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으로서의 성숙성
2001-12-13 20:44:55

2001년 5월 13일
딤전 5:1-4







가시고기와 우렁이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다 아름답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가운데 사람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 속에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동물들이 인간들보다도 더 큰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주인에 대한 변함 없는 사랑을 보여주는데는 개를 들고 있습니다. 자기가 기르던 개를 잡아먹기 위해 산채로 매달아 불에 그을리다가 실패해서 도망한 그 개가 몇 년만에 주인을 찾아왔어요. "개만도 못한 주인, 주인보다 나은 개"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정의 달을 맞아 부성애를 나타내는 가시고기와 모성애가 강한 우렁이가 떠오릅니다.




가시고기는 소설로서 더욱 유명합니다. 가시고기는 산란기에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나면 수놈은 알이 부화될 때까지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고 침입자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새끼들이 둥지를 떠날 때 생을 마감하는 작은 물고기입니다. 가족을 위해 수고하다 조용히 한 세상을 마감하는 아버지들의 함축된 모습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 또 우렁이는 제 몸에다 알을 낳으며 새끼들은 어미의 살을 파먹으며 성장합니다. 한 점의 살도 남김없이 새끼들에게 먹이로 주고 빈 껍데기가 되어 조용히 물에 떠내려갑니다. 가족을 보호하고 울타리가 되는 아버지의 희생과 살을 깎아 먹이는 어머니의 희생은 어디에서 보상받게 될까요?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지만 나이든 부모는 자식들에게 서서히 짐이 되는 존재로 전락하는 듯 합니다.자녀들이 제 아무리 효도를 다한다 해도 부모의 사랑을 어찌 다 갚을 수 있을까요? 가정의 달에 가시고기와 우렁이를 생각하며 못다 한 효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한국교회는 해방 후부터 5월 2째 주일을 어머니 주일로 지키다가 1960년대부터는 5월 2째 주일을 어버이 주일로 지킵니다. 어버이 주일에는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가슴에 새기며 감사하고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다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자녀들은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마음에 기리며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보다 선하고 진실하게 살기를 다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부모를 순종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부모를 돌아보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효도는 왜 하여야 합니까?




첫째, 나의 생명과 존재가 부모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안 계셨다면 오늘의 나의 생명과 존재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나를 자라게 하시고 나를 사람 되게 하신 부모님께 효도를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인간세계에서는 물론 동물 세계에서도 어미는 자식을 태어나게 하고 자라게 하는데 자기의 생명까지 바칩니다. 거미 어미는 자식을 키우기 위해 자기 몸을 자식들의 음식물로 제공한다고 합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동서양의 사상가들은 효를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라고 가르쳤습니다. 공자는 효가 백행의 근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집안에서는 효를 나라에서는 충을 다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효와 충이 인간의 근본이고 나라의 기초라고 가르쳤습니다. 유교가 효를 너무 지나치게 형식화하고 의식화한 것이 잘못이긴 하지만 효를 중요한 덕행으로 가르친 것은 옳은 일입니다. 효는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둘째,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이 하나님에 대한 명령과 인간에 대한 명령으로 되어 있는데 인간에 대한 명령 가운데 으뜸이 되는 명령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주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라고 엡6:1에서 명령했습니다. 딤전5:4에서는 "만일 어떤 사람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라고 가르쳤습니다.




셋째, 효도는 내가 잘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네가 잘 되고 장수하리라"(엡6:3). "그리하면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잠1:9). 부모를 공경한 사람들은 세상에서 잘 되고 존귀함을 누립니다. 백화점 왕 와나메이커 역시 부모님의 교훈을 따른 사람이었습니다. 와나메이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사랑을 제일 먼저 가르쳐 주신 분이 어머니였고, 나에게 기도를 제일 먼저 가르쳐 주신 분도 어머니였으며, 내 영혼에 밝은 등불을 켜 주신 분도 어머니였고, 행복을 가르쳐 주신 분도 어머니였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모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잘되고 아름다운 이름과 존귀를 얻게 됩니다. 이삭이 효도하다가 축복을 받았고, 요셉이 효도하다가 축복을 받았고, 룻이 효도하다가 축복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효도해야 합니까?




첫째, 부모를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엡6:1). 부모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효도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제사 드리는 것보다 좋아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베다니 마리아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효도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둘째, 부모를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23:25).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옛날에 도시 효자가 시골에 효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시골로 찾아갔습니다. 시골 효자의 집은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이었습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까 옷을 누추하게 입은 청년이 나무를 한 짐 짊어지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부엌에서 일하던 노모가 부리나케 뛰어나와 아들의 나무 짐을 받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황급히 부엌으로 뛰어들어가 대야에 물을 떠 왔습니다. 노모는 아들을 마루에 앉히고는 열심히 아들의 발을 씻기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아들과 주고받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도시 효자는 시골 효자에게 이렇게 충고를 했습니다. "여보게, 어떻게 기력도 없으신 어머니께 발을 씻게 하는가? 효자라는 소문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러자 시골 효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효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기쁘게 해 드립니다." 이 말을 들은 도시 효자는 마음 속에 "내가 효행을 잘못 했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시 효자는 이 때까지 자신의 생각대로만 부모를 공경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잠자리, 좋은 음식, 많은 용돈은 드렸지만 자기 부모님의 얼굴에는 시골 어머니와 같은 환한 웃음이 없었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효도는 부모님을 기쁘고 즐겁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는 아름다운 미담들이 많이 있지만 몇 가지만 말씀드린다면, 매주 토요일만 되면 사방에 흩어져 살고 있는 분가한 자녀들이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집에 아이들까지 다 데리고 가서 하루를 함께 지내며 한 주간동안 있었던 삶을 다 말씀드리고 교훈을 받고 주일날 이른 아침 부모님 모시고 모든 식구들이 함께 교회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고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일날 1부예배에 나와야 친정어머니를 뵙고 함께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이른 시간에 잠자는 아이들을 깨워 함께 예배드리러 나오는 가정도 있습니다. 이 자녀들이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을 아무 거부반응 없이 기쁨으로 따라하는 그 모습도 얼마나 아름다운 지요.




또한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며느리가 직장 생활하느라고 피곤하여 시어머니가 살림을 모두 맡아 하는데 퇴근할 무렵이면 좋아하는 반찬을 잘 준비하고 피곤한 몸을 충분히 쉴 수 있도록 이부자리를 깔아 따뜻하게 해놓고 집 밖에 나가 퇴근하고 돌아오는 며느리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는 그 시어머니를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면서 시어머니를 천사처럼 여기는 분도 계십니다. 이 분이 이제 며느리를 맞았는데 자기도 며느리를 향해 그와 같이 하겠노라고 합니다. 얼마나 따뜻한 이야기들인지 모릅니다. 성숙한 부모님의 모습이요, 감동적인 미담이 우리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녀로서의 성숙함이 배어있는 모습으로 부모님께 대하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셋째, 부모님을 돌아보아 드리고 도와 드려야 합니다. "예수께서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눅2:51). 예수님은 목수이신 아버지를 도와 드렸습니다. 나를 낳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에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도와 드려야 합니다.




효를 행할 때 가정이 화목하게 됩니다. 교회가 아름다워집니다. 사회가 밝아지고 건강하게 됩니다. 나라가 튼튼해집니다. 효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잘 되는 길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립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를 순종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모두 잘되고 장수하고 존귀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랜 경험을 통한 지식의 보유자로서 대가족 제도 하에서의 확고한 지위를 누려온 노인들은 사회가 산업화, 도시화됨에 따라 증가하는 인구의 이동 성향으로 대가족제도가 파괴되고 부부중심의 핵가족제도로 발달함에 따라 매우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노년층은 친족과 직업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조직적으로 고립화되고 사회의 주요활동에서 제거되고, 교회와 가정에서 그 역할이 감소되고 있습니다. 이같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노인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후반부터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하여 1980년 "세계 노인의 해"를 계기로 노인문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수천 년 간 유교 문화권에 속했던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 제도에 많은 변모를 가져오게 했으며 또한 새로운 가치관의 채택은 노인 경로 개념의 퇴조를 불가피하게 하였습니다.




노년은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육체적 능력이나 정신적 능력이 감퇴되는 죽기 전 10년 내지 20년의 기간입니다. 고대 문화에 있어서 노인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경험과 지혜 때문에 가문과 공동체 내에서 존경을 받았습니다. 노년까지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 경건의 보상, 제명을 잘 지킨 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로서 자주 인식되어집니다. 아브라함은 장수를 약속 받았으며 하나님이 세우신 법들을 존경하는 자들에게 장수가 약속됩니다(출 20:12).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이 시련과 고난의 면제를 의미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인은 건강 문제들과 무능력을 초래합니다.




성서는 일반적으로 동양적 관습과 조화되게 노년을 존경하고 영예롭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존경은 하나님에 대한 경건의 표현으로서 종교적 삶에 본질적입니다. 백발은 허약함의 표징이 아니라 명예의 표시로 간주되어졌다. 노인을 공경하지 않음은 반드시 그 나라에 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가 발해집니다. 경험은 귀중한 교사이며 노년은 그와 더불어 지혜와 분별력을 수반한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 모세는 그의 고별연설에서 이스라엘은 아비와 어른들에게 상의할 것을 명령합니다. 르호보암은 그가 장로의 충고를 져버렸을 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영도적이고 책임적인 직분들은 보통 나이 많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 맡겨졌습니다. 전체적으로 말해서 성서에서 장수는 선한 삶에 대한 보상이며 노인은 지혜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성서는 노인을 공경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나라는 가족관계와 사회윤리의 뿌리를 전통적인 관습인 경로 효친 사상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급변하는 산업사회의 실상은 종래의 효도와 노인공경을 그대로 실천하기는 어렵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노화에 따른 역할의 상실 혹은 변화, 신체 및 정신 건강의 퇴화, 자유로운 환경 통제곤란 등은 자연히 노인으로 하여금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합니다. 이러한 도움의 추구는 자신의 권위와 가치 및 심리적 자아를 옛날과 마찬가지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이러한 노인 특유의 의존성 문제의 해결도 노인이 가정과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 보다 높은 정신건강 수준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이러한 노인의 의존성을 블렌크너(Blenkner, 1965)는 ① 경제적 의존성(연금, 보험, 용돈) ② 신체적 의존성(퇴화한 신체 기능에 대한 보완) ③ 정신능력의 의존성(기억, 판단 능력에 대한 도움) ④ 사회적 의존성(사회적 접촉의 추구, 고립의 회피) ⑤ 심리적 의존성(감정적 유대, 안락감)의 5가지로 구분합니다. 이때 앞의 4가지 의존성은 정부, 사회보호기관, 전문가 등에 의해 해결될 수 있으나 심리적 의존성과 감정적 안정의 문제는 그 의존대상이 가족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보장제도의 미비로 인하여 이러한 5가지 의존성을 모두 그 가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주의 깊게 통찰해야 합니다.




젊은 자녀 세대가 노부모 세대에게 베푸는 부양의 역할은 과거에 자녀들이 성장할 시기와 그 "부양의 역할"이 바뀐 것이긴 하지만 노인이 제2의 아동기를 맞는 것이 아니므로 "부모의 역할"이 결코 될 수 없으며 오로지 효도 내지 "자식으로서의 성숙성"에 기초를 둔 부양인 것입니다. 이러한 효도와 자식으로서의 성숙성은 노부모가 믿고 의지하려는 여러 의존성을 어느 정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가 하는 자녀의 세대 쪽의 역량을 뜻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맡기고 모든 것을 터놓고 상의 할 수 있는 사람은 대개 가족구성원이거나 친구 또는 성직자 등이 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중요한 역할은 노년기에 나타나는 역할 상실, 능력감퇴, 사회적 감촉의 감소와 고립 등에 대한 완충지대의 역할을 담당함으로서 만족할만한 노년기의 생활유지를 도모하고 그리하여 노인 세대의 정신건강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노년기의 가족관계에서 조부모의 역할을 생각해 보면 가족 내에서 역할 변화도 일생의 커다란 분기점이 됩니다. 경제적 주도권은 대개 자녀세대에게 이양했고 자녀 양육이란 부모의 역할도 이미 상실했으며 오직 상징적인 집안 어른의 지위와 조부모로서의 역할에 만족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와 같은 직업과 가족에서의 역할로 인하여 노인들은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자기 자신을 환경에 알맞도록 재조정해야 합니다.




가정에서의 조부모 역할에 대하여 연구한 것이 있는데, 70가정의 미국 중류 가정을 조사하여 ① 만족감 ② 그 의미와 중요성 ③ 그 역할의 5가지 양식 등을 고찰하였습니다.




첫째 조부모 역할에 대하여 오직 64%의 노인만이 만족감 혹은 편안한 감정을 가질 뿐 그 외는 여러 가지 불만을 토로하였습니다. 즉 불편한 마음 긍정적인 보상의 결여, 조부모라는 역할의 자각에 대한 괴로움, 손자 양육에 대한 자녀들과의 갈등관계 등이 그것입니다.




둘째 조부모 역할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① 나 자신은 손자를 통하여 영속되며 ② 충분한 시간이 있으므로 손 자녀들과 감정적으로 만족한 접촉이 가능하고 ③ 지혜의 원천이 되어 역사 기술 등을 가르치고 ④ 이들을 통하여 스스로 못 다한 것을 대외적으로 성취할 수 있기도 합니다.




셋째 조부모 역할 수행에는 ① 손자 양육 방법 등은 자녀에게 맡기고 자신은 오직 주어진 조부모 역할만 수행하는 공식적 인형 ② 여가시간을 아이들과 놀아 주는 것을 낙으로 삼는 기쁨 추구형 ③ 부모를 대신하여 유아 교육을 담당하는 대리부모형 ④ 가족 내의 최고권위를 유지하고 젊은 세대의 복종을 요구하며 가정 내의 지혜의 원천임을 내세우려는 형 ⑤ 공식적인 가족 모임 이외는 별로 가족 관계에 관여하지 않는 원거리형이 그것입니다.




노인들에게 나타나는 경제적, 신체적, 사회적 의존 욕구뿐만 아니라 정서적 의존 욕구에 대하여 자녀들은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노화와 더불어 증가하는 의존성 가운데 특히 감정적, 정서적, 안정감의 유지 및 의존의 욕구가 뚜렷이 증가하는데 이를 해결할 근원이나 책임소재가 정부나 사회 복지 단체가 아니라 가족에 있다는 사실에 특히 유의함으로서 노-소 두 세대간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시킬 수 있습니다.




사회적 변화가 거의 없었던 전통사회에서의 노인도 그 사회의 전통을 이어주는 중요한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급변하는 오늘의 근대화와 산업사회에서의 노인들은 일터에서 은퇴하는 제도 때문에 밀려나야 되고 가정에서는 핵가족제도 때문에 밀려나야 되는 노인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자기 역할 상실과 관계상실이 신체와 정서에 남아 소외와 고독 속에 노인의 존엄성과 경로사상 마저 상실하게 되는 가정 공동체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사회에서 노인은 인생 막바지 황혼을 걷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생 안식년으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년에 일을 할 수 없다 해도 심리적인 열등감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구약성서나 유대인의 전통에서 노년기는 구원의 희망을 향해 가는 시기요 인간 성숙의 정점인 자기 실현을 위한 안식년에 접어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인간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고귀한 목적에 자신을 바치게 됩니다.




사람이 늙으면 세 가지 서글픔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로, 아픈 데가 많습니다.




늙으면 몸이 노쇠함으로 자연히 아픈 데가 많아집니다.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쑤시고 무릎도 아픕니다. 그러나 대부분 자식들의 눈치보느라 아파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어디가 아프신 지 관심을 가지고 자주 물어보아야 합니다.




둘째로, 외로움을 잘 타십니다.




젊었을 때는 바빴지만 늙으면 한가해집니다. 젊어서는 하는 일이 많다 보니 만나는 사람도 많고 외로워할 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현역에서 물러나 일손을 놓으셨기 때문에 한가해지고 만나는 사람도 적어집니다. 시간은 많은데 하는 일이 적어 외로운 시간이 많습니다. 시집간 딸 생각, 외국 나간 아들 생각으로 밤낮 자녀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건강한지 늘 궁금해하십니다. 그러므로 자식들이 자주 찾아뵙지는 못한다 해도 부모님께 자주 안부 전화를 드려야 합니다.




셋째로, 배고픔을 자주 느끼십니다.




모든 기능이 약해지다 보니 마음뿐이지 많이 잡수실 수가 없습니다. 입맛도 예전 같지 않으십니다. 더구나 많이 잡수시면 탈이 납니다. 그래서 자주 시장기를 느끼십니다. 몸도 허하고 기름기도 없으니 중간 중간 시장하실 때마다 잡수시도록 눈깔사탕이나 땅콩, 과자... 좋아하시는 간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늘 챙겨 드리시기 바랍니다.




효도는 복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며, 가정이 화목해지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의 아들딸도 효자가 될 것입니다. 부모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께 어떻게 했는지 보고 배웠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할 것입니다. 어느 분가해간 자녀들은 하나님께만이 아니라 매번 십일조를 부모님께 보내오는 자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하듯이 부모님께도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그래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합니다. 노인에 대한 사랑은 곧 자기의 미래에 대한 사랑 곧 자기 사랑입니다. 노인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노인 되었을 때를 생각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습니다. 노인을 사랑하면 바로 그것은 장차 올 내 미래를 사랑하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동안 부모님께 불효한 것은 없는지 생각해보시고 이제부터는 참 효도를 하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귀한 뜻이 담긴 시 하나를 소개합니다.





오해




우리 어머니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첫사랑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 몸은 절대 아프지 않는 어떤 특별한 몸인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아무 꿈도 품은 적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드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특별히 좋아하시는 음식이 한 가지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짧은 파마 머리만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얼굴이 고와지고 몸매가 날씬해지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좋게 받아들이고 아무 불만도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전화를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단 하루라도 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웃는 걸 모르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시집가는 것을 보고 마냥 기뻐만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 외에 아는 여자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배가 빨리 불러 와 좋은 음식 앞에서 먼저 일어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양복 입고 넥타이 매는 것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안 주머니에는 늘 돈이 얼마쯤은 들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좋아하시는 운동도 취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무리 깊고 험한 길을 걸어가도 조금도 두려워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한 방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객지로 떠나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은 오해를 오랫동안 해왔던 여러분과 저입니다. 이제는 자녀로서의 성숙함으로 부모님과 노인들, 어른들을 공경하며 존중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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