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잘 하는 열 가지 방법
2015-12-16 00:05:27

교회건강연구원 이효상 목사가 말하는 ‘목회본질’ (下)

예수님 목회의 본질적인 사역에서 첫 번째 기둥이 기도목회이다. 기도목회는 기도, 영성사역을 구체화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새벽기도와 철야기도, 심야기도, 산기도 등 다양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 이를 특화시켜야 한다.

두 번째 기둥은 제자를 불러 모아서 이르신 말씀목회이다. 말씀목회는 성경공부식 제자 양육과 설교계획으로 나눌 수 있다. 양육을 위한 멘토링 시스템과 핵심일꾼 훈련을 위한 제직훈련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특별히 말씀목회에서 중요한 것이 설교이다. 교인들이 공감하는 설교를 해야 한다. 밥허스틀러 목사의 10가지 설교법이 주는 유익이 많다.

교회에는 오래된 정통과 음악 상징 등이 있다. 그래서 빌 하이벨스 목사님의 윌로우크릭과 같은 교회는 새로운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설교할 때 생활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하고 딱딱하고 지루한 이야기는 되도록 피한다.

또한 교회 내부의 세대 차를 극복하기 위해 중간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시대를 넘어서 교회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요소는 설교자가 설교를 하고 사람들은 설교자의 설교를 듣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이 설교를 통해 무엇을 듣기 원하는지 알아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사항들은 본인의 여러 목회 경험에서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개인적 설교는 삼가… 너무 많은 말 하지 말라
설교에 감동 감화력 있고, 실천적 내용 담겨야

설교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1) 설교 시작과 거의 동시에 청중의 관심을 사로 잡아야한다.

유명한 설교자들은 바로 이점을 잊지 않았다. 설교를 시작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지 못하면 사람들은 전체의 설교에 흥미를 가지지 못한다. 흥미 있는 이야기나 질문 등으로 설교를 시작하면서 청중의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

2) 사람들은 설교에서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듣기 원하고 배우기 원한다라는 것이다.
배우기 원한다. 생각해보라. 만약 설교자가 대중에게 자신의 설교를 받아 적도록 강요한다면 대중은 설교 자체에 벌써 흥미를 잃게 되고 말 것이다.

사람들은 설교자가 직접 수저로 음식을 가져다가 입에 넣어 주는 것보다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찾고 알아가기를 원한다. 청중이 몰랐던 사실로 새로운 안목을 갖게 하는 설교가 필요한 것이다.

3)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가에 관심이 있지 설교자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이는 초신자들 마찬가지다. 좋은 설교는 성경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4) 대중이 성경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투의 말을 설교 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말은 새신자나 교회를 오래 다닌 신자 모두에게 좋지 않다. 사람들이 하박국이나 학개를 빨리 못 찾는다고 책망하지 말라.

5) 성도들은 설교를 통해 목사님이나 설교자의 간증, 신앙의 경험 등을 듣기원한다. 설교 내용과 연관이 있고 필요한 이야기라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시 하는 것도 무관하다라는 것이다. 성도들은 설교를 들을 때 설교자의 개인적 신앙 생활을 통해 은혜받기를 원한다.

6) 유머가 필요하다. 설교자가 유머스럽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이야기로 긴장을 풀어 줄 때 성도들은 평안한 마음으로 설교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결점이나 단점을 털어 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공감대를 형성해주는 좋은 효과가 있다.

7)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말라. 중요하고 알아야할 포인트 몇 가지만 강조해 이야기해도 충분하다. 소화하기 힘든 너무 많은 이야기나 소재를 가지고 설교를 하지 말아야 한다. 사소한 사항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말할 필요도 없다. 때로는 설교자보다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한 사람이 청중 속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 질병으로 고난당하는 사람, 자식을 잃은 부모 등 여러 가지 고난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치 그 경험을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단지 삶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간단한 이야기나 모두가 겪고 경험하는 이야기정도를 나누는 것이 좋다.

8) 설교에 감동과 감화력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설교를 통해 감동 받기를 원한다. 설교를 통해 마음 속에 무엇인가 느낌을 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가공된 인위적 이야기보다 신선한 감동이 있는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원한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이성적 이야기보다 감동적이고 소박하며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원한다. 이것은 중요한 설교의 요소이며 이러한 점이 설교에서 부족하면 설교로서 낙제라고도 할 수 있다.

9) 성도들의 필요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나는 학생들이나 설교자들에게 ‘왜, 또는, 그래서’ 라는 질문을 항상 해 보라고 한다. 이러한 질문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을 점검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설교를 듣는 사람에게 설교의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결론에 이르는지 맥락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식구들과 오랜만에 외출을 할 경우 스케줄을 미리 짜고 맛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까지 예약을 한다면 여러분의 아내나 자녀들은 감동하고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설교자는 마치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안내하듯이 설교를 듣는 청중들을 처음의 시작 포인트에서부터 마지막 결론까지 잘 안내를 해야 합니다.

10) 초신자들이나 신앙생활을 오래한 성도들이 공통적으로 설교를 들을 때 관심을 갖는 사항은 자신의 삶에 설교 말씀을 어떻게 적용 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이다. 이번 주에 들은 말씀을 어떻게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 말이다.

나는 주일날 설교할 때 설교를 듣는 성도님들은 모두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를 소망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설교 내용에 실제적으로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고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방법과 구체적 사항들을 포함시킨다. 때로는 말씀을 들은 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적어보도록 하기도 한다.

그 동안 교회 출석을 정기적으로 하다가 나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편지나 카드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렇게 실천 사항을 적는 것은 말씀을 자신의 삶에 구체화하게 하는 과정이다.

전도의 목적은 교회 성장 아닌 영혼 구원

다시 예수님의 목회로 돌아가자. 예수님 목회의 세 번째 기둥은, 각 마을과 회당으로 두루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파하신 전도목회이다. 우리는 전도를 체질화시켜야 한다. 실제적으로 많은 교회가 부흥하기를 원하면서도 전도 현장을 외면하고 있다는데 오늘의 문제가 있다. 일반적 교회의 경우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지만, 1월부터 6월까지는 열심히 전도하다가 7, 8월에는 전도를 쉰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조금하는 것 같다가 그냥 한해가 지나간다. 쉬었다가 전도하려고 하면 상당한 힘이 든다. 전도의 열기가 식어져서 다시 회복하는데만 1~2달이 걸린다. 그러다 보면 추수감사절이 오고 성탄절이 오고 연말연시가 되면 교회행사에 밀려서 그냥 쉬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전도가 생활화되지 못했다는 증거다. 전도는 교회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또한 시대가 분명히 바뀌었기에 이 시대에 맞는 전도법을 개발해 전도 잘하는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교회가 전도형 교회로 시스템이 전환돼야 한다. 전도목회에 있어 중요한 것은 교회가 교회성장에 관심을 갖지 말고 영혼구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도는 영혼구원이지 교회성장 프로그램이 아니다.

예수님 목회의 네 번째 기둥은, 각색 병든 자들을 고치신 치유목회이다. 성령의 위로하심과 만져주심을 사모하는 치유목회는 가정사역, 상담과 복지 ,그리고 성경적 치유 등으로 구체화 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예수님 목회의 본질적 네 기둥을 구체화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교회 자체의 매뉴얼을 구체화해야 한다. 또한 평신도들을 훈련시킬 때 교회는 변화하고 부흥한다. 훈련을 통해서만 준비된 일꾼이 생겨나고 사역의 열매가 맺힌다.

예수님이 처음에 12명을 보낼 때는 사역의 보고가 없었지만 그 다음 70명을 보낼 때는 귀신도 내어 쫓는 이적도 경험하며 기쁨으로 보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훈련 이론과 경험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훈련 받은 교인은 담대함이 있다. 또 분명한 사역의 열매도 있다. 잠자는 교인들을 일깨워야 한다. 철저하게 훈련을 시켜서 내보내야 한다. 적어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개인 전도와 대중 전도의 훈련을 받았다. 이런 점에서 목회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릭워렌 목사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파도를 탈 준비가 되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파도를 보내 주신다”라고 했다. 모든 교회의 사역은 신앙성숙과 교회부흥에 있다. 프로그램 자체에만 몰두하다보면 이를 뒷받침하는 영성적 기능(기도, 예배 등)과 실천적 기능(제자의 삶)을 소홀히 할 때가 있다.

궁극적으로 이 부분을 강화하고 성장하도록 꾸준히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교회는 순교적 영성을 지닌 목회자를 통해 만들어지며 거기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남은 시간을 통해 나의 목회는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가를 돌아보고 2009년 새해의 목회를 준비, 기획할 수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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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에 진리와 회개가 없고 아침마당처럼…”

<존 오웬의 신학> 펴낸 김남준 목사, 지성·감성·의지 조화 강조

2008년 마지막 주일이었던 지난달 28일, 김남준 목사는 끝내 2부 예배를 인도하지 못했다. 혹사로 감기몸살이 너무 심해졌던 탓이었다. 개척 후 15년간 어떤 일이 있어도 강단을 사수해 온 김 목사였다. 설교는 1부 예배 때의 영상으로 대신하고 그는 링거를 맞으며 몸을 추스려야 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29일 월요일, ‘공부하는 날’이 되자 김 목사는 미처 낫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교회로 나와 오전 9시부터 정확히 오후 9시 10분까지 연구에 매진했다. 그가 쓴 <게으름>은 그의 이런 삶이 있기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5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이 찔림을 경험하면서도 책을 놓지 못하고 있다.

부지런히 살면서 스스로를 ‘고3’이라 생각하고 “고3이 하고 싶은 것 미루면서 대학 가서 하자고 마음먹듯, 하고 싶은 것 미루면서 천국 가서 하자고 생각한다”는 김남준 목사가 신간 <존 오웬의 신학(부흥과개혁사)>을 펴냈다.

그가 이전에 썼던 수많은 베스트셀러에서 가장 자주 인용했고, 머릿말에서도 밝혔듯 “그를 신앙과 신학의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것은 구원의 은혜 다음으로 가장 큰 축복”이라 할 정도로 영향을 미친 존 오웬의 이름을 내건 첫번째 책이다. ‘청교도 목회자’ 김남준 목사를 있게 한 존 오웬에 대해 듣기 위해 안양 열린교회를 찾았다.

한국교회, 신앙의 본질 놓치고 피상성 빠져

-존 오웬은 어떤 신학자인가. 그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

“존 오웬은 교회사 속 한 인물이고, 청교도 신학자다. 개인적으로는 열린교회를 개척하고 1년이 지난 15년 전, 무리한 사역으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던 때 그의 전집을 접하고 그의 영적인 깊이와 논리성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후 그의 신학을 탐구하고 공부하면서 15년간 목회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한국교회는 현재 교회 전반에서 ‘신앙의 피상성’에 빠져있다. 신앙이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것이고, 여기에 인간 문제의 답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어 본질에서 많이 이탈했다. 기독교 신앙의 참된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뜻이다.

또 개개인의 삶에서는 영적인 변화가 없다. 이는 주님을 만나는 영적인 깊이가 현저히 부족한 탓이다. 영적 경험이란 그리스도를 만나는 복음의 경험인데, 이는 경건의 씨앗이 된다. 죄를 이길 수 있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삶에서 복음의 신비가 사라지니 ‘신비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그래서 가장 합리적인 시대에 가장 비합리적인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존 오웬의 외침은 가치있다. 청교도이면서 개혁파 정통주의 거목이다. 그는 주님을 깊이 체험했던 동시에 탁월한 학자였던, 경건과 학문을 동시에 섭렵했던 위대한 신학자이고 목회자였다.

우리 신앙의 뿌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존 오웬은 중요하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아야 갈 곳을 알지 않겠는가. 사실 우리가 지금 고민하는 것들은 과거에도 고민했던 것들을 반복하는 것이다. 처음 기독교(개신교) 신앙의 참된 뿌리가 된 개혁교회가 오류와 싸우면서 진리를 붙들었던 모습을 존 오웬을 통해 알 수 있다.”

성경은 무작정 격려 아닌 ‘바른 용기’를 갖게 해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인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는데, 존 오웬도 인간에 대한 탁월한 이해를 추구했다. 어떤 점이 다른가.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이 필요한 것과 인간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긍정과 희망을 말하면서 사람을 격려하려 한다. 사람들이 그런 것들에 반응할 수는 있겠지만, 성경은 격려 그 자체가 아니라 ‘바르게 용기를 갖는 것’을 말한다. 디모데후서에 나오듯 구원에 이르게 하고, 교훈과 책망,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제나 오류에 빠지고, 옳은 것을 알아도 행하지 않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끊임없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기독교 안에서 공급해준다는 미명 하에 끊임없는 복음의 양보와 타협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것들이 복음을 많이 흐리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존 오웬은 인간에 대해 하나님께로 인간이 돌아가고, 거기에 필요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오늘날의 인간에 대한 탐구나 추구는 병상에 있는 사람에게 환자가 원하는 음식을 요리해주는 것이고, 이 사람(존 오웬)은 환자의 병 상태를 하나님 말씀으로 찍어서 그에게 이런 질병에 걸려서 이런 문제가 있으니 치료를 통해서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의사와 같다.”

-얼마 전 존엄사 문제와 관련해 세브란스 원목실장이 밝혔듯, 기독교가 세상을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설득시키기보다는 따라가기에 급급하고 있는데.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 기독교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붙잡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려면 확신하고 있는 진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과연 교회가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 오히려 묻고 싶다.”

성화의 삶 없다면 처음 받은 칭의의 기쁨도 점차 사라져

-그래서 늘 죄와 칭의, 성화라는 신앙의 본질적 문제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

▲김남준 목사의 저서 <존 오웬의 신학>. 존 오웬의 신학세계를 개괄적으로 담은 책이다. 김 목사는 앞으로 7백쪽에 3권 규모로 존 오웬의 신학을 본격 집필할 구상을 갖고 있기도 하다.
“성경적으로 보면 구원받은 이후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성화의 소명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성화란 본질적으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변화돼 가는 것인데, 인격이 변하고 선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과 이웃에게 진실한 사랑을 보이는 것이다.

처음 받은 구원은 칭의이고, 이후 거룩해져 가는 것이 성화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신 것이고, 성화는 주님께서 주도권을 가지셨지만 인간이 협력하면서 변해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신자들에게 성화의 삶이 없다면 처음 받았던 칭의의 기쁨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신자는 끊임없이 은혜를 받고 변화돼야 하는데 이를 포기하면 자기가 받은 구원도 기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 구원이라는 것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무료 티켓으로 전락했고, 재산이 늘어나고 대박이 터져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성화’라는 말을 듣기가 쉽지 않다.

“기독교 신앙 자체가 너무 감성화돼 버렸다. 감성이 없어서는 안 되지만, 성령은 전인적이시다. 지성과 감성, 의지가 조화를 이뤄야지 감성적으로만 가면 마치 갑옷을 입지 않은 군인 같아진다.

기독교 신앙의 토대는 철저한 교리와 사상으로 무장이 돼야 하고, 성경에 대한 진리들이 매일 경건생활로 타오르고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결단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심각하게 잃어버렸고, 교회에서는 교리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분명한 목표의식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목회자들은 사실 전도를 위해 세상과의 접촉점을 찾고 있는데.

“먼저 목회자들이 기독교 신앙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기독교 진리는 무엇인지 역사적인 사상을 알고, 어떻게 이단의 훼방을 넘어 진리를 입증해왔는지 공부하고 교리로 무장해야 한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 안에 풍부하게 성도들이 변화돼야 한다.

설교도 그렇다. 설교가 끝났을 때 거기에 진리가 들어있는가. 현저하게 사라지고 있다. 설교가 오프라 윈프리 쇼나 아침마당처럼 굳건한 진리 안에 서 있지 않고, 인생 살면서 필요한 지혜를 주는…. 또 설교가 끝났을 때 회개라는 것이 있는가. 회심이 없이 구원이 없는데, 설교에 세속을 혼합해서 마시기 좋은 음료수처럼 제공하고 있다. 성도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약인데. 그래서 괄목할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그럼에도 복음사역을 계속 하다보니 일 중심, 관계 중심으로 가게 된다.

세상과 달라질 때 사람들 교회로 돌아올 것

그렇게 가는 것은 신학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잘못됐다. 성경은 기독교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길은 ‘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사도행전 3장의 성전 미문에 앉은 이를 일으키는 사건(행 3:1-10)을 보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세상에 없는 것을 가지고 세상과 달라져야 하는데, 같아지려 한다.

심리적으로도 그렇다. 내가 21살 때 회심했는데, 당시 교회에 가고싶은 이유가 저기에 가면 나와는 다른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고민하는 것과는 다른 고민을 할 것 같아서였다. 건물부터 흔히 볼 수 없는, 굉장히 성스러운 느낌에 끌렸다.”

-개척·미자립교회처럼 공부에만 매달릴 수 없는 목회자들도 많은데.

“사실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교회가 클수록 더 바빠진다. 2년 동안 휴가도 가지 못했다. 눈코뜰새 없다. 가족끼리 식사를 한 번 하려 해도 비서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정도다. 의지만 있으면 된다. 책 살 돈이 없다면 도서관에라도 가서 읽을 수 있다.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한다. 무엇보다 많은 ‘눈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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