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믿음의 본을 보인 교회 2001-12-28 20:46:26 살전1:1-10 어느 알코올 중독자에게 중독자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 중 형은 깨끗하고 행 복하게 살았고, 동생은 그의 아버지와 같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심리학자는 두 사람에게 각각 “당신은 어째서 이런 사람이 되었습니까?”하고 물었습니 다. 형과 아우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모두가 아버지 때문입니다.” 같은 아버지를 보며 자랐지만 형은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는 긍정적이면서 적극적인 선택으로 승리의 길을, 동생은 그 아버지의 아들인 나는 별수 없다는 부정적인 패배의식으 로 살았기에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이제 한 겨울은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저는 축구를 좋아합니다. 월드컵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기에 한국 축구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한국 축구를 외국인 감독이 맡고 나서 더욱 관심이 고조되는 것 같습니다. 현재 그의 평가는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반반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축구 경기를 지켜본 히딩크 감독이 이런 인터뷰를 한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 축구는 기 술, 체력, 정신력! 모든 것은 괜찮다. 그러나 시합에서 시합을 읽지 못하고 있다." 즉 머리를 쓰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공이 오면 그 다음을 그리고 다음 생각을 해야 하는데 공이 오면 그제서야 생각하고 당황해서 공을 빼앗긴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비쥬얼라이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만이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테니스를 배울 때, 처음에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히 설명을 합니다. 그립은 어떻게 잡고, 스텝은 어떻게 밟아야 되고, 백스윙, 포핸드를 가르칩니다. 참으로 잘 가르칩니다. 그런데 연 습은 연습입니다. 게임을 하지 못합니다. 한번은 여성 테니스 1인자였던 나브라틸로바를 가르쳤던 코치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비쥬얼라이즈(Visualize)!" 멋있게 테니스 치는 폼을 그려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제대로 성장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계에는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수지에도 많은 교회가 있습니 다. 과연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합니까? 비쥬얼라이즈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희 교회는 창립 2주년이 되었습니다. 꿈이 있습니다. 갈 길이 무궁무진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많지만 어떤 비전을 갖는 교회를 본을 삼을 것인가? 참 어렵습니다. 본문에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 아주 모범이 되는 그런 교회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 울이 로마서, 고린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마는 그 중에 서도 가장 크게 칭찬하고 또 사도 바울의 마음에 만족히 여기는 교회가 바로 데살로니가 교 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참교회의 속성, 모범적인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를 말씀해주 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께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됩니 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바로 교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귀의하고 현실적으로는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본 받아야 할 유일한 교회임을 성경은 말합니 다. 그래서 오늘 수지교회가 수지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되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 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보면서 충격 몇 가지를 받았습니다. 데살로니가서를 공부한다고 한다 면, 사도행전 17장을 반드시 공부하셔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떻게 개척되었는지 자 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우는데 세 안식일을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즉 4주 동안 머물 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4주 동안 데살로니가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수많 은 큰 무리가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얘기합니다. 한 종류의 사람들만 돌아온 게 아니고, 헬라 의 많은 귀부인들과 수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다 몰려들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저희 교회와 비슷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떠나 1년도 되지 않은 햇병아리 같은 이 교회가 얼마나 부흥을 했던 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올바른 방향으로 자라나갔던지 사도 바울은 그들을 이렇게 칭찬합 니다. "너희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노라. 세계의 어떤 교회가 있 다면 너희 교회를 본받아야 하며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의 본이 되었도다" 참으로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1년 안에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서 본이 되었겠습니 까? 왜 그랬을까요? 철야기도를 잘했습니까? 아니면 새벽예배를 잘했습니까? 어떤 성경공부를 했습니까? 어 떤 전도 훈련을 받았을까? 도대체 어떤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는가? 참 궁금하여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비결은 없었습니다. 저희교회를 지난 2년 동안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감사할 뿐입니 다. 이제는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이 지역에서 소문난 교회가 되어야 할텐데 라는 마음이 있 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교회로 설 수 있는 몇 가지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희 수지교회도 이러한 장점을 받아서 수지 데살로니가 교회로 칭함을 받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태도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말씀을 받는 태도가 달랐습니다. 4절-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 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어떻게 임했다고 말씀합니까? 말씀이 들려올 때 그 들은 그것을 논쟁거리로 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읽을 때, 그들 은 그것을 토의할 논제로 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혹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저것은 누구를 향해서 하는 말씀이야 라고 생각을 합니다. 은혜 받기 틀렸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 중에는 말씀을 읽으면서 토론할 생각을 하면서 읽지 마십시오, 이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데 살로니가 교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말씀으로 들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때 능력 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그 말씀을 받았다고 증언하십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에 복음의 지 진이 일어났던 이유였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성령의 음성을 듣고 계시나요? 예배 에 나와서 주의 말씀을, 설교 말씀을 들을 때, 큰마음의 확신을 가지고 돌아가십니까? 어떤 분은 그렇습니다. 말씀을 목사님께서 잘 전해야 되죠.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말씀을 받는 밭을 제대로 가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 듣는 태도를 중시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네 가지 밭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길가, 두 번째는 돌짝, 세 번째는 가시밭, 마지막 옥토입니 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이 비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똑같은 말씀이 네 가지 밭에 떨어졌는데, 그 열매가 무엇에 따라 좌우되죠? 밭에 따라 좌우 됩니다. 이것은 조금만 생각하면 충격적인 얘기입니다. 왜요? 여기에 뿌려진 씨가 어떤 씨예 요?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이죠? 바위도 깨는 방망이 같은 말씀 입니다.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관절과 골수와 우리의 혼과 영과 마음의 생각까 지 찔러 쪼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마음 밭에 와서는 맥도 추지 못하고,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죽어 버린다는 사실이에요. 이게 가능합니까? 왜입니까? 우리의 마음 밭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능력이 있어서일까요?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의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똑같이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 는가 하면, 길가의 밭이 있는가 하면, 돌짝 밭이 있는가 하면, 가시밭들이 있어서 받지 않는 자들도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마음 밭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가, 인생 의 앞길을 좌우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 말씀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큰 성령의 능력과 확신으로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좋은 환경에 있어서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6절 말씀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 은 자가 되었으니" 성령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가운데 이들이 있었습니까? "많은 환난 가운데서" 있었습니다. 편안한 가운데 받은 것이 아닙니다. 환난 가운데서입니 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핍박당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환난 가운데 받아들였습 니다. 이것이 더욱 순수한 것입니다. 질적인 수준이 높습니다. 환난 가운데서입니다. 평안한 가운데서, 예수믿는 사람들이 칭찬받고, 존경받고 하는 가운데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고 환 난과 핍박 속에서 받아들인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환난가운데서 이들이 기쁘게 말씀을 받 을 수 있었습니까?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주위의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모함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모함했는지 아십니까? 총독을 배신했다는 가장 악질적인 죄입니다. 결 국 죽을 수 도 있는 환난입니다. 그런데도 기쁨으로 말씀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런 모함과 수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았다 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인정받게 된 이유입니다. 여러분! 어떤 고난이 있습니까? 그 고난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억울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말씀으로 치유받는 교회와 우 리들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였던 것입니다. 2절, 3절에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 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 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데살로니가 교회가 왜 본이 되는 교회가 되었는가? 그 짧은 시간에 대부흥을 이루었는 가? 여기에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강조점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있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성경을 들여다보십시오. 3절입니다. 원어 성경에 보면 믿음, 소망, 사랑 이 강조된 게 아니라, 역사와 수고와 인내가 강조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데살로니가전서 1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장의 구조를 완벽하게 파악하 셔야 됩니다. 1장의 구조는 샌드위치 구조입니다. 2절에서 3절이 위의 빵에 해당되고, 9절과 10절은 밑의 빵에 해당되어 있습니다. 2절에서 3절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볼 때, 사도 바울이 기도하다가 데살로니가 교인을 생각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 하면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무엇이 떠올랐습니까? 왜 데살로니가 교회는 소문난 교회가 되었습니까? 소망의 인내와, 사랑의 수고와, 믿음의 역사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9절에서 10절은 사도 바울이 아닌 그 주위에 있는 성도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는 소문 을 듣고 그들을 평가한 말씀입니다. 9절을 보세요. "저희가 우리 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즉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 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우선 여기에 나타난 세 단어를 보십시오. '버리고', '섬기며', '기다린다고' 믿음의 역사는 무엇입니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간 것을 얘기한 것입니다. 우상 이 뭡니까? 우리는 '우상' 이라고 하면 그저 돌부처 앞에 가서 절하는 것만 생각합니다. 하나님 대신에 내 마음에 중요하게 자리잡고 앉아 있는 것, 그것이 우상이에요. 어떤 사람은 돈이 우상이고, 어떤 사람은 성공하는 것이 우상이고, 취미가 우상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녀가, 남편이, 아내가 우상입니다. 그런데 오늘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때 확실하게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또한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된다고 얘기합니다. 사랑의 수고가 무엇입니까? 봉사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곧 봉사입니다. 교회에는 두 가지 종류의 교인이 있습니다. 이 사랑의 수고에 관한 한, 한 종류의 교인은 전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사랑의 수고와 봉사를 하지 않는 교인들이에요. 예배만 드리고 돌아갑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랑의 수고를 하나 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수고가 있었기에 축복을 주신 줄 믿습니다. 제발 교 회에 손님이 되지 말아 주십시오. 더 이상은 되지 말아 주십시오. 사랑의 수고를 하지 않으 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씩이라도, 다만 얼마라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넓은 마음, 그 거룩한 사랑, 그 거룩한 희생, 그리고 고난 당하심, 우리가 본받아 나가야 합니다. 요새 가만 히 보면 이와는 반대로, 그리스도를 본받으려고는 하지 않고 그리스도 덕분에 잘살아 보려 고들 합니다. 어떤 사람은 보니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찬송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하는 대목을 부르지 않는 다고 합니다. 마음에 안든다는 것입니다. 그 대목에 가서는 입 을 딱 다물어버립니다. 나는 이름없이 빛도 없이 하지는 않는다 이것입니다. 그런 수고는 안 하겠다 이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영광은 주께서 받으시고--'라는 가사도 마음에 안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안될 일입니다. 그 다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소망의 인내입니다. 무엇을 소망합니까? 주님이 다시 오심 을 소망합니다.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우리가 소망의 찬송을 부릅니다. 믿음 생활 중 제 일 중요한 것은 재림의식입니다. 주님은 오십니다. 마라나타입니다. 지금 우리가 힘들더라도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산 것입니다. 인내를 하면서 소망을 두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주님 앞에 갈 것을 알고 소망을 가지고 사시길 바랍니다. 셋째로 소문으로 전도한 것입니다. 8절에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 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대표적인 교 회입니다. 본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데살로니가교회는 본이 되는 교회가 되고 칭 찬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소문이 쫘악 퍼져서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 교회 사람들이 오면 질리는 것입니다. 전도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문이 났기 때문입니다. 인도에 고든 맥스웰이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하루는 힌두교 수도승에게 찾 아가서 인도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이 힌두교 수도승이 마침 미국에서 유학한 사람 입니다. 그래서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해요. "당신 날 전도하려고 그러지?" "아니 요, 내가 전도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언어만 가르쳐 주시오" 그러니까 이런 말을 했다고 합 니다. "지금까지 당신하고 지낸 사람 치고 그리스도인이 안된 사람이 있소?"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본이 되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이는 간접적인 권면입니다. 이 칭찬에는 책임을 일깨우는 것이 있습니다. 칭찬받았으면 지금의 그 생활과 그 본을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칭찬은 받아놓고 뚝 떨어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칭찬한다는 것은 그대로 살아가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렇게 말씀합니다. 칭찬받는 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 니다. 칭찬받았으면 소문이 났으니까 이제 그걸 의식하고 좀더 확실하게, 좀더 확고한 믿음 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칭찬받고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어서는 안되 는 것입니다. 오늘 데살로니가 교회는 칭찬받는 교회, 본이 되는 교회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이제 존경 과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리더쉽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 데살로니가 교회, 이 본이 된 교회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뒤를 따르는 많은 교회가 이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계속 본을 보이면 다른 교회들도 좋은 교회가 될 것이고, 본이 된 교회가 쓰러지면 다른 교회도 다 쓰러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본이 되는 교회, 대표적인 교회, 앞에 선 교회가 더 건강하게, 더 확실하게 교회 됨을 지 켜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본분, 그 위신과 위상을 지켜가야지 이제 흔들리면 많은 교회에 피 해를 주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너희는 본된 교회요, 또한 모든 교회에 소문이 났느니라'합니다. 이 말씀 속에는 '그대로 그 본을 지켜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노라'하는 말씀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데살로니가 교회! 저희 교회도 이런 교회 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만을 그대로 받는 교회, 말씀을 실천 하면서 말씀으로 소문 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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