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지키실 것과 우리가 지킬 것
2002-03-28 23:03:01


설교 본문 : 디모데후서 1:9-14 방송 듣기

사도 바울은 복음증거의 생애를 통하여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선교사로서, 목회자로서, 환란가운데서 항상 담대할 수 있었던 까닭을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12절 하반절,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지킬 줄 확신함이라" 한마디로 말하면 그가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계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생명을 환란가운데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란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로다"고 노래합니다(시 121:7). 우리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또 우리 기업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나를 지키신다는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1:5-8). 할렐루야!

우리가 우리 생명을 지키는 것같아도 사실은 하나님이 지키고 계시는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한 시간도 이 땅에 서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일 일을 누가 안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뜻이라야 이것도 저것도 행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을 탈출합니다. 라반이 화가 나서 졸개들을 데리고 가서 따라 잡습니다. 내일이면 박살을 내려고 끙끙 거리며 잠을 잡니다. 그날 밤에 여호와께서 라반에게 말씀하십니다. "라반아, 선악간에 아무일도 그에게 행하지 말라"(창 31:24). 똑같은 일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라이벌인 이름도 똑같은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셨지요. "그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에게 손을 대는 날 너와 네게 속한 자가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창 20:7). 보세요. 누가 족장들의 생명을 지켜주었습니까? 누가 그들을 구원해 주었습니까? 그들 자신의 행위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그 원수들을 막으시고 물리치셨습니다. 라반이 말합니다. "야곱아 네 행위가 실로 어리석도다 너를 해할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창 31:29).

결정적인 원인은 항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생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우리가 천국으로 직행할 수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실타래가 복잡해도 하나님은 잘도 푸십니다. 한걸음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 언약 때문입니다. 약속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곧 축복과 구원의 언약에 하나님이 매였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은 주무시지도, 졸지도 않고, 우리를 지키시고 선대하십니다. 그 언약은 한마디로 믿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은혜를 베풀리니 네가 믿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Yes"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음으로 믿었고 입으로 시인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성만찬을 제정하시며 말씀합니다. "이것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은 그 언약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은혜로운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언약의 중보자로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세요. 언약의 주도자로서 외아들을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을 보십시오.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구원의 그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언약의 실행자이신 구속의 성령을 보십시오. 캠벨 몰간 목사님은 오늘 본문에 "나의 의탁한 것"을 "그가 나의 의탁한 것"이라고 그분을 강력하게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이 의탁하신 것은 복음인데 그 복음은 그분 즉 하나님 자신이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복음진리, 구원진리를 교회가 지킨 것 같아도 궁극적으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항상 하나님 자신이 지켰습니다. 사람들이 그 진리를 손상하려 들었을 때마다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났습니다. 호모우시아와 호모이우시아와의 판결투표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을 보십시오. 그래서 오늘까지 순정한 복음진리가 교회안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인간 생각으로 윤색할려는 현대판 웃사들은 모두가 심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이 맥추감사절 입니다만 도회지에 사는 사람은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생애를 지켜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나의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지켜주시는 하나님, 약속을 지켜주신 하나님, 그 신실하신 하나님이 세상끝날까지 날 지켜주시고 내 구원을 완성시켜 주실 것을 생각하면 기쁘고 감사합니다. 나의 생애를 추수하시고 천국곡간에 들이시고 계시다는 것, 그 복스런 끝날이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구속의 성령의 의해 인쳐졌다는 사실로 인해서 우리는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날까지 우리의 영혼, 생명, 구원, 진리를 지켜주실 하나님을 확신한 바울 사도는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권면합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서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바울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지키실 것이 있고 내가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전체는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진리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은혜를 유지하고 증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감사절에 특별히 우리가 지켜야 할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마음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과 소망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성경 말씀에 "나로 인하여 실족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마 11:6)고 했고 "또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 18:7)고 하였습니다. 실족한다는 말은 실망한다, 시험에 든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마음이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마음에 낙심이 오면 모든 길이 막혀 버립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실족하게 하는 일이 있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실족하게 하는 일이 가득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물 좋고 정자 좋은데는 아무데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디든 가보세요. 낙심되고 실망되는 일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내 마음에 만족만을 주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내 마음에 꼭 드는 회사, 동업자는 어디가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실족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낙심하고 실망하는 것과 주님의 은혜를 거기에 더해서 믿음으로 소망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Plus Grace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은혜는 사랑의 시각으로 봅니다. 은혜는 먼저 접대합니다. 은혜는 위에서 쏟아지는 폭포수와 같습니다. 은혜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은혜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있느냐? 없느냐? 가 사활적으로 중요합니다. 은혜가 있으면 복이 되고 은혜가 없으면 실족합니다. 그래서 실족하면 화가 있고 실족하지 않으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실족하는 것은 세상적으로 인간적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므로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마음이 실족한 사람이 세상에 둘도 없는 환경을 만나보세요. 바로 보이지가 않습니다. 실망한 죄 때문에 가나안 정탐꾼 10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마음에 실족한 병이 있었던 가룟 유다는 세상에 둘도 없는 구주를 만났지만 실족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꼭 큰 시험을 만난다고 실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일을 만나도 실족합니다. 접시물에도 빠져죽습니다. 한마디 말때문에 실족하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보고 실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보고 실족하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러 갔다가 같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람 때문에, 사람들의 말 때문에,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하나님의 지키심을 신뢰합니다. 저 먼 하나님의 나라, 영광스럽고 놀라운 하나님의 생명을 바라보고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부디 마음을 지켜 실족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실망하면 모두가 회색이고 꺼꾸로 보입니다. 바울 사도가 권면합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서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 한 사람에게 실족하면 어떤 사람에게도 실족합니다. 상처받고 또 상처받고 실족하고 또 실족합니다. 그러면 평생 하나님께 쓰임을 받지 못합니다. 실족하면 내게 화입니다. 실족하지 아니하면 내게 복입니다. 이 말씀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믿고 신앙생활 하다가 실족할 때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옥에서 회의에 빠졌지요(마 11:2-6). 기도하다가도 실족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 응답이 늦어지면 낙망하기 쉽지요(눅 18:1-8). 선한 일을 하다가도 실족할 때가 있습니다. 피곤해지면 낙심하기 쉽지요(갈 6:9).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고 실족할 때도 있습니다. 불평하고 투기하기 쉽지요(시 37:1-2). 좋은 날에도 실족할 때가 있습니다. 음식 끝에 마음 상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시험을 이기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며 실족하지 마십시오. 궁극적으로 예수님 때문에 실족하지 마십시오. 실족하면 올라가지 못하고 떨어집니다. 실족하면 실격입니다.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잠 4:23)고 말씀합니다. 특별히 사람을 만날 때 너무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너무 친하지 마십시오. 보통 가까운 사람이 실족하게 만듭니다. 친교과다증이 문제를 낳습니다. 교회안에서 늘 만나는 사람하고만 만나지 말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십시오. 그런 부담을 개의치 않아야 전도사랑방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은 주님 다음으로 친해야 합니다. 주님과 깊이 기도하지 않고,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들어와 버리면 꼭 실족한다는 사실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매일을 감사절로 지키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언제나 감사절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때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는 줄 믿습니다. 신앙생활에 감사가 없으면 인격적으로 모가집니다. 기반이 없고 터가 없는 신앙생활을 하게됩니다. 큰 복을 받지 못합니다. 감사가 빠지면 이가 빠진 것처럼 됩니다. 날개 없는 새처럼 그 사람의 모양이 이상해집니다. 감사의 날개를 다십시오. 축복의 창공을 날으십시오. 신앙생활은 감사의 날개를 달고 천국으로 훨훨 날라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고약한 사람은 자기 잘난 데 빠진 사람입니다. 나폴레옹 황제처럼 "내가 했다. 내가 똑똑하다."고 주장하면 감사할 일이 없습니다. 또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받아서 만족하고 일생동안 완전한 복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되 다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있는 것 가지고 감사해야 합니다. 나는 아무 자격도 능력도 없는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디든지 은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없는 것만 크게 보면 감사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것 가운데서 하나 하나 모래에서 금을 찾듯이 감사할 것을 찾아보면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감사는 은혜받고 노력하고 기도해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지킬 것은 항상 실족하지 않는 소망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지킬 것은 항상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은혜로운 믿음을 지켜나갈 때 복음진리가 우리의 삶을 통하여 향기롭게 전파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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