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앞에서의 기도
2001-12-24 20:42:33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수 7:6)
들어가는 말
여호수아 7장과 8장,9장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 일어났던 작은 사건을 싣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성의 전투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앞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제일 먼저 점령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여리고 성을 점령하였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일주일동안 성 주위를 돌았을 뿐이고 한 것이라고는 마지막에 소리지른 것밖에는 없었는데 성이 무너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기가 충천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의 점령지가 바로 아이성이었습니다.
정탐을 하고 왔던 정탐꾼들이 와서 하는 얘기는 온 백성이 수고할 가치가 없고 이삼천이면 족히 점령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삼천명의 군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점령을 하기는커녕 거기서 패배해서 도망을 하고 그 뿐만 아니라 아이성 사람들이 추격을 해서 도망가던 사람 36명을 비참하게 죽였습니다.

물같이 녹은 마음
쫓겨 내려오게 되니까 그 다음에는,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요단강을 건널 때에 가나안 사람들의 마음이 물같이 녹은지라" 했는데 가나안 사람들의 마음이 물같이 녹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제는 자기들의 마음이 물같이 녹았습니다. 이 물같이 녹는다는 표현은 깊이 낙담해서 두려움 속에 휩싸인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봐라. 내가 함께 하지 아니하면 너희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때 하나님이 이 자비의 손을 놓으시는가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의 정복 초기에 아예 깊이 가슴속에 각인시켜 놓으시려고 이 사건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으실 때만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잡고 계실 때만 하나님의 자녀다운 향기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렸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이성에 있는 그 조그만 군대들이 쳐들어올까봐 전전긍긍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아이성에 있는 사람들이 공격을 해 오지 않았으니까 그렇지, 만일 이렇게 물같이 녹았을 때에 이 사람들이 공격을 해 왔다면 영락없이 패배했을 것입니다. 심경적으로 벌써 마음이 녹아서 패배한 경우에는 싸울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낙망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 모습 속에서 어떻게 여리고성을 허물어뜨린 위대한 백성들의 역사를 볼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는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석에 삼삼오오 쭈그리고 앉아서 궁시렁대기 시작합니다. 원래 패배할 때는 말이 많은 법입니다. 교회도 은혜가 충만하고 승리할 때는 말이 없습니다. 은혜가 떨어지고 자꾸 영적인 싸움에서 패배하면 삼삼오오 수군거리는 게 많아집니다. 수군수군 대면서 주저앉아서 한 숨을 푹푹 쉬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니까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그러므로 우리 앞에 있는 난관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의 관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함께 해 주시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상황이 되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것은 한 사람이 엎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여호수아였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밖에는 바라볼 분이 없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엎드려서 옷을 찢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이 옷을 찢는다는 의미는 구약성경에서 비통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의 비천함을 말하면서 애통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옷을 찢으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는 것은 여호수아가 이미 아이성에서 받은 충격과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고통이 얼마나 애절한 것이었는가를 하나님 앞에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도의 위대한 능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기도는 고상하고 큰 것만이 기도 제목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아빠, 나 자전거 한 대 사 주세요." 아니면 "성적을 못 받았는데 요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야구르트가 먹고 싶어요" 그런 것을 얘기할 때 부모가 "너는 벌써 다섯 살이나 됐는데 수준이 그것밖에 안되냐?" 그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기도 제목 자체가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을 말해 준다기보다는 그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을 보여 줍니다. 괜히 고상한 기도제목을 본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지금 가장 고통하고 가장 근심이 되는 문제, 그것을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이 필요한 것, 여러분의 마음에 가장 근심이 되는 것, 그리고 고통거리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제목이라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우리가 가장 많이 염려하고 안타까와하는 그 기도제목이 우리의 삶과 마음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을 의뢰하면서 살아야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태도가 문제지요.
여호수아의 앞에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두 개의 그림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버려두셨다'는 것과 '이와 같이 백성들의 마음이 물같이 녹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아니면 문제의 해결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할 때 그 백성의 성질을 여호수아가 인도할 때도 가지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다가 뭔가 안되면 지도자를 향해서 돌을 드는 것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의 땅에서 인도하였느냐?" 잘 될 때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여"라고 말하면서 잘 안될 때는 하나님은 간 곳 없고 모세에게 "네가 애굽에서 잘 살고 있는 우리를 인도해 낸답시고 우리를 데려와서 이 어려움을 당하게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호수아는 모세처럼 카리스마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기적의 놀라운 역사가 현격하게 줄어들어요. 그리고 이 사람은 오히려 자기의 지도력의 대부분을 카리스마보다는 말씀에 의존하려고 했던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도 1장에서 벌써 여호수아에게 그렇게 지도력을 행사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는 모세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맨 처음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그 지도권을 모세로부터 물려받도록 지시받았을 때 이 여호수아의 마음은 틀림없이 선지자로서 부름을 받으면서 심히 두려워 떨던 예레미야나 그런 많은 선지자들과 동일한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백성들의 마음이 자신들이 당한 커다란 환난으로 인하여 물같이 녹아졌을 때는 이 지도자를 향한 마음이 돌같이 굳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 그는 이제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간절히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절대적인 난관에 부딪히게 되면 사면을 둘러봐도 우리에게 도움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그 기도제목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방법입니다. 기도의 위대한 능력은 간절한 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수없이 하나님 앞에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움직이는 위대한 기도는 간절한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시간들을 똑같은 집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기만 한다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걱정과 근심으로 눈물을 흘리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 눈물로 우리의 마음을 녹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괴로워하는 문제들을 놓고 간절히 기도해본 적이 있습니까? 이것이 고상한 문제만이 아니라 무엇이든지간에, 염려하는 만큼 우리의 생활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도록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그러면 여호수아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이런 위기를 통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이십니다. 가난한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부요함을 보입니다. 인간의 한계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를 시작하시고 인간이 포기한 시점에서 하나님이 새롭게 시작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들을 우리는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옷을 찢은 기도
그는 옷을 찢으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자기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이 엄청난 패배 앞에서 자기의 옷을 찢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옷을 찢었을 때 사실은 그가 진정으로 찢고 싶었던 것은 옷이 아니라 자기의 살이요 마음이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찢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러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마음을 찢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정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 앞에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내가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된다'라고 하는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 자기의 옷을 찢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마음대로 살다 보면 마지막에 깨닫는 것은 '우리 뜻대로 안 되는구나'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말로 할 때 알아듣고, 미련한 사람은 10년 20년 30년 계속 살면서 마지막에 그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쫓아다니면서 영적인 훈련을 받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그렇게 광야를 지나는 것과 같은 연단을 받으면서 이미 그 진리를 깨닫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을 굴복시켰던 그런 놀라운 전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도 오늘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철저히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오늘 이 아이성의 전투에서 패배한 것을 보면서 단순히 36명이 죽은 것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닙니다.'우리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작은 일에 불과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났는데 서른 여섯 명쯤 죽는 것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놀러가서 사고를 당해 죽은 것이 아니라 전쟁하러 삼천 명이 올라간 것입니다. 삼천 명이 올라가서 서른 여섯 명이 죽은 것은 전쟁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여호수아는 삼십 육명이 죽은 것 때문에 오늘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이겨야 할 전쟁에서 이렇게 비참하게 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뭔가 우리를 떠나 계시다는 것을 직시한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을 부른 기도
여호수아가 그렇게 기도하니까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거기에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홀로 기도하는 것도 기뻐하시지만, 함께 많은 사람이 한 생각과 한 뜻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한 교회의 기도는 역사를 움직이고 나라의 운명을 바꾸고 교회의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힘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움직이는 한 사람의 기도가 있은 후에는 반드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도는 전염병과 같은 것입니다. 누가 기도하면 그 기도의 역사가 많은 사람에게 번져갑니다. 커다란 어려움이 닥칠 때에도 전혀 기도할 것을 생각지 않던 사람이 누군가 깊이 간절히 기도하고 그 기도 속에서 응답의 역사를 이끌어내는 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서서 간절히 기도하면 여러분 자신들이 기도의 무릎이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기도의 사람으로 일으켜 세웁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그렇게 기도함으로 말미암아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에 있어서 성숙한 사람들로 서도록 만들어주는 하나님의 훌륭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기도의 불씨를 간직하면서 하나님 앞에 살 때 많은 사람들에게 그 기도의 불을 옮겨붙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기도의 불로 가득 찰 때 그 때의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운 표증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교회가 난관을 만나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교회에 모여서 성도들이 기도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회에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집을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간절히 백성들이 기도할 때 우리는 거기에 무언가 기도의 영을 보태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당신의 놀라운 일들을 행하십니다.
오늘 이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그렇게 마음을 찢고 간절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참모들도 그의 안중에 들어오지 않고 죽은 36명의 명단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들을 버리셨다는 이 안타까운 문제,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이 이 여호수아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는 당장 군인들을 모으고 장교들을 모아서 "우리가 왜 아이성에서 패배했는가"에 대한 작전회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패배의 소식이 전해 내려오고 백성들의 마음이 녹자마자 그는 즉시 기도를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마음을 찢고 비천한 자가 되어서 마음을 통회하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할 때에 소리없이 한 사람, 두 사람, 이스라엘의 참모들은 다가와서 여호수아의 기도의 불길에 자기의 불길을 보탰습니다. 그들은 함께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한 자리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참모들과 여호수아 사이에 오고가는 말은 없었지만,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은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여호수아에게 전해졌고 여호수아의 비참한 마음이 이 백성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간절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의 궤 앞에서
오늘 성경은 그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여호와의 궤는 하나님이 현존해 계시는 상징이었습니다. 여호와의 궤 앞에서 기도했다는 이야기는 곧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그리워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이 여호와의 궤는 전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여호와의 궤를 통해서 당신의 살아계심을 드러내 보여주시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려서 기도했다는 것은 그들의 깨달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여리고성도 전쟁이었고 이 아이성도 전쟁이었는데 여리고 성의 전쟁에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전쟁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영적인 전쟁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함께 하시기만 하면 여러분의 승리는 보장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고 우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좋아하시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가 부르는 찬송, 우리가 부르는 승리의 노래, 우리가 말하는 "믿습니다"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여호와의 궤 앞에 그들은 나왔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이 아이성의 작은 전투에서 비참하게 패배한 자기들의 상태를 보면서 비통하게 하나님 앞에 괴로워하면서 이 전쟁이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전쟁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제 비로소 본질적인 것이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운 임재, 그리고 하나님의 현존하심 속에서 전쟁을 치루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땅에 엎드렸습니다. 이제는 체면이고 뭐고 다 소용없었습니다. 땅에 엎드려서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엎드려 기도한다는 것은 간절함의 상징인 동시에, 땅에 엎드린다는 것은 자신이 땅의 티끌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정말 그들이 티끌과 같은 존재들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존귀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떠나가시자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물도록
그래서 하나님 앞에 땅에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 걸린 시간은 '저물도록 있다가'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시간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들리지 않고 왜 전쟁에 졌는지도 모르고, 여호수아는 비참하게 울면서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장로들이 나가서 흐느끼면서 여호수아를 부여잡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했지만 그러나 아무런 응답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물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결국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그 아이성의 패배에 관한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기도하는 사람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해결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에는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간절히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합니다. "하나님! 응답을 해 주시옵소서. 응답을 해 주시기 싫으시면 '나는 네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안 좋아한다'라는 말씀이라도 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떼를 쓰면서라도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긴 시간동안을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기도하는 교회, 이렇게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보다깊은 기도생활" 시리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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