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앞에 서라
2001-12-24 20:54:59




"그 즈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여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니라..."(사38:1-6)

만군의 여호와
오늘 살펴볼 인물은 히스기야 임금입니다. 앗수르 군대가 엄청난 대군을 이루어서 쳐들어 왔을 때 그는 여호와의 전에 올라갔고 그 모든 사태의 주인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성전에 올라가서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만군의 여호와여" 라는 말로 자신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히스기야가 믿었던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사태가 자기의 해결 범위를 벗어나는 큰 문제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는 하나님은 그 문제를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또 한번 인생의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전자가 국가적인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극히 개인적인 사건입니다. 무슨 병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병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사야 선지자가 나와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는데 네가 죽고 다시 살지 못하리라"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더욱이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고 예고해 주고 간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그는 어떠했습니까? 그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 주는데 "내가 무엇을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라는 태도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히스기야는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위기 가운데서 건져내셨던 하나님이 이번에도 내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면 들어주실 것이라고 하는 이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숙명적으로 자신에게 예고된 죽음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오히려 하나님 앞에 다시 한번 살기를 구함으로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새로워지는 전기로 삼았던 것입니다.

왜 위기가?
우리는 38장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분이실까 하는 하나님에 성품에 대한 어떤 의구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는 메시지는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히스기야에게 죽음을 실감나게 하시고 이 위기를 통하여서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자기 정화의 기회를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무언중에 하나님은 위기를 사용 하셔서 우리의 신앙을 정화시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위기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신앙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기는 고통스러운 것이고 삶에 벼랑 끝에 서는 것은 곤욕스러운 일입니다. 삶의 기쁨을 위기 속에서는 모두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이 히스기야를 하나님께서 이러한 인생의 벼랑 끝에 서게 하셨고 그 때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에게 나타나셨고 그 인생의 위기는 히스기야로 하여금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히스기야가 병들어 누워서 깨달은 사실은 이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지만 그는 즉시 하나님이 생각이 났고 하나님에게 직접 여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선지자의 음성을 들은 후 얼굴을 벽으로 향하였습니다.

도움은 하나님께로만
인생의 위기 가운데서는 이러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위기를 통해서 여러분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시려고 작정하실 때는 사람 만나서 도움을 구하는 게 도움이 안 됩니다. 일이 점점 꼬이고 고통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히스기야는 이와 같은 위기 속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신앙적인가 하는 원리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벽을 향하여 마주 앉았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절망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벽 앞에 그렇게 섰을 때 그는 이 세상에서 오는 모든 도움을 계산에 넣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외로워져야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사람이 나의 이 고통스러운 위기의 상황을 극복하는 데 조금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사람을 향한 소망을 하나님이 끊어버리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물질을 의지하던 소망도 물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끊어버립니다. 돕던 자들이 끊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환경을 통해서 서서히 우리를 당신 앞에 홀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과의 관계에 개선을 원하십니까? 누구든지 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변화가 오기를 원하는데 자기가 바뀌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뀌어진 관계 속에서 여러분들이 새롭게 하나님을 믿으며 살기를 소원하십니다.
사람에게 가서 도움을 구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인생의 벼랑에 선 사람들, 그 벼랑에 오래 서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속에서 두 번 째 죄의 뿌리들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사람을 원망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향한 기대가 있었는데 그 기대를 사람들이 채워주지 못하니까 원망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원망하는 겁니다.
인생이 무언가 안 되는 것 같고, 막히는 것 같고, 고통받는 것 같을 때 무엇을 찾아다닙니까? 사람들, 훌륭한 신앙을 가지고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도움을 줄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보조적인 도움에 불과하고 결국은 여러분들이 직접 하나님 앞에 여쭤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홀로 세우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수없는 쓸데없는 말, 보는 것, 듣는 것, 함께 어울리는 것, 먹는 것, 마시는 것, 교제하는 것에 둘러 싸여서는 외로워질 수가 없습니다. 홀로 고요히 앉아서 여러분의 신앙의 상태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묵상하고 고민해본 시간들이 있습니까? 그러는 가운데 위기에 적응할 수 있는 순발력이 한없이 약해져 가는 겁니다. 그래서 위기는 위기대로 닥쳐와도 그 위기를 대응하는 방법이 그야말로 허둥지둥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위기 속에서 결국은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아무 것도 아닌가 하는 것을 고백을 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평소' 신앙이 중요
이런 인생의 위기가 닥쳤을 때 하나님께만 물어보고 하나님께 여쭤봐서 해결 받는 영적인 해결 방법에 그렇게 약한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건 본인이 평소에 자신의 영적인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원만한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 앞에 기도할 때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바로 임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낱낱이 듣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위기 가운데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평소에 영적으로 너무 무감각해져있고 무디어져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영적인 감각을 모두 잃어버린 것입니다. 위기에 만난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체험합니까?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위기 가운데서 그대로 시들어버리고 그대로 무지가운데서 망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위기 가운데서 건강도 잃어버리고 불신앙으로 인생을 마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 위기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위기 속에서만큼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적이 없습니다. 그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와 어떤 관계에 있고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이 어떤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될 필요를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것으로 만족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더 돈독해지고 거룩한 교통이 깊어지는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내게 복이 없고 내가 진정 사모할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나이다" 라는 고백을 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벼랑에 서 보고 위기에 설 때 우리는 "나 홀로 이렇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이 인생이 아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할 필요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환경을 통해서 얼마나 훌륭하게 우리의 신앙과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가 하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 앞에 놀랍도록 새로워지는 변화는 언제나 환경, 말씀, 그리고 우리의 마음 이 세 가지를 도구로 사용하여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매일 교회 와서 기도하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들을 깊이 깨닫고, 아파하고, 회개하고 그리고 교회당을 나서는 매 순간 순간을 하나님을 위해서 아껴 쓰고 그리고 강철같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그러한 반복되는 영적인 투쟁 속에서 신앙적인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위기가 없습니다. 무슨 위기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주재권을 하나님 앞에 의탁한 사람들입니다. 삶의 주재권을 하나님 앞에 의탁한 사람들은 겁날 것이 없습니다. 어차피 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도 주님의 것이고, 나의 재산과 나의 명예와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위기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육체의 소욕과 과도한 욕심이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선하심을 못 믿게 만들고 그 믿음 없음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식으로 살아가라고 자꾸 말하는 겁니다. 우리 식으로 계속 살아가다 보니까 주님이 없는 벼랑에 서 있는 것입니다.

추억하옵소서
히스기야는 벽으로 얼굴을 향하고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자기의 지난 날을 추억했습니다. 얼핏보면 이것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것 같습니다."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여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그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진실 곧 신실함과 전심으로 행하였습니다.
위기에 닥쳤을 때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위기 가운데서 담대하게 만들어 줍니까? 평상시에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위기 가운데서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앙망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였다고 말합니다. 히스기야는 오랫동안 기도하며 살았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하들은 언제나 히스기야가 시간이 되면 고요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병상에 몸져 누워있던 히스기야가 어렵게 자리에 일어나서 좌우로 모두 물리고 면벽한 가운데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심히 통곡하는 기도의 모습은 평상시에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특별한 때는 특별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특별한 때에는 특별한 기도가 필요하고, 특별한 때는 특별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결단을 하면 우리의 기도가 달라집니다. 주위에 누가 자기의 부르짖고 울부짖는 이 소리를 들을까 말까 하는 것들이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 한 분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분만이 자기의 인생에 위기 가운데서 건질 수 있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늘 기도 속에서 말하기를 슬피우는 제비와 같이 외롭게 목을 늘어뜨리고 홀로 서있는 학과 같이 지저귀며 슬피우는 비둘기와 같이 오로지 눈이 쇠하도록 하나님만을 앙망 하였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히스기야가 위기를 넘긴 그 위엄에 깃들어 있는 기도의 세계였던 것입니다. 마음을 쏟아놓고 우리의 뼈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한 고백이 되도록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 내가 살 수 없다는 마음을 히스기야가 가졌을 때 그는 영혼 깊은 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통곡을 경험했습니다. 이것은 천박한 정서가 아닙니다. 값싼 눈물이 아닌 것입니다.
그는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큰 손이 다시 한번 자기를 위기 가운데서 건져 주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정화 시켜주시기를 원하는 거룩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구약에서 애통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심히 애통하고 통곡했습니다. 이 눈물과 영적인 변화가 매우 깊은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액체가 사라지고 나면 그 교회가 교회의 모습으로 설 수가 없습니다. 눈물, 피, 땀 여러분, 오늘 우리는 거의 눈물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끼어있는 깊은 죄악의 때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변화를 깊이 받으면 기도에 있어서 정서가 아주 풍부해지게 됩니다. 기도에 있어서 정서가 풍부해지면 우리가 굉장히 예민해지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이런 기도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심히, 깊이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 임한 말씀
그렇게 히스기야가 면벽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을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였습니다.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말하라." 주님이 보실 수 있을 만큼 기도를 해야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보실 수 있을 만큼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놓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에도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며 전심으로 당신을 찾는 사람들을 감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찾아내시면 너무 기뻐하셔서 그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아낌없이 마구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목숨을 위해서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목숨만을 연장 시켜 주신 것이 아니라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손에서 건져내겠고 성을 보호하리라."고까지 하셨습니다. 결국 앗수르가 다시는 너의 나라를 침략해서 괴롭히는 일들을 할 수 없도록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 주리라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영혼 깊은 근원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도는 사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고 수술하는 위대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은총 베푸실 것이라는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표징은 일영표에 그림자 십도를 뒤로 물러가게 하는, 쉽게 이야기해서 태양이 뒤로 물러가는 놀라운 자연의 이적을 보여주심으로 언약을 성취하실 것을 말씀해주셨던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고통 가운데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이 큰 고통을 더 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시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위기 속에서 히스기야는 이 사실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기의 고통 가운데 두신 것은 자기로 하여금 고통을 받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 그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평안을 누리게 하고, 화목한 관계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자신을 이 위기에서 건지셨다고 그는 후일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 위기의 벼랑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이 찬송했습니다. 노래가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이사야는 한 뭉치의 무화과를 취하여 종처에 붙이면 왕이 낫겠다고 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질병이 한 덩어리의 무화과 반죽으로 고침을 받을 수 있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히스기야와 함께 해 주실 때 사태의 해결을 위해서 아무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방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 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맺음말
하나님은 지금도 인생의 벼랑에 선 사람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러내심으로 위기 속에서 자기를 건지신 하나님을 영원히 잊지 않고 구원받은 몸으로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이런 모든 만군의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위기 가운데 건지실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 위기를 통해 여러분 자신이 바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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