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2001-12-24 20:48:17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호12:4하-5)

들어가는 말
하나님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힘 앞에 감동받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지혜의 원천이신고로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감동시키고자 하는 것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회개하는 자를 향해서 마음에 감동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감동하시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의 앞 부분에서 하나님이 벧엘에서 야곱을 만나 주신 것도 바로 그와 같은 회개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을 오늘 본문은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히브리말로 야웨 쯔바오트인데 이 쯔바오트는 천군천사들을 의미하는 말로 전쟁과 관계된 군인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5장에서는 야곱이 엘 샤다이의 하나님을 만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났다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만군의 여호와라고 말하고 창세기 35장의 기사에서는 엘 샤다이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니까 이 두 기록을 하나로 종합하면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만난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그 전능하심은 모든 군대와 모든 사람 위에 뛰어난 실제적인 힘을 가진 여호와 하나님이셨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는 그 이름이 그 하나님의 어떤 외면적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힘에 있어서의 지위를 이야기한다고 할 것 같으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엘 샤다이는 하나님 성품 자체 속에 깃들여져 있는 위대한 능력을 계시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불신앙의 뿌리
이 하나님의 칭호 속에서 야곱이 그 동안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그 약속을 친히 성취해 가실 날들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대신에 인간의 계책과 술수와 계략을 통해서 자신에게 주신 그 약속을 성취해 보려고 몸부림치면서 살았는지를 엿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결국 야곱의 모든 불 신앙과 심지어는 얍복강가에서 천사를 붙들고도 인간적인 열심에서 그를 꺾어보려고 겨루었던 그 모든 인간적인 계책이나 사람의 힘으로 그 모든 것들을 해결해 보려고 했던 옛사람에게 속한 모든 노력들은 바로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형통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그 고통스럽고 뜻대로 되지 않는 환경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당신이 원하시는 일들을 이루어 가고야 마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성품을 바라보기 때문에 오히려 감사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아닙니까?
왜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고 타락한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야곱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벧엘에서 만난 이 사건, 회개를 통해서 그가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난 사건을 오늘 바로 이 시점에서 상기시켜 주시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깊은 불신앙의 뿌리는 바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희들이 만약에 그 죄에서 돌이켜서 회개하면 이스라엘인 야곱에게 베풀었던 그 은혜를 내가 너희들에게도 베풀려니와 만약에 너희들이 회개치 아니하면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히려 대적이 되어서 너희를 치시는 심판을 경험할 것이라고 하는 이중적인 그림을 함께 보여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신앙적 간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광야에서 유목을 하며 지낸 조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풀 포기도 제대로 나지 않는 광야를 지나왔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오게 되었고 거기에서 그들은 농경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아주 발달한 선진 문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 땅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바알신에게 잘못 보이고서는 우리의 농사가 풍년이 될 리가 없겠으며 만약에 우리가 바알에게 밉보인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남지 못하리라고 하는 것이 타락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버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와 함께 또 바알도 섬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중적인 신앙적인 간음 그 뒤편에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여호와시며 그 하나님만이 우리를 지키실 수 있는 위대한 분이시라고 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 깔려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할 때에 이렇게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신앙적으로 간음하는 영적인 타락으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왜 믿음의 자녀들이 신앙의 순결을 잃어버리게 됩니까? 믿음의 지조를 잃어버리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능하심을 하나님께서 당신이 선하게 여기시는 대로 우리에게 보여주실 것이라고 하는 신념이 없기 때문에 우리들은 신앙적으로 양보하고 타협하고 뒤로 물러서서 급기야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신앙적인 간음의 상태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살면 비록 내 가는 길이 불길로 연단하는 것과 같이 고통스러운 길이라 할지라도 내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과 같이 나오리라고 하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수시로 세상과 타협하고, 불변의 믿음을 요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붙들고 살아가기를 요구하는 가시밭길을 걷는 대신에 평탄하고 쉬운 길을 걸어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 이스라엘이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받았던 신앙적인 모든 실패를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 야곱을 깨우치시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야곱에게 계시해 주셨던 것입니다. 모든 죄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붙들고 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난 이후
또 하나 여기서 발견하는 사실은 야곱이 벧엘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그의 인생이 놀랍게 바뀌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벧엘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그는 가정적으로 위기가 올 때나 개인적으로 위기가 올 때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위기가 올 때나 언제나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묵상하며 이제 그 하나님의 손에 자기를 맡기기를 소원했던 것입니다.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세 가지만을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창세기 37장에는 꿈꾸는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든 사람들이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들으면서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하였을 때 야곱은 조용히 혼자서 그 어린아이의 꿈을 마음속에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황당무계해 보이는 일이지만 그러나 만약에 이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꿈이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만약 이전 같았으면 그 아이가 능히 형들의 경배를 받고 부모인 자기의 경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추론이 닿지 아니하면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야곱의 원래 인간적인 성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때로 인간의 추론을 초월해서 역사하실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면서 이 모든 일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46장에서는 이제 더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거기에서는 이미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형들이 거기에 곡식을 구하러 갔다가 요셉의 작전에 의해서 모두 볼모로 잡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베냐민을 형의 손에 딸려서 보내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에 야곱은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너희를 지켜주시려니와 만약에 내가 내 아들을 잃으면 잃으리라" 저는 여기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의 고백과 일맥상통한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를 이 불 속에서 집어 넣어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니와 마지막으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상에 절할 수가 없나이다. 이것이 다니엘의 세 친구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과 신앙의 절개를 지킨 것이 얼마나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는 것인지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것입니다.
48장에는 야곱이 요셉에게 유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나는 여기서 죽어도 하나님이 너희를 주님이 약속하신 그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여러분, 이 족장을 보십시오. 자신의 고백대로 심히 험악한 130년 넘는 세월을 보내면서도 그 족장의 마지막 소망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약속하신 그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비록 돌아갈 땅도 없고 돌아갈 수 있는 여건도 안되었지만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이 약속하신 것을 지금의 눈에 보이는 환경과는 상관없이 이루고야 마실 것이라고 하는 분명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말씀하셨나니
벧엘에서 엘 샤다이의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야곱과 야곱의 집안이 완전한 인생을 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붙들고 살려고 노력을 했고 순간순간 그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지하면서 살기 위해서 자신의 계략과 계책을 버리고 자신을 의지하고 자신을 믿는 대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 속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보여 주심으로써 우리의 믿음이 어디 있냐고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현재형으로 말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느니라" 일어난 일은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이고 역사가 많이 흘러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은 여전히 남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든지 야곱과 같이 혹은 야곱보다 더 교활한 방법으로 인생을 살아오고 그리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보다는 언제나 나의 계획과 나의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을 의지해서 살아왔다고 할지라도 회개는 여전히 하나님을 감동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이 감동하시기만 하면 너희에게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여 주셔서 너희로 그 하나님만을 의뢰하며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절박한 인생의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과 저에게도 하나님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절박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전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하나님에게 믿음의 닻을 던지지 않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의뢰하며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순간순간 우리의 신앙의 절개는 무너지고 우리의 신앙의 지조는 휘어지게 되는 것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흔들리고 갈대와 같이 흐느적거리는 우리의 정함이 없는 마음을 보시면서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눈을 들어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또 친히 우리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뢰하면서 살아가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의 모든 인간적인 성품들과 잘못된 불신앙의 요소들을 철저히 내어버릴 수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힘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능력과 힘을 의지하여 살아있는 백성들이고 그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의지하며 살아있는 백성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깊이 의뢰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곁을 떠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그 마음 속에 불타오르는 그 위대한 긍휼을 멸시하면서 살아갈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눈을 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보다 하나님이 훨씬 위대하시고 전능하셔서 그리고 그 전능하심으로 불붙는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들을 성취해 가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 기념 칭호
그러면서 오늘 성경은 마지막으로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라고 말합니다. 직역을 하면 "여호와 그 이름은 우리가 늘 기억하여야 될 이름이니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아니하고 홀로 계신 분이시며 전능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또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를 불러 내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호세아 선지자는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멜은 한 사람의 남편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호세아 한 사람으로 만족할 수 없었기에 방탕한 길로 가서 간음하여 범죄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더럽히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나를 불러 내셔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이 당신의 힘으로 맡으셔서 이 교회와 함께 그리스도께서 결혼하셨습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그 한 분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된다고 하는 것을 우리 삶의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그게 곧 신앙적인 간음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 칭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늘 기억되어야 할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원래 야웨라고 하는 이름은 너무 거룩해서 사람들이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후에 다시 이제 대속죄일 때는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이름을 명백하게 부릅니다. "야웨, 야웨, 야웨..." 하면서 10번을 부르면 백성들은 모두 엎드려서 "그 나라의 영광스러운 이름이 세세 무궁토록 복이 있을지어다" 그렇게 응답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이 야웨라고 하는 이름이 얼마나 성별되고 거룩하게 불려졌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 야웨라고 하는 이름, 여호와라고 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원히 기념되고 있는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 관계를 붙들며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서 현재적으로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위대하심과 그가 우리와 맺으신 그 놀라운 사랑의 관계를 우리에게 기억하고 되새기고 그것을 붙들고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과 같이 혹은 이스라엘과 같이 이 세상의 유혹에 미끄러지거나 혹은 자신이 처하고 있는 문제가 너무나 다급하고 어려운 나머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 접어들었다고 생각될 그 때에 너희들은 잊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두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너희들이 생각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시고 그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며 또한 너희를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내신 분이 바로 그 하나님 자신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너희를 불러내실 때만 위대한 능력으로 너희를 죄악 가운데서, 어두운 나라 가운데서 불러내셨을 뿐만 아니라 사망과 죄악의 어두움 속에서 너희를 불러내신 그 위대한 능력은 오늘도 당신의 전능하심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들을 향해서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야곱에게 일어났던 이 일이 단지 야곱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야 될 일들이라고 깊이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될 것은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믿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 작은 불신앙이 점점 자라서 결국은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의 불붙는 긍휼을 버리고 돌아올 수 없는 타락의 길을 가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믿음에서 파선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오로지 전능하시고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뢰하면서 살도록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어려울수록 그 전능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면서 야곱이 회개로써 하나님을 감동시켰던 것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회와 회개로 감동시켜 드려서 하나님의 불붙는 사랑과 넘치는 긍휼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나타나서 여러분들이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걸어갈 수 있는 삶 되게 하시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불붙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자 II"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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