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위로와 축원
2001-12-18 16:18:15



(엡 6:21-24)
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2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2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오늘 말씀은 에베소서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저는 금년 2월 말부터 이 에베소서 강해를 하고 지난 10개월 동안 29번에 걸쳐 에베소서 강해를 해 왔습니다. 6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편지지만 그 내용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에 이렇게 부분 부분을 나눠서 말씀을 들어왔습니다. 그 동안 이 말씀을 계속 강해 하도록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이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하면서 경청하고 함께 은혜를 받아 온 여러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오늘 에베소서 마지막 말씀에는 편지를 전하는 두기고에 대한 소개와 바울의 마지막 축원이 담겨 있습니다.
이 두 말씀은 바울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두기고에 대한 그의 마음과 또 에베소 성도들과 우리 모두를 향한 마음을 잘 나타내 줍니다.


먼저, 두기고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기고는 그 이름이 사도행전 20:4에 처음 나오는데, 바울이 3년 동안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다가 소요를 겪고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게 됩니다. 그 때 바울과 함께 떠났던 사람의 이름 중에 '아시아 사람 두기고'가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두기고는 아시아 사람인데, 에베소는 아시아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을 통해 복음을 받았고, 바울을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가 바울을 따라 에베소에서 예루살렘까지 같이 가게 되었고 로마로 호송될 때도 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로마 옥중에서 바울이 쓴 편지를 에베소 성도들에게 전해준 사람이 두기고입니다. 골로새서 4:7에 보면 바울이 그 때 에베소서 뿐만 아니라 골로새서도 써서 같은 사람 두기고를 통해 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두기고를 가리켜 바울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바울은 그를 가리켜 '사랑을 받은 형제요 진실한 일꾼'이라고 했습니다.

형제란 매우 친근한 말입니다.
이 세상에 형제라는 말만큼 가까운 말이 있습니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형제는 피를 나눈 사람입니다. 바울은 두기고와 혈육적인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한 피받아 한 몸 이룬 형제, 자매이기 때문에 두기고를 가리켜 사랑받은 형제라고 합니다.
두기고는 에베소 성도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형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를 대표해서 바울을 따라갔고 바울과 함께 바울 일행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가 다 두기고와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형제 자매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을 나누는 관계입니다. 저는 사도 바울이 두기고를 부르는 말을 통해서 제가 여러분들을 그렇게 생각하고, 여러분들이 저를 그렇게 생각해주고, 우리 모두가 다 사랑받은 형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기 원합니다. 그만큼 우리들의 관계는 깊다는 것입니다.
요즘 청년들이 잘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사도 바울이 두기고를 가리켜 사랑받은 형제라고 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 사랑을 받는 형제와 자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와 자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은 두기고를 가리켜 '진실한 일꾼'이라 했습니다.

사랑 받은 형제일 뿐 아니라 진실한 일꾼이라 했습니다.
이 말도 얼마나 귀한 말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다 사랑 받은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을 받았다고 해서 다 신실한 일꾼이 되지는 못합니다. 가정에서도 보면 한 부모 밑에서 같은 사랑을 받은 형제 자매인데, 어떤 사람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심지어는 일만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형제 자매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사랑합니다.
두기고는 에베소 성도와 바울에게 사랑 받은 형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실한 일꾼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일하는 사람입니다. 에베소에 있을 때에도 성도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바울이 있는 곳에 와서도 진실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그냥 사랑만 받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맞습니다. 그러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일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와 가정과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 일을 하는데 인정을 받아서 두기고처럼 진실한 일꾼이라는 말을 듣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일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일할 것은 많고 사랑받은 형제 자매들은 많은데,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제가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가 다 사랑받은 형제와 자매일 뿐 아니라 두기고와 같은 진실한 일꾼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골로새서에서도 두기고에 대한 소개가 하나 더 나옵니다.

(골 4: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두기고를 가리켜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고 했습니다.
종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대우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겸손히 섬기는 사람입니다.
교회나 가정을 보면 사랑만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사랑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되 소리내면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하면서 말 많이 하고 공치사 받기를 좋아하고 일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높이는 사람을 보면 저사람은 일 안하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기고는 사랑을 받은 형제요, 진실한 일꾼이었으며 또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히 섬기는 종으로서 늘 인정을 받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이런 두기고를 에베소에 보내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22)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바울이 두기고를 에베소에 보낸 목적은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에베소 성도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보낸 것입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것이 매우 귀한 일이고 그러기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위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위로하기 위해 우리의 시간을 내고, 물질을 쓰고, 노력하고 힘을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3년 동안 눈물로 목회하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소요가 일어나고 바울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에베소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붙잡습니다. 그곳에 가면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성령께서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을 위해 환난과 결박 뿐 아니라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고 하면서 "주 예수께 받은 바 나의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려 함에는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러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이 걱정한 대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붙잡혀 결박을 당했습니다. 죄수의 몸이 되어 로마로 배를 타고 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배가 지중해에서 유라굴로 태풍을 만났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간신히 로마에 도착해서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니 바울을 사랑했던 에베소 성도들이 얼마나 걱정을 하겠습니까? 과연 바울이 잘 있는가? 바울과 함께 간 두기고는 잘 있는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바울 일행의 사정에 대해 아주 궁금해 하고 또 많이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사정을 다 얘기하고 비록 감옥에 갇혀 있기는 하지만 주의 은혜로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위로하기 위해 에베소에서 온 두기고를 그들에게 보내 준 것입니다. 보내주면서 두기고 편에 편지를 보낸 것이 에베소서입니다. 에베소서 맨 마지막에 두기고를 칭찬하면서 그를 통해 바울의 사정을 다 듣고 위로를 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바울의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인가, 이것이 교회와 사역자의 관계요, 우리 성도들과의 관계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바울을 걱정하고,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로해 줍니다.

빌립보서를 통해서도 이런 아름다운 성도의 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빌 2:25-30)
(25)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26)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 (29)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에서 감옥에 갇힌 바울을 섬기라고 파송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을 도우러 왔다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빌립보 성도들이 걱정을 합니다. 우리 대신 바울을 도와주라고 보냈는데 병이 들었으니 걱정이 되고, 바울에게 폐가 될까 걱정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나름대로 걱정을 합니다. 자신을 보낸 교회가 사명을 주었는데 병이 들었으니 교회에 미안하고, 또 바울에게 짐이 되니 미안해 합니다.
또 바울은 바울대로 걱정을 합니다. 자기 때문에 에바브로디도가 거기까지 와서 병들었으니 미안해서 걱정하고, 그 일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걱정을 끼치니 미안해 합니다.
우리가 우리 일 때문에, 세상 일 때문에 걱정하는 것은 유익하지 못하나 이렇게 남을 위해서, 성도들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걱정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저는 우리들 가운데에도 이런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두기고를 에베소에 보내는 목적이 이것입니다. 두기고를 통해 성도를 위로해주려는 아름다운 마음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이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함께 만날 때, 서로를 통해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주일날 일주일날 하루 교회에 나와서 위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저 자신도 여러분을 통해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쉬운 세상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사는 우리들이 성도와 교회를 통해 위로를 받으면 넉넉히 이겨갈 수 있습니다.
지금 에베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는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얼마나 춥고 배고프고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에베소 성도들을 위로해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 성도들도 얼마나 환난과 핍박을 견디며 힘듭니까? 그러나 바울을 걱정해주는 마음이 있어서 어려운 때에도 믿음을 유지하고 사막과 광야같은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마지막으로 아주 중요한 축복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23절과 24절을 읽으면서 나를 향한 바울의 축원의 말로, 또 우리 가정을 향한 축복과 성도들 간의 축복을 비는 말로 받기를 바랍니다.
(23)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2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바울은 그가 지금까지 에베소서에서 했던 모든 말을 총괄할 수 있는 중요한 단어 네 가지를 들면서, 자신의 마음을 에베소 성도들에게 전합니다.

그 중에 첫째는, 평안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평안은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우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고하면서 얻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벌기를 원하고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구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좋은 환경을 이뤄주고 부족함없이 채워주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이 다 평안을 위한 일입니다.
그러나 평안은 이런 외부적인 환경이나 이 세상의 물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평안과…"
그렇습니다. 진정한 평안은 귀한 보배인데,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는 것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니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사도 바울도 말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이렇듯 귀한 평안은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자가 누릴 수 있습니다.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줄 때, 로마 감옥 속에 있는 바울의 마음 속에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진정한 평안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제일 먼저 평강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저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평안이 심령 속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사랑이 그들에게 있기를 위해 기원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이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이 사랑은 물론 하나님의 사랑도 말하지만 성도들간에 누리는 사랑을 말합니다.
우리는 평안만 가지고 살 수는 없습니다. 평안이 소중하지만 이와 아울러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때로 사랑 때문에 우리의 평안을 양보하더라도 사랑받기 위해 이 땅에 살고, 사랑하기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삶이 얼마나 밋밋하겠습니까? 우리가 가진 평안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평안이 있을 뿐 아니라 사랑이 있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 있다는 것, 사랑할 수 있는 형제 자매와 아내, 남편, 친구, 성도가 있다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사랑도 그냥 사랑이 아닙니다. 믿음을 겸한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는 맹목적인 사랑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얼마 가지 못해 시들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겸한 사랑, 믿음이 바탕이 되어 믿을 수 있는 관계에서 나온 사랑은 귀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그런 사랑을 축원하고 있습니다.
저도 우리 교회 성도들을 볼 때, 이 세상을 살면서 나 혼자 이 세상의 평강을 누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끼리 서로 믿음이 바탕이 되어 사랑하는 관계를 이루며 살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그들에게 은혜가 있기를 축원했습니다.

이 은혜는 바울이 이 에베소서를 쓰면서 계속적으로 강조했던 단어입니다. 짧은 편지에 12번이나 이 단어가 나옵니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거저 주어지는 혜택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에베소서 2:5과 8절에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런데 은혜는 구원의 은혜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삶을 살아가도록 모든 것을 다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의 건강도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유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재산도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얻을 수 없고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 생활, 부부 관계의 행복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지켜지지 않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만, 우리 인간의 최선이 아이들을 올바로 지켜주고 키워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일하는 직장의 모든 일도 주님의 은혜가 없이 잘될 수 없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는 모든 생활도 주님의 은혜 없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에베소 성도들에게 있기 원하는 사도 바울의 마음이 바로 저의 마음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믿음을 겸한 사랑이 있어서 여러분의 가족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고 이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구원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맨 마지막에 아주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를 합니다.
마지막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은혜와 평강과 믿음을 겸한 사랑은 모두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굉장히 큰 부자가 있었는데, 그에게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 아내가 외아들을 하나 낳고 얼마 안 있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이들고 경험많은 유모를 한 사람 구해서 아들을 돌보도록 했는데, 그 아들마저 십대가 되어 갑자기 시름시름 앓더니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아들까지 잃은 충격을 못 이겨 그 부자도 얼마 있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재산을 처리해야 하는데 가족도 없고 유언장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시에서 그 재산을 매각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 집과 소유품들이 경매에 넘겨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집에 와서 그 집에 있는 것들을 경매로 사 가는데, 그곳에서 부자의 아들을 길렀던 유모 할머니가 와서 그 집을 돌아보며 자기가 그 아들을 기르면서 가졌던 추억들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벽에 걸린 아들 그림이 담긴 액자를 보고 자기가 갖고 싶다고 했는데 아무 경쟁자가 없어서 동전 몇 푼을 주고 샀습니다.
그리고 그 액자를 집에 가져 와서 아들의 사진을 닦으려고 걸fp질을 하는데 그 액자에서 무슨 종이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보았더니 그 아버지의 유언장이었습니다.
유언장에는 그런 글이 남겨 있었습니다. "내 모든 재산은 내 아들을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남기고 싶어 이 액자를 가지고 가는 사람에게 내 모든 재산을 넘깁니다."
늙은 유모는 부자의 아들을 사랑하여 돌봐주다가 결국은 주인집의 모든 재산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에게는 매우 큰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참된 평강을 주십니다. 믿음이 겸한 사랑이 선물로 기다리고 있고,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면에 넘치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축복을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기 원합니다. 사랑하되 거짓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든 남서울교회 성도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 안에서 주시는 모든 신령한 복을 다 받아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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