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자 2002-01-09 12:34:08 겔 18:30-32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먼저 창을 열고 푸른 하늘빛으로 눈을 씻는다. 새 신발을 사면 교회나 사찰 가는 길에 첫 발자국을 찍는다. 새 호출기나 전화기의 녹음은 웃음소리로 시작한다. 새 볼펜의 첫 낙서는 "사랑하는"이라는 글 다음에 자기 이름을 써본다. 새 안경을 처음 쓰고는 꽃과 오랫동안 눈맞춤을 한다. (정채봉 씨의 글을 소개했습니다.) 가정에 새 생명의 잉태와 출산의 소식, 그 아이가 성장하여 새 가정을 이루고 또 그 가정에 새 생명을 얻게 되었을 때, 새집을 마련하여 내 집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새로운 직장에 첫 출근하여 일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고 첫사랑을 시작할 때, 우리는 새로운 기대와 함께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간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선물을 주셨기에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과 영의 새로움 하나님께서 다시금 우리에게 새로운 한 해 2002년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1년은 자연스레 시간이 지나면 주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는 참으로 귀한 선물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되는 시간들입니다. 상을 바라는 선수는 경주에서 열심을 냅니다. 우리는 경주하는 선수들처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각오로 맞이하는 새 아침에 새로운 출발점에 선 인생의 경주자들로서, 마지막 날에 면류관을 얻어야 할 우리의 모습을 위해 옛 것을 버리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으시기 바랍니다. 새해가 우리를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2002년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모두 새로워진 모습으로 사는 것은 아니고 날짜만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전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이전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새해는,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생각, 새로운 결심, 새로운 마음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마음이 없다면 아직도 묵은해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함께 해 주신 하나님 은혜를 감사하면서 또 한해를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일년을 우리가 잘 관리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좋은 한해로 삶을 살아드리며 그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한해를 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좋은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새해가 되면 소망을 갖습니다.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게 하옵소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옵소서. 부자 되게 하옵소서.’ 그러나 매년 같은 생활만 반복되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소망대로 되지 못하고 왜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합니까? 왜 생활에 발전과 성장이 없습니까? 마음의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도, 행동도 변하지 않고 새로운 역사도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새해가 왔는지 안 왔는지 모르는 삶. 계획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계획과 삶의 아무 의미를 모르는 삶. 하던 일 그대로 하고 그냥 살기만 하면 된다는 이러한 삶은 의미도 없고 발전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시간에 마음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17세기 영국의 시인 존 밀턴(John Milton ; 1608∼1674)은 "마음이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고, 천국을 지옥으로 바꾼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문제는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이며, 인간의 문제는 곧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우리의 마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일본의 경제주간지인〈닛케이 비즈니스〉가 세계 100대 기업을 선정해서 25년 단위로 흥망성쇠를 추적한 결과에 의하면, 한 세기가 지나도록 계속해서 성공한 기업은 17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개 25년 만에 망했다고 합니다. 성공했다 할지라도 새로이 개척하고 개혁하며 그 성공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빌게이츠는 "생존과 쇠퇴를 가르는 조건은 바로 "자기변혁(Renewal)’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쇠퇴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보십시오. 1960년대에 10대 재벌이었던 기업 중에서 지금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은 둘밖에 없고 나머지는 근래 몇 년 간 다 망했습니다. 50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30대 재벌 중 14개 재벌이 망하거나 소유주가 바뀌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변혁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세월이 가고 세대가 바뀔수록 자신을 새롭게 재무장해야 합니다. 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한 진정한 사회개혁은 없습니다. 사회만 구조조정을 할 것이 아니라, 개인도 구조조정을 하고 변화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달라져야 합니까? 우리 인생에 있어서 구조조정은 무엇입니까? 본문 배경 설명 에스겔 18장 말씀은 에스겔 선지자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유다 백성들에게 죄악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 구원과 회복의 복을 받으라고 전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남 유다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죄악을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느부갓네살 왕이 통치하는 바벨론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다 백성들이 1, 2차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은 그발강가에 정착하여 유프라테스강과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하는 대규모 공사에 동원되어 노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절망과 탄식 소리가 나왔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라는 속담을 들어, 이 고통은 조상들의 범죄 때문이라며 오히려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다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유다 백성에게 임한 심판은 각 개인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니 조상 탓하며 핑계하지 말고, 회개하라고 교훈 하였습니다. 돌이켜 회개하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조상 탓을 하고 부모 탓을 합니다. 정치가 혼란에 빠진 것도, 경제가 불경기에 처한 것도 다 남의 탓을 합니다. 그러나 정치인, 경제인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있고 내가 지은 죄도 있습니다. 이것을 깨달아 회개하고 마음에 새로운 각오를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몇 가지 명령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첫째,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라고 했습니다(겔 18:30). 둘째,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겔 18:31). 셋째,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라고 했습니다(겔 18:32).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 회개, 죄에서 떠남, 패망치 않음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鞠問)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悔改)하고 모든 죄(罪)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罪惡)이 너희를 패망(敗亡)케 아니하리라”(겔 18:30)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각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각자 자기 인생을 책임지고 자기 죄 값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생각한 대로 행동한 대로, 하나님은 공평하게 심판하십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누가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탐욕과 교만과 불신앙에서 방탕과 타락에서 떠나 하나님께 돌아오면,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곧 죄로 인해서 다시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정의를 되살리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잠언 28장 13절에서 솔로몬 왕은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발전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나라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인을 찾아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합니다. 정치인으로서 정치가 왜 잘못 되었는가, 경제인으로서 경제가 왜 잘못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문제의 원인을 바로 파악해야 나라가 잘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국민성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부정적인 인생관, 잘못된 사고방식은 우리 인생을 파괴하고 불행을 가져옵니다.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희망과 가능성이 있다 이사야 55장 7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도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 오라. 그가 널리 용서(容恕)하시리라”라고 하였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십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종교인과 비 종교인의 차이는 후자는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반하여, 전자는 자신이 걸어 온 삶의 길을 늘 되돌아보면서 새롭게 자신의 길과 방향을 수정하고 변화시키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회개란 잘못된 길에서 바른 길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희망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구원해 주십니다(시 34:18).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잠 28:13). 용서해 주십니다(사 55:7). 또한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욘 3:10). 성령을 주십니다(행 2:38). 우리는 잘못되고 비뚤어진 삶을 버리고 깨끗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종교가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은 참회하는 사람들입니다.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어서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종교적인 사람은 뉘우치는 사람입니다.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사람이 종교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 마음, 영, 새롭게 함, 변화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罪惡)을 버리고 마음과 영(靈)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겔 18:31) 우리는 죄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내 인생을 망치고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죄에서 벗어나, 이제는 몸과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이스라엘 족속아, 이제 너희는 더 이상 죽을 생각하지 마라. 어찌하여 너희가 죽고자 하느냐? 왜 절망하느냐? 왜 포기하느냐? 왜 자살하고자 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새 삶을 보장해 주시고 축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시편 51편 10절에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創造)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새롭게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새로운 영을 주시옵소서. 성령을 주셔서 저를 새롭게 만드시고 저의 인생을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저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사오니 하나님께서 저를 도와주시옵소서.’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에스겔 36장 26절에는 "또 새 영(靈)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새 영, 곧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역사 하시면 돌같이 딱딱하게 굳은 마음도 부드럽게, 온유하게, 새롭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강퍅한 마음, 교만한 마음, 불순종하는 마음,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마음, 모든 불의한 마음이 녹아지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변화된 마음을 가지고 로마서 12장 2절의 "너희는 이 세대(世代)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하신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이 세대를 본받아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교만 속에 삽니다. 탐욕 속에 삽니다. 이기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자기밖에 모릅니다.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되어 탐욕과 교만에 빠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나라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런 세상 사람들을 따라 가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와 심령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사랑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가 창조됩니다. 또한 우리가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삼상 10:6).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시 51:10). 여호와를 앙망해야 합니다(사 40:31). 마음과 영이 새로워진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내 뜻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우리는 그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자동차 핸들과 같습니다. 핸들을 똑바로 하면 차가 똑바로 가지만, 핸들이 똑바르지 않으면 차도 똑바로 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을 잘못 먹어서 인생을 비뚤어지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마음을 똑바로 먹으면 인생도 똑바로 살 수 있습니다. 악한 세력은 우리의 마음속까지 침범해서 양심을 빼앗아 갑니다.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내 기쁨만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기쁨도 빼앗아 갑니다. 싸움과 분쟁을 일으킵니다. 사랑을 빼앗아 갑니다. 생명을 빼앗아 갑니다. 평강과 안정을 빼앗아 갑니다. 인생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도둑도 쫓아내야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도둑 악한 마귀도 쫓아내야 합니다. 허준 선생이 쓴 『동의보감』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예전의 의사는 능히 사람의 마음을 다스려서 미리 병이 나지 않도록 했는데, 지금의 의사는 오직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다. 그러나 병을 고치려면 먼저 병자의 마음을 다스린 후에 의심을 없애 주어야 한다.” 허준 선생은 마음이 병드니까 몸도 병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병을 고쳐야 몸의 병도 고칩니다. 만약 몸만 고치고 마음은 병들어 있다면 언젠가는 병이 재발하여 더 심각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마음의 병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슬픔이라는 병도 있습니다. 의심이라는 병도 있습니다. 절망이라는 병도 있습니다. 교만과 탐욕에 빠진 사람들은 또한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동의보감』에만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의 잠언 4장 23절에도 보면,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잠언 17장 22절 말씀에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옛사람을 두고는 새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새해가 아무리 와도 우리 마음에 옷을 갈아입기 전에는 새해의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새차보다 더 귀한 것은 마음의 새 집입니다. 새 자동차를 타면 한 달 동안은 기쁘고 좋은 집에 들어가면 이년 동안은 기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새집은 영원히 우리를 즐겁게 하고 마음에 새집이 있는 사람은 헌집에 살아도 새집 같이 살고 헌차를 타도 새차 같이 타고 헌옷을 입어도 새 옷 같이 입고 다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가장 우선하고 마음이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천국이 되면 모든 것이 천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마음은 귀합니다. 새 마음이어야 여러분이 인생을 아름답게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흔히 세상에서는 새 마음을 어떤 결심이나 인간의 노력이나 철학적인 어떤 이념이나 생각만 바꾸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보지 않습니다. 좋은 마음 새 마음은 인간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좋은 마음 새 마음은 요가나 입산수도해서 한 10년 산에 있으면 새 마음이 된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죄악으로 더러워진 이 마음은 이 바탕을 어느 누구도 씻을 수가 없고 바꾸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에 의해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 마음은 사람의 노력으로나 인간에 위해서 변화되는 마음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새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새 마음으로 만들어 주시고 주님이 내 안에 오실 때 우리가 새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만이 우리 마음을 청소하실 수 있는 깨끗케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주님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고 우리 안에 또 성령이 오셔서 항상 거하므로 주님이 계시는 마음 이여야 새 마음입니다. 주님에 위해서 고쳐진 마음이어야 새로운 마음이지 주님이 없는 마음은 새 마음이 아닙니다. 마음은 원자력발전소와 같다 원자력 발전소 한기가 발전량이 백만 kw라고 합니다. 소양댐이 그렇게 커도 20만kw 내기가 어려운데 백만kw는 민간인들 이백만 되는 도시가 환하게 켤 수 있고 가정용품을 다 쓸 수 있는 양을 공급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기에 나오는 양이 그렇습니다 원자력이라고 하는 것은 밑천도 자원도 별로 없이 이런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우리의 심령은 원자력 발전소와 같습니다. 여기에서 온 인격에 사랑을 공급하고 온 지체에 기쁨의 선을 다 보내어 주고 얼굴에도 기쁨을, 눈에도 기쁨을, 입술에도 기쁨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곳이 여기 마음입니다. 여기에서 감사를 내어 보내고 여기에서 우리의 삶을 적극적인 삶과 믿음의 삶을 에너지를 보내어 주어서 지체를 움직여 나갈 때에 마음이 움직여서 마음에 의하여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천국의 삶이요 능력 있는 거룩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모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주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따라 가는 것입니다. 인생을 즐겁게 살아야 몸이 건강합니다. 그러므로 슬프고 불안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를 모두 쫓아내고 "하나님, 즐겁게 하옵소서.’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부모는 자녀들을 즐겁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행복합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오면 마음이 기뻐야 합니다. 마음이 편안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고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절에 가는 사람, 점치러 가는 사람, 교회에 가는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비교해 보면, 그래도 교회에 가는 사람의 얼굴이 제일 훤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의 말씀과 축복이 우리에게 기쁨을 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슴속에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 죽는 것/사는 것, 하나님은 사는 것을 기뻐하심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 18:32)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부유함을 주시고, 기쁨과 행복을 주셔서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국기에 별이나 십자가가 있는 기독교 국가는 다 잘삽니다. 복지국가입니다. 잘 먹고 잘살고 다른 나라를 도와줍니다.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살리는 역사, 생명의 역사를 베풀어주십니다. 비록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회개하면, 비록 잘못했다 할지라도 바로잡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복 받기를 원하십니다(신 5:29). 올바로 살고(왕상 3:10), 정직하게 살기를(대상 29:17) 원하십니다. 형통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시 35:27). 하나님은 성도가 부자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잠 10:22). 화목하게 사는 것(골 1:20),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딤전 2:4), 멸망하지 않고 죽었을 때 천국 가는 것(벧후 3:9)을 원하십니다. 뱀 중에는 아스피스라는 아주 작은 뱀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뱀에게 물리면 기분이 아주 좋아져서 잠이 스르르 올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분이 좋아져서 자다 보면 죽게 됩니다. 처음에는 기분 좋게 잠이 들지만, 결국에는 온 몸에 독이 퍼져서 생명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이와 같은 것입니다. 순간적으로는 좋고 기쁘고 쾌락을 느낄지 모르나, 결국은 거기에 빠져서 죽게 됩니다. 악한 마귀 사탄은 우리에게 와서 "하나님을 섬기지 말라. 교회에 나가지 말라. 충성하지 말라.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말라. 네 욕심, 네 욕망, 네 뜻대로 살아라.” 하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 말이 좋은 것 같지만, 그대로 하면 할수록 멸망과 죽음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짐승하고는 다릅니다. 자동차도 길이 있고, 비행기도 항로가 있고, 심지어 천둥오리도 그들이 날아다니는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에도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인생의 길을 정하셨습니까? 어떤 방향으로 나가시겠습니까? 행복의 길이 있습니다. 축복의 길이 있습니다. 성공의 길이 있습니다. 천국 가는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결과를 생각하며 길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포기가 있지만, 하나님께는 포기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구원과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 마음을 새롭게 하면 하나님께서 역사 하십니다. 우리는 이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하나님, 제가 죄악에서 돌이켜서 하나님 앞에 나가게 만들어 주옵소서. 하나님이여, 내 몸과 마음과 영을 새롭게 만들어 주옵소서. 하나님이여, 이제는 저 스스로가 살겠다고 결심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결심을 해야 합니다. 인생을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낙엽같이 둥둥 떠내려가는 인생에는 파멸과 멸망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 때문에 시험에 드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각오를 하고 새로운 축복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흥하기를 원하십니다. 병들어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건강하기를 원하십니다. 형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과 영을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올 한 해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작년 보다 새롭게 살아야 합니다. 갑절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가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아서 기적의 삶을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죽어 가는 영혼을 향하여 예수그리스도만이 길과 진리요 생명임을 전하기 원하시며 하나님 앞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기 원하십니다. 이에 금년에도 영암교회 예배가 다양한 예배 형식으로 드려지며 성도들은 형식을 뛰어넘어 역사하는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를 바라며, 거룩함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예배, 성령의 역사로 위로와 치유, 결단과 파송이 있는 예배,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축복과 사랑이 살아 숨쉬는 예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해를 맞기 전에 묵은해 달력의 마지막 장을 찢고 잉크 냄새가 물신 풍기는 새해의 캘린더를 보면 누구나 마음에 설레임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바울 선생을 통해 우리 삶의 자세를 가다듬기 위해 "뒤에 있는 것을 버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희망의 새해, 깨끗한 마음으로 이 새해를 맞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정죄 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정죄 의식은 죄책감을 가져오고 죄책감은 마음 속의 즐거움을 상실하게 하고, 용기와 희망을 잃게 한다. 이것은 또 질병을 유발시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모든 죄와 죄책감을 벗어 놓아야 합니다. 둘째, 열등감과 좌절감을 떨쳐 버려야 합니다. 누구나 실패의식이 깊이 각인되면 그는 열등의식과 좌절감에 빠지고, 결국 실패자가 되고 맙니다. 당신이 어떤 일에 실패했다 해도 그 일에만 실패했지 인생에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셋째, 완전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완전주의는 자신을 긴장시키고 분열을 일으키며 집단을 파괴시키고 불행하게 한다. 아량과 포용력으로 화목을 실현해야 성공 할 수 있습니다. 넷째, 과거의 영광과 그 환상에서 깨어야 합니다. 목적 추구가 인간을 발전시킵니다. 새로운 목표가 없이 지난날의 영광에 도취되는 자는 이미 패배자에 불과합니다. 새해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 앞에 선물을 받은 감사의 보답으로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 힘차게 믿음의 경주를 행진해 나기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여, 낡고 묵은 생각을 버리고 깨끗한 영혼으로 새해를 맞게 하소서" 200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어김없이 새해의 태양은 맑고 밝게 떠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면 생각나는 시가 바로 ‘새해 아침의 기도’입니다. 새해 첫 아침에 우리가 간직하는 소망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 바로 ‘첫 눈뜸에/ 눈 내리는 청산을 보게 하소서/ 초록 소나무들의 청솔 바람 소리를 듣게 하소서’라는 순결한 시인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온 세상을 높낮이 없이 덮어주는 평등한 눈의 마음, 우리들 때묻은 마음을 맑게 씻어주는 청솔 바람의 청신한 가슴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싶은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새해 새 아침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정결한 생명의 꿈, 삶에 대한 맑은 희망과 밝은 기대감으로 설레게 마련입니다. 무엇보다도 온 누리를 아름답게 지어주시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분에게 공경과 찬양을 올리면서, 어진 이웃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랑의 무게를 실어 새해를 살아가자고 하는 은총과 축복의 메시지가 간절하게 담겨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새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하는 기도의 마음으로 "아침의 기도"와 "새해 아침의 기도"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아침의 기도 ---용혜원 이 아침에 찬란히 떠오르는 빛은 이 땅 어느 곳에나 비추게 하소서 손등에 햇살을 받으며 봄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병상의 아픔에도 젊은이들의 터질 듯한 벅찬 가슴과 외로운 노인의 얼굴에도 희망과 꿈이 되게 하소서 또다시 우리에게 허락되는 365일의 삶의 주머니 속에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의 결실로 가득 채워 한 해를 다시 보내는 날은 기쁨과 감사를 드리게 하소서 이 해는 행복한 사랑들은 불행한 이들을 건강한 사람들은 아픔의 사람들을 평안한 사람들은 외로운 가슴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손길이 되게 하소서 이 새로운 아침에 찬란히 떠오르는 빛으로 이 땅의 사람들의 영원을 향한 소망을 이루게 하시고 이 아침의 기도가 이 땅 사람들이 오천 년을 가꾸어온 사랑과 평화로 함께 하소서. 새해 아침의 기도 ...... 김남조 첫 눈뜸에 눈 내리는 청산을 보게 하소서 초록 소나무들의 청솔바람 소리를 듣게 하소서 아득한 날에 예비하여 가꾸신 은총의 누리 다시금 눈부신 상속으로 주시옵고 젊디젊은 심장으로 시대의 주인으로 사명의 주춧돌을 짐지게 하소서 첫 눈뜸에 진정한 친구를 알아보고 서로의 속 사람에 기름 부어 포옹하게 하여 주소서 생명의 생명인 우리네 영혼 안엔 사철 자라나는 과일나무 숲이 무성케 하시고 제일로 단 맛 나는 열매를 날이 날마다 주님의 음식상에 바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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