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중보기도의 핵심(2)
2001-12-28 13:59:50

골로새 1:11-12
일시: 7/22/2001(교역자 보건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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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감리교회(監理敎會)에서는 매 년마다 <교역자(敎役者) 보건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교역자 보건주일>이란 "교역자들의 건강을 염려하며 교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주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개 교역자는 교인들을 위해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교역자들 자신을 위한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교역자는 남을 보살피며 사는 사람이지, 자신을 돌보는 것을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봅니다. 교역자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는 것은 교역자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교역자가 늘 건강하고 싱싱해야 교회가 발전하고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교역자는 그 교회에 시무한 지 7년째 되는 해에 안식년(安息年)을 가질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몇몇 교회를 제외하고는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대개 교역자들이 3개월 내지 6개월 정도 쉬면서 연구하거나 여행을 하며 견문(見聞)을 넓히는 기간을 갖는 경우가 요즘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건, <교역자 보건주일>은 교역자를 위해 교인들이 기도하면서 교역자를 이해하고 돌보는 마음을 갖자는 겁니다. 주의 종은 교우들의 사랑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종은 물질로 사는 게 아닙니다. 교우들의 사랑과 기도로 사는 것입니다.

지난 몇 주간 거의 매주 마다 교역자들을 초대해 주시고 귀한 음식을 대접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음식 대접도 고마운 일이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교역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힘이 됩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도 중보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능력(能力)으로 더욱 강건해지기를 서로 위해 기도합시다.
11절 상반 절에 보면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하게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뜻 깊은 표현을 하고 잇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해진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glorious power)으로 강해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이걸 아셔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힘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자기 힘으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권능"으로부터 오는 힘을 받아 사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을 힘입어야 모든 것을 능하게 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공을 했다해도, 그걸 자기 힘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해선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 주셨기에 지금의 여러분이 된 겁니다. 이걸 모르면 자만(自慢)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 줄로 생각하느냐.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 49장 24절을 보면 "요셉의 활이 도리어 건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全能者)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요셉이 힘이 있게 된 것은 <전능자의 손>을 힘입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자기 형들의 시기·질투를 받고 애굽으로 팔려가서 종살이를 했고, 또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을 힘입어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능력이 그에게 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걸 확실히 믿었습니다. 다시 말해 요셉이 성공하고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을 힘입어 살면 귀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특히 병약한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병들었을 때가 제일 힘들 때입니다. 어렵고, 외로울 때 도움이 되어주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엊그제 노환으로 고생하시는 주 건 권사님을 병원으로 찾아가 손을 잡고 기도하는데, 얼마나 제 손을 꽉 잡으시는지요. 주 권사님 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성도를 위해 붙잡고 기도해 주면 나중에 "그때 참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큰 힘을 얻었습니다"라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이 시간 여러분이 고통받는 가운데 주께 나왔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이 여러분에게 임함으로 여러분의 모든 상처와 아픔이 치유되고, 고통을 이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 모든 것을 잘 견디고 오래 참을 수 있기를 위해 서로 기도합시다.
11절 하반 절에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이것을『표준새번역』에는 "기쁨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기를 바랍니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모든 것을 끝까지 잘 참고 견뎌낼 수 있기를 위해 항상 기도합시다. 여기서 <견딤>은 여러 가지 역경(逆境) 안에서도 견고(堅固)함을 잃지 않는 것이며, <오래 참음>은 남의 무례(無禮)나 모욕(侮辱)이나 박해(迫害)에 대해 노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고요하게 오래 기다리는 태도입니다. 전자(前者)는 비겁의 반대, 후자(後者)는 보복의 반대로서, 이 두 가지가 합해질 때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인내(忍耐)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인내는 스토아파에서 말하는 수양(修養)과 극기(克己)에서 나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정말 참기 어려운 고난과 아픔과 역경이 우리 삶 가운데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도움은 전능(全能)하신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는 구나!" 하는 걸 느끼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해도 힘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모든 어려움을 참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4절에서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具備)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도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내게 능력(能力)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좋은 삶'(good life)이 있으면, '좋은 죽음'(good death)도 있는 법입니다. 사실 이 짧은 인생을 잘 사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last moment)을 어떻게 맞느냐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살다가 어떤 모습으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지난 주 휴가 중에 도산서원을 들러보았습니다. 제가 평소 흠모(欽慕)하던 퇴계 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올해가 퇴계 선생 탄신 500주년이라고 합니다. 그는 70세에 앉아서 조용히 돌아갔다고 합니다.

많지 않은 나이에 병으로 고생하다 하늘 나라로 간, 고(故) 이 은순 집사님의 인도로 우리 교회에 나오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돌아간 이 집사님이 병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꿋꿋하게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 것에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집사님은 그저 아주 단순하고 평범하게 살았던 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마지막 순간, 한 생명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갔습니다. 그녀가 수도(修道)를 한 것도 아니고, 퇴계 선생처럼 깊은 학문을 하여 어떤 경지에 이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비스럽고 영광스러운 능력을 힘입어 된 것입니다.

이런 걸 볼 때도 우리는 병약한 사람이나 어려움을 당한 이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 힘을 얻고, 모든 고통을 잘 참아낼 수 있도록 중보 기도를 더욱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이 모든 것을 잘 참고 이겨낼 수 있도록 위해 힘써 기도합시다.

3. 하나님 아버지께 늘 감사(感謝)하며 살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12절에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感謝)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빛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다들 상속(相續)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感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 할 때에도 감사로 시작하고, 끝낼 때에도 감사로 끝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기도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바울도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감사로 끝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저는 전에 호남 지방에 별로 가 본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에 일부러 그곳을 둘러보았습니다. 특히 강진이라는 곳에 있는 다산초당을 들러 본 것이 참 좋았습니다. 다산 정 약용 선생은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면서 10년간을 강진에 다산 초당을 짓고 공부하며 후진을 길렀다고 합니다. 다산 초당 올라가는 길이 얼마나 높은지 모릅니다. 대낮에도 깜깜한 나무 숲 속을 걸어 한참을 올라가 보니, 산아래 조그마한 집이 있었습니다. 다산 선생은 실학(實學)의 거두로서 500여권의 책을 썼던 분입니다. 귀양살이를 하면서 그는 한숨과 원망으로 세월을 보내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을 절제하며 학문과 수도에 전념하였기에 위대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그는 비록 귀양살이지만 10여 년간 깊은 산 속에서 조용히 몸과 마음을 닦고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 받은 것에 감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 보았습니다. 바울 사도(使徒)도 복음을 전하다가 여러 번 감옥살이를 한 분입니다. 그런 고통에 처할 때마다 그는 불평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범사(凡事)에 감사"했습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훌륭한 인물들은 이처럼 불평과 원망이 아닌, 감사로 일관한 삶을 산 분들입니다. 감사는 모든 고난을 이기게 하며,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만드는 통로(通路)입니다.

우리교회 조 양옥 권사님이 갑자기 척추에 종양이 생겨서 꼼짝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울로 급히 이송(移送)을 했습니다. 유명한 의사 선생님들이 아무리 검사를 해도 통증의 원인을 알 수가 없었고, 계속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통 중에 있었는데 그 날 금요 심야 기도 때, 우리 교회 성도들이 자신을 위해서 한참 기도하는 바로 그 시간, 이상한 일이 권사님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아픈 가운데서도 누워 있는데, 기도가 막 나오더랍니다. 한참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는 다름 아닌 <감사의 기도>이었답니다. 너무 감사해서 화장실에 가서 막 울었다고 합니다. 감사가 북받쳐 올라서 견딜 수 없었답니다. 한참 화장실에서 울다가 가슴을 펴 보니 펴지지 않던, 가슴이 펴졌습니다. 그리고 조금 씩 걸을 수 있었습니다. 침대에 돌아와 누워 있는데도 계속 감사하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종양이 있는 척추 부분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두려운 마음은 없어지고 감사한 마음만 계속 생겼고, 그 날 밤잠을 잘 잤고, 그 다음 날 아침 담당 의사가 와서 어떻게 이렇게 좋아졌느냐고 의아해 하더랍니다. 권사님 몸은 점점 좋아졌고, 이어 곧 퇴원했습니다. 이제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 움직이는 것도 감사하고, 모든 것이 감사, 감사뿐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캐나다에 사는 딸을 비롯하여 온 식구의 믿음의 단계가 한 단계 올라갔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권사님은 성도들의 중보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셨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여러분, 중보 기도의 능력은 이처럼 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이 중보 기도를 통해 임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신비스럽고 영광스러운 능력이 오늘 이 시간 여러분에게도 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이 하실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를 위해 열심히, 그리고 뜨겁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어려운 일을 당한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 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모든 고난을 이겨 나갈 수 있으며, 또 모든 것을 견딜 수 있게 합니다. 중보 기도는 앞에 놓인 장애(障碍)를 넘어 구원과 치유의 길을 조용히 열어주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을 체험하게 만들어 주는 통로입니다.


2001/12/09 6번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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