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
2002-01-21 09:51:40

(고린도전서 2:6-13) 2002. 1. 6밤

한 세일즈맨 성공자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오그만 디노라는 세계적인 세일즈맨의 글인데, 그는 벽에다가 '슬플 때는 큰 소리로 웃어버리자. 열등감을 느낄 때는 새 옷으로 갈아입자. 무능을 느낄 때는 과거의 성공을 생각하자. 내가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될 때는 나의 인생의 목적을 생각하자.'라는 글귀를 써놓고 매일 하루 한 번씩 큰소리로 읽었답니다. 그것이 성공 비결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하나의 지혜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슬기는 참 귀합니다.
찰스 스윈돌이라는 미국의 목사님은 점잖고 멋있고 말씀이 귀하여 온 교인들의 사랑을 받는데, 하루는 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비그리스도인보다 법과 규례를 더 잘 지켜야 되고 특별히 교통 법규를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그날 예배 후 목사님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어떤 깊은 생각을 하다가 빨간 신호등을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아차 하는 순간, 양옆을 보니 교인들이 좍 깔려 있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화가 왔습니다. 교회마다 촉새가 있지 않습니까?
"목사님, 우리 교우들이 만나기를 원합니다."
점잖은 목사님이 실수한 것을 구실 삼아 즐기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어느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목사님은 교통 법규를 잘 지키자고 설교를 해 놓고 바로 뒤에 자신이 법규를 어겼으니 무슨 말로 답변해야 할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교인들은 목사님을 사랑해서 그것을 핑계삼아 식사를 대접하려는 것이었지만, 목사님은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습니다. 목사님은 팻말을 목에 걸고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목사님을 골려 주기 위해 식당에서 목사님을 기다리던 교우들은 목사님이 들어서는 순간 박수를 치며 막 웃었습니다. 목사님의 목에 걸린 팻말에 '나는 죄인이오.'라는 글이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우들이 그것을 보며 막 웃고 있는데 목사님이 뒤돌아 섰습니다. 등에도 팻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있으면 돌로 치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교우들이 또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교통 법규를 한 두 번 어기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아무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목사님의 작은 지혜가 교우들을 훈훈하게 해 주었습니다.
사람이 지혜로우면 득이 많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업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책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같은 지역, 같은 빌딩에서 구두를 닦는 두 소년이 있었습니다. 한 소년은 구두를 늘 몇 켤레밖에 구해오지 못하는데, 다른 한 소년은 가득 가득 받아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 소년은 "구두 안 닦으십니까?"하고 물으니 사람들이 "안 닦아."라고 했고, 다른 한 소년은 "구두 닦으시지요?"하고 물으니 사람들이 "닦아." 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우면 구두를 닦으면서도 돈을 잘 벌게 됩니다.
자기 집에 골프장을 두고 사는 미국의 한 억만장자는 구두닦이 출신입니다. 그가 구두닦이를 할 때 구두를 닦아주고 2불을 받았는데, 신사들이 5불을 주고 거스름돈을 받으려 하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많이 주십니까?"하고 인사를 했답니다. 그러면 신사가 3불을 거슬러 받지 못하고 그냥 갔답니다. 꾀가 대단한 사람입니다.
의사 선생님들도 "와! 이놈 잘 생겼네."하며 아기들과 놀아 주어야 그 병원이 잘 됩니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의사 선생님이 딱딱하게 대하면 그 병원에 가려고 하겠습니까?
지혜는 세상의 성공을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께서 감추어 두신 지혜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세상에 드러내신 지혜도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달걀 하나, 번갯불에도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수증기가 올라가면 구름이 되는데, 그 구름에 플러스 마이너스 전기가 있어서 자기들끼리 부딪쳐 번쩍 번쩍하는 번개를 칩니다. 그런데 그것이 괜스레 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르릉 꽝꽝 번쩍 번쩍하는 것도 다 필요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번개가 번쩍 번쩍할 때 그 열과 그 빛에 의해 공중의 질소가 녹아서 비로 내려온답니다. 이 땅에는 질소 없이 살 식물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질소가 번갯불이 칠 때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이 살고 그 만물을 우리가 먹으며 사는 것입니다. 번갯불 하나에도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닭이 무슨 재주로 달걀을 만들겠습니까? 닭이 하루 종일 먹은 모이가 영양이 되어서 달걀로 나오는데, 바깥 껍질 안 껍질 흰자위 노른자위 또 그 안에는 생명이 있어서 그것을 품으면 거기에서 병아리가 나옵니다. 닭이 무슨 재주로 그렇게 만들겠습니까? 어떻게 닭의 몸에서 그것이 나오느냔 말입니다. 닭은 모이를 먹은 것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닭의 창자에서 그런 일이 생깁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 자연의 모든 피조물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우리는 모릅니다. 그것을 마시고 살면서도 그것을 모릅니다.
이 땅에 산소가 항상 알맞게 유지되고 있는데, 지금보다 산소가 조금만 더 많아져도 성냥불을 켜면 이 세상은 불바다가 되어 망하고, 조금만 더 줄면 불을 켜도 불이 붙지 않습니다. 그런데 창조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산소의 퍼센트가 이렇게 유지되는 것은 누가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공기를 보나, 구름을 보나, 바다를 보나 참 신비롭습니다. 지구가 도는데도 바닷물이 넘쳐흐르지 않습니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가 1억 4천 9백 60만km인데 그 거리가 조금만 더 가까워지면 우리는 모두 타 죽고, 조금만 더 멀어지면 얼어죽는데 이렇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 태양이 창조 이후로 계속 이글이글 타고 있는데 표면의 온도는 6천도, 흑점의 온도는 4천도를 유지하면서 온 세계에 열을 내려주고 빛을 비추어 주고 있습니다. 누가 기름을 부어 주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타고 타도 그 형체와 무게, 모든 것이 변함 없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놀랍습니다.
길에 나가보면 미국이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유럽이나 자동차들이 기름을 태우며 달려가고 있는데, 그 기름이 땅 속에서 나옵니다. 이 지구, 이 땅 속에 석유가 있고 금이 있고 뜨거운 물이 있고 찬물이 있고, 또 신비롭게도 불이 있어 지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우연히 있을 수 있습니까?
위대하신 하나님의 지혜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지혜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것을 모르는데 하나님께서 감추어 두신 지혜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은 이제 고린도 교회가 조금 성숙해졌으니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말씀한다고 하면서 말씀을 시작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감추어 두신 지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을 구원하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골로새서 1장 26절에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6장 25절, 26절에도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십자가의 도는 2천 년 전에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그 때 하나님께서 고민하시다가 "아이고, 저 아들이 죽어야 세상이 구원받겠네." 하시며 십자가의 도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세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로봇으로 만들지 못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대화하고, 사람과 사랑하고, 사람의 예배를 받으시고, 사람을 복 주시면서 사람과 더불어 살기를 원하십니다. 자유 의지를 가진 사람이 죄를 지을 수 있는데도 죄 짓지 않고, 마귀를 따라갈 수 있는데도 마귀를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을 택해서 "I love you. You love me."하며 하나님과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시는데, 사람을 그렇게 만들면 죄 지을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을 것도 아셨습니다. 그렇다고 죄 짓지 않게 만들면 사람이 로봇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백 수천억의 로봇이 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경배드립니다."하게 됩니다.
그러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제 아내 김영숙이 만일 로봇이라면 제가 무슨 재미로 살겠습니까? 늘 변함없이 "미스터 지, 사랑해요."한다고 해도 로봇과 어떻게 살겠습니까? 김영숙 씨가 세상의 많은 남자들을 다 제쳐놓고 저를 택해서 사랑한다고 하니, 제가 살맛이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예쁜 로봇이 저를 따라다니며 "I love you. I love you."한들 제가 기쁘겠습니까? 백화점에 들어서면 "어서 오세요." 나가면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또 오세요." 하는 말이 들립니다. 녹음된 그 말에서 우리가 반가움을 느낄 수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 수 없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자로, 자유 의지를 갖고 택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존귀한 인간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그렇게 만들면 죄를 짓게 된다는 것도 하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민하시다가 창세 전에 계획하신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사람은 어차피 죄를 짓고 유혹을 받아 망하는데 예수 십자가의 피로 구원하여 회복시켜서 영광스럽게 해야 되겠다. 그래서 나랑 더불어 살아야 되겠다.'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를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하셨는데, 본문 7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로마서 8장 30절에도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깨달으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영광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후사가 되고 상속자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구약 시대 때도 예언자를 통하여 때때로 예언하셨지만, 구약의 백성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에 뭔가 있다."하면서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아예 캄캄한 비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것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계시가 무엇입니까? 계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데서, 전혀 보이지 않은 데서 좍 열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십자가의 도, 복음을 계획하셨는데, 그것을 감추어 두셨다가 때가 되어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나타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그 지혜, 십자가의 도를 우리 인간의 지혜, 관원의 지혜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관원의 지혜로 알았다면 존귀하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문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눈으로 예수님을 보고도 모르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제자는 3년 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교육을 받아서 예수님을 얼핏 알면서도, 예수님께서 보통 분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다음에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한 사람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죽으면 3일 만에 부활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아무도 믿지 못했습니다.
왜입니까?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제자들도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임할 때, 그때 '예수는 그리스도 구세주구나.'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세상에 나가 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설교를 들어도 모릅니다. 제 설교를 들어도 여러분이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이 지혜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분은 성령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10년을 나와서 설교를 들어도 성령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 지혜, 감추어진 지혜가 나타난 것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 놀라운 것입니다.
기독교의 생명은 예수님이지만 예수님의 생명을 깨닫게 하시는 것은 오직 성령뿐이십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세상의 영이 아닙니다.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배고픈 사람이 배고픈 사정을 압니다. 혼자 사는 사람이 혼자 사는 사람의 어려움을 압니다. 인간의 영은 인간의 마음을 압니다. 그래서 사람은 느낌이 거의 같습니다. 특히 처지가 같으면 더 잘 압니다. 제 딸을 결혼시키기 전에 저는 결혼식 때마다 신랑의 부모님에게나 신부의 부모님에게나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축하합니다. 얼마나 기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 딸을 보내고 보니, 아니었습니다. 신부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쓰리고 아픈지를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결혼식 주례를 할 때마다 신랑의 아버지와 신부의 아버지를 비교해 봅니다. 지난 번 결혼식 때도 보니, 신랑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에는 함박 웃음이 피었는데, 신부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신랑에게 신부를 넘겨주는 신랑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습니다. 그것을 제가 딸을 시집보내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제가 보내어 보고 '그렇구나.'하고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결혼식을 마치고 나면 신부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 드립니다. '제가 당신의 마음을 압니다.'하는 뜻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사람이 압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알지 못합니다.
돼지가 우리 마음을 알겠습니까? 소가 여러분의 슬픔을 알고 위로해 줍니까? 물고기가 여러분을 압니까?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받으면 알게 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셔서 예수님 대신에 보내주신 영이십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에 말씀하십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할렐루야!
그래서 성령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에게 쑥 들어오면 하나님의 깊으신 뜻까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할 때도 '아이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겠네. 이것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겠네.'하고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의 도뿐 아니라 성경을 깨닫게 되고 천하 만물을 보아도 '아! 하나님께서 저렇게 하셨구나.'하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오직 성령입니다.
구원도 오직 성령으로 받는 것입니다.
성경도 오직 성령으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3절에 바울이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기 때문에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때도 사람의 지혜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가르쳤다."라고 한 것입니다.
설교는 오직 성령으로 해야 됩니다.
저는 설교 준비를 할 때 일곱 번, 여덟 번 무릎을 꿇고 씁니다. 그렇게 쓰다가 또 무릎을 꿇습니다. 기도는 똑같습니다.
'하나님, 이 본문을 통하여 우리 교우들에게, 우리 민족에게, 이 세계 만민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이지요? 성령님, 제 머리도 쓰시고 제 마음도 제 손도 쓰시고, 제 컴퓨터도 쓰세요.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또 쓰다가 무릎을 꿇습니다. 설교 준비도 성령으로 하고 설교하는 지금도 성령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성령으로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혜로, 여러분의 이성으로 보고 들으면 은혜도 받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다가 망하게 됩니다. '주여, 말씀을 깨닫게 해 주세요. 성령님, 깨닫게 해 주세요.'할 때 '아멘.' 하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도 항상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은 'be filled with the Spirit.' 우리 몸에 성령을 가득 채우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이시지만, 우리가 성령님을 한 번 받으면 영원히 계시지만, 술을 마시듯이 계속 성령의 재충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아내는 결혼을 하면 남편과 계속해서 그대로 사는데, 성령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격으로 오셨지만 물을 마시듯이 술을 마시듯이 성령을 계속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넘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레오나드 우드 경이 프랑스 왕의 초청을 받고 왕궁에 갔습니다. 우드 경은 프랑스 왕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신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드 경을 본 프랑스 왕이 의외라는 듯이 말했습니다.
"오! 우드 경이 오셨구먼. 나는 경은 안 오는 줄 알았는데 오셨구먼."
"폐하, 저를 초청하지 않으셨습니까?"
"초청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어서 못 오시는 줄 알았지."
"폐하, 폐하의 초청에는 응답이 필요 없습니다. 무조건 오는 것이, 순종하는 것이 제 도리인 줄 압니다."
유명한 말입니다.
왕께서 오라고 하시는데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왕께서 오라고 하시면 오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하나님은 왕이십니다.
성령은 왕 되신 주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예수님을 바로 믿고 교회 생활을 잘 하도록만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범사를 카운셀러로서 도와주십니다. 그러니 성령의 감동에 순종만 하면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 생활도, 직장 생활도, 학교 생활도, 어디에 가서도 실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금년 한 해도 성령 충만하시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깨달음이 넘치시고, 성경을 읽으실 때마다 은혜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감동과 도움에 그대로 순종해서 금년 한 해가 성공과 번성과 승리로 이어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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