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을 사는 사람들
2001-12-13 21:09:28

2001년 11월 11일

롬 10:8-15




우리교회는 아름다운 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한두 번 정도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보면 볼수록 더욱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외모를 볼 때에도 그렇고, 항상 미소짓는 평화로운 모습, 겸손과 온유한 모습,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평화스러운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는 그 모습이 아름다운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또한 살아가는 삶의 내용이나 믿음의 내용으로 볼 때 아름다운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름다운 교회는 외모보다 믿음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겉모양의 아름다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솟아 나오는 참된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나무에 감을 꼽고 꽃을 붙여 잠깐 낸 모양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리고 영원히 넘쳐나는 아름다움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했습니다. "영국 사람이나 독일 사람이 없더라도 인류는 계속 생존한다. 러시아 사람이 없어도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는다. 과학이 없어도 문제가 없고 먹을 것이 없어도 괜찮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없다면 인간은 살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서 아무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비밀이 여기 있다. 모든 역사가 여기 있다. 아름다움이 없으면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




그처럼 우리도 일생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참된 아름다움, 그 뿌리는 영원하고 그 힘은 참으로 진실 된 것, 그 아름다움은 사실상 인간에게 없습니다. 그러한 아름다움은 오로지 아름다움을 만드신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고 아름다움을 말한다는 것은 정말로 그림자 놀이요 허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도스토예프스키가 추구한 아름다움은 하나님에게서만 발견됩니다.




이 아름다움 속에는 천지의 오묘한 질서가 있습니다. 그 속에는 하늘의 수수께끼가 있고 땅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백합과 장미의 아름다움이 나오고 그로부터 석양에 빛나는 붉은 파도가 나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 자체에 비하면 이 아름다움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차라리 설명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택한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처럼 숭엄하게 표현됩니다.




아름다움에는 반드시 생명이 있고 힘이 있어야 한다




복음에는 좋은 소식, 복된 소식, 구원의 소식, 승리의 소식이라는 의미가 들어있지만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또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예쁜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에는 반드시 생명이 있고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과 지혜가 물론 포함되어야 합니다. 병든 것이 아름다운가요? 무지하고 악한 것이 아름다운가요? 진리와 함께 표현되어야 참된 아름다움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아름다움은 모든 인류가 추구하는 참되고 영원한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운 교회란 교회다운 교회




그렇다면 아름다운 교회는 무엇일까요? 왜 아름다운 교회인가요? 하나님으로부터 수여되는 아름다움에 교회의 의미가 더해진 것입니다. 물론 교회 자체도 아름다워야만 합니다. 외형도 내면도 교회는 아름다워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다울 때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아름다운 교회란 교회다운 교회를 말합니다. 이 세대에 정말로 교회다운 교회는 어떤 것인가요? 과연 우리가 그러한 교회가 되었는가요?




교회가 있는 목적은 단 하나, 모든 사람들을 예수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즉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처럼 죄에 대해 순진하고 예수처럼 의롭습니다. 너무도 온유하고 겸손하지만 또한 너무도 지혜롭고 강합니다. 폭풍우가 멈추고 귀신이 떨고 죽은 이가 일어납니다. 그의 권능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는 아름답게 사랑하였습니다. 이 사랑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아름다움도 영원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그처럼 아름답게 살았습니다. 본래 세상은 아름다웠습니다. 거기에 그의 탄생은 더욱 아름다워 천사도 노래했습니다. 그가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병을 고쳐줄 때 아름다웠습니다. 그의 고통 속에 죽는 것까지도 아름다웠습니다. 그의 부활과 승천은 눈이 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가 바로 아름다움의 근원이요 그의 삶이 바로 아름다운 삶 그 자체였습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그러려면 교인 각자가 예수처럼 되어야 합니다. 먼저 아름다움 자체이신 예수를 받아들입니다. 그럼으로 자신이 아름다움을 소유했음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그의 눈은 빛나기 시작합니다. 그럴수록 그는 예수처럼 변해가며 예수의 모든 복을 자기 것으로 누리기 시작합니다. 예수의 힘으로 살기 때문에 삶의 모든 순간이 아름답게 변해갑니다. 자신도 삶이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며 이 아름다움을 감격 속에 감상합니다.




많은 신자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과거의 기억에 집착합니다. 그리고 감각만을 믿습니다. 과거에 경험했고 지금 보는 내가 참된 나라고 생각합니다. 실패가 많은 나, 억울함 많고 우울한 나를 믿습니다. 과거에는 기뻤지만 지금은 별 볼 일없는 나, 그것이 나라고 그래서 습관 속에서 나를 보고 쉽게 말해 버립니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약하다. 나는 우울하다. 나는 별 의욕이 없다. 나는 자신이 없다."




그리고 같은 눈으로 이웃을 봅니다. 어제부터 늘 보아와서 지금도 동일하게 보는 당신이 참된 당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변화가 왔어도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경험의 눈은 비판적입니다. 경험의 눈은 비관하기도 잘하고 낙담하기도 잘합니다. 경험의 눈으로 이웃을 보시고 교인들을 보시고 그리고 비판해 보십시오. 비판의 말을 나누십시오. 그리고 서로 실망해 보세요.




믿음의 눈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창조의 수준으로 본다




신자들은 반드시 믿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소망과 사랑이 따라 나옵니다. 믿음의 눈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창조의 수준으로 봅니다. 아직 없어도 아직 부족해도 소망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는 반드시 믿는 것을 만들어 내고야 맙니다. 믿음의 눈은 경험에서 생겨 나오지 않습니다. 믿음의 눈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봅니다. 아름다운 교인들은 믿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봅니다.




있는 그대로를 감사하며 받아들입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감사하며 누립니다. 나의 가족, 나의 직업, 나의 교회, 나의 이웃 아니 나의 삶 전체를 사랑합니다. 이들 모두 아름답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내게 주어진 것을 감사함으로 누립니다. 믿음의 눈은 거기서 빛나는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하나님의 미소를 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고 맛보는 사람의 삶에 아름다움을 부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없어도 아직 좀 부족해도 소망하고 사랑합니다. 믿음은 시궁창에서도 아름다움을 봅니다. 하물며 이처럼 아름다운 교회당에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을까요? 우리는 믿음으로 현재의 아름다움을 즐깁니다. 그러나 더욱 우리는 미래의 아름다운 교회를 생각하며 더욱 감사하며 소망하고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시며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 되십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아름답게 만든다




믿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으로 그 믿음으로만 삽니다. 그는 믿음의 생각을 합니다. 믿음 속에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를 가집니다. 그래서 믿음의 말을 합니다. 그의 말은 긍정적이고 살아서 힘이 있습니다. 그의 말은 참으로 아름답고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믿음의 사람은 아름다운 삶을 삽니다. 그의 안에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속에서 그리스도가 그를 통해서 삽니다. 그는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 살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그는 낙심하지 않고 우울해 하지 않고 그는 언제나 소망하고 언제나 사랑하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속에서 뒷받침하고 있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처럼 삽니다. 그는 죄에 대해 무지합니다. 그러나 의 자체를 가졌습니다. 그는 언제나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그 무엇이 감당할 수 없는 강한 존재입니다. 그는 자기 마음을 지배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지배합니다. 그는 폭풍우를 잠잠하게 하고 귀신을 추방합니다. 그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처럼 살며 그리스도처럼 사랑합니다. 그는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로 그리스도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과 나눕니다.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의 눈물을 씻어줍니다. 그는 이웃에게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나눕니다. 그는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이웃에게 줍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이웃의 영혼에 더욱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이웃을 그리스도에게 이끕니다. 그리하여 그들도 함께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게 합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




사랑하는 영암의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는 교회창립 47주년을 기념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1954년 11월14일 아직도 생존해 계시고 지금까지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고 헌신하고 계시는 김창걸 원로장로님 댁에서 힘찬 복음의 행진을 시작한 지 벌써 4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이제 이와 같은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며 교회를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눈물을 뿌려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열심히 펼친 신앙의 아름다운 발걸음이 있었음을 확신하며 그분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교회를 아름답게 이루어온 신앙의 선배들의 삶은 교회를 아끼며 사랑하며 복음에 대해 열심히 섬겨온 아름다운 삶이었다고 믿습니다.




LA에 요즘 아주 발전하는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가 바로 새들백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군대의 능력은 식당에 앉아서 밥을 먹는 사람이 몇 명인가에 달려 있지 않고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에 달려 있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의 교회의 아름다움도 몇 명이 앉아서 예배를 드리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보내느냐에 달려있다." 그렇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꾼을 파송했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 동안 우리 한국 교회는 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도들끼리 만나면 "당신의 교회는 사람이 모두 몇 명이 모입니까?" 그러면 아주 자랑스럽게 "우리는 천 명이 모인다. 이천 명이 모인다." "우리는 만 명이 모인다." 숫자를 자랑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 째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1년 예산이 얼마입니까?" "우리는 10억이다." "20억이다." "50억이다." 돈을 자랑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그런 교회를 알아 가는 방법일 것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물어야 될 것입니다. "당신의 교회는 지역사회와 세계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꾼을 보내었습니까?" "당신의 교회는 1년 중에 선교와 구제를 위하여 얼마만큼 물질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물어야 사실은 그 교회의 아름다움을 분명히 알 수 있는 좋은 질문이 될 것입니다.




요즘 들어서 발 마사지가 아주 유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이 발에 모든 건강이 다 있다는 겁니다. 발을 잘 마사지를 해 주면 몸 전체가 건강하다고 하는 그들의 주장입니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나 분명한 게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 교회의 건강은 발에 달려 있습니다.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예산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프로그램에 있는 것이 아니고 역사에 있는 것이 아니며 그 교회의 아름다움은 발에 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파송하느냐, 땅 끝까지 가서 주의 생명의 말씀을, 아름다운 소식을 증거하는 아름다운 발을 가진 교회가 되느냐, 여기에 하나님의 교회의 아름다움이 달려 있는 줄로 믿습니다. 모여서 예배하는 교회는 반드시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모여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은혜를 받았으면 이제는 나아가는 교회가 되어서 세상 속으로 파송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끼리만 밤낮 모여서 찬송하고 즐기고 예배한다면 하나님의 교회는 힘이 없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반드시 나아가야 합니다.




찰스 알렌이라는 신학 박사가 미국 교인들을 대상으로 신앙 생활의 상태를 조사했습니다. 알렌 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자신이 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 20%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거의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35%의 신자들은 성경을 읽지 않고, 40%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헌금을 하지 않으며, 75%의 신자들은 교회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85%의 신자들은 한 명도 전도해 본 경험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런 사람들도 자기가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비슷합니다.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줄여서 “한미준”이라고 합니다만, 여기서 1998년 9월 한국 갤럽에 의뢰하여 설문 조사를 했는데 이 조사에 의하면 불교인이나 천주교인에 비해 우리 개신교 교인들은 전도를 조금 더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교인의 72%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전혀 전도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수치는 미국에 비해서는 좀 낳은 편입니다만 역시 한국 교인들 대부분도 전도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전도를 잘 하지 못합니까? 전도를 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유라고 하면 영혼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앙의 이기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나만 구원받았으면 되었지 다른 사람이야 내가 뭐 그리 생각할 필요가 있겠나”하는 것입니다. 다른 영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적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전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지 못합니다.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름다운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름다운 교회는 더욱 확실하게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해 갑니다. 우리의 아름다움은 현재에도 있지만 미래에 더욱 나타날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봅니다. 참된 아름다움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마치 그리스도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나 장차 우리가 이룩할 아름다운 교회에 비하면 현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기쁨 속에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소망으로 바라봅니다.




지금까지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시켜온 신앙의 선배들의 아름다운 헌신을 본받아 오늘 임직을 받으시는 열 분의 장로님들을 포함해 75명의 항존직분자들이 겸허하게 교회와 교인들을 아름답게 섬기시는 신앙의 지도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헌신자들과 함께 앞으로 새로운 미래를 아름답게 펼쳐나가시는 영암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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