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세상에서 최고의 일
2002-05-21 14:37:17

성경구절 마가복음 1:16-20
설교날짜 2002/02/24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습니다.
직업이란 사전적 개념으로 말씀드리면 '경제적 소득을 얻거나 사회적 가치를
이루기 위해 참여하는 계속적인 활동'을 뜻합니다.
넓은 개념으로 커리어(Career-모든 일 즉 보수나 시간에 관계없이 한 인간이
평생동안 하는 일의 총체) 좁은 의미로 오큐페이션(Occupation-반드시 보수가 지
불됨 ), 잡(job- 직업의 최소 단위 )으로 나눈다.

일상생활을 하는 인간은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직업과 관련된 삶을 살아갑니
다.
일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첫째, 인간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됩니
다.
둘째, 자아를 실현하는 데 일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셋째, 원만한 사회생활과 사회적 봉사의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이와 같은 직업 의식은 직업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누구
나 어떤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는가는 개인의 진로 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어릴 때 이야기지만 저희 세대만 해도 초등학교 때 장래 희망 난에는 어김없
이 대통령이 등장하게 되었고, 선생님, 장군, 사장도 빼놓을 수 없는 장래 희망
이었습니다.

어느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영특하고 총명한 일곱 살 난 아들이 구정에 온 가족들 앞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일가친척 앞에서 아들 자랑을 하고 싶었던 어머니는 아이에게 불쑥 질문을 던
졌습니다.
"석아, 넌 장래 희망이 무엇이지?"
"짜장면 배달부"
"뭐? 너 지금 뭐라 했니?"
"짜장면 배달부 한다니깐"
황당해진 어머니가 아이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넋두리를 합니다.
"얘야 넌 항상 의사 된다고 했잖니?"
"내가 언제 의사 된다고 했어. 엄마가 자꾸 나보고 의사 되라고 했지."
"어이구 내 속 다 썩네. 짜장면 배달하라고 세뱃돈 만원 준 줄 아니?"
곁에 있던 아버지가 한 말씀 건넵니다.
"그래, 뭐든지 하고 싶은 것 하는 것이 최고다. 대한민국에서 최고가는 짜장면
배달부가 되어라."
"아빠 만세..."
웃을 수도 웃지 않을 수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직업의 의미

물론 어릴 때부터 꿈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꿈은 그
야말로 망상(妄想)이 아니라 실상(實像)이 되어야 합니다.
성공적인 인생은 올바른 직업의 선택에서라는 말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런
데 정말 중요한 것은 직업을 통하여 자기 능력을 발휘하고 그 일에 만족하고 그
일을 통하여 행복을 누리면서 인생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직업이라 할 때는 '수입을 전제로 한 개인의 계속적인 정신적 육체
적 활동'을 말하며 일이란 '수입을 전제로 하지 않은 개인의 계속적인 정신적 육
체적 활동'을 뜻합니다.
이와 같은 직업의 의미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경제적 의미로 가족의 경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둘째는 사회적 의미로 사회에 공헌하며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수단입니다.
셋째는 심리적 의미로 자신의 욕구 충족과 자아 실현의 수단입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가 충족된 직업일 때 누구나 애착을 갖게 되고 그 일을 통해
서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일의 의미와 선택

오늘 본문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보람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깨우치는 메시지가
있는 말씀입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잡이의 직업을 가진 시몬과 안드레 형
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보통의 담수호(淡水湖)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바
다로 불리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게네사렛 호수'(눅 5:1) 또는 '디베랴 바다'(요 6:1,
23;21:1)로도 불리고 있는 갈릴리 호수는 길이 약 20km, 너비 약 10km, 수면은
해발 -240m정도이며, 가장 깊은 곳이 약 50m가량 된다고 합니다.
성지 순례하면서 갈릴리 바다 해변 식당에서 베드로 고기를 먹던 추억은 잊을
수 없습니다.

시몬, 곧 베드로와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고기 잡는 어
부로서의 일을 최고의 직업으로 생각하면서 만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이곳에 오셔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생업의 범사에서 일찍 깨닫지 못했던 더 좋은 일을 가르치
시고 그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이 부르신다고 해
서 선뜻 따라 나선 베드로와 안드레의 행동입니다.
그것은 일에 대한 가치관이 분명하게 정립되어야 가능한 행동입니다.
속된 말로 손해볼 일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리 저리 생각해 보고 타당하고 합당하면 유익이 될 것을 확신하고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렇게 쉽게 자신의 일을 버리고 예수께
서 새롭게 제시하시는 일에 응답할 수 있었을까?

요한복음 1:35절 말씀을 보면 안드레는 세례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안드레는 세
례요한을 통하여 예수가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듣고 깨닫고 알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기록한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가르쳤고 안드레는 그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베드로에게도 들려주었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때(카이로
스)에 두 형제는 예수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
리라 하시니"

여기의 '나를 따라 오너라'( , 듀테 오피소 무) 의 '오너라'(듀
테)는 말 앞에 '이리로..' 또는 '따라'(오피스)라는 부사어가 첨가되어 있습니
다.
이 말씀은 시몬과 안드레가 이때까지 살아왔던 그러한 방향으로가 아니라 예
수 자신이 지금 가고 있는 '이리로' 혹은 '이 새로운 방향으로' 따라 오라고 말
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신 배경에는 무작정 부르신 것이 아니
라 '...되게 하리라'( , 포이에소)는 목적이 수반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
다.
즉 주님이 부르시는 부르심에는 허황되고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부르신 그들에
게 하나님 나라 건설의 위대한 주역의 역할을 맡기시리라는 약속을 포함하고 있
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부르신 목적의 '... 되게 하리라'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바
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시몬과 안드레는 육신의 삶을 위하여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일
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들을 부르신 것은 육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멸망의 길로 치닫
고 있는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거룩한 일을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번 더 생각해 봅시다.
세상에는 다양한 일이 있지만 어떤 일이 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비교법으로 그것을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
로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일, 즉 직업의 내용을 통해서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더라
도 그 일을 통해서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이해입니다.

이런 이야기로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영국 출신 선교사로 인도에서 사역한 '윌리엄 캐리'는 원래 제화공이었습니
다. 그는 자신을 구두장이라고 소개하며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마음
은 온통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에
게 이런 충고를 했습니다.
“자네에게 충고할 말이 있네. 자네는 분명히 사업가인데 복음을 전하느라 본업
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어”
윌리엄 캐리는 친구를 바라보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보게 친구. 자네가 나를 잘 모르는군. 나는 지금 본업에 열중하고 있다네.
내 본업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일세. 구두를 닦는 일은 단지 복음
을 전하는 도구일 뿐이라네”

자기의 직업을 통해 더 좋은 가치관과 의미를 깨닫고 그것을 위해 자기의 일
을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우리 교회 고등부 교사로서 장순복 집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등부 학
생들의 큰 형님같이 일하고 있는 귀한 집사님입니다.
그는 시내 유료 주차장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주일은 물론이고 토요일에도 반
드시 교회에서 고등부를 위해 하루를 바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질문하고 때로는 핍박도 합니다.
"저렇게 사업하다가 망하지?"
그런데 장 집사님의 마음은 초지일관 변함이 없습니다. 주일과 토요일은 시내
아무 차라도 와서 자기 유료 주차장에 주차하도록 그냥 둔다는 것입니다. 그래
도 오늘까지 사업이 안 되는 일도 없고 그 대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차장
을 경영하면서도 다른 주차장 관리보다 앞서고 있음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이 일을 통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일을 하느
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한동대학교 김영길 총장님은 세계적인 과학자입니다.
그분은 마음만 먹으면 어느 유명한 대학 총장으로도 손색없는 분이고 사실 그
렇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포항 한동대학교 총장으로 오셔서 온갖 수모와 고난을 당하면서
도 한결같이 웃음을 잃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교육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중심은 오직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어서도, 한 교회의 장로가 되어서도, 명문대학의 총장이
되어서도 오직 그의 중심은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일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실현하는 삶이 귀한 삶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신 그 내면의 중요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고기 잡는 어부로 살지만 더 좋은 어부가 되게 하신 예수님의 부르심의 의미
를 우리는 다시금 생각해야 합니다.

깨달음, 그리고 행동

사람이 살아가는 가치는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그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
천의지입니다.
예수님이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셨을 때 두 형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것보다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더 낫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깨달음과 동시에 그것을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실천에 있어서 본문 18절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18절 말씀입니다.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이 말씀은 아주 중요한 세 문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곧'입니다.
여기의 '곧'( , 유뒤스)이란 종말론적인 긴박성(緊迫性)이 짙게 깔려 있
는 단어로서 머뭇거릴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그물을 버려 두고'입니다.
어부들에게 있어서 '그물'은 배와 더불어 그들의 생존의 근거인데 그들이 이
모든 것들을 버리는 데에는 과감한 의지적 결단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셋째는 '좇으니라'입니다.
'좇으니라'의 헬라어 '아콜루데인'( )의 문자적인 뜻을 세분하여 살
펴보자면 '아콜루데인'은 접두어 '아'( , 여기서는 '일치', '닮음'이란 의미)
와 '길'이란 뜻의 '켈류도스'( )의 합성어로서, '같은 길을 함께 가
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그들을 부르신 것은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하자는, 다시 말
해 주님의 동반자가 되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저의 큰 아이를 하나님이 목사로 부르셨는데 아이는 교수가 되고 싶어했습니
다. 아직은 어린 나이기에 강요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만 했습니다.
어느 날 주님은 큰 아이를 부르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좋은 일들이 많단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다 내가 허락한 일이란
다. 어느 것이 나쁘고 어느 것이 좋고 비교될 수 없는 것이 세상에서의 일이란
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왜 그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란다."
아이는 주님의 말씀을 계속 경청했습니다.
"나는 이제 네가 나와 함께 저 세상의 멸망하고 있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하
기를 원한다."
아이는 성령의 감동을 입고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주 앞에 엎드려 고백했
습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받으소서."

20절 말씀에 가슴이 열리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데를 삯군들과 함께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세상에서 최고의 일을 위해 그들은 삯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어 가는 영혼
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최고의 일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귀한 일과 천한 일을 구분합니다. 좋은 일과 나
쁜 일을 구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그렇게 구분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이 주셨고 우리로 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 한 가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비교법으로 좋고 나쁜 일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더 좋은 일이 있다는 것
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
다.

사장이 더 좋고 사원이 못한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귀하고 종이 못한 것이 아닙니다.
사무직이 더 낫고 노동직이 못한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귀하고 청소부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더 낫고 집사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더 낫고 여자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 더 귀하고 좋은 것입니
다.

더 좋은 직업을 가지고 더 못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 좋은 자리에
서 더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 좋은 직분으로 더 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의 일은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
을 받으시고 더 많은 사람들이 생명 있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무슨 일을 하십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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