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람을 입으라 2001-12-24 21:10:13 “너희가 …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3:9-10下) 들어가는 말 오늘 본문을 다시 쉽게 번역하면 "너희는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너희의 옛 생활과 함께 옛 자아를 벗어 버렸고 또 새로운 자아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새로운 자아는 자신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형상 안에서 지식 속에서 새롭게 되어져가고 있는 새 자아이다."라는 말이 됩니다. 옛사람과 새사람 예수를 믿기 전에는 우리를 옛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은 다음에는 새 사람이라고 합니다. 옛 사람에게는 옛 생활이 있고 새 사람에게는 새 삶이 있습니다. 옛 생활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욕심과 육체의 정욕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골로새서 3장에서 사도는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니 너희들은 위엣 것을 생각하라, 땅에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신령한 성도의 생활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 그것과 함께 성도들이 신령한 생활을 해 나가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죽여야할 생활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바로 옛 생활이며 옛 사고와 옛 습관입니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옛 생활, 옛 사고, 옛 습관이 남아있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에 의해서 애굽에서 출애굽하는 장면을 통해 알게 됩니다. 애굽을 떠나온 것은 전적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지만 그렇게 애굽을 떠나오고 난 이후에 바로는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만히 가도록 만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옛 생활이 성도들을 추적해 오는 그림을 이미 여기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옛 사람에게는 옛 습관이 있고 그 옛 사람은 감각과 자기의 혈기를 따라 살아갑니다. 그래서 옛 사람의 모습은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 곧 우상 숭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욕심을 죽이는 삶을 살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예수를 믿기 전 비교적 착한 삶을 살고, 도덕적인 생활을 해온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 세상에서 존경받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생활도 결국 뒤집어 보면 그것은 그 속에서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자신의 육신의 생각과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지 하나님이 그 마음을 주관하고 계셔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선한 뜻을 바라보면서 살고 또 이 세상에서 좋은 것들을 추구하면서 사는 옛 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뒤집어 보면 결국 그 삶의 동기가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기리고 그 하나님을 높이기 위한 데서 비롯된 도덕적인 생활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옛 생활을 그리스도인들이 자꾸 좇아가게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옛 생활이 끊임없이 추격해서 이제 막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우리들에게 멍에를 씌워 그 생활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옛 생활의 습관이 우리를 추격해 올 때에 그것을 거부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오늘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맛보고,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알고 지식에 있어 새로움을 입고,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옛 사람을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어진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주님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지에 대한 확신을 갖지 않으면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은 너무나 힘듭니다. 이런 모든 것이 오늘 우리에게 언제나 주어져야 하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제'가 아니라 그리고 '내일'이 아니라 '오늘' 항상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게 하는 하늘의 은혜를 공급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이 세상의 죄에서 이제는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옛 생활의 습관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지속되어 왔지만 경건한 신앙으로 새롭게 살고 하나님의 은혜를 그리워하면서 살기로 한 모든 신앙의 결심과 신앙 생활은 이제 겨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기도의 습관이 뿌리를 내리지도 않았습니다. 새벽기도를 몇 일만 나오지 않으면 금방 그 평안함에 맛들게 됩니다. 우리의 본성 자체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다 우리의 신앙이 깨어 있으면 그것을 겨우 극복하고 하나님 앞에 옛 사람, 옛 생활의 습관을 벗어버리고 살아가는데, 오늘 그런 우리에게 그러한 삶이 없으면 우리는 옛 사람의 습관이 달려올 때 그만 쫓아가서 끌어안고 사랑하게 되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옛사람과 그 행위 옛 사람과 옛 행위를 벗어버리고 살아가지 못하게 되면 새 사람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그 새 사람을 입고 생활하지 아니하면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의 삶으로는 하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고 진실에 있어서는 자기의 욕심을 따라서 우상을 숭배하는 탐심을 섬기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결국 옛 사람의 생활은 감각과 혈기를 따라 살아가는 삶이고 새 사람의 생활은 이성과 양심을 따라서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니 이 삶이 계속 승리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부단히 옛 사람과 옛 생활과 옛 행위를 벗어버리려고 노력을 해야됩니다. 오늘 성경은 옛 사람과 옛 행위가 하나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과 그 행위는 하나입니다. 변화되지 못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 변화되지 못한 옛 습관을 따라갑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한 번에 쌓아올린 은혜를 다 무너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옛 행위와 습관이 우리를 휘어잡고, 신앙에 의해서 통제되지 않는 우리의 옛 자아와 상황이 만나게 되면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옛 사람과 옛 행위는 우리들이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신앙 생활을 하는 가운데 매일 매일 벗어 버려야 할 죄악이며, 매일 매일 벗어 버려야 할 가장 커다란 숙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벗어버리라" 오늘 성경은 너희가 은혜를 받으면 된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옛 생활의 습관과 행위를 벗어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옛 사람의 습관과 행위를 매일 매일 벗어버릴 때 비로소 성숙된 모습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사랑이 많은 사도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한 번 죽이는 것은 어렵지만 두 번 세 번 죽이면 우리는 우리의 옛 지체를 죽이는 이 일에 익숙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한 번 지체의 욕심을 죽이고 우리의 옛 생활의 껍질을 벗어버리게 되면 우리의 신앙이 부쩍 자라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옛 생활과 그 행위를 한 번 벗어버리고 죄를 벗어버리면 그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에 관해서 새롭게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통해 깨닫는 것이 많고, 기도를 하고, 많은 것을 공급받으면 옛 생활의 습관을 자꾸 버릴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자아가 우리 속에서 계속 생명을 받고 역사 하니까 옛 생활과 자주 충돌을 일으키게 되고 그런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자꾸 깨달으면서 극복할 수 있는 영적인 양식을 공급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옛 생활을 벗어버리지 아니하면 우리에게 성숙이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옛 생활을 벗어버릴 때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게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만큼 깨달아 알고 결심하고 그것을 실천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뜻과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새로운 시식 사도는 우리에게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의 창조하신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감각과 그리고 혈기가 원하는 대로 살았던 시절에는 무슨 지식이 필요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성공하고 부를 모으고 그리고 사람들을 지배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한 인간의 지혜와 사람의 지식은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신령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령한 지식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나면 인생의 관심이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신령한 삶을 살아가는 은혜로운 신앙생활에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닮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들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때 단지 이 세상에 생명체를 낳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생명체가 사람답게 커가는 것이 목표이듯이 말입니다. 이 사실은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는데 우리가 만약 구원을 받고도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새 사람이 되어가려는 노력을 계속 하지 않으면 태어났으나 짐승처럼 밀림을 울부짖고 돌아다니는 삶을 살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내신 것은 단지 이 세상에서 잘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함이거나 노예처럼 부리시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 닮아 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가려고 노력을 하시는데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열심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옛 사람을 '살인하는 마음'으로 말씀과 믿음의 칼을 들고 우리들 속에 솟아나는 육체의 옛 욕심과 옛 자아의 성품을 죽일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단호하고 모진 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옛 자아는 찌르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만으로는 달아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옛 습관은 공갈치고 협박하거나 회유하는 것으로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우리의 옛 생활과 옛 자아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사로잡아 옛 사람의 생활 습관과 죄악아래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목표인 것입니다. 이것은 끊임없이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옛 행위를 버리는 노력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피 흘리기까지 오랫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배웠습니다.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따라서 옛 사람을 죽이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에 대해서 우리는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그의 은혜로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에 감사하며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싸우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말씀을 듣고 깨달은 다음에 그 깨달음을 즉각적으로 실천하고, 이것을 실천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옛 생활과 옛 자아를 죽이려고 할 때에 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너희가 죄와 더불어 싸우되 아직 피 흘리까지는 하지 아니 하였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인을 하는 독한 마음으로 옛 생활에 칼을 꽂는 비장한 각오가 있고 그것을 실천할 때 옛 사람이 벗어지고 새 사람이 우리 안에 빠른 속도로 입혀져 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신앙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자들의 의무들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받은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하셨을 때 즉각적으로 그 말씀을 실천하고자 결심하는 강인한 노력이 있으면 끊임없이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가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도우시는 것이 보여집니다. 결국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런 옛 사람으로부터 벗어나는 본질에 대해서 성경은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서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 라고 하고 있습니다. 감각과 혈기를 따라 살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지식이 별로 필요 없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매일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새로운 지식을 섭취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이미 알게 하신 신앙생활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지식들이 우리의 삶과 마음과 생활을 주관할 수 있도록 신령한 지식에 마음을 쏟고 그것을 얻기를 사모해야 되는 것입니다. 맺는 말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에도 우리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그런 형상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다 작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는 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우리를 보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 수 있고, 우리의 삶과 인격의 향기를 보고 저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하나님이 누구신지 깨달아 알 수 있게 되기까지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이 새로워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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