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역사를 일으키는 기도 2002-01-29 13:21:27 사도행전 4:21 ~ 31 21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 22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고하니 24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9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몇 달 전 저를 사랑하시는 한 집사님으로부터 귀한 화분을 선물 받았습니다. 집사님의 딸이 시집가면서 그 화분을 달라고 애원을 했는데도 주지 않고 저에게 주셨어요. 보통의 화분은 사기로 되어 있지만, 이 화분은 접시 하나 뿐입니다. 접시에 흙을 잘 쌓아서 모시로 흙을 두르고 철사를 엮어서 이끼를 입혀 놓았어요. 거기에 예쁜 꽃나무를 심고, 가지를 예쁘게 늘어뜨렸어요. 얼마나 예쁜지,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할 정도로 그 화분을 정성으로 가꾸었어요. 그런데 한 달쯤 지나자 꽃이 자꾸 시들고 죽어 가는 겁니다. 여러 방법을 썼지만 되지 않았어요. 아마 저의 집이 아파트라서 공기와 햇볕이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할 수 없이 그 화분을 집사님 댁으로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화분을 돌려보내면서 귀한 진리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오뉴월 신록처럼 신앙생활 하시던 분들이 갑자기 생기를 잃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갑자기 기쁨을 잃어버리고, 열심히 하던 일들이 식어지고, 시험 앞에서 맥없이 주저앉고... 또 어떤 분은 평생을 신앙생활 해왔지만 세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세상을 한번도 이겨보지도 못하고, 미지근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을 안타까이 보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자들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저는 중환자 신세가 되어 옮겨가는 화분을 보며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도를 못하고 있던지, 기도를 하기는 하되 올바른 기도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얘기합니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좋은 음식과 적당한 운동과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호흡입니다. 며칠 음식은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호흡은 5분만 안 해도 죽습니다. 호흡한다고 다 건강한 것이 아니고, 좋은 공기를 마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주거지의 개념이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집이 좋으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어떤 곳에 집이 있느냐, 얼마나 공기가 좋으냐가 중요합니다. 좋은 공기가 우리의 건강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공기를 규칙적으로 호흡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건강에 필수적인 사실은 성경이 가르치는 올바른 기도를 규칙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기도 열심히 하는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하지 못하는 새벽기도와 철야기도를 우리는 하고 있습니다. 금식기도도 합니다. 또 한국만큼 기도원이 많은 곳은 없습니다. 어느 산을 가든지 기도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건강한가? 과연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올바르고 성경적인 기도인가? 지금은 이것을 물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오염된 공기가 우리의 건강을 해치듯, 올바르지 않은 기도는 아무리 많이 해도 우리의 신앙을 병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오래 열심히 기도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기도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최근 기도에 관한 명제를 낸 신학교 학장이신 빙햄 헌터는 기도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기도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 얻어내는 수단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기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수단이다.' 기도는 인간의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수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즉 성경적인 기도는 그 주체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있지 않고,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입니다. 어떻게 올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좋은 공기를 마시고 싶지 않습니까? 세상 앞에서 힘없이 쓰러지는 여러분의 영혼을 다시 한번 살려내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 기도를 어떻게 드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내가 드리는 기도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며, 성령이 역사하시는, 살아있는 기도를 남은 평생 동안 드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오늘 본문은 그에 대한 몇 가지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1. 시험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 20절에 보면 관원들이 사도들을 위협했다고 얘기합니다. 약 20년 전 우리의 국가적인 분위기를 생각해 봅시다. 제가 고등학교 때 기독교 단체인 KSCF의 회장직을 맡고 있었어요. 하루는 기독교 방송에서 한 간사를 초청해서 설교를 듣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분은 휠체어를 타고 왔어요. 이유는 바로 며칠 전 지금의 안기부인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당하고 왔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맞았는지... 내의가 다리의 피와 함께 달라붙어서 그 내의를 뗄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설교 시간에 정부를 비판하는 설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그 날 그곳에 나왔어요. 그리고 같은 설교를 하셨어요.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들은 그를 위협했으며, 만일 다시 이런 설교를 하면 죽일 것이며, 가족과 아이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합니다. 우리의 얘기로 상상해 봅시다. 그 당시 중앙정보부라고 하면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쳤어요. 오늘 본문의 관원과 사도들은 이것보다 더한 위협을 받았던 겁니다. 이런 위협을 받고나서 사도들이 한 일은 무엇인가? 믿는 성도들에게 그 일을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120문도(門徒)와 함께 일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기도했더니 핍박과 시련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핍박과 기도가 나란히 달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핍박과 위협이 여전히 찾아왔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기도합니까? 핍박이 사라지기를 기도하지 않습니까? 시험이 없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했더니 핍박이 사라지고, 시험이 없어지고, 병이 낫고, 못된 남편이 거꾸러지고 ~ 등등, 이런 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간증의 주류가 아닙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기도 = 내가 바라는 것들의 성취' 입니다. 어떤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인가? 내 소원이 성취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 소원을 이룰 것인가, 응답 받는 기도를 드릴 것인가에 대한 수많은 세미나가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기도한 대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좌절합니다. "아, 역시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구나!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봐!" 이런 식의 기도 생활을 해 오지 않았습니까? 이런 기도를 내가 주체가 된 기도, 하나님께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어내는 인간 중심적인, 잘못된 기도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성경은 지적하십니다. 성경이 무엇을 가르칩니까? 시험과 기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야고보서 1장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2절) 헬라어에는 4가지 가정법이 있어요. '이 몸이 새가 된다면~' 이 말은 새가 될 수 없습니다. '얘야, 내일 아침에 해가 뜨거든~' 해가 뜹니다. 이처럼 반드시 일어날 사건을 조건법으로 쓸 때 그 문법을 달리 썼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이 말은 '해가 아침에 뜨거든' 의 조건법과 같습니다. 시험이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에게 동일하게 다가온다고 말씀합니다. 그 모습은 다릅니다. 어려움이 건강을 통해, 남편을 통해, 사업을 통해, 무엇을 통해서건 찾아올 수밖에 없다고 얘기합니다. 이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기도했더니 시험이 없더라가 아니라 기도함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함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은 여전히 우리에게 찾아온다고 성경은 가르치십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 이 말씀에 대한 두 가지 답이 있어요. 먼저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겁니다. 그 시험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기도는 어려움을 없애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지혜가 공급되도록 기도하라는 겁니다. 시험이 올 때 그 시험을 없애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험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교훈을 남김없이 받을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어려움을 세상에서 말하는 '팔자소관'으로 바라보지 않고, 재수로 바라보지 않고, 내 인간적인 중심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이면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고자 하는 교훈을 다 받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 바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병이 들었을 때 "주여, 이 병을 통해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사업이 흔들릴 때 "주여, 이 어려움을 통해서 무엇을 교훈하려고 하십니까!" 우리의 마음 문을 열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환경과 어려움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은 어려움이 없으면 결코 성숙할 수 없습니다. 나무가 어떻게 튼튼하게 자랍니까? 그것은 비바람이 심한 곳에서 자란 까닭입니다. 온상에서 자란 나무는 튼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바람치는 언덕 위의 나무는 뿌리가 깊습니다. 옛날 바이킹(해적)들은 무기 대신 배를 몰고 가다가 상대편 배의 옆구리를 콱 박았습니다. 그러면 상대편 배가 "우지끈!" 하고 부서집니다. 왜냐하면 바이킹의 배 앞머리에 삐죽한 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나무는 반드시 비바람이 몰아치는 해변가 꼭대기 위에 있는 나무를 썼습니다. 비바람이 그 나무를 튼튼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평안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아라비아 속담처럼 늘 맑은 날은 사막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치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과 훈련의 도가니로 몰아넣으십니다. 우리를 망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성숙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시험과 어려움을 만나면 그 시험을 없애달라고 기도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지혜와 교훈을 다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는 기도와 핍박이 나란히 등장합니다. 기도했더니 핍박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기도함에도 불구하고 핍박은 있었어요. 그러나 그들은 기도했어요. "주여! 시험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날 올바른 기도가 없어서 흔들리는 한국 교회 풍토에 이 말씀이 우리의 가슴 밭에 심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시험 가운데, 그 시험의 해결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교훈을 받으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과거를 살다 갔습니다.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어느 날 주님을 만났을 때 이 세상에 위대한 흔적을 남기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은 것입니다. 시험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시험 중에 있으십니까? 건강의 문제로 고민하십니까? 사업의 문제로 방황하십니까? 남편과 자녀의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계십니까?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도만 하지 마시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당신을 만들어 가시는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기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기도의 대상을 올바로 아는 기도 성경의 기도와 다른 종교의 기도가 다른 점이 있다면,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는 그 대상을 분명히 알고 기도한다는 겁니다. 불교에도, 미신에도, 다른 모든 종교에도 기도가 있습니다. 옛날 어머님들은 정화수를 떠다 놓고 자식 잘 되기를 빕니다. 100일 기도, 1000일 기도를 드리며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천지신명이 누구인지 몰라요. 그저 비는 겁니다. 얼마나 빌었는지 손금이 다 없어졌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성경의 기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타종교의 기도가 기도하는 사람의 열심에 근거한다면, 성경의 기도는 기도를 받는 대상의 인격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낮에 기도할 것인지, 새벽에 기도할 것인지에 대해 늘 고민합니다. 세 끼를 먹고 할 것인가, 금식을 할 것인가 고민합니다. 하루 이틀 할 것인가, 백일간 할 것인가 고민합니다. 우리는 늘 기도의 방법론에 신경을 씁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이라고 말씀합니다. 누구를 향하여 기도하는가? 열심히 기도한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누구를 향하여, 어떤 내용의 기도를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화살을 쏠 때를 생각해 보세요. 화살을 세게 당기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조준입니다. 총을 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총을 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총을 얼마나 잘 조준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과녁을 맞추지 못하면 엉뚱한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스스로 돌아볼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열심에만 근거를 두고 있으며, 우리의 미신적인 신앙과 과거의 미신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새벽에 하는 것, 금식하는 것도 좋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러한 것들을 강조하고 있어요. 주님도 금식기도, 새벽기도, 철야기도 하셨어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내 열심도 중요하지만, 누구를 향하여 기도할 것이며, 누구의 뜻대로 기도할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본문에 보면 그들이 위협받았을 때, 시험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기도할 때, 기도한 내용을 몇 가지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 기도의 전부는 아닙니다. 함축된 것입니다. 이들이 한 기도의 특징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굉장한 얘기들을 그들은 하고 있어요. 몇 가지 하나님에 대해 살펴봅시다. 1) 창조의 하나님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24절) 창조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이것만 바로 알아도 우리의 기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창조주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만드셨어요. 어떤 물건을 만들 때, 목적 없이 만듭니까? 밀가루 반죽을 하나 해도 목적이 있습니다. 모든 물건에 만든 자가 있다는 것은 만든 자의 목적이 있음을 깨닫게 해 줍니다.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이 당신을 만들어 이 땅에 보내셨어요. 그 분의 목적이 있을 겁니다. 그것을 안다면 이것저것 이루어 달라는 기도보다 "아버지 하나님, 왜 저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까? 나를 왜 만드셨습니까?" 하고 목적을 찾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달라집니다. "주여! 그 목적을 알려 주시옵소서! 그 목적대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여러분이 만든 물건이 여러분을 배신할 때가 언제인 줄 아십니까? 만든 자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 때입니다. 피아노가 아무리 멋있게 생겨도 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합니다. 모양에 금이 가고 다리가 비틀어져서 못을 박았어요. 그런데 소리가 너무나 좋아요. 그 피아노는 박물관에 기증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의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2) 계시의 하나님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25-26절)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계시하셨다는 겁니다. 위의 구절에 주동사가 나오는데, 창조의 하나님에는 '당신이 만드셨습니다' 이며, 여기서는 '당신이 말씀하셨습니다' 입니다. 우리가 믿고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종교의 사람들이 모르는 신에게 기도합니다. 그러나 은혜의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신 줄 믿습니다. 계시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보이시는 겁니다. 성경에 일반적 계시와 특별 계시, 이 두 가지가 나옵니다. 일반적인 계시는 자연을 바라볼 때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얼마 전 타임지를 보니,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별을 하나 발견했는데, 2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답니다. 눈 깜짝할 사이인 1초에 햇빛이 지구를 7바퀴 반을 돕니다. 그 빛의 속도로 1년 동안 가는 거리가 1광년입니다. 비행기를 발명했어요.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이나 도는 비행기, 즉 숨을 한번 쉬었더니 벌써 미국에 도착한 겁니다. 그런 속도로 2억 년이 걸리는 겁니다. 그 넓은 우주, 지구는 태양을 돌고, 태양은 은하계를 돌고, 은하계는 다른 은하계를 수없이 도는데 부딪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은하계가 저절로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너희가 하늘을 바라보기만 해도 나를 어느 정도는 알 것이다." 이것으로는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특별계시를 허락하셨는데,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뜻이 다 나타나 있어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말은 어떻게 해야 되고, 부부관계는 어떻게 해야 되고, 자녀양육은 어떻게 해야 되고, 가정생활, 직장생활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계시하신 줄 믿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지나가다가 지갑을 주웠어요. 100만원 수표와 현금 50만원이 들어 있어요. 무척 궁한지라 고민이 되었어요. 새벽기도 나와서 기도합니다. "주여, 지갑에 주민등록증이 있는데, 이것을 돌려주는 것이 당신 뜻이옵니까? 아니면 제가 가지는 것이 당신의 뜻입니까? 계시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한국 교회의 수준입니다. 이런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계시의 하나님을 모르는 다른 종교의 기도를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고민하는 수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만 한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뜻은 다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주여, 제가 성경을 읽기 위해 양초를 훔쳐도 되겠나이까?" 성경을 읽기 위해 양초를 훔칠 수 있을까요? 그것이 가능한 교회가 한국 교회입니다. 목적이 선하면 방법은 괜찮다는 겁니다. 그것은 성경 말씀에 위배됩니다. 계시의 하나님을 올바로 알면, 그런 기도는 더 이상 드릴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들은 계시의 하나님을 알았어요. 자기를 숨기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당신의 뜻을 충분히 우리에게 다 보여주신 계시의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을 발견하십시오. 3) 역사의 하나님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27-28절) 하나님은 그의 적까지 사용하셔서 그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누가 십자가에 못 박았는가?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가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결정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못 박을 수 있었다고 얘기합니다. 이들이 믿는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인생의 주인이심을 믿습니까? 이것만 믿는다면 우리의 기도가 중언부언하지 않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자기 인생의 주인임을 믿으면서도 걱정하고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앞길을 궁금해하며 예언자, 기도원, 점쟁이에게로 달려갑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인, 내 인생의 주인임을 믿고 사는 자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줄 믿습니다. 병이 찾아오고, 고난이 찾아와도 기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 인생을 한 손에 들고 계시며, 내 인생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닌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기도였습니다. 대상을 올바로 알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기도는 신앙의 올바른 성숙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기도를 깊이 하는 자, 기도를 올바로 하는 자는 신앙이 성숙한 자입니다. 열심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기도하면서 얼마만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간구 했습니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좋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한다고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거하면' 이라는 가정 말입니다. 3. 올바른 내용을 가진 기도 29절과 30절에 세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下鑑)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29-30절) '하감하옵시고' 첫 번째 기도입니다. "주여, 하늘에서 벼락을 내려서 저들을 죽이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이 병을 떠나가게 하옵소서!" "속썩이는 남편이 거꾸러지게 하옵소서!" 그러나 이들은 저희의 위협함을 멀리 떠나게 해 달라는 대신 살펴 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 위협함이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지 않도록 감시하여 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기억하여 주옵소서. 그 위협함이 그대로 있어도 좋습니다. 그 위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면, 그 위협함을 그대로 두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위협함을 당신이 하감하여 주옵소서!" 두 번째,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세 번째는 계속해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기도합니다. 이 사도들의 기도 내용을 보십시오. 자기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들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주의 복음이 만방에 전파되는 것이었어요.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기도 내용이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언제부터인지 이기적이 되어 버렸어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내 소원을 이루는 일에 급급합니다. 그러나 이제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주의 복음이 전파되는 기도를 합시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합시다. 그들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를 했고, 올바른 대상에게 기도했고, 올바른 내용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세 가지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31절을 보세요.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31절) 지금부터 수백 년 전에 크린스톤이란 놀라운 설교자가 있었는데, 이 본문을 가지고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모인 곳이 진동했더니,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더 이상 진동하지 않았다.' 멋있는 설교입니다. 기도하는데 건물이 흔들려서 지진인가 했더니 아닙니다. 진동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얘야, 염려하지 마라.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다. 내가 너희 인생의 주인이다. 내가 너희를 붙잡으마. 내가 너희들의 반석이다!" 두 번째로 성령이 충만해졌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기도를 드리기만 하면 우리에게 성령이 충만해집니다. 이 세상을 능히 이기고도 남을 만한 일들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드림으로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당신은 기도하십니까? 미국의 포드 자동차 선전을 보면 멋있는 말을 합니다. '최근에 포드 자동차를 몰아보셨나요?' 최근에 기도해 보셨습니까? 이 질문에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무능한 영적 생활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기도하고 있다면 올바른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까? 당신의 영적 상태는 어떻습니까? 호흡이 곤란하거나 공기가 나빠 시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 본문이 우리 영혼을 살려내는 귀한 격려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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