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의 전부이신 주님이시여! 2001-12-28 13:47:43 : 창세기 22:1-14 일시(주일 낮) --------------------- 지난 주간 설교를 준비하면서 교인 15명 정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명과도 같이 중요한 게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물어 보았더니, 제일 많은 대답이 '건강'이고, 그 다음이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남편,' '경제 문제'라고 대답한 사람도 있고, 어떤 젊은이는 '부모님'이라고 했습니다. 제일 소중한 것이 '건강'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아 의외였습니다. 이런 대답을 한 분들은 주로 아픈 적이 있었거나, 중년을 넘긴 분들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가장 중요한 것이 변하는 것 같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습니다. 보통 사람은 이런 명령을 받으면, 하나님을 의심하고 불평하거나, 낙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신앙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진정 '믿음의 조상' 다운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그 무엇보다도 귀한 존재였습니다. 아마 아브라함에게 그 당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100세에 얻은 제 아들 녀석입니다. 이 아이야말로 제 생명과도 같답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태워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하나님이 그에게 내리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만감이 교차했을 겁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순종했습니다. 최상의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께 묵묵히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봅니다. 그리고 그런 순종하는 믿음을 보인 아브라함을 위해 하나님께서 제물을 준비하셨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순종했는지를 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봅시다. 1.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쳐라"고 명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 잔치 기적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하여라"고 했을 때, 일꾼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때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하실 때 그들은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또 그들에게 "이제는 떠서 잔치를 맡은이에게 가져다주어라"고 말씀하실 때 그들은 그대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대로 하는 것이 바른 신앙의 자세입니다. 2. 즉시 순종하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마 밤중에 환상 중에서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는 그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 명령을 즉시 실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충심으로 행하고자 하는 자는 아브라함처럼 신속히 실행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믿음의 자세입니다. 3. 세심하고 주도 면밀하게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손수 번제를 위한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제물뿐만 아니라, 제사에 소용될 물품들을 성실하게 준비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참된 순종이란 말과 생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노력하고 성실하게 행함으로써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러 성전에 나올 때 어떻게 준비하십니까? 한 동안 TV에 크게 방영되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 모 성결교회 교인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주일이면 한복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교회에 간다고 합니다. 이건 제가 어떤 택시 운전사에게 들은 얘깁니다. 그는 너무 놀랐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는 못 하더라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올 때는 철저하고 세심하게 준비하여 나와 산 제사로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서 배우는 믿음의 자세입니다. 제사를 드리며 예물을 바칠 때도 흠 없는 것이어야 기쁘게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레위기 22장에 보면,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열납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괴혈병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너희는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4. 제사에 장애가 될지 모르는 것을 미리 방지하는 것입니다. 5절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혹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하는 걸 보면, 나이 많은 주인 아브라함이 망령이 났나 해서, 종들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것을 방해할까 봐 미리 취한 조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미리 제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 예배 드리러 올 때, 아주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먼저, 모든 걱정과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맺는 신앙생활이 가능합니다. 또, 성전에 들어오기 전, 미리 휴대 전화 스위치를 꺼야 합니다. 이것은 조금난 신경을 쓰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미리 제거해야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되고, 여러분도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종들을 떨어뜨려 놓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모리아산을 아들 이삭과 함께 오르게 됩니다. 아들 이삭의 등에는 번제에 쓸 나무를 지웠습니다. 이 때 이삭의 나이가 16-17세 가량이었다고 합니다. 소년 이삭의 어깨 위에 자신을 태울 번제 나무를 지고 가는 이 장면은, 장차 자신이 달려 돌아가실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게 될 예수님의 걸음걸음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 자신은 불과 칼을 가지고 갔습니다. 여기서 번제에 쓸 불과 칼을 준비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독자 이삭을 죽여 목과 손과 발을 자르고, 각 부분에 각을 떠 번제단 위에 놓고 불을 붙여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번제로 차질 없이 드리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 순간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찢어지는 고통 가운데 그는 아들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을 향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때 아들 이삭이 "내 아버지여"라고 합니다. 죽음 같은 침묵을 깨고 던진 이 말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넘쳐 나는 호칭입니다. 이 말을 들을 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마치도 손에 든 칼이 자기의 가슴을 후벼파는 듯이 아팠을 것입니다. "나를 네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이제 나는 네 살인자가 될 것이다. 아버지라면야, 아버지로서의 자애를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이러한 야만적 행위를 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주 침착했고 안색도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극한 슬픔을 노출시키지 않고 평온한 말로 아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것은 "오냐, 내 아들아 무슨 일이냐?"라고 하는 뜻이며, 이것은 애정이 담긴 아버지의 다정한 대답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때 다시 이삭이 묻습니다.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 대한 아브라함의 대답은 매우 지혜로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정말 아브라함의 믿음대로 수양을 준비하여 주셨고, 아들을 대신하여 아브라함이 그 수양을 번제로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땅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늘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시고 돌보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7-8절을 보면 이삭이 "번제(燔祭)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준비한다는 뜻은 스스로 '조달하다,' '돌보다,' '보살피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조달하시고, 돌보시고, 보살펴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친히 돌보시고 보살펴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던 겁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한 대답은 하나님으로부터 미리 어떤 언질을 받고 한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을 제물로 바칠 수밖에 없었는데, 어떻게 아브라함이 이런 말을 했을까요? 혹시 아브라함이 자식에게 거짓말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다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 가운데 선하게 일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제물을 준비해 주시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의 믿음대로, 하나님께서는 친히 제물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자녀들을 위해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하십니다. 하나님은 때에 따라 돕는 자를 주시기도 하고,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모세가 말을 못한다 할 때 하나님은 말 잘하는 그의 형 아론을 돕는 자로 주셨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배고플 때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목마를 때는 반석에서 샘물을 내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먹고 살 양식과 그 외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를 친히 돌보아 주시고 보살펴 주십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를 돌보시고 보살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천성을 향해 갈 때 우리와 늘 함께 하심을 믿을 때 험한 광야 길도 안심하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다윗처럼 고백하며 삽시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또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돌보아 주시고 보살펴 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삽시다. 그 때 늘 평강을 누리며 복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나의 전부이십니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교인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을 때 "하나님입니다. 혹은 주님이십니다"라고 대답한 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무척 현실적인 신앙을 가지고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주간 제 친구 목사와 점심을 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을까" 얘기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삶의 전부였던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고 난 후에는 아들 이삭이 하나님 보다 더 귀한 존재로 여겨졌기에 하나님께서 삶의 우선 순위를 다시 회복해야 된다"고 하여 이런 명령을 내리신 게 아닌가 하는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명령에 대해 아브라함은 고통 가운데서도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아낌없이 바침으로써 "하나님이 나의 전부이십니다. 제게 있어서 하나님 보다 더 귀한 것은 세상에 그 누구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런 아름다운 고백을 하며 살기를 바라면서, 33세라는 짧디짧은 삶을 주님께 온전히 바쳤던, 사랑의 사도 이 용도 목사의 말을 인용하며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예수다! 우리의 신앙의 초점은 예수다! 소망에도 예수요, 인내에도 예수요, 기도에도 예수요, 찬송에도 예수다. 떠들어도 예수요, 잠잠하여도 그저 예수뿐이다. 생시에도 예수! 꿈에도 예수! 그리고 잠꼬대에도 예수다! 먹어도 예수요, 입어도 예수요, 자도 예수여, 일하여도 예수다! 그저 우리의 생활의 중심 초점은 예수뿐이다. 오 예수는 곧 우리의 모든 것이요, 또 우리의 생명이다. 만일 사람이 온 천하를 얻어도 이 생명을 잃어버리면 아무 이익도 없게 되는 것이다. 오,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여 당신이 없이 우리는 살지 못합니다. 오, 우리의 진리이신 예수여 당신이 없이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오, 우리의 길이신 예수여 당신이 없이 우리는 행할 수 없습니다. 오, 우리의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여! 영원히 우리와 같이 하여 주옵소서. 예수보다 더 귀한 존재는 나에게 있지 아니합니다. 나의 이름이나 소유나 나의 고난이나 평안이 다 예수를 위하여서만 필요하였고,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죽거나 살거나 내 평생 사랑할 이는 예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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