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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4:1-11/ 안식에 들어가는 자격 /조용기 목사 2014-09-12 13:58:05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자격"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모든 것을 미리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기 전에 천지를 예비하셨습니다. 또한 아담이 거할 에덴 동산도 미리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아담을 지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강대한 국민이 되도록 애굽 땅 고센에서 한 민족을 주님이 예비하셨습니다. 저들이 국가로서 설립하여 존재할 수 있도록 가나안 땅을 미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죄많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시사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구원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또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해서 우리가 장차 들어가 살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주님은 이미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함과 같으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의 삶의 모든 면에 예비해 놓으신 그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에 준비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나 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마음에 준비된 사람은 이 땅에서 영원한 천국까지 우리의 환경가운데 하나님 예비하신 그 모든 은혜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안식에 들어가서 그 안식을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인간은 타락한 이후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상실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 만져 보는 것, 이성으로 생각하는 것, 경험하는 것 이런 것을 믿지만 눈으로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볼 수 없는 것,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경험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것은 전혀 믿을 수도 없고 믿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타락했을 때 그 영이 죽었습니다. 이 영이 바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영이 죽은 인간은 하나님을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은 육으로 나서 육으로 삽니다. 그러므로 육의 제5감각을 통해서 감각적인 세계는 알 수 있지 감각의 세계를 뛰어넘은 저 영원한 영적인 세계나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셨음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그 영원 속에 영원한 생명이 들어와서 영이 살아나야 비로소 영적인 세계와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영이 죽어있는 사람은 아무리해도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고, 하나님과 교통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를 구주로 모시기 전에는 아무리해도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해도 존재하지 않은 세계를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들일 때 우리의 영이 살아나고 그리고 우리는 영적인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고 믿음을 가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고 믿음이란 바로 하나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한번은 베드로가 갈릴리 해변에서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고기를 잡지 못하고 이른 아침에 해변가에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그 배를 잠시 빌렸었습니다. 그리고 군중들에게 말씀을 증거하시고 난 다음에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깊은 데에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날이 새면 고기가 다 물밑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깊은 곳에 가서 더구나 그물을 던져 한마리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기를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잡은 것이 없으되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던지리이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의 눈을 보는 것처럼 믿지 않았습다. 귀도 들은 건 믿지 않았습니다. 감각을 믿지 않았어요. 경험을 믿지 않았으며 이성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으로는 해가 뜨고 난 다음에 물고기가 잡히는 법이 없어요! 그러나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그 말씀을 믿고 실천하여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니까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잡혔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기적적 믿음의 역사인 것입니다. 자기 배에도 고기를 채우고 동료들을 불러서 동료들의 배에도 물고기를 채웠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으면 말씀은 믿음을 가져오고 기적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풍랑이 이는 밤중에 바다위로 걸어가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풍랑에 시달리고 있을 때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모두 다 유령이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말씀하기를 "주시어든 나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오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도 베드로는 감각적인 인생을 벗어나서 영적인 인간으로서 말씀을 믿었습니다. 감각적으로 생각할 때 칠흑같이 어두운 갈릴리 바다에 풍랑이 대작한데 그곳에 걸어들어갔다가는 반드시 빠져 죽습니다. 그는 눈으로 보아도, 귀로 들어도, 마음으로 생각해도, 경험으로 이성으로 생각해도 빠져 죽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그 어두운 밤바다 위에서 오라고 하시매 그는 오직 말씀만 바라보고, 말씀만 마음속에 듣고, 말씀만 의지하고, 말씀을 믿고 나갔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그가 말씀을 따라서 나가니까 하나님이 같이 하여 주셔서 파도가 치는데 그 물위로 터벅터벅 걸어서 예수께로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한 믿음만이 모든 인간적인 경험과 이성을 초월해서 하나님이 기적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서서 우리가 이 바다를 건너서 저편으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는데 예수님은 주무셨습니다. 큰 풍랑이 일어나 물이 배에 가득해서 배가 가라앉게 되매 제자들이 겁을 내서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켰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주님이 그대로 내버려두시나이까? 예수님이 일어나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시며 즉시 잠잠하여 졌습니다. 제자들이 기이히 여길 때 주님께서 제자들을 보시고 꾸짖었습니다. 네 믿음을 어디에 두었느냐? 예수님께서 우리가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신 그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그 말씀을 그대로 믿었더라면 눈에는 아무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배가 아무리 풍랑에 부딪쳐도 혹시 배가 물에 가라앉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바다 건너편을 갑니다. 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꾸짖으시기를 네 믿음을 어디다 두었느뇨" 왜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믿음을 잘못 두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말씀에 두었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습니다. 말씀이 없이는 우리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벽에 옷걸이가 없는데 옷을 아무리 걸려고 해도 옷은 자꾸 미끄러져 떨어집니다. 그러나 옷거리가 있으면 옷을 걸때 걸립니다. 우리가 말씀이 없이 믿으려고 하면 그것은 허무맹랑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면 그 말씀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이라도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 말씀 중에서 주님이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라는 것은 여기에 죄인이나 불의한 자나 추악한 자나 남녀노유, 빈부귀천을 갈리지 않습니다. 어떠한 사람이던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받아들여서 이 말씀을 믿으면 그 사람이 어떠한 처지에 있던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예비한 축복의 동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리고 말씀 위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여도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려도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내 앞길이 캄캄해도 그런 것에 의지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서서 나가면 이 말씀은 풍랑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예비한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아무리 아름다운 것을 예비해 놓아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면 하나님의 예비한 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상함도 없고 헤함도 없으며 먹을 것도 많고 있을 곳도 많은 에덴동산을 예비해 놓았지만 그들은 정면으로 하나님을 불순종했습니다.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과라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는데 여기에 아담과 하와는 정면으로 대결해서 마귀의 말을 듣고 꾀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그들은 영이 죽고 버림을 받고 말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순종의 사람만이 하나님이 예비한 세계 속에 거할 수 있지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고야 하나님이 예비한 곳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고 거역해 버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예비한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천당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또한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마음에 맞도록 해석할 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의 일대 왕인 사울이 하나님 명령을 받아서 너는 아말렉을 진멸하라. 모든 사람과 모든 짐승들을 다 진멸하라. 그들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올라올 때 몹시 대적하였느니라. 그래서 사울이 군대를 거느리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아말렉과 싸우러 갔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니 이미 전쟁은 이긴 것입니다. 그래서 아말렉을 쳐서 진멸하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이 진멸하라고 하는데 자기 생각에는 왕은 죽이지 말고 전리품으로 끌어오는 것이 좋고 또 많은 좋은 짐승이 있으니 살찐 소나, 양이나, 염소는 죽이지 말고 끌고 오는 것이 좋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자의로 해석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사울을 세워 왕을 만든 것을 후회한다. 그가 내 말을 거역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났습니다. "어찌 왕이 하나님을 거역하였나이까!" "아니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가서 아말렉을 진멸하고 왕 아각을 잡아왔습니다." "그러면 왕이여! 저 뒤에 오는 양이나, 염소나, 소떼의 울음소리는 무엇입니까?" "아! 그건 백성들이 너무 소가 살찌고, 양과 염소가 좋으니까 죽이지 말고 끌고 가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이 좋다고 해서 그대로 왔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대노했습니다.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않게 하였나이다.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으로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었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면 안돼요! 아! 십일조 그건 내가 십일조를 내어서 내가 시골 교회도 보내고, 자선단체에도 보내고, 불쌍한 사람도 도와주고, 그럼 되지 않느냐?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너희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내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라고 말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하나님의 집에 드려야지 내 마음대로 자유로 해석해서 이거 내가 안 쓰면 되지 않는냐? 이래서 흩어주는 것은 그것은 온전한 순종이 아니죠. 또 성수주일 하라니까 뭐? 주일은 꼭 교회 가서 성수주일해야 되나, 내가 산 위에 올라가서 야호! 하고 들을 바라보고 찬송 부르고 예배드리면 되지 않느냐! 우리 가족들까지 교회에 갈 것 없지! 산이나 들로 나가서 함께 모여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하고 찬송하고 점심 나누고 오면 그게 예배지. 그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것에서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다고 한 말씀대로 우리는 지극히 작은 것부터 하나님께 충성스럽게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위해서 우리의 인생의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예비한 삶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 되야 되는 것입니다. 불안하고 공포에 떨고 겁을 집어먹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모험을 해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이 쓸 수가 없어요! 이스라엘 백성들 보십시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겁을 집어먹고 못 들어갑니다. 열두 정탐꾼을 보냈는데 그 중에 열명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우리가 가서 정탐한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 산은 높고 골은 깊고 성은 높은데 그곳에 사는 사람은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라 우리는 비교해 보니 여치 새끼 같더라 그러므로 우리는 그 땅을 점령하지 못한다. 불안과 공포에 꽉 들어찼습니다. 마음에 용기와 담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함께 간 여호수와와 갈렙은 말했습니다. 아니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오직 야웨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웨는 우리와 함께 하시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들어가서 점령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의 편에 서서 돌을 들어 여호수아와 갈렙을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서 열두 정탐꾼을 나오라고, 나오니까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쳐서 죽여버리고 불안과 공포에 떨고 용기와 담력을 잃은 사람들은 광야로 회진시켜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며 다 죽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겁장이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용기가 없는 사람은 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강하고 담대한 사람을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목동인 다윗을 택하여서 내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까? 다윗이 다름 사람보다 윤리와 도덕적으로 더 나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되 목숨을 내어놓고 강하고 담대하게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아버지의 양을 칠 때 사자가 와서 양을 움키면 주의 이름으로 가서 사자를 쳐서 죽이고 양을 빼앗았습니다. 곰이 오면 곰과 함께 허리를 끌어안고 뒹굴고 씨름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곰을 쳐서 굴복시키고 새끼양을 보호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되 참으로 하나님이 살아서 현재 같이 있어서 함께 도와준다는 그런 심령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록 어린 다윗이라도 그는 사자나 곰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골리앗과 싸운 이야기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역전의 이스라엘의 용사들이 블레셋의 대장군 골리앗을 보고 다 혼비백산하는데 목동인 어린아이 다윗이 가서 그것을 보고 어찌하여 저 할레받지 않은 이방인을 두려워하느냐! 내가 가서 싸우겠다! 그는 목동으로서 목동이 가지는 제구인 물매와 물맷돌 다섯개를 가지고서 그 무시무시한 골리앗을 대적해서 나간 것입니다. 그가 나가서 골리앗을 보고 외친 소리를 들어보십시요!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가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웨의 이름 곧 내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야웨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죽여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으로 만들겠고 또 야웨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야웨께 속한 것이니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그리고 그는 물매와 물맷돌에 의지하고 나가서 골리앗을 쳐서 죽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입니다. 이거 얼마나 담대합니까?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했으면 강하고 담대해야 됩니다. 환경을 바라보고 불안과 공포에 떨고 뒤로 물러가면 안됩니다. 성경은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었으면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내 환경에 폭풍우가 불어오고 비바람이 쳐도 그런데 개의치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밀고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업도 일으켜 세울 수가 있고 전쟁에도 이길 수가 있고 무를 유로 바꿀 수도 있고 기적을 창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너희 마음속에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어도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 해도 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은 반드시 담대함이 있어야 연결이 되지 겁을 내어서 주저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여러분 하나님을 배경으로 삼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인간의 힘에 의지 하기 때문에 인간의 힘이 벽에 부딪치면 그로써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그러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그는 담대하게 가슴을 내밀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은 말씀과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이 예비한 곳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했는데 육의 사람은 육신의 양식을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루 삼시 세때 양식을 먹으면 돼요! 요사이는 너무 많이 먹어 가지고 이제 살 빼는 일로써 사람들이 골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요사이 신문에 보면 살 빼는 광고가 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몰라요! 먹어서 살을 빼고 발라서 살을 빼고 운동을 해서 살을 빼고 그 살 뺀다는 이야기가 어느 곳에서나 나오고 있습니다. 또 살 빼는 여러가지 약을 만드는 것이 오늘날 큰 사업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육신으로는 많이 먹어서 살이 쪄서 살을 못 빼서 야단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영적으로 굶주려 있습니다. 영의 양식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말씀 이외에는 영적으로 양식이 될 것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늘 읽고 하나님 말씀을 먹어야 돼요! 어떤 사람 말하기를 성경은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서 못 읽겠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식사하실 때 어떻게 파란 시금치가 빨간 피로 변합니까? 하얀 밥이 딱딱한 발톱으로 변합니까? 어떻게 여러분이 먹는 음식이 까만 머리칼로 변합니까? 그거 모르니까 먹지 말지 뭐? 까짓 것? 어떻게 내가 먹는 것이 이렇게 변하는 줄 모르니까 안먹겠다 그러면 굶어죽지요! 내가 하나님 말씀을 이해 못해도 그 말씀을 내가 읽고 묵상하고 영적으로 먹어대면 그것이 우리 영적인 영양분이 다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몰라도 좋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그대로 읽어야 돼요! 몰라도 그냥 먹는 것입니다. 맛이 없어도 먹어요! 나는 서양음식을 정말 못 먹습니다. 나는 이 빵에다가 버터를 발라서 잼을 발라서 먹는 것 질색입니다. 왜? 먹고만 나면 소화가 안돼요! 서양음식은 좌우간 소화가 안 되는데 아예 쌀밥에 된장국은 먹으면 소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해외 나가면 그거 안 먹으면 죽으니까 눈 딱 감고 소화제 들고 먹는다구요. 그런데 그것이 뱃속에 들어가면 쌀밥과 된장 먹는 것처럼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건강을 준다구요! 이처럼 하나님 말씀은 내가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고 말씀은 계속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매일 읽기 성경이 얼마나 좋습니까? 매일매일 그날 그만치만 읽으면 그만치 양식이 되는데 여러분 가운데 게으른 사람은 벌써 한달 이상 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말씀의 사람 이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말씀을 읽으면 무언지 모르게 마음이 훈훈해지고 마음에 답답한 것이 사라지고 마음에 생기가 돋아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 속에 와서 우리를 정결케하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기도를 해야 됩니다. 말씀만 읽고 기도를 안 하면 안돼요. 기도는 우리의 호흡입니다. 우리가 4분만 숨쉬지 않으면 죽어요! 요사이는 하도 공기가 오염되어 가지고 우리 서울에서도 오존경보가 나지 않습니까? 늘 머리가 아프고 우리 남선교회 회장님이 나에게 산소통을 갔다 주셨는데 방안에도 산소통을 하나 갖다주고 사무실에도 산소통을 하나 갖다주었는데 어떤 때는 뜰뜰음하면서 산소통을 보니까 이거 환자인가 싶은 생각이 나요. 그러나 그 산소를 하루에 세번씩 10초만 쉬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그래서 아닌게 아니라 그렇게 기분이 좋아요! 세상에 어떻게 되어서 이제 가정용 산소통까지 유행하게 되었냐는 것입니까? 오늘날, 대기오염이 너무나 심각합니다. 이걸 빨리 수정하지 아니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환경에 의해서 자기가 죽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바로 여러분이 숨쉬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오염이 되서 죽어버려요! 아무리 예수 잘 믿는 사람이라도 이 세상이 얼마나 오염됐습니까?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생활이 오염이 되어서 그 영적으로 더러워지고 병들어서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면 귀신들이 쫓겨나가요! 온갖 귀신이 다 붙었을지라도 더러운 귀신, 악한 귀신, 거짓말하는 귀신, 점치는 귀신, 병든 귀신, 음란과 방탄의 귀신, 귀신들이 아무리 붙어도 기도하면 쫓겨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냥 말씀 읽고 찬송한다고 쫓겨나지 않습니다. 말씀 읽고 찬송하면 힘이 생기지만 기도하면 쫓겨나갑니다. 성경에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이런 류는 기도 이외에는 쫓겨나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귀신에 시달리는 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사히 신문지상에 보십시요! 엄청난 일들이 생깁니다. 어린 아이, 10대도 안된 미성년을 번갈아가면서 윤간하는 고아원 원장이 고아들을 윤간하고 선생이 학생들에게 폭력을 하고 그거다 여러분 왜 그런지 압니까? 말세가 되어서 오늘날 그렇게 되었다! 여러분 옛날에도 그런 건 있었어요! 옛날에 일본사람들은 정부가 강제로 우리 한국사람들이나 필리핀이나, 중국여성들을 잡아다가 창녀로 만들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은 2천년전이지만 그 온 도시가 음란과 방탕으로 하나님이 심판해서 내어버리신 것입니다. 말세가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귀신에게 덮혀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뭐? 교육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귀신이 덮혀서 그래요. 그러면 그 귀신을 어떻게 처치합니까? 기도 이외에는 귀신이 나가지 않습니다. 성경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방언을 말하며 뱀을 죽이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회개하고 예수 믿고 귀신 쫓아내면 이러한 일들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육을 많이 시키면 교육받은 악한 자가 되고 아무리 훈련을 많이 시키면 훈련받은 더러운 자가 되며 오직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께 깨어져서 회개하고 예수 믿고 성령 받고 말씀 읽고 기도하면 귀신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고 다음에 성령이 점령하면 믿음, 소망, 사랑이 마음속에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같은 이러한 성령의 열매가 그 인격을 부여잡는데 어떻게 이 세상에 그러한 무지막지한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문제는 오늘 우리 한국 사회에 복음이 전파되고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귀신을 쫓아내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살아 일어나서 자기의 환경과 주위에 기도와 믿음으로 귀신을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이 쫓겨나가면 사회에 더러움이 사라지고, 악한 귀신이 쫓겨나가면 악한 일이 사라지고, 점치는 귀신이 살아지면 무당이 사라질 것이고, 약한 귀신 살아지면 병든 자가 고침을 받을 것이고,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말씀 읽고 우리가 기도하면 그 사람은 믿음이 강해지고 그 기도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운명과 환경과 역사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러분, 참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한 세계로 들어가려면 이와같은 자격을 구비해야됩니다. 이런 자격을 구비하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매일매일 우리를 위해서 예비한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해 놓았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로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일생을 주님께서 예비해 놓았었습니다.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한다고 다윗이 말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께서 돌봐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쉼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안과 공포와 좌절과 절망으로 이마에 진땀을 흘리며 피땀을 흘리며 사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짐을 지고 피땀을 흘리지 않을 사람 없지만 우리 주님께 나가서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이 되고 그리고 기도의 사람, 말씀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하면 하나님이 예비한 모든 삶으로 여러분을 이끌어 주어서 금세안심, 내세복락을 얻게 되고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위해서 에덴동산을 예비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예비하시고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을 위해서는 천국에 영원한 집을 예비해 놓으셨음을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예비하는 하나님, 예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에 우리와 함께 계셔서 예비해 주시는 하나님이시오니,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믿고 따라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 주님 앞에서 용기 있고 담력있는 사람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말씀과 기도에 게으르지 않는 사람이 되게 도와주셔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손을 잡고 인생을 유유히 승리자로 살아가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신유기도- 예수님의 피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화목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오늘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우리가 아버지를 의지하고 아버지를 믿고 우리가 아버지 앞에서 예배드리며 아픈 데 손을 얹었습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고쳐주시옵소서.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신 우리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고 안수한 그 손을 통하여 하나님이여 모든 질병이 순식간에 사라지게 도와주시옵소서. 고통이 떠나가고 주님의 능력으로 치료함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원수 귀신아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우리 성도들의 영과 마음과 몸에서 떠나갈지어다. 너희 귀신들은 손을 떼고 물러가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하나님이 예수님의 보혈로 정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치료하여 주셔서 건강과 생명으로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왔습니다.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사오니 우리의 마음의 소원과 간구를 들으시고 우리 주님이시여 문제를 해결하여 주옵소서. 기적이 일어나게 도와주옵소서. 악한 것을 다 제하여 주옵소서. 낭패를 제하여 주옵소서. 불의를 제하여 주시옵소서. 실패를 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 모든 불법과 불의를 제하시고 모든 불행을 제하시고 낭패와 실망을 제하시고 우리 주님의 은총과 축복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아버지여 성공으로 채워주시옵소서. 기적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옵소서. 주님의 영광이 넘쳐나게 도와주옵소서. 성령으로 채워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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