞에서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바다를 육지처럼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판단이 정확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 바라보고 생각하고 결정하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이 환경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에 있는 것도 아니며, 어떤 사람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살리고자 하시면 삽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일어납니다. 이 믿음을 가지지 않고서는 말세에 승리할 자가 없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우리 주님이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사랑하심과 신실하심을 믿고,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별히 환난 많은 이 마지막 때에는, 마치 홍수시대에 세상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천장 꼭대기에 있는 창문을 통해서만 바깥세상을 쳐다본 노아처럼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말씀으로 무장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실패의 원인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곧 망할 것 같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망할 때 망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장사하는 분들 중에 더러 장사를 하면서도 꼭 망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무슨 기쁨이 있다고 웃음으로 손님을 맞이 하겠습니까? 결국 부정적인 생각이 가게를 문닫게 할 것입니다. 또 큰 병에 걸릴 것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이나 내가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닌가 별별 생각을 다 하는 분들도 이런 불안한 마음과 초조한 마음이 저항력을 약하게 만들고 건강도 헤칩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망할 때 망하더라도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게 만듭니다. 이런 사람은 내일 걱정까지 끌어다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좬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좭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34).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부정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1.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범한 죄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망할 것 같고얻어터질 것 같고 죽을 것 같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다 보니 자연히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백성은 걱정될 일이 생기면 더 열심히 기도하게 되고 그러다가 문제를 해결 받게 됩니다. 3. 좋으신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못하면 가차없이 징계하시는 엄한 하나님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에 속지 마십시오. 이 생각은 사단이 주는 생각입니다. 이런 사단이 주는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속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지은 죄가 많아서, 자신까지 교회를 나가면 하나님이 곤란해질 것 같다고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좬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좭고 했습니다. 따라서 내가 아무리 죄가 많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오면 용서해주시고 받아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레미야 29:11-14절을 보면 좬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좭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우리를 널리 용서해주시며,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항상 모자랍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기자는 좬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좭라고 감탄하고 있습니다(139:17).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아버지를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좋으신 아버지입니까?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나가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다 날리고 걸름뱅이가 되어 돌아왔으니, 보통사람같으면 자식 취급이나 했겠습니까? 너는 버린 자식이다 끝났다고 정죄해야 마땅하나 너그럽게 받아주시고 잔치까지 베풀어주시는 그 좋으신 아버지, 그 아버지가 바로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탕자가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아버지가 좋으신 아버지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좋은 아버지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도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좋게 생각해도 모자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만 솔직히 우리 인간은 좋은 사랑을 하지도 못하고 가져보지도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예!”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부르짖으면 살고 절망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하나님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신을 조장합니다. 자연히 인간 관계가 부자유스러워지고 섭섭하게 됩니다. 따라서 사단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면 믿음을 따라 생각을 한 사람들입니다. 욥은 모든 재산과 자녀를 다 잃어버렸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주신 자도 취하신 자도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며,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승리했습니다. 요셉도 형님들의 시기질투로 인해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하게 감옥에 잡혀들어갔지만 원망불평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이 오늘날 이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결국 모든 성공과 실패와 승리와 패배가 생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생각을 잘해서 승리하고 생각을 잘못해서 패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세요. 어떤 죄인이라할지라도 하나님을 찾으면 살길이 열립니다. 부르짖으면 길이 있습니다. 이 환난의 때, 절망의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붙잡고 믿음을 따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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