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4:18-20 / 결실을 방해하는 것들2
2001-12-14 10:06:38




"또 어떤 이는 가시 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막 4:18-20)


존경받을만한 부(富)

꼭 되어져야 할 일인데 내가 할 수 없을 때에 남이 하면 사람들은 감동하게 됩니다. 우리 젊은이가 한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지하철에서 그 생애가 끝난 일은 일본열도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 사람에게도 큰 감동이었습니다. 요 근래에 이 감동 못지 않은 감동이 뜻하지 않은 방향과 엉뚱한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에게 안겨진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시 대통령이 당선 선물로 약속한 상속세 폐지에 관련한 일입니다. 부시 대통령이 상속세 폐지를 약속하고 그것을 추진하자 미국의 억만 장자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상속세를 없애면 억만 장자들의 자녀들은 더욱 부자가 될 것이고, 미국 내 수많은 가정들의 고통이 더욱 가중될 것이다. 해마다 상속세로 납부된 수십 억 달러는 사회복지, 의료혜택, 환경 보호 등 뜻 있는 예산의 사업들에 쓰였는데 이 사업의 규모가 축소될 것은 분명해진다. 미국의 지속적인 복지를 위해서 상속세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또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상속 증여세 감면 안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면 2020년 올림픽 선수는 2000년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의 자녀들로 뽑아야 한단 말인가? 상속세가 없어진다면 사람들은 재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산에 의지해 국가의 부를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다.' 이 기사를 보면서 깊은 감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신은 돈

특히 한국의 재벌은 그만두고라도 물질과 상관없어야 할 목사들마저도 큰 교회를 이룩하면 자식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현 세태에서 이 사건은 마음속에 얼마나 큰 감동을 일으켰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부는 존경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는 성경의 진리와 부합되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마음으로부터 박수갈채를 아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것이 그처럼 큰 감동이 됩니까? 그것은 이 세상의 많은 사람에게 신은 곧 돈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분의 말대로 'GOLD'와 'GOD'은 'L'자가 하나 들어가고 빠진 차이이기 때문에 쉽게 사람들이 헷갈리는 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어쩌다 천에 하나 돈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사람을 볼 때에는 희한하기까지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돈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이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재물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확립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나타난 부(富)

성경은 돈이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잠언은 돈을 버는 것과 큰 부를 갖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잠 3:9-10)
또한 신명기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물질의 축복을 많이 주신다고 약속했는지 나타나 있습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신 28:3-6) 수고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복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시편 128편입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시 128:2) 애쓰고 노력한대로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의 사람들 중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였습니다. 그의 아들 이삭은 이리저리 밀려다녔어도 부자였습니다. 그의 손자인 야곱은 남의 집 머슴살이를 했는데 그 머슴살이를 통해서 엄청난 부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의 증손자인 요셉은 애굽의 왕 버금가는 부유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은 중국 황실의 사람도 로마의 황제들도 아닌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이 보유했던 금이 역사상 한 사람이 가진 가장 많은 금이었다고 기네스북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 솔로몬은 그 부유함이 얼마나 영광스러웠던지 주변의 왕도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부유했다고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곁에서 섬겼던 아리마대 요셉도 부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

부유한 것이 죄는 아닙니다. 돈이 그 사람의 생애에서 주인 노릇 하려 드는 것, 그것이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문제는 어느 것을 더 중히 여기는가, 어느 것을 더 사랑하는가, 누가 주인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정되지 않으면 그 돈은 재리의 유혹으로 믿음의 사람들을 쓰러뜨린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씨가 마음 밭에 떨어졌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그것이 잘 자랐습니다. 줄기도 건강하게 자랐고, 꽃을 피웠습니다. 이제 열매를 기대하는데 갑자기 가시가 그 위를 덮어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합니다. 한 사람의 신앙이 잘 자랐습니다. 구속함에 기뻐하고 봉사와 헌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정적으로 하나님이냐 돈이냐가 그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될 때, 재물이 그의 영혼을 덮어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단절시키고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일이 생겨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지적하고 있는 재리의 유혹의 문제는 채울 수 없는 만족을 약속하고,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게든지 그것을 동경하는 사람에게 이것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속이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이 문제일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덫이 된 재리의 유혹

디모데전서 6장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9-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합니다. 한 사람이 주님을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공한 젊은 관원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 앞에 가서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이여,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너무나 귀한 질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묻습니다. '네가 계명을 다 지켰느냐?' '네, 제가 다 지켰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기쁘게 보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영혼을 향해서 한번 더 질문을 하십니다. '네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나를 좇으라.' 예수께서는 마음속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물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영혼을 향해서 질문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이 젊은 청년이 근심하며 예수를 떠나갔다고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좋은 것을 사모했고 갖길 원했습니다. 그렇지만 재리의 유혹이 마지막 덫이 되어 주께서 진정으로 주시고자 하는 것을 누리지 못한 채 슬퍼하며 떠났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진정한 만족이 될 수 없는 돈

돈이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하는 사례는 너무 많습니다. 한 15년 전 뉴욕의 허름한 모텔에서 한 사람이 자살했습니다. 소지품 중에 3만 불 정도의 현금과 유서가 겹쳐져 있었습니다. 그 유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는 돈더미가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더 이상 고독과 권태를 이겨낼 수 없어서 죽는다. 내가 뉴욕의 평범한 회사의 회사원이었을 때는 행복했다. 그러나 백만장자가 되고 보니 한없이 슬프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선택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세기 미국의 대부호 둘을 꼽으라고 하면 락펠러(Rockefeller, John Davison)와 게티(Getty, Jean Paul)를 들 수 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근교 산타모니카 프리웨이로 가다보면 게티 미술관(J. Paul Getty Museum)이 나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미술관이 있다고 해서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갔더니 그 문 앞을 지키시는 분이 절더러 예약하고 왔냐고 물어서 미술관에 오는데 무슨 예약이 필요하냐고 하니까 거기는 하루에 600명 정도 밖에 못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예약한 사람에 한해서만 관람할 수 있다고 해서 제가 내일 한국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좀 볼 수 있게 해달라 하니까 규정상 안 되고 차를 몰고 들어가 밖에서만 보고 나온다면 허락해 주겠다고 하길래 화가나서, '폴 게티가 한국에 오면 우리 집 안 보여준다고 해라.' 그랬더니 무슨 소리냐고 의아해 했습니다. 하여튼 당신은 그렇게만 말하라고 하고 저는 왔습니다. 그 후에 게티 미술관이 세계에서 가장 잘 지은 건물이라고 들었는데 저는 아직 화가 나서 안 가고있습니다. 그 게티의 자서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누가 내게 단 두 달의 기쁨만 준다면 내 모든 재산을 다 주겠다.' 그리스의 선박왕이며 미국의 대통령 부인을 아내로 맞았던 오나시스는, 그의 자서전에서 '돈으로는 결코 행복을 살 수 없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재물로부터 자유로웠던 모세와 사무엘

돈은 행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재물에 대해서 확고한 자기 결의를 가져야 합니다. 이 돈에 관한 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유로웠습니다. 모세는 '나는 지팡이 하나도 내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내가 이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에 단 한차례라도 뇌물을 준 사람이 있으면 이 만좌 앞에서 공개하라.'고 하며 자신이 얼마나 청렴결백했으며 돈에 대해서 자유로웠는가를 선언했습니다.


돈이 주인이 되었을 때

거룩한 공동체에서의 첫 번째 시험은 재물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여리고성에서 큰 승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의 승리를 주시면서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땅의 어떤 것도 소유하지 말고 다 불태워라.' 그러나 그 중 아간이라는 사람은 멋진 모피 외투가 탐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 외투와 더불어 거기 있던 은을 자기 장막에 숨겨 놓았다가 자신뿐만이 아니라 전 이스라엘에게 패배를 주는 아이성의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성령께서 오순절 다락방에 임하셔서 교회를 시작했고 사도들이 가르쳤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저희들은 서로 떡을 떼면서 형제애를 나누었습니다. 모일 때마다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 아름다운 교회의 첫 번째 유혹은 아나니와 삽비라에게 닥친 돈의 유혹이었습니다.
남서울 교회를 처음 개척할 때에도 돈과 관련된 문제로 어려웠었습니다. 목사가 서로 돈 거래는 하지 말라고까지 설명했는데 막상 문제가 생기니 저보고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이 돈 문제, 어디서나 참 쉬울 것 같지만, 아닌 것 같지만, 그리스도 인에게 주인처럼 군림하려고 들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재리의 유혹을 이겨내려면
-1. 영광의 천국만을 바라보며

그러면 이 재리의 유혹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우리가 영광의 천국만을 바라본다면 돈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6장 20절입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 6:20) 땅의 보물창고는 반드시 도적이 뚫습니다. 이삼일 전 신문에 어떤 골동품상이 골동품 100억 원 어치를 잃어버렸다고 하는 기사가 났습니다. 제가 남서울 교회에 있을 때에 한 여집사님이 숨겨놓은 모든 폐물을 도둑이 들어와서 정확하게 찾아갔다는 보고를 해왔습니다. 제가 '성경대로 되었네요.' 그러니까 '무슨 말씀이에요?' 그래서 '성경에 집에 보물이 있으면 뚫는다고 했는데 정말 뚫었는데요!' 그러니까 '에이, 목사님 안됐다고도 좀 말씀해주세요.' '안 된 것은 안 된 것이고 성경대로 된 건 성경대로 된 것이 아닌가요! '하며 서로 웃었습니다.
그러나 도적만이 보물 창고를 뚫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도 우리의 모든 부를 한순간에 다 앗아갑니다. 저는 한 동네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인민군들이 들어왔고, 제 아버지께서 베푸신 덕으로 사람들의 동냥을 받으며 6.25를 지냈습니다. 재산이라는 것, 전쟁 일어나니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혹 북한에서 내려오신 분들 중 옛날 토지문서 가지고 계신 분 계십니까? 모두 헛된것입니다. 그것뿐입니까? 이번에 신문을 보니 국회의원 가운데 돈을 제일 많이 잃은 분이 정몽준 의원이라고 했습니다. 1600억인가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 돈 있으면 학교를 몇 개 지을 수 있는데, 장애인 학교를...' 하며 참 아까워했습니다. 어떻게 없어졌는지 알아보니 주식이 떨어져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부는 늘 도적이 뚫고, 나와 상관없이 떠날 때가 참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동록이 나서 썩어버립니다. 우리의 보배라고, 귀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점점 엷어지고 닳아지고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보배인 청춘이 사라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건강도 희미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귀한 재능도 점점 사라지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의 것들은 사라집니다. 나 자신과 상관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주신 재능, 재물, 기회 모든 여건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삶을 살 것인가를 결심하십시오. 그것만이 내가 돈의 유혹, 재리의 유혹에서 승리할 수 있는 첫 번째 발판입니다. 이 땅을 바라보면 돈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영광의 천국을 바라보면 돈은 내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2. 어떠한 형편에든지 지족할 줄 아는 마음

두 번째로는 지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입니다.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6-8)
지족하는 마음은 어떤 경우에도 만족하는 마음입니다. 소유나 환경, 여건에 의해서 마음이 지배받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바울입니다. 그는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0-13) 예수 믿는 사람에게 지족의 마음은 환경이나 소유에 아무 관심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이 내 마음의 중심부에 자리잡지 못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풍부에 처할 수도 있지만 풍부함은 이기기 힘듭니다. 돈을 가지면 타락하기 쉽습니다. 사회적으로 신분이 높아지면 방자해지기가 쉽습니다. 정말 풍부와 높은 지위를 갖는 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가 하면 가난하거나 비천에 처하는 것도 힘듭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살아야 하는데 가난하면 표현의 수많은 방향들이 차단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난과 비천은 몹시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둘을 다 견뎌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주시는 만족, 그것을 누리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말합니다. 내 능력과 지혜에 의해서 그것이 되어진 것이 아니라 능력 주시는 그 분 안에서 풍부와 비천과, 높음과 낮음과, 영광스러움과 비천함, 이 모든 것에 무너지지 않는 행복과 만족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애에서 그것을 드러낸 기회가 수 차례 있었습니다.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과 유대의 모든 승복한 사람들 앞에서 그는 죄수로서 자신의 삶을 진술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생애에 찾아오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주인 되셨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복받치는 감격을 어찌할 수 없어서 일어서고, 일어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기를 묶고 있는 쇠사슬까지 높이 치켜든 채 말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쇠사슬에 매인 것 외에는 나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느 때나 무너지지 않는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선한 사업에 부하고

우리는 이 땅에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늘의 백성이고 하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선은 높은 데 있어야 합니다. 재리의 유혹이 우리를 붙잡으려고 할 때에 외치십시오. 그리고 주께서 우리에게 여건과 형편, 처지를 주실 때에 그것을 선한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을 보겠습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딤전 6:17-19) 우리가 신뢰할 것은 가진 물질이 아니라 그것을 주신 분이며, 그분께 소망을 두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주신 그것을 좋아하지 주신 그 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분께 소망을 둘 뿐 아니라 선한 사업에 부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부자입니다. 돈은 쓴 것만이 자신의 돈이 됩니다. 제가 확실하게 가르쳐드릴 수 있습니다. 안 쓴 것은 자신과 전혀 상관없을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돈의 액수와 상관없이 그것을 어떻게 선한 사업에 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재리의 유혹 앞에서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두고, 어떤 경우에도 주께서 주시는 풍요를 누리며 지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선한 일에 부해야합니다.


진정한 만족과 기쁨

우리에게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또 다른 부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이 가지기 위해 평생 노력합니다. 우리는 높이 올라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주지는 못합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애벌레 한 마리가 땅을 기어다니면서 자신의 인생이 먼지구덩이 처박혀 있는 것을 늘 한탄했습니다. 이 애벌레는 이 먼지구덩이 속의 삶에 어떻게 변화를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높은 데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곳을 향해서 다른 애벌레들이 계속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애벌레들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왜 가느냐고 묻자 다른 애벌레들이 가니까 그냥 가는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가서 보니까 높고 큰 나무로 올라가고 있길래 그럼 저 나무 위에 뭐가 있냐고 물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애벌레들은 '하여튼 다른 애벌레들이 다 오르고 있잖아?'라고만 합니다. 그래서 그 애벌레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올라가는데 다른 쪽에서 내려오는 애벌레들이 있었습니다. '그 위에 뭐가 있었어?' '아무것도 없었어...' 옆에 있던 애벌레가 '에이 아무것도 없는데 이렇게 많이 올라갈까? 저것들이 뭔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 거야.'하며 뒤쫓아 올라갔습니다. 마지막까지 올라가 보니까 빈 하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구나.' 애벌레는 내려갔습니다. 이 애벌레는 높은 곳에 다다르려고 그렇게 애를 썼지만 결국 빈 하늘만 보고 허망하게 내려왔습니다. 이 애벌레는 조용히 한쪽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애벌레의 몸에서 고치가 나오고 그 고치에서 예쁜 호랑나비 한 마리가 나오더니 하늘 위를 마음대로 날아다녔습니다. 이 애벌레에게 돈이라는 날개를 붙였다면 날지 못했을 것입니다.

진정한 만족과 기쁨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내 속에 주신 하나님의 자녀 된 영광입니다. 그의 형상입니다. 그 분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이 주님이 주인 되심이, 주님이 생명 속에 역사 하심이 재리의 유혹에 의해서 차단되는 일이 없도록 그분을 향해 우리의 시선을 두고 아버지의 거룩한 권세가 날마다 임하는 삶, 이런 삶으로 우리가 살아나갈 때에 그 어느 날 우리들은 영광의 아버지 앞에서 찬송을 부르며 설 것입니다.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은혜로 주 낯을 대하는 날 참 아름다운 영광 아닐까.'
우리는 황금 길을 걸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황금 길을 깔아 주셨습니까? 세상에서는 황금이 곧 하나님이고 가장 높은 개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를 사준 대가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입니다. 주님의 피의 구속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황금은 아스팔트일 뿐입니다. 황금 숭배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황금은 우리의 주인 노릇을 하고,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하며, 우리로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가장 무서운 악 중의 하나입니다. 가시떨기입니다. 황금길 걸을 여러분,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 속에 풍성히 임하는 은총의 생애로, 그래서 주 앞에 많은 열매를 맺어 우리 아버지께 영광돌리는 삶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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